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정경연의 풍수기행

장성 필암서원

초암 정만순 2021. 1. 19. 13:02

장성 필암서원

 

사방의 물 모이는 곳… 사람과 재물도 모인다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필암서원은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8-379(필암서원로 184)에 있다.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지역별로 보면

영남 6곳(경북 영주 소수서원, 경북 안동 도산서원, 경북 안동 병산서원, 경북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충청 1곳(충남 논산 돈암서원),

호남 2곳(전북 정읍 무성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이다.

서원은 향교와 함께 조선시대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다.

향교가 공립학교라면, 서원은 향촌이나 문중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다.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 선현과 우리나라 18선현을 같이 배향하고 있다.

반면 서원은 우리나라 선현만을 배향하고 있다.

그 시초는 풍기군수 주세봉이 세운 백운동서원(지금의 소수서원)이다.

이후 사림들이 득세하면서 전국 곳곳으로 서원이 확대되었다.

명종 때 29개였던 것이 선조 때는 124개, 숙종 때는 300여 개, 영조 때는 700여개, 18세기 중엽에는 1천여 개에 이르렀다.

서원에 부속된 토지는 면세되고, 서원 학생과 노비는 군역이 면제되었다.

이 때문에 서원은 조세 탈루와 군역을 기피하는 장소로 악용되었다.

또한 서원을 중심으로 학파와 붕당이 형성되었다.

서원의 폐단이 날로 심해지자 역대 왕들이 여러 차례 서원 정비를 꾀했다.

그때마다 유림들의 저항으로 실패하였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집정 초기부터 서원의 비행과 불법을 낱낱이 적발케 하여, 사표가 될 만한 47개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시켰다.

호남지방에서는 3개만 남았는데 정읍의 무성서원, 광주의 포충사와 함께 이곳 필암서원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가 세상을 떠나고 30년 후인 선조 23년(1590) 호남의 유림들이 세운 것이다.

처음 위치는 김인후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후 기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장성읍 기산리에 있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자 인조 2년(1624) 증산들에 다시 세웠다.

그러나 수해를 자주 입자 현종 13년(1672)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사액서원이란 임금이 서원 현판을 하사한 서원을 말한다.

본래 서원은 사립이기 때문에 국가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큰 업적을 남긴 유학자를 배향한 서원에 대해서는 왕이 편액과 함께 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하고 면세와 면역의 특권을 내렸다.

필암서원은 현종 3년(1662)에 이 지역 유생들의 요청에 따라 사액이 되었다.

 

 

이곳 태조산은 정읍 내장산(763.5m)이다.

호남정맥 상에 있으며 산줄기를 크게 두개로 갈라지게 한다.

하나는 호남정맥 본 줄기로 백암산과 담양 추월산을 거쳐 광주 무등산으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입암산을 지나 고창 방장산(742m)을 세우고 장성 문수산·고성산·월랑산, 영광 불갑산, 무안 승달산, 목포 유달산까지 이어진다.

두 산줄기 사이로는 영산강의 지류인 황룡강이 흐른다.

이곳은 문수산(621.6m)에서 내려온 맥의 끝자락에 있다.

서원 뒤쪽의 현무봉은 원형으로 후덕한 모습이다.

그 중심에서 내려온 맥이 평지를 만나는 곳에 제향공간인 우동사(祐東祠)가 있다.

하서 김인후와 제자인 고암 양자징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편액은 주자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강학공간인 청절당(淸節堂)은 옛 진원현의 객사를 옮긴 것이라고 하며 편액은 동춘당 송준길의 글씨다.

정문인 확연루(廓然樓)는 2층 누각으로 되어 있으며 편액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서원 앞으로는 증산들이 넓게 펼쳐져 확 트인 상태다.

확연루라는 현판 이름과 잘 아울리는 풍경이다.

들판 가운데로는 문수산에서 발원한 취암천이 흐르는데 통안천과 관동천을 합하여 황룡강으로 합류한다. 사방의 물이 모여드는 장소인 만큼 교통이 편리하고 사람과 재물이 모인다.

학교가 발전하려면 좋은 학생들이 몰려들고 재정이 풍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터가 중요하다.

오늘날 땅값이 싸다는 이유로 산비탈에 세운 지방대학들이 더러 있다.

학령인구 감소만을 탓할게 아니라 먼저 그 터를 생각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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