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

 

 

산과 물 같이가는 산수동행… 기가 모인 곳

 

 

 

우리나라 유학의 효시로 꼽히는 최치원의 위패를 모신 무성서원(武城書院)은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500(원천1길 44-12)에 위치한다.

칠보면은 통일신라 때 태산고을이었는데 최치원이 태산현 군수를 지내면서 많은 치적을 남겼다.

특히 칠보면 시산리 583-3번지에 있는 유상대(流觴臺)에서 많은 시를 읊었다.

유상대는 칠보천이 동진강에 합류하는 곳에 술상처럼 넓적하게 생긴 바위이름이다.

최치원은 바위사이로 흐르는 냇물을 유상곡수라 이름하고 위쪽에 술잔을 띄웠다.

그리고 술잔이 자기 앞에 이를 때까지 운을 맞추어 시를 지었다.

고려시대 이 지역 유림들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유상대에 태산사(泰山祠)라는 사당을 세웠다.

그러나 고려 말 왜구들이 동진강을 따라 이 지역까지 침입했을 때 사당도 피폐해졌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사당은 성종15년(1484)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고 나서야 복원됐다.

본래 이곳은 상춘곡으로 유명한 정극인(丁克仁, 1401~1481)이 세운 향학당(向學堂)이 있었다.

향학당은 조선초기의 지방사립 교육기관이다.

정극인은 경기도 광주 두모포리(지금의 성동구 옥수동) 출신으로 세종 때 진사가돼 성균관에 들어간 수재였다.

그러나 대과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그가 성균관 유생으로 있을 때 세종이 흥천사를 중건하였다.

그러자 성균관 유생들을 이끌고 숭유억불정책에 어긋난다며 반대 시위를 하였다.

이에 진노한 세종은 그를 북방으로 유배시켰다.

유배에서 풀린 정극인은 처가가 있는 이곳 전라도 태인현 고현동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불우헌(不憂軒)이란 집을 짓고 자호로 삼았다.

집 앞 하천 주변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비보한 다음 향리 자제들을 가르쳤다.

또한 향약계축을 만들어 유교를 바탕으로 한 풍속교화에도 힘썼다.

현재도 이 마을에 태인고현동향약이 전해지고 있다.

이곳의 터가 좋았는지 정극인은 문종1년(1451년)에 종9품 벼슬인 광흥창부승으로 천거됐다.

단종1년(1453)에는 52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정6품인 정언에 올랐지만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사직하고 태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연에 몰입하면서 최초의 가사문학으로 평가되는 상춘곡(賞春曲)을 지었다.

상춘곡은 4단으로 구성됐다.

제1단은 산림에 묻혀서 자연을 즐기는 자신을 풍월주인으로, 제2단은 봄 경치를 즐겨 구경하며 흥취에 젖어든 정황을, 제3단은 산수구경을 하며 술에 취한 즐거움을, 제4단은 자연귀의와 안빈낙도를 노래하였다.

그의 가사문학은 전라도 각지로 전파됐으며 오늘날 교과서에까지 실려 수능의 필수문제로 출제되고 있다.

태산사가 무성서원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숙종 때이다.

태인현감으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부모처럼 받든 신잠의 사당이 근처에 있었다.

숙종은 최치원과 신잠의 사당을 병합해 무성서원이라 이름하고 친히 액자를 하사하였다.

이 때문에 고종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살아남았다.

당시 전국적으로 47개의 서원만 남았는데 전라도에서는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광주 포충서원 3곳만 헐리지 않았다.

 

 

이곳 주산은 칠보산(467.8m)이다.

호남정맥이 내장산(763.5m)으로 가기 전 고당산(642.4m)에서 서쪽으로 분지해 일으킨 산이다.

칠보산 북쪽 사면의 산줄기가 동진강을 향해 길게 내려온다.

우측으로는 칠보천이 따라오는데 산과 물이 같이 가는 산수동행의 전형적인 형태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는 법이다.

칠보천이 동진강과 합류하자 산맥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멈추었다.

산이 멈추면 기가 모이는 법이다.

기가 모인 그 자리에 무성서원이 위치한다.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좌청룡과 우백호가 크게 돌아 감싸주고 있다.

호남정맥이 지나가는 큰 산중임에도 이곳의 산세는 나지막하고 순하다.

또한 하늘과 들이 넓게 열려 있어 낮에는 햇볕, 밤에는 달빛과 별빛이 충분하게 비추고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런 곳이라야 기후가 순조로워 인재가 많이 태어난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 지역에서 인물이 많이 나는 이유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