四柱命理 風水地理/정경연의 풍수기행 83

장성 김인후 묘

장성 김인후 묘 내청룡·내백호 교차 안돼 기 새어나가 동국18현의 한 사람인 하서 김인후(1510~1560)의 묘는 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산25번지에 있다. 맥동마을을 지나 매실마을 쪽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신도비가 나온다. 우암 송시열이 글을 짓고, 글씨는 중추부사 이재, 제목 글씨인 전서는 대사헌 김진상이 쓴 것이다. 이로보아 하서의 학맥은 기호학파이며 서인과 노론으로 계승되었다. 신도비 뒤로 하서 묘역이 보인다. 모두 5기의 묘가 있는데, 올라가는 길 중간 왼편에 두 개의 묘가 보인다. 하나는 하서의 아들 김종호의 묘이고, 그 옆 약간 아래에는 손자 김남중의 처 행주기씨의 묘다. 행주기씨는 고봉 기대승의 딸로 묘는 일명 일비장(一臂葬)이라고 부른다. 행주기씨는 정유재란 때 친정인 광산군 임곡면으..

의령 남강 정암

의령 남강 정암 '풍요 상징' 솥바위 인근 재벌생가 4곳 의령군·함안군·진주시가 인접한 남강의 물속에는 정암(鼎岩)이라는 바위가 있다. 그 모양이 솥처럼 생겼다하여 솥 ‘정(鼎)’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다. 평상시 바위의 반은 수면 위로 드러나 있고 반은 물에 잠겨 있다. 물위의 모양은 솥뚜껑이고, 물 아래는 솥의 발처럼 세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고 한다. 옛날부터 솥은 밥을 하는 도구로 풍요로움을 뜻했다. 또 왕의 힘을 솥의 숫자와 무게로 표현할 만큼 왕권을 상징했다. 경복궁 근정전 전면 좌우 모서리에는 발이 세 개 달린 솥이 놓여 있다. 고대 중국은 천자가 머무는 궁궐에 아홉 개의 솥을 놓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구정(九鼎)을 소유한다는 것은 천하를 다스릴만한 정통성을 갖추었다는 것을 뜻했다. 남강..

장성 홍길동테마파크

장성 홍길동테마파크 문수산·통안천이 품은 배산임수의 전형 홍길동테마파크는 전남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397-1에 위치한다. 장성군이 1999년부터 2012년까지 515억 원을 투입하여 조성한 사업이다. 총 23만㎡(약7만평)의 부지에 홍길동생가, 홍길동전시관, 산채체험장, 야영장, 풋살경기장, 숙박시설인 청백한옥, 휴테크-오토캠프장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있다. 추석 연휴에 가족여행지로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인근에 편백나무 치유의 숲으로 유명한 축령산과 영화 태백산맥 촬영지인 금곡마을이 있다. 홍길동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구청이나 동사무소 민원서류 견본 양식에 적힌 이름 대부분은 홍길동이다. 홍길동을 국민대표 이름으로 내세우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아마도 한국인들은 선천적으로 항쟁과 개..

순창 복흥면

순창 복흥면 호남정맥이 휘감은 '삼재불입지지'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은 해발 300m에 있는 분지지형이다. 정읍 내장사에서 보면 남쪽으로 해발 700m가 넘는 호남정맥 본줄기가 이어진다. 밑에서 보면 산위에 누가 살까 싶다. 그러나 굽이굽이 난 추령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면이 자리할 만큼의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산세도 아래에서 보는 거와는 다르다. 내장산 쪽에서 보면 험준한데 올라가면 순하고 평탄하다. 복흥면 동쪽은 순창 강천사, 서쪽은 장성 백양사, 남쪽은 담양, 북쪽은 정읍 내장사가 위치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복흥을 가려면 가파른 길로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그만큼 복흥면이 높은 곳이다. 이러한 지형이 형성된 것은 호남정맥이 한 바퀴를 돌며 사방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정맥이 고당산에서..

순창 복흥면 금방동 노사 기정진 조모 묘

순창 복흥면 금방동 노사 기정진 조모 묘 대문장가 탄생하는 황액탁목혈의 터 추석 성묘 길에 전북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 금방동과 노사 기정진(1798~1879)의 조모 묘를 찾았다. 노사가 살았던 시대는 열강들의 쟁탈로 인해 조선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을 때였다. 대원군은 쇄국정책으로 이를 막으려고 했으나 명성황후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개화정책을 폈다. 그러자 성리학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던 보수 유림은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을 폈다. 정학인 성리학을 지키고 다른 사상은 사악한 것이므로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노사가 있었다. 노사는 행주기씨(幸州奇氏)로 선조들은 본래 행주산성이 있는 고양 원당 땅에서 살았다. 중종 때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김굉필 문하에서 정암 조광조와 동문수학했던 기진(148..

