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 229

[노인영의 풍수 이야기] 청도 계명마을

[노인영의 풍수 이야기] 청도 계명마을 수탉 울어 대며 갖은 액운 쫓고, 암탉이 알 낳듯 많은 인재 배출 수탉 형상의 현무봉과 절효 김극일 선생 선영 풍수란 바람(風)과 물(水), 땅의 이치를 깨달아 우리 인간이 행복한 생활을 하도록 실생활에 적용하는 학문이다. 우리의 문화유산(특히 지명) 속에는 풍수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문화유산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풍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근래에는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전염병, 생각지도 못한 사건,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시킨 결과물이라 본다. 자연이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풍수사상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본고는 잊혀 가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재조명해 보고 인간과 자..

청와대와 용산의 풍수

청와대와 용산의 풍수 627년 만에 경복궁 벗어날 수 있을까? ‘용산’ 이름의 ‘용(龍)’도 이제 그 이름값을 할 때가 온 것이다 몽고부터 왜, 청, 일, 미국까지 용산에는 늘 외국 군대가 주둔 수 백 년 동안 우리는 이 땅을 제대로 활용해 본 적이 없었다 북악산 아래의 청와대와 경복궁의 모습으로 규봉(窺峰) 이 북악산 뒤에서 어깨 넘어 경복궁을 넘겨다보고 있다. 풍수의 핵심 포인트는 무엇인가? “태초에 지구가 만들어질 때 모든 땅은 능선(산줄기)과 물길 두가지로 구분됐다. 그 때 만들어진 능선 형태의 땅을 풍수는 용(龍)이라고 부른다. 용(능선) 속에는 지맥(地脈)이라고 부르는 지구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가 있어서 지기(地氣)가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지구 에너지인 지기는 자연 상태의 물길을 만나면 흐름을..

홍성 김좌진 생가

홍성 김좌진 생가 풍수의 교과서적 명당...충남 홍성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 청산리대첩으로 유명한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는 충남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330-1(백야로 546번길 12)에 있다. 고종 26년(1889) 안동김씨 집안에서 아버지 김형규와 어머니 한산이씨 사이의 3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장군의 11대조는 병자호란 때 강화성이 함락되자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한 문충공 김상용이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과는 9촌 관계다. 김좌진 집안은 대대로 많은 농토를 가진 지주였다. 그러나 3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13세 때 형 김경진은 백부 김덕규의 양자가 되어 서울로 갔다. 그러다보니 편모슬하에서 김좌진이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다. 장군은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동네에서 씨름 ..

익산 이병기 생가

익산 이병기 생가 집터·산세의 기운 깃든 학자의 요람 가람 이병기(1891~1968) 선생의 생가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가람1길 64-8)에 위치한다. 현대시조의 아버지라 불리는 선생은 이집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이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진사동로 불리는 이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용하고 편안하다. 특히 생가는 대나무 숲속에 있어서 청렴한 선생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집은 크지 않지만 옹색하지도 않아 꼿꼿한 선비의 기개를 느끼게 한다. 선생은 연안이씨로 변호사인 아버지 이채와 어머니 파평윤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 한학을 배웠고, 20세 때인 1910년 신학문의 필요성을 깨닫고 전주보통학교에 들어갔다.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셈인데, 6개월 만에 마치고 ..

용인 김대중 부모 묘

용인 김대중 부모 묘 부모묘 이장 후 대권 잡아 김대중 대통령의 부모 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 산156-1에 위치한다. 제7대(1971), 제13대(1987), 제14대(1992) 대선에서 계속 실패하자 김대중 대통령은 마지막 수단으로 풍수를 이용한 것 같다. 당시 유명한 지관이었던 육관 손석우씨에게 부탁하여 자리를 잡았다. 손석우씨는 이곳을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오는 천선하강형(天仙下降形) 명당이라고 소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하의도에 있는 아버지 김운식 묘와 포천 천주교공원묘지에 있던 어머니 장수금 묘를 이장하여 합장하였다. 그리고 거주지도 33년간 살았던 동교동을 떠나 일산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하였다. 이장하고 1년 반 후 드디어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자 언론에서는 이곳을 ..

