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入門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22

초암 정만순 2021. 7. 22. 15:44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삼청궁 대장로인 함허도장의 거처는 본궁과는 제법 떨어진 바위절벽 틈새에 제비집처름 붙어 있었다

일명 연소굴(燕巢窟) 이라고 했다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단정히 한 진명이 스승께 귀환 보고를 하기위해 연소굴 앞에 나타났다

"스승님 제자 진명이 돌아 왔읍니다"

연소굴 안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들어 오너라"

선상(禪床) 위에 단정히 앉아 자비로운 미소를 띄고 있는 함허도장의 모습은 흡사 한마리의 학 같았다

흰색 도포를 입고 와룡관을 썻으며 손에는 백우선(白羽扇)을 들었는데 하얀 수염이 배꼽까지 늘어진 모습이다

진명은 큰 절 삼배를 올린 후 꿇어 앉았다

"스승님 그간 옥체건안(玉體健安) 하시옵니까"

"허허 무슨 별 탈이야 있겠느냐 그래 너는 공부를 완수하였는가"

"네 스승님의 간절함이 뼈에 사무쳐 일단 소주천은 완성한 듯 합니다"

"그래 장하다 고생 많았구나 그만 일어나서 의자를 당기고 앉아라"

그렇게 그들의 대화는 길게 이어져 나갔다

"그러면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도솔봉 정상 연무장에서 너의 공부의 정도를 시함해 보고 약점을 보완하고 다듬어 상승의 경지로 승화 시키자꾸나"

"네 감사합니다 스승님"

 

 

한편 구지노인은 시자(侍者)의 안내를 받아 삼청궁주인 청허상인을 찿아갔다

'부운관(浮雲觀) 이라는 현판이 걸린 전각 좌우로 크다란 청룡과 백호의 석상이 있고 높은 계단위에 우뚝 선 모습이 궁주의 위엄을 나타 내는듯 하다

구지노인의 방문 전갈을 미리 받은 청허상인은 전각 앞 계단까지 나와 그를 맞이한다

"어서 오시요 신걸(神乞) 많이 기다렸소이다"

"아이구 궁주께서 직접 마중을 나오시다니 송구할 따름이요 허허"

다정히 손은 맞잡은 그들의 눈에는 백년지기를 만난듯 정이 넘쳐 흘렀다

사실 그 둘은 충청도 진천 땅 한 마을에서 자라난 죽마고우(竹馬故友)였다

장성하여 청년이 된 후 수도자의 꿈을 안고 도교에 입문한 청허상인은 마침내 삼청궁의 제일좌 어른이 되었고 세상응 떠돌며 자유롭게 살기를 갈망하던 구지노인은 거지 패거리의 우두머리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개방(丐幇)의 장로 중 가장 직급이 높은 개방방주(丐幇州)를 보좌하는 수석장로(首席長老)가 된 겄이다

사실 구지노인의 별호는 구지신걸(九指神乞)로 무림에서 쟁쟁한 명성을 날리는 무공 고수인 것이다

 

다상(茶床)을 대하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행색이 너무도 달라 저절로 웃음이 절로난다

깨끗한 무명옷을 입고 불진(拂塵)을 들고 화색이 도는 얼굴에 백발을 단정히 묶어 뒤로 넘긴 상인과 넝마를 걸치고 주호로병(酒胡蘆甁 )을 옆구리에 차고 봉두난발인 신걸이 마주 앉은 모습은 기괴하기 까지하다

 

 

 "걸형 차 한 잔 하시지요"

상인이 신걸의 차잔에 차를 따라준다

"에이 나는 차가 싫소 그저 소주가 제일이지"

옆구리에 찬 호로병을 입으로 가져간 신걸이 한 모금 꿀꺽 술을 울대 밑으로 넘긴다

"우리가 만난지 꽤 오래된것 같소이다 그래 이번에 나를 찿은 까닭이 꼭 이 아우의 얼굴을 보자는 것은 아닌것 같고 무슨 특별한 연유가 있소이까"

"아니 그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오랜 벗의 얼굴도 한번 봐야지요 그 동안 도력이 엄청 높아졌겠지요"

"별 말씀을요 그저 청산은 푸르고 녹수는 흘러 갈 뿐이지요"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신걸이 입을 열었다

"사실 이번에 상인을 찿은것은 무림의 대사를 논의하기 위함이라오 작금의 사파(邪派) 흑도(黑道) 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소이다" 

"어허 그렇군요 무림 대사라면 당연히 개방에서 가장 정통한 정보를 가지고 있겠지요 어디 자세히 들어 봅시다"

"요즘 흑도 방파 중 특히 흑룡방(黑龍幇)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문도들을 대거 모집한다고도 하며 개성에 비밀리에 노름판을 연다는 둥 세 확장에 혈안이 되어있다는 첩보도 있는만큼 저간의 사정을 상세히 알아봐야 할 겄 같습니다

그 후 무림맹(武林盟) 수뇌부와 함께 앞으로의 행동거지를 정해야 겠지요"

상인이 말했다

"그것 참 큰일이군요 흑룡방이라면 이권이 생기는 일이라면 무었하나 주저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무슨 대책이 있어야만 할겄이외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조정은 당파싸움에 날 새는줄 모르고 몇년간의 가뭄으로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는데 누구 하나 이들의 딱한 사정을 도와 줄 사람이나 조직이 없고 관리들은 토색질을 일삼고 고관들은 뇌물 받아먹기 바쁘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지요" 

"그렇군요 역시 가장 불쌍하고 딱한건 힘없는 백성이 아니겠오 우리들이야 이 산속에서 시주들 덕분에 배 꼶지 않고 편안히 살고 있으니 실로 부끄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