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入門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21

초암 정만순 2021. 7. 21. 15:48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거지는 냅다 맨손으로 닭다리부터 뜯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기름 묻은 손을 바지에 썩 닦더니 이번에 술병을 잡고 통나발을 불어재꼈다

이를 지켜 본 초우가 근심스레 말했다

"아이 영감님 숨 좀 쉬 가면서 드세요 이러다 체하겠어요"

"허허 내 평생 굶어본 적은 있어도 체해본 적이 없다오 걱정마우"

그러기를 한참만에 어지간히 먹었는지 거지는 '꺼억'하며 트림을 하더니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이고 고맙소 내 평생 이렇게 맛난 음식은 처음인 것 같소. 그래 두분은 어디로 가는 길이요"

"예 저희는 선운산으로 가려 합니다 그런데 영감님은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아이구 이런 우연이 있나 나도 선운산으로 가는 길이라오 그 곳에서 만날 사람이 있다네"

초우가 시원스레 말했다

"그럼 저희와 말동무도 할겸 동행 하시죠"

"그러면 나도 좋지 심심하지도 않고 또 도착할 때까지 밥 걱정은 안해도 되겠네"

참 능청스런 영감이다

"그런데 참 영감님의 성암은 어떻게 되세요 저는 진명이고 아우는 초우랍니다"

그러자 거지가 말 없이 왼쪽 손을 쫙 펴서 내밀었다

그런데 있어야 할 새끼 손가락이 없다

"보시다시피 왼손 새끼 손가락이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나를 구지노인(九指老人)이라 부른다네 자네들도 그렇게 편하게 부르게"

그 뒤 이런 저런 말 섞기가 흐른 뒤 삼인은 주먹밥을 봇짐에 챙긴 후 길을 떠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기묘한 분위기의 세 사람은 한 조가 되어 선운산으로 향한다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선운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임을 의미한다.

선운산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비경은 수많은 탐방객을 불러 모은다.

한쪽으로는 선운계곡과 도솔계곡 등 골짜기의 신비를 탐닉하면서 고개를 돌리면 서해안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선운산은 대표적으로 도솔산을 가리키지만 선운산 일대의 모든 봉우리와 능선을 지칭한다고 봐야 한다.

이 산은 높이에 관계없이 굴곡이 무척 심하다. 군데군데 위험한 암릉도 적지 않다.

도솔산은 봉우리라기보다 정상 부분이 펑퍼짐한 대지를 이룬 산이다.

산 위엔 송림이 울창하지만 동과 서 양쪽 단애위는 전망을 방해할 만한 장애물이 없다.

선운산이라면 이 도솔산을 지칭한다.

능선을 따라 남서쪽으로 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봉우리들 중 그 기묘함으로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마치 거대한 버섯이 하늘을 향해 솟아난 듯 보이는 배맨바위와 수직으로 곤두선 거대한 모루 모양의 천마봉이다.

산에 오르면 진흥굴·도솔암·내원궁·용문굴·마애불·낙조대 등 명소들이 즐비하다.

특히 산 아래 고찰 선운사는 봄의 동백과 벚꽃, 등산로에 피는 늦여름의 상사화가 일품이다.

늦가을 단풍도 절색이다.

 

 

삼청궁은 선운산 중 천마봉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에는 수 많은 서원과 사찰이 있지만 도관(道觀)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도관 (道觀)은 궁관 (宮觀)이라고도 불리는 도교의 사원 (寺院)이다.

도관은 십방총림(十方叢林)이라고 하는 '대도관'과 보통의 '소도관'으로 분류된다. 

소도관은 몇 사람의 도사 (道士)들이 있어서 신을 모시고 기도를 하거나 수행을 쌓는 곳이며, 십방총림인

대도관은 종파의 구별 없이 널리 천하의 도교자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수행도장(修行道場)으로서, 장차 도사가 되고자 하는 도교자들이 자격시험도 치를 수 있는 도관인 것이다.

삼청궁은 도관 중 수석 대도관이라고 할만큼 그 규모가 웅장하고 수행하는 도사의 숫자도 많다

 

진명 일행이 드디어 삼청궁 삼문(三門) 앞에 섰다

근 이개월 보름만에  스승인 함허도장의 거쳐로 돌아온 진명의 얼굴엔 감격의 기색이 역역하다

진명이 입을 열었다

"저는 우선 스승님을 찿아뵙고 귀환 인사를 드려야 하겠지만 두분은 이제 어떡하실 예정입니까"

초우가 답한다

"나야 산천경개 유람이 주목적인데 이렇게 멋진 곳에 왔으니 선운산에 있는 모든 명승을 골고루 다 구경할 예정입니다 그런 다음 형님과 함께 앞으로의 진로를 상의해 보고 싶군요"

"좋은 생각이야 나는 스승님과 함께 연소굴에 머물테니 연락할 일이 있으면 도동(道童)을 통해 전갈하게나"

구지노인이 말한다

"나는 사실 삼청궁 궁주이신 청허상인(淸虛上人)을 만나러 온 길일세 그러니 우리 다 함께 저 문을 통과 합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