보령 김좌진 묘

보령 김좌진 묘 사신이 서로 끌어 안듯 감싸주며 보국형성 김좌진(1889~1930) 장군의 묘는 충남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산51(김좌진로 200)에 있다. 김좌진과 홍범도가 1920년 10월 청산리에서 대승을 거두자 참패한 일본군은 대대적인 독립군 소탕작전을 폈다. 특히 독립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간도지역 조선인 마을을 초토화시켰다. 그러자 김좌진 등 독립군들은 우수리강을 건너 안전지대인 연해주 이만(달네레첸스크)으로 이동하였다. 당시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소비에트(소련)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를 주도한 레닌은 약소민족의 독립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 말을 믿고 독립군 부대들이 속속 모여든 것이다. 그러나 러일전쟁으로 적대관계였던 러시아와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동맹을 맺었다. 레닌..

전주 이목대·오목대 풍수

전주 이목대·오목대 안산·조산 완벽하게 못 감싸고 흩어지는 형세 이목대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산1-3(기린대로 55), 오목대는 교동 산1-11에 위치한다. 전주한옥마을 10대 명소로 육교를 사이에 두고 약 7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목대는 신라 때 사공 벼슬을 지낸 전주이씨 시조 이한부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 이안사까지 살았던 집터다. 이안사는 고려 때 사람으로 전주 산성별감과 불화로 삼척을 거쳐 함경도로 이주하였다. 전주이씨는 대대로 무인 집안이었다. 고려 중기 무신정변을 주도하여 최고 권력에 올랐던 이의방도 이곳 출신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그의 동생 이린이 형이 피살되자 낙향했는데, 이린의 손자가 이안사이기 때문이다. 이안사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훗날 고종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

남양주시 홍유릉 풍수

남양주시 홍유릉 왕기 끊기 위한 교활한 풍수 조선의 마지막 왕릉인 고종의 홍릉과 순종의 유릉은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에 있다. 두 능을 합쳐서 홍유릉이다. 능역에 들어서면 기존 왕릉과는 다른 분위기다. 남한에 있는 유일한 황제 능이기 때문이다. 우선 능 아래 제실이 정자각 대신 황제를 뜻하는 일자형 침전으로 바뀌었다. 홍살문에서 침전까지 이어지는 참도도 일반 왕릉과 다르게 양옆으로 석물이 도열되어 있다. 홍살문에 들어서면 말, 낙타, 해태, 사자, 코끼리, 기린, 무인, 문인이 차례로 마주보고 서있다. 이는 중국 남경에 있는 명나라 태조 홍무제(주원장)의 효능을 본떠서 조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묘역 규모는 효릉에 비교하면 매우 작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중국을 사대하였기 때문에 역대 왕들은 황..

서울 방배동 효령대군 묘

서울 방배동 효령대군 묘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는 대혈의 명당 조선 태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1396~1486)의 묘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190-1(효령로 135)에 있다. 지하철 2호선 방배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청권사(淸權祠)라는 사당이 있다. 청권이란 중국 주나라의 태왕이 맏아들 태백과 둘째아들 우중을 두고, 셋째아들 계력(주문왕)에게 왕위를 물려 준데서 나온 말이다. 태백과 우중은 태왕의 뜻을 알고 형만으로 가서 은신하며 왕위를 사양했다. 이를 두고 후일에 공자가 태백을 지덕(至德), 우중을 청권(淸權)이라고 칭송하였다. 태종의 셋째아들인 충녕대군(1397~1450)이 왕위(세종)에 올라 태백과 우중의 고사를 떠올리며 “나의 큰형님 양녕대군(1394~1462)은 곧 지덕이요, 둘째 형님 효령대군..

밀양 사명대사 생가 풍수

밀양 사명대사 생가 풍수 생가 앞까지 감아 도는 '좌청룡 우백호' 사명대사(1544~1610)의 생가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 399(사명대사생가로 642)에 있다. 대사는 풍천임씨로 속명은 임응규, 자는 이환, 법명은 유정이며, 법호는 사명당·송운·종봉이다. 대사의 조상들은 풍수적으로 명당인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대를 이어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 증조부인 임효곤은 문과에 급제하여 대구 수령을 역임했고, 조부 임종원 역시 문과 급제하여 강계부사를 지냈다. 아버지 임수성은 진사에 합격했으며, 대사도 불과 18살에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승과에 급제했다. 승과는 고려와 조선초기까지만 해도 문과·무과·잡과와 함께 실시했었다. 승과에 합격하면 대덕·대사·중대사·삼중대사로 승진하였다. 왕의 자문을 맡게 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