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入門 41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24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대인을 믿습니다만 진명이 그만한 중책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염려가 되는군요" "그건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이 곳으로 오는 도중 제자분을 자세히 살펴 보았는데 사람됨이 신중하고 세심할 뿐만 아니라 성품이 곹은 겄이 제 마음에 쏙 들었읍니다 " 어흠 그래요 진명아 너 생각앤 어떠하냐" "스승님의 마음은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강호를 유람하며 천하의 산지식을 뱌우고 경험할 이런 기회가 흔한것도 아니니 이번 길에 동행하고 싶습니다" "오호 너 뜻이 그러하다면 내 허락하마 다만 항상 몸가짐을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해야 하느니라" "네 감사합니다 스승님" 이렇게 당사자들 간의 합의는 이루어 졌다 도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신걸께서는 한 사나흘 선운산 일대를 유람하고 계시지요 그동안 제..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23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백성이 곧 하늘이라 하였고 먹고 사는게 하늘이라 하였는데 굶주려 죽는 민초가 부지기수이니 참으로 통탄할 따름이요" 상인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햤다 "출가인의 한 사람으로서 중생을 위해 무었을 해야 할까 늘 고심하고 있오만 천신께 기도만 드리고 앉아 있자니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외다" 신걸이 목이 타는듯 표주병의 술을 한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저희 개방(丐幇)이 비록 거지 집단이긴 하나 의기 하나만은 어느 방파보다도 드높다고 자부하고 있오. 그래서 방주님과 상의 결과 흑백양도(黑白兩道)를 가리지 않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있고 도울 의사가 있다면 천리를 마다않고 찿아가 그 방도를 모색코자 합니다" 상인이 거듭 감탄사를 발한다 "아아 참으로 드높은 기개 입니다. 당연히 저희 삼청궁도..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22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삼청궁 대장로인 함허도장의 거처는 본궁과는 제법 떨어진 바위절벽 틈새에 제비집처름 붙어 있었다 일명 연소굴(燕巢窟) 이라고 했다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단정히 한 진명이 스승께 귀환 보고를 하기위해 연소굴 앞에 나타났다 "스승님 제자 진명이 돌아 왔읍니다" 연소굴 안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들어 오너라" 선상(禪床) 위에 단정히 앉아 자비로운 미소를 띄고 있는 함허도장의 모습은 흡사 한마리의 학 같았다 흰색 도포를 입고 와룡관을 썻으며 손에는 백우선(白羽扇)을 들었는데 하얀 수염이 배꼽까지 늘어진 모습이다 진명은 큰 절 삼배를 올린 후 꿇어 앉았다 "스승님 그간 옥체건안(玉體健安) 하시옵니까" "허허 무슨 별 탈이야 있겠느냐 그래 너는 공부를 완수하였는가" "네 스승님의 간..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21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거지는 냅다 맨손으로 닭다리부터 뜯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기름 묻은 손을 바지에 썩 닦더니 이번에 술병을 잡고 통나발을 불어재꼈다 이를 지켜 본 초우가 근심스레 말했다 "아이 영감님 숨 좀 쉬 가면서 드세요 이러다 체하겠어요" "허허 내 평생 굶어본 적은 있어도 체해본 적이 없다오 걱정마우" 그러기를 한참만에 어지간히 먹었는지 거지는 '꺼억'하며 트림을 하더니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이고 고맙소 내 평생 이렇게 맛난 음식은 처음인 것 같소. 그래 두분은 어디로 가는 길이요" "예 저희는 선운산으로 가려 합니다 그런데 영감님은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아이구 이런 우연이 있나 나도 선운산으로 가는 길이라오 그 곳에서 만날 사람이 있다네" 초우가 시원스레 말했다 "..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20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술이 두어 잔 들어가자 초우가 마음이 들뜨는지 청아한 음색으로 시를 한수 흛는다 "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군부견황하지수천상내) 奔流到海不復回(분류도해부복회) 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군부견고당명경비백발) 朝如靑絲暮成雪(조여청사모성설) 人生得意須盡歡(인생득의수진환) 莫使金樽空對月(막사금준공대월) 天生我材必有用(천생아재필유용) 千金散盡還復來(천금산진환복내) 烹羊宰牛且爲樂(팽양재우차위낙) 會須一飮三百杯(회수일음삼백배)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황하의 물이 천상에서 와 바다로 흘러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권문세가의 늙은이가 아침에 푸르던 털이 저녁에 백설같은 백발이 되었음을 거울에서 보고 슬퍼함을. 