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정경연의 풍수기행

고창 서정주 생가

초암 정만순 2021. 5. 18. 11:51

고창 미당 서정주 시인 생가

 

 

집앞 작은 개울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생가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578번지에 있다.

미당은 어린 시절 이 집에서 서당을 다니다가, 10살 때 인근의 줄포로 이사하여 줄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5세 때인 1929년 서울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학교는 같은 마을의 만석꾼인 원파 김기중과 양자인 인촌 김성수가 설립한 학교다.

서정주의 아버지는 김성수 집안의 마름으로 소작농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대기업 임원에 해당되므로 서정주 집안은 경제적으로 비교적 넉넉했다고 할 수 있다.

서정주는 학교 교육과는 인연이 없었다.

1929년 11월에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서울까지 확산되었는데 여기에 가담하였다.

1930년 1주년 기념 학생운동을 주모한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는데 학교는 퇴학처분을 하였다.

그는 빈민운동을 잠시 했다.

당시 아현동의 좋은 하숙집에서 나와 빈민굴에서 생활하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되었다.

고향으로 내려와 건강을 회복하고 1931년 고창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그러나 일본식 교육에 반발해 백지답안 사건을 주도했다가 권고자퇴를 당했다.

서정주의 젊은 날은 방랑의 연속이었다.

집에 있기에 답답한 서정주는 만주나 러시아로 가기위해서 아버지 돈 300원을 훔쳤다.

당시로는 매우 큰돈이었다. 그러나 만주로 가지 않고 서울에 눌러 앉았다.

그 돈으로 많은 책을 사서 보기도 하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가 평생 스승으로 모신 석전 박한영도 이때 만났다.

박한영은 순창 구암사에서 법통을 받은 스님으로 만해 한용운과 함께 한국불교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일제는 한국불교를 일본의 조동종(曹洞宗)에 통합하려고 하였는데 이를 저지한 것이다.

서정주는 박한영이 교장으로 있는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작가인 김동리, 시인인 함형수·이상·오장환 등과 교유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서정주는 잡지 <시인부락>을 창간하고 주간을 맡아 토속적이고 불교적 내용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썼다.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왕성한 창작을 한 그는 조선을 대표하는 생명파 시인으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1940년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조선인의 전쟁참여를 독려할 때 여기에 적극 가담하였다.

일본 군복을 입고 종군기자로 다니면서 조선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모는 많은 시와 글을 썼다.

그의 변절 행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1980년 쿠테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와 유착하여 대통령 당선 축하시, 군사정권지지 발언 등 권력에 아부하고 야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서정성 짙은 시는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런 불공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러나 생가를 가보면 그에 대한 미움보다는 서정적 정서에 잠기고 만다.

선운리 마을은 언제가도 평화롭다.

특히 가을에 가면 국화꽃 향기가 마을 가득하다.

생가 마루에 앉으면 삼각형 모양의 산이 마주 보인다.

끝이 뾰족한 문필봉이다.

유명한 문인들의 생가에는 대개 문필봉이 있다.

문필봉이 가파르게 솟아 있으면 강직한 글, 완만하면 너그러운 글이 나온다고 본다.

 

 


이곳 산세는 정읍 내장산에서부터 비롯된다.

입압산과 방장산·방문산을 거쳐 이곳 주산인 소요산(445,4m)을 세웠다.

소요산에서 평지로 내려온 산맥 끝자락에 미당 생가가 있다.

집 뒤에 밭과 마을길이 맥에 해당되며 그 변화가 상당히 활발하다.

집 앞에는 작은 개울이 생가 앞을 흘러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문필봉을 비롯한 주변 산들은 매우 편안하게 이곳을 감싸고 있다.

그 때문인지 마을에서 맞는 바람이 매우 부드럽다.

인걸은 지령이라 했으니 생가의 좋은 기운만큼 서정주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굴곡 많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86세의 생애를 비교적 순탄하게 살았다.

과연 잘 산 인생일까?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어야 했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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