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 229

원주 원천석 묘 풍수

원주 원천석 묘 괴교혈의 기룡혈 고려 말 혼란한 정치를 개탄하며 은거했던 운곡 원천석(1330~?)의 묘는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산37 치악산 자락에 있다. 원천석은 고려 망국의 한과 무상함을 읊은 시조로 유명하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시험에도 자주 나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의 시 한 수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살다 간지 70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국민 작가인 것이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목동의 피리소리)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가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원천석의 본관은 원주다. 원씨는 원주원씨 단본이나 계파는 원경의 운곡파, 원극유의 원성백파, 원익겸의 시중공파 등 3개 파로 크게 나뉜다. 원천석은 운곡파로 당나라 태종 때 고구려와 ..

지리오결- 용·혈·사·수·향

지리오결- 용·혈·사·수·향 묘터 주변 산, 반듯하면 귀인 배출할 명당 ▲ 묘터 바로 뒤쪽의 산 능선이 용(龍), 용맥을 따라 전달된 지기가 모인 묫자리가 혈(穴)이다. . 자연계의 모든 생물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존재한다.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짝짓기를 하고 죽는 생물이 부지기수다. 환경이 변하면 유전자 변이까지 일으키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지키려고 한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조상들은 자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면서 명당에 묘를 썼다. 명당에 묘를 쓰면 유전자가 우수해져 자손 수가 늘고 훌륭한 인물을 배출한다고 보았다. 조상 묘가 명당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풍수에서는 집터나 묘 터를 분석할 때 용·혈·사·수·향 다섯 가지 요소를 중요시한다. 풍수이론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조선왕릉 44곳의 풍수지리

조선왕릉 44곳의 풍수지리 조선왕조 518년간 '명당 왕릉'은 4곳 뿐 ▲ 사도세자 융릉 왕릉은 과연 명당인가? 왕릉은 당연히 명당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대 최고의 지관들이 자리를 잡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그러나 명당자리에 묘를 썼는데 왜 조선왕조가 망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혹자는 풍수지리가 원래부터 허황된 것으로 맞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만 뒤집어 보면 왕릉이 명당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역사는 왕권과 신권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왕들은 왕권을 강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에 신하들은 왕을 견제하고 신권을 강화시키려고 한다. 신하들 입장에서는 강력한 왕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런 신하들이라면 왕릉을 명당에 쓸 리 만무하다. 조선왕조의 왕릉은 모두 4..

파주 우계 성혼 묘

파주 우계 성혼 묘 유교보다 앞선 풍수… 묘역 '역장'으로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인 우계 성혼(成渾, 1535~1598)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 산8-2에 위치한다. 율곡 이이가 묻혀 있는 자운서원에서 약 5km 정도의 가까운 거리다. 파주의 대부분 산세들은 야트막하고 순하다. 가늘고 부드러운 가지 끝에 열매가 열리듯 혈도 순하고 부드러운 산맥 끝자락에 맺는 법이다. 이곳 산세는 한북정맥 꾀꼬리봉에서 비롯된다. 파주의 주산이라 할 수 있는 노고산(382.2m)을 거쳐 봉서산(215.5m)를 향해 가다 서쪽으로 한 맥을 뻗어 향양천을 만나 멈추었다. 묘역은 아래는 부친인 성수침의 묘, 위는 아들인 성혼의 묘가 있다. 소위 역장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명문가일수록 또 성리학자 일수록 역장 한 곳..

춘천 신숭겸 묘

춘천 신숭겸 묘 왕건이 자신 묏자리까지 내준 고려충신 조선팔대명당 중 하나로 알려진 평산신씨 시조 장절공 신숭겸 장군 묘는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 823(신숭겸로 272-1)에 위치한다. 북한강 의암호가 앞에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현암삼거리에서 신숭겸로를 따라 가면 갑자기 넓은 들판이 나온다. 입구는 좁은데 안쪽 들판이 넓은 곳은 명촌과 명당이 많다.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사람이 오랫동안 대를 이어 살만한 땅은 첫째 마을 입구인 수구가 좁은 곳, 둘째 안쪽에 탁 트인 들판이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들판을 지나며 보면 반듯하게 생긴 귀인봉이 눈에 띤다. 신숭겸 묘의 현무봉으로 마치 귀인이 단좌한 모습이다. 그 뒤의 산들은 중첩으로 현무봉을 감싸고 있다. 가장 멀리 보이는 산은 북배산(869..

