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정경연의 풍수기행

장성 김인후 묘

초암 정만순 2021. 1. 21. 09:39

장성 김인후 묘

 

 

내청룡·내백호 교차 안돼 기 새어나가

 

 

동국18현의 한 사람인 하서 김인후(1510~1560)의 묘는 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산25번지에 있다.

맥동마을을 지나 매실마을 쪽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신도비가 나온다.

우암 송시열이 글을 짓고, 글씨는 중추부사 이재, 제목 글씨인 전서는 대사헌 김진상이 쓴 것이다.

이로보아 하서의 학맥은 기호학파이며 서인과 노론으로 계승되었다.

신도비 뒤로 하서 묘역이 보인다.

모두 5기의 묘가 있는데, 올라가는 길 중간 왼편에 두 개의 묘가 보인다.

하나는 하서의 아들 김종호의 묘이고, 그 옆 약간 아래에는 손자 김남중의 처 행주기씨의 묘다.

행주기씨는 고봉 기대승의 딸로 묘는 일명 일비장(一臂葬)이라고 부른다.

행주기씨는 정유재란 때 친정인 광산군 임곡면으로 피난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왜군을 만났다.

친정오빠 기효맹과 동생 기효민 가족도 동행했는데 왜군은 남자들은 칼로 죽이고 아녀자들을 추행하려고 달려들었다.

왜군이 기씨부인의 팔을 잡아끌자 부인은 평소 지니고 다녔던 은장도로 팔을 잘라버렸다.

그리고는 황룡강으로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나이 29세였다.

양씨와 정씨 두 올케들도 왜적에게 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황룡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왜군이 물러간 후 동네 사람들이 부인의 시체를 찾았지만 겨우 팔 하나만 찾았다.

난리가 끝나자 강원도로 피난 갔던 김남중이 돌아와 부인의 팔 하나를 전달받았다.

그는 슬픔을 달래며 부인의 팔뚝을 하서 묘역 아래쪽에 묻었다.

바로 일비장이다.

당시 부인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있었는데 왜군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 뒤 소식을 모른다.

다만 일제강점기 때 전북 고부에 하서라는 성을 가진 경찰서장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조상이 조선 사람이라며, 일본에는 하서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했다.

아마도 그때 끌려간 두 아이의 후손들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장성군에서는 부인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기씨부인전’을 장성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한편 김남중은 함평이씨와 재혼하여 4남2녀를 두었다.

 

 


하서 묘역에 오르면 제일 위쪽에 부모 묘가 쌍분으로 있다.

우측은 아버지 종사랑 의릉참봉인 김령(金齡) 묘이고, 좌측은 어머니 옥천조씨(玉川趙氏)다.

참고로 옥천은 순창의 옛 이름이다.

이곳은 주산인 문수산(620.5m)에서 내려오며 관동천과 함께하며 맥동마을까지 산줄기가 이어진다.

산의 주된 기운은 맥동마을로 내려가고 작은 맥 하나가 갈라져 나와 묘역까지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현무봉인 원당산에서 묘역까지 이어지는 입수룡의 변화가 활발하지 않다.

용맥의 힘이 약하다는 뜻이다.

부모 묘 아래에 문정공 하서 김인후의 묘가 있다.

배위인 증정경부인 여흥윤씨와 합장한 묘다.

위의 부모 묘의 여기가 내려오기는 했으나 혈로 보기는 어렵다.

혈은 땅의 기가 모여 단단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혈장의 필수 요소인 입수도두, 선익, 순전도 보이지 않는다.

묘역을 가까이서 보호하는 내청룡과 내백호는 감싸주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 끝이 교차되지 않아 앞이 열려 있다. 열린 틈으로 기는 새어 나가기 마련이다.

묘 정면으로 보이는 안산귀인봉이다.

수연산에서 내려온 산줄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묘역을 향하지 않고 맥동마을을 향해 내려간다.

그것도 묘역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러다가 맥동마을 앞에서는 마을을 안 듯이 환포해준다.

산이 등을 돌리면 물도 등을 돌린다.

산수동행 즉, 산과 물은 같이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맥동마을의 산세는 묘역보다는 마을자리가 좋다고 하겠다.

울산김씨 가문은 명당 잘 쓰기로 유명하다.

하서의 5대조모인 여흥민씨 묘가 조선팔대명당으로 평가 받고 있고, 전북 순창군 복흥면 자포리에 있는 그의 증손 김창하의 묘가 명당으로 소문 나있다.

그러나 하서의 묘는 아무리 좋게 평가하려고 해도 좋다고 말 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서인의 주요 인물들의 묘치고 좋은 곳이 없었던 것 같다.

율곡 이이, 송강 정철, 우암 송시열의 묘가 대표적이다.

성리학의 명분에 때문에 실사구시 학문인 풍수지리를 소홀히 한 탓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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