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정경연의 풍수기행 83

논산 사계 김장생 묘

논산 사계 김장생 묘 조선 예학의 거두 사계 김장생의 묘는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다. 흔히 광산김씨, 달성서씨, 연안이씨를 조선3대 명문으로 꼽는다. 이들 문중에서도 달성서씨는 약봉 서성, 연안이씨는 월사 이정구, 그리고 광산김씨는 사계 김장생의 가문이 유명하다. 사계 가문은 세도가보다는 대대로 학자를 많이 배출했다. 사계와 그의 아들 신독재 김집은 유학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예학을 집대성하여 문묘에 배향되었다. 문묘배향(文廟配享)이란 문성공인 공자의 사당에 위폐를 같이 모시는 사람을 뜻한다. 공자의 제자나 학문을 이어 받은 사람이다. 4성인 안자, 증자, 자사, 맹자와 송나라 6현인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와 우리나라 인물 18명이다. 우리나라 인물을 가리켜 해동18현 또는..

김제 동곡마을

김제 동곡마을 전형적 배산임수… 사람·재물 모이는 지형 후천개벽을 꿈꾸었던 강증산이 천지공사를 벌였던 동곡마을은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599에 위치한다. 금산사와 직선으로 3km정도 거리다. 금평저수지 상류의 둘레길을 따라가면 제비산이 보이고 그 아래 거대한 대순진리교 성지 건물이 나온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동곡마을이다. 본래는 ‘구리골’이었는데 이를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모악산 일대는 미륵신앙의 본산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성지였다. 주변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섞여 있다. 불교(금산사), 천주교(수류성당), 개신교(금산교회), 원불교(원평교당), 증산교(증산법종교) 등이 있다. 모두 초창기 때 지어진 것들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곳은 조선 중기 때 혁명가인 정여립(1546~..

예산 남연군 묘 풍수

예산 남연군 묘 산천의 정기모아 2代 걸쳐 皇帝 배출 ▨ 남연군묘=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아버지 이구(李球)의 묘소. 우리나라 근대사에 한 획을 그은 '오페르트 도굴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독일인 상인이었던 오페르트는 1866년 두 차례의 통상교섭에 실패하자 당시 실권자였던 대원군의 압박하기 위하여 1868년에 도굴을 감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신과 부장품들을 협박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도굴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더욱 강화된 계기가 됐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기리에 있으며, 충남도 기념물 제80호다. 인근에 추사 김정희의 고택이 있다. ▲ 남연군묘 전경.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옥양봉이다. 묘의 좌향은 지세에 따라 주산이 아닌 이 봉우리에 맞..

괴산 송시열 묘 풍수

괴산 송시열 묘 시장의 사람들로 병졸을 대신하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청천리에 있다. 송시열(宋時烈)은 조선 중기 때의 문신, 학자로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호는 우암(尤庵)이다. 노론(老論)의 영수로 효종(孝宗)의 봉림대군(鳳林大君)시절 사부(師傅)이기도 하며, 효종과 함께 북벌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 저서로 송자대전(宋子大全), 우암집(尤庵集) 등이 있다. 원래 수원에 있던 묘소를 후손들이 후에 이곳으로 옮겼다 한다. 충북도 기념물 제10호다. 당시 노론 사림의 중심이었던 화양동서원(華陽洞書院)이 인근에 있다. 송시열 묘 전경. 앞쪽 깃발이 펄럭이는 듯한 산세로 인해 장군대좌형이라 불린다. 산 아래에 병졸을 모으는 청천장이 개설되어 있다. 청천장에서 올려다 본 주산. 단아한 모습이다. 인물형 형국에..

정읍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 산과 물 같이가는 산수동행… 기가 모인 곳 우리나라 유학의 효시로 꼽히는 최치원의 위패를 모신 무성서원(武城書院)은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500(원천1길 44-12)에 위치한다. 칠보면은 통일신라 때 태산고을이었는데 최치원이 태산현 군수를 지내면서 많은 치적을 남겼다. 특히 칠보면 시산리 583-3번지에 있는 유상대(流觴臺)에서 많은 시를 읊었다. 유상대는 칠보천이 동진강에 합류하는 곳에 술상처럼 넓적하게 생긴 바위이름이다. 최치원은 바위사이로 흐르는 냇물을 유상곡수라 이름하고 위쪽에 술잔을 띄웠다. 그리고 술잔이 자기 앞에 이를 때까지 운을 맞추어 시를 지었다. 고려시대 이 지역 유림들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유상대에 태산사(泰山祠)라는 사당을 세웠다. 그러나 고..