논산 견훤왕릉 풍수

논산 견훤왕릉 풍수 평범한 야산에 잠들다 논산 후백제 견훤왕릉 후백제 견훤왕릉은 충남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산18-3에 있다. 역사는 승자 편으로 패자는 기억하지 않는다. 후백제는 후삼국 중 가장 큰 세력으로 성장하여 36년간 유지된 왕조였다. 그러나 현재는 도읍의 흔적조차 알 수 없다. 남아 있는 자료가 없으니 후백제와 견훤(867~936)은 고려와 왕건에 비해 항상 나쁘게 묘사되어 왔다. 사실 지금의 묘도 견훤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예전에는 견훤묘로 전해진다 해서 ‘전견훤묘(傳甄萱墓)’라고 불렀다. 그런데 1970년 견훤의 후손인 전주견씨와 황간견씨 문중에서 ‘후백제왕견훤릉’이라는 비석을 세우면서 견훤왕릉으로 기정사실화 되었다. 견훤은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령 이병철 생가 풍수

의령 이병철 생가 풍수 완벽한 '부자의 터'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호암 이병철(1910~1987) 회장 생가는 경남 의령군 정곡면 호암길 22-4에 위치한다. 호암의 조부 이홍석이 1851년 대지면적 1천907㎡(578평)에 전통 한옥으로 지은 집이다. 이병철은 이곳에서 아버지 이찬우와 어머니 권재림 사이의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16대조가 연산군 때 사화를 피해 이곳으로 낙향한 이후 대대로 이곳에 터전을 이루며 살았다. 6대조가 정3품인 통정대부 품계를 받는 등 유학자 집안이며, 천석지기 농토를 소유한 대지주 집안이었다. 호암은 어려서 조부가 세운 서당에서 천자문, 사서삼경, 논어 등을 배웠다. 10살 때인 1919년 진주 지수공립보통학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그곳에는 만석꾼인 ..

고창 서정주 생가

고창 미당 서정주 시인 생가 집앞 작은 개울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생가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578번지에 있다. 미당은 어린 시절 이 집에서 서당을 다니다가, 10살 때 인근의 줄포로 이사하여 줄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5세 때인 1929년 서울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학교는 같은 마을의 만석꾼인 원파 김기중과 양자인 인촌 김성수가 설립한 학교다. 서정주의 아버지는 김성수 집안의 마름으로 소작농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대기업 임원에 해당되므로 서정주 집안은 경제적으로 비교적 넉넉했다고 할 수 있다. 서정주는 학교 교육과는 인연이 없었다. 1929년 11월에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서울까지 확산되었는데 여기에 가담하였다..

보령 토정 이지함 묘

보령 토정 이지함 묘 형제에 명당묫자리 양보한 풍수의 대가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1517~1578)의 묘는 충남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 산27-3(토정로 1048)에 있다. 이곳에는 무려 14개의 묘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토정의 아버지 이치(李穉, 1477∼1530)와 어머니 광산김씨 합장묘가 제일 위에 있고, 그 아래에는 아들 삼형제의 묘가 나란히 있다. 가운데가 장자인 성암 이지번, 동쪽에는 차자 한창부원군 이지무, 서쪽에 막내인 이지함의 묘가 있다. 그 후손들의 묘는 부모 묘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본관이 한산(韓山)인 토정은 고려 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의 6대손이다. 아버지 이치는 수원판관을 지냈다. 토정은 외가인 보령군 청라면 장산리에서 태어났다. 1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때..

춘천 김유정 생가

춘천 김유정 생가 풍수따라 살다간 불운한 문재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인 김유정(1908~1937)의 생가는 춘천시 신동면 증리 868-1(실레길 25)에 있다. 김유정은 이곳에서 아버지 김춘식과 어머니 청송심씨의 2남6녀 중 일곱째 차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은 청풍김씨로 10대조가 최초로 대동법을 실시한 김육이다. 9대조는 현종의 국구인 김우명이며, 고조부 김기순 때 이곳 실례마을로 이주해 왔다. 증조부 김병선은 학당을 열고 화서학파의 거유인 김평묵을 초빙해 자제들을 교육케 했다. 조부 김익천은 6천석 부자로 음직으로 도사(都事) 벼슬을 했다. 조부가 사망하자 아버지 김춘식은 가족들을 이끌고 의병 봉기로 어수선한 춘천을 피해 서울로 이사했다. 김유정이 6살 때다. 이사한 집은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100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