인생은 득의했을 때 기쁨을 즐길지니, 달밤에 술동이만 흔자 쓸쓸히 놓..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19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제 팔막 추로봉우(秋路逢友_ - 가을 길에서 만난 친구여 진명이 함허도장이 있는 선운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으나 그 중 가장 가까운 길은 임실과 정읍을 거쳐 고창으로 들어서는 길이다 가을도 이미 지나가고 초겨울에 접어들었으나 아직 단풍의 잔광이 남아있고 바람도 세차지는 않아서 걷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지나가는 길목에 한적하고 경치좋은 곳이 있으면 구궁연환보와 청강지를 응용한 연환천강지(連環天罡指)를 단련하며 오랫만의 자유를 만끽하곤 하였다 정읍현은 조선 초부터 현으로 지정되어 왔을만큼 물산이 풍부한 교통의 중심지 였다 현을 가로지르는 현청이 가까이 있는 대로변에 일단의 선비차림의 네명과 하인인듯한 무리 세명 등 도합 일곱명이 어지러히 잎으로 달리며 고함을 치고 있었다 "게..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18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좌포청(左捕廳) 종사관(從事官) 윤도가 잠든 새벽 녁 그의 사가 담장을 소리없이 타넘은 두 사람이 있었다 상하의 전부를 새카만 경장(輕裝)으로 감싸고 얼굴에도 새카만 복면을 쓰고 있었으며 마침 그 날이 그믐인지라 그 누구라도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릴수 없으리라 그들은 묘보(猫步)로 살금살금 윤도가 잠든 사랑채로 접근하더니 문 창호지에 침을 발라 구멍을 내고 미혼산(迷魂散)이 든 취관(吹管)을 구멍으로 집어 넣곤 '훅" 하고 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윤도가 약에 취해 깊이 잠든것을 확인한 그들은 가볍게 걸쇠를 열고 방안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정신없이 곯아 떨어진 윤도의 이마를 일점혈혼이 중지로 가볍게 찍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윤도의 이마에는 좁쌀만한 붉은 점이 하나 찍혀 있을 뿐 이미 그..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17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제 칠막 야학불명(野鶴不鳴) - 들판의 학은 울지 않고 "그리고 추풍검마(追風劒魔)의 보고에 의하면 한양 육의전(六矣廛)의 뇌물 상납 사건으로 인해 우리 동지들의 조직이 노출되어 와해될 지경에 처했오" "하 그렇습니까" "그래서 그대에게 이번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주고자 하니 절대 실수가 없도록 하시오" "감사합니다 방주님 기필코 임무를 완수하겠읍니;다" 비천독룡이 깊이 고개숙여 포권(抱拳)의 예를 다한다 "그런데 그대는 손속이 너무 잔인하여 흔적을 남길 수 있으니 내 쌍룡영패(雙龍令牌)를 줄테니 일점혈혼(一點血魂)을 데리고 가서 깔끔하게 처리하고 오오" 일점혈혼은 아주 깔끔하게 암살을 하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주도면밀한 성격의 소유자인데 방주의 직속 수하로서 암살 전문기관..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16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이 때 묘수서의 등 뒤에 서 있던 비천독룡의 오른손이 높이 올라가더니 그대로 묘수서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우직끈' 등판이 부셔지는 소리가 나며 피를 토하던 묘수서의 눈빛에 형언할 수 없는 의아함이 떠올랐다 "어째서 나를 이렇게 커억" 그리고는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나름대로 무림에서 교묘한 도둑질과 정보 수집력으로 행세 께나 하던 한 인간이 이렇게 허무하게 갈 줄이야 어이 알았으리 "카카카 너 놈이 죽어줘야 이 어른의 살길이 생긴단 말이야 그 정도는 미리 알았어야지" 품속에서 병에 담긴 화골산(化骨散)을 꺼낸 비천독룡이 묘수서에 몸에 뿌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치지직' 소리를 내며 몸뚱아리가 녹아 내리더니 한 줌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가고 현장엔 방금 있었던 사건의 흔적은 찿아 볼 수..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15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제 육막 흑무만당(黑霧滿堂) - 검은 안개가 집안에 그득하네 세정사 전투에서 퇴패하여 금정수 획득에 실패한 비천독룡과 그 일행이 향한 곳은 진안 천반산 죽도였다 천반산은 전라도 진안에 있다 천반산의 주봉 서쪽 약 반오리 지점 평평한 곳에 옛 성터가 있는데, 북동쪽은 절벽이어서 남쪽과 서쪽에만 성벽을 구축하였다. 그 아래에는 송판서굴과 할미굴이 있다. 성의 둘레는 약 오리로 삼국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에는 대량천이 흐르며 남쪽에는 장수천이 흘러 서쪽의 죽도에서 두 하천이 합류하여 용담천으로 흘러간다 죽도는 진안군 수동리에 있다. 첨반산 서쪽 끝너리에 자리 잡고 있는데 깎아 세운 듯한 바위산 절벽을 맑은 물이 한 바퀴 휘돌아 흐르고 있기에 산이지만 마치 섬처럼 보인다 육지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