장성 필암서원

장성 필암서원 사방의 물 모이는 곳… 사람과 재물도 모인다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필암서원은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8-379(필암서원로 184)에 있다.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지역별로 보면 영남 6곳 (경북 영주 소수서원, 경북 안동 도산서원, 경북 안동 병산서원, 경북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충청 1곳 (충남 논산 돈암서원), 호남 2곳 (전북 정읍 무성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이다. 서원은 향교와 함께 조선시대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다. 향교가 공립학교라면, 서원은 향촌이나 문중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다.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 선현과 우리나라 18선현을 같이 배향하고 있다. 반면 서..

정읍 전봉준 고가

정읍 전봉준 고가 문인의 터서 태어난 혁명가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이 살았던 옛집이 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458-1(조소1길 20)에 있다. 전봉준은 여기서 30km 정도 떨어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59 당촌마을에서 태어나 13살 때까지 살았다. 이곳 집은 고종15년(1878)에 지어진 것으로 전봉준의 나이 24세 때다. 그때부터 동학혁명이 일어난 1894년까지 살았다. 그러니까 이집에 살면서 동학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전봉준의 본관은 천안이며 아버지는 고부군 향교 장의를 지낸 전창혁이다. 장의(掌議)란 성균관이나 향교에 기숙하는 유생들의 자치기구인 임원을 말한다. 성균관이나 향교에는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동재와 서재에 기숙하는 학생들 중에서 각각 1명씩의 장의라는 대표를 선..

장성 여흥민씨 묘

장성 여흥민씨 묘 울산김씨 발복지 여흥민씨 묘 울산김씨의 발복지로 유명한 여흥민씨 묘는 전남 장성군 북이면 달성리 351-1(돗재로 207-19)에 있다. 전남 장성은 지금은 홍길동의 고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선비의 고장으로 더욱 유명했다. 하서 김인후를 비롯하여 퇴계와 사단칠정논변으로 유명한 고봉 기대승, 조선의 마지막 유학 거장으로 평가되는 노사 기정진 등이 활동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은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 하여 학문으로는 장성만한 곳이 없다고 평가하였다. 호남에는 많은 명문가들이 있다. 이중 울산김씨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가문이다.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풍수가에서는 여흥민씨 할머니 묘 발복 때문으로 보고 있다. 후손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묘역..

장성 박수량 묘와 백비

장성 박수량 묘와 백비 좋은자리도 나쁜자리도 아닌 무해지지 조선시대 청백리로 이름 높았던 아곡 박수량(1491~1554)의 묘는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10(백비길 33-17)에 있다. 그의 묘 앞 비석에는 아무 것도 새기지 않아 백비(白碑)라 부른다. 박수량은 성종 22년 지금의 홍길동테마파크가 있는 황룡면 아곡리에서 태어났다. 23세 때인 중종 8년(1513)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광주향교 훈도로 첫 공직을 수행한다. 그리고 명종 8년(1553) 63세로 호조판서에서 물러날 때까지 40년 동안 관리 생활을 했다. 박수량은 명종1년과 6년 두 번에 걸쳐 청백리로 오른 인물이다. 판서까지 올랐지만 한양에 집 한 칸 없이 셋집에 살 정도로 청렴했다. 자식들이 서울에 집을 지으려..

장성 김인후 생가

장성 김인후 생가 학자·귀인 배출하는 명문가의 터 하서 김인후(1510~1560)가 태어나고 자란 맥동마을은 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에 있다. 선생을 배향하고 있는 필암서원에서 약2km 정도 거리다. 맥동마을 어귀 산모퉁이를 돌면 우측에 필암(筆巖)이라 적힌 작은 바위가 나온다. 바위가 붓끝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글씨는 영조 때 판서를 역임한 병계 윤봉구의 쓴 것이다. 마을에서 보자면 필암이 있는 곳은 물이 나가는 수구에 해당된다. 수구에 있는 산이나 바위를 수구사(水口砂)라고 한다. 풍수에서는 수구사의 모양을 보고 안쪽 마을의 특성을 파악한다. 수구사의 모양이 붓 모양이면 학자가 난다고 본다. 하서 김인후가 필암의 기운을 받아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이유다. 필암을 지나 마을에 이르면 주민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