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정경연의 풍수기행

전주 이목대·오목대 풍수

초암 정만순 2021. 6. 12. 08:40

전주 이목대·오목대

 

 

안산·조산 완벽하게 못 감싸고 흩어지는 형세

 

이목대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산1-3(기린대로 55), 오목대는 교동 산1-11에 위치한다.

전주한옥마을 10대 명소로 육교를 사이에 두고 약 7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목대는 신라 때 사공 벼슬을 지낸 전주이씨 시조 이한부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 이안사까지 살았던 집터다.

이안사는 고려 때 사람으로 전주 산성별감과 불화로 삼척을 거쳐 함경도로 이주하였다.

전주이씨는 대대로 무인 집안이었다.

고려 중기 무신정변을 주도하여 최고 권력에 올랐던 이의방도 이곳 출신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그의 동생 이린이 형이 피살되자 낙향했는데, 이린의 손자가 이안사이기 때문이다.

이안사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훗날 고종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라는 친필로 새긴 비석을 세웠다.

이안사가 살았다던 집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삼척으로 이주 할 때 170호의 일가 모두가 그를 따라갔다고 한다.

집터를 알 만한 사람이 모두 떠나 버린 것이다.

그 후로 4대가 흘러 이성계가 조상들의 고향이라고 찾아왔지만 집터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 높은 대지 위에 이씨인 목조가 살았던 터란 뜻의 이목대(李穆臺)를 설치했다.

더욱이 1986년 도로확장공사로 현재 위치로 이목대 비각을 이전했으니 더더욱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일대 산세를 살피면 일가를 이룰만한 터임에는 분명하다.

이곳 태조산은 호남정맥 만덕산(765.5m)이고 중조산은 묵방산(527.4m)이며 소조산은 승암산(306m)이다.

승암산은 산 모양이 스님이 염불하는 것과 같다하여 중바우산이라고도 불린다.

정상에는 암석층이 많아 기가 센 산이다.

그 중턱에 후백제 견훤이 성(현 동고산성)을 쌓고 궁궐을 지었다.

자고로 풍수는 기가 순한 곳에서 흥하고, 험한 곳에서는 쇠하는 법이다.

견훤이 무진주(광주)에서 세력을 모아 도독이 된 후, 완산(전주)으로 옮겨 후백제를 세우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처음에는 후삼국의 주도권을 잡는 듯 했으나 불과 36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그것도 부모와 자식, 형제끼리 불화와 반목 때문이다.

만약 기가 순한 아래쪽에 궁터를 정했으면 어떠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승암산에서 서북쪽으로 힘차게 내려온 맥이 현무봉으로 발산(鉢山)을 세웠다.

중의 밥그릇인 발우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순하고 깨끗하며 반듯하게 생겼다.

발산을 발이산(發李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전주이씨가 이곳에서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발산의 중심 맥이 남쪽으로 내려와 머무르는 곳에 자만마을이 있다.

이곳 어디엔가 이안사가 살았던 집터가 있었을 것이다.

《전주읍지》는 “발산 아래 자만동이 있는데, 그곳에 목조대왕의 집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곳의 좌청룡은 한벽당 뒤쪽 봉우리에서 전주향교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우백호는 발산 봉우리에서 오목대까지 뻗어 내려간 능선이다.

이들은 서로 감싸며 보국을 형성했지만 좀 엉성하다.

앞쪽 안산은 향교 뒷산인데 백호에서 이어진 것이다.

안산 너머로 보이는 조산은 남고산(273.7m)이다.

아쉬운 점은 안산과 조산이 이곳을 완벽하게 감싸주지 못하고 흩어지는 형세다.

이안사가 고향을 떠난 이유를 풍수적으로 해석해보라고 한다면 이 때문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목대(吳穆臺)는 이성계가 고려 우왕 6년(1380)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 언덕에 전주이씨 종친들을 불러 크게 연회를 베풀었다.

그리고 대풍가(大風歌)를 읊었다.

한나라의 유방이 숙적 항우를 정벌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대연회를 열고 스스로 악기를 들고 읊었다는 그 노래다.

“센 바람이 부니 구름이 높이 날아가네. 위풍을 해내에 떨치며 고향에 돌아왔네. 어떻게 용맹한 군사들을 얻어 사방을 지킬까”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자신의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12년 후 이성계는 조선을 세워 왕이 되었다.

이후 오목대가 세워지고 자만마을에는 왕의 조상들이 살았던 곳이니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는 ‘자만동금표(自滿洞禁標)’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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