장성 필암서원

장성 필암서원 사방의 물 모이는 곳… 사람과 재물도 모인다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필암서원은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8-379(필암서원로 184)에 있다.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지역별로 보면 영남 6곳(경북 영주 소수서원, 경북 안동 도산서원, 경북 안동 병산서원, 경북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충청 1곳(충남 논산 돈암서원), 호남 2곳(전북 정읍 무성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이다. 서원은 향교와 함께 조선시대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다. 향교가 공립학교라면, 서원은 향촌이나 문중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다.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 선현과 우리나라 18선현을 같이 배향하고 있다. 반면 서원은 ..

순창 김시서 묘

순창 김시서 묘 봉우리가 감싼 좋은 기운 스며든 터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11대조인 자연당 김시서(1652~1707)의 묘는 전북 순창군 복흥면 산정리 산39-1(산정길 141) 내오마을 뒤편에 있다. 김시서는 울산김씨로 하서 김인후의 5대손이다. 그의 아버지는 복흥면 자포리 자봉포란형에 묻힌 김창하다. 송시열의 문인으로 시를 잘 써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숙종 때 학문과 덕행으로 종6품 외관직인 관찰방에 제수되었다. 김시서의 호는 자연당으로 5대조인 하서의 시 자연가에서 따왔다. 하서는 인종이 죽자 벼슬을 버리고 처가가 있는 순창군 점암촌(쌍치면 둔전리)으로 낙향하였다. 그리고 훈몽재를 세우고 강학을 열며 약 2년간 머물렀다. 그때 지은 시가 자연가다. 청산도 자연이고 녹수도 자..

순창 김극뉴 묘

순창 김극뉴 묘 현무봉 맥따라 휘몰아치는 천마의 콧바람 사계 김장생의 4대조이며 말 명당으로 유명한 김극뉴(1436~1496) 묘는 전북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 산36번지에 있다. 이 묘를 쓰고 광산김씨가 최고의 명문가가 되었다 하여 조선8대명당이라 부른다. 팔대명당이란 8개의 명당만을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국을 대표할 만큼 좋은 자리를 극찬할 때 쓰는 말이다. 김극뉴 묘를 극찬하는 것은 그 후손들이 크게 번창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명문을 이야기할 때 문묘배향한 인물을 배출한 것을 최고로 친다. 두 번째는 왕비와 대제학, 셋째는 정승판서 및 청백리, 넷째는 문과 급제자수, 다섯째 충신·효자·효부·열녀 순서다. 광산김씨는 문묘배향 2명, 왕비 1명, 대제학(문형) 8명, 정승 5명, 청백리 4명, 문과..

순창 가인 김병로 생가

순창 가인 김병로 생가 순창 복흥면 가인 김병로 생가, 강직한 성품처럼 기세 좋게 뻗은 용맥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1887~1964)의 생가는 전북 순창군 복흥면 하리 519(하리길 160)에 있다. 생가 맞은편 심적산 호남정맥 능선 위에는 대법원 가인연수관이 있다. 생가가 마주보이는 곳에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놓은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자 2010년 건립한 것이다. 휴양지를 겸해 사법연수원의 교육이나 세미나, 워크샵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가인은 울산김씨로 하서 김인후의 15대손이고, 복흥면 자포리 자봉포란형에 묻힌 김창하의 11대손이다. 하서 김인후의 4대손인 김창하는 익서·두서·시서 세 아들을 두었다. 인촌 김성수(1891~1955)는 익서의 8대손으로 신평파이고, 가인 김병로는..

담양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 단

담양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 단 봉황이 무등산에서 날개편듯한 형국 담양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단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의 단(壇)은 전남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 204-1(평장동길 74)에 있다. 이곳을 단이라고 한 것은 묘가 실전(失傳)되었기 때문이다. 시신이 있는 무덤은 묘, 없는 무덤은 단이라고 한다. 후손들은 시조가 자리를 잡고 살았던 곳에 단을 세우고 참배를 해왔다. 현재는 단 자리에 사당인 평장사(平章祠)가 있다. 김흥광은 신라의 왕자로 알려졌으나 어느 왕의 아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처음은 제49대 헌강왕의 셋째 아들로 알려졌다. 그러나 헌강왕은 아들이 하나뿐이었다는 기록이 나오자, 제45대 신무왕의 아들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아예 상계를 생략하고, 김알지의 후예로 신라의 왕자라고만 족보에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