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入門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19

초암 정만순 2021. 7. 15. 17:16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제 팔막 추로봉우(秋路逢友_ - 가을 길에서 만난 친구여

 

 

진명이 함허도장이 있는 선운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으나 그 중  가장 가까운 길은 임실과 정읍을 거쳐 고창으로 들어서는 길이다

가을도 이미 지나가고 초겨울에 접어들었으나 아직 단풍의 잔광이 남아있고 바람도 세차지는 않아서 걷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지나가는 길목에 한적하고 경치좋은 곳이 있으면 구궁연환보와 청강지를 응용한 연환천강지(連環天罡指)를 단련하며 오랫만의 자유를 만끽하곤 하였다

 

정읍현은 조선 초부터 현으로 지정되어 왔을만큼 물산이 풍부한 교통의 중심지 였다

현을 가로지르는 현청이 가까이 있는 대로변에 일단의 선비차림의 네명과 하인인듯한 무리 세명 등 도합 일곱명이 어지러히 잎으로 달리며 고함을 치고 있었다

"게 섰거라 이놈"

그 앞을 처다보니 체구가 가냘펴 보이는 반 거자 행색의 소년이 부리나케 도망치고 있는것이 아닌가

여간 걸음이 날랜게 아니어서 여간해선 잡힐 기색이 아니었으나 선비 중 무술께나 하는 사람이 있는 듯 어느새 소년을 뒤따라와 앞을 가로막아 선다

"이놈 꼼짝마라 어딜 감히 도망가려고"

이윽고 그 뒤를 따라온 나머지 인원까지 합세하여 소년을 삥 둘러싼다

그 중 가장 늧게 도착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얼굴이 불콰한게 낮술 께나 한 모양이다

"좋게 말 할 때 빨리 내  전낭(錢囊)을 내놓지 못할까 아니면 죽도록 맟고 내놓겠느냐"

이에 소년도 지지않고 대꾸한다

"아니 내가 언제 당신 돈주머니를 훔치기라도 했단 말이오 증거라도 있소"

"허어 참 뻔뻔헌 놈일세. 그래 주먹 맛을 보지 않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심보군"

그런곤 재빨리 갈고리 손을 하고 "아응포토(餓鷹捕兎)의 초식으로 소년의 가슴을 움켜 잡으려 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소년의 신법은 재빨라 왼발을 뒤로 빼더니 가슴을 왼쪽으로 획돌려 공세를 살짝 벗어난다

일견 쉬워 보이긴 하나 교묘한 보법과 신법이 아니면 딱 잡히기 좋을뻔 했다

한번의 공세에 실패한 선비의 얼굴이 시뻘겄게 달아 오르더니 이번에는 냅다 발길질을 하는데 키가 커서인지 거의 소년의 턱을 걷어찰 자세다

그런데 소년의 신법은 더욱 교묘해졌다

상체를 획 숙이더니 선비의 가랑이 사이를 빠져나와 등 뒤에 섰다

그러자 선비는 더욱 화가난듯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뭣들 하는게야 이 미꾸라지 같은 놈을 잡지 않고"

그러자 빙 둘러 서있던 일행이 포위망을 좁혀오며 소년을 생포하려 한다

 

 

그때다.

이 난리통을 지켜보고있던 한 청년이 우렁하게 소리쳤다 .

바로 진명이다

"다들 그만 멈추시요"

"뭐야 넌 뭔데 남의 일에 간섭이냐 괜스리 욕보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라"

"이 많은 사람이 한 어린 사람을 두고 떼거지로 달려들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거요?"

"이놈이 제 주제도 모르고 까불어 대네 이놈부터 쳐라"

그러자 소년을 둘러싸고 있던 무리들이 일제히 진명에게 달려들어 주먹과 발길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진명은 태연히 그 자리에 선채로 그들의 주먹과 발길질을 척척 막아내거나 피하니 약이 잔뜩 오른 무리는 차고있던 패도(佩刀)나 주위에 있는 몽둥이를 집어들고 사납게 달려든다

위협을 느낀 진명은 구궁연환보를 펼치며 천강지 기법을 장(掌)으로 바꾸어 막고 치고 잡아 던지니 순식간에 모두들 자빠지고 엎어져 일어나지도 못한다

"야 정말 대단하네요"

이 광경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지켜보던 소년이 손벽을 치며 말했다

"뭐 이 정도로 대단하단 소리를 듣다니 부끄러울 뿐이요"

"그 무술에 겸손까지 하시니 제 맘에 쏙 들었어요 하하"

"그래 어디 다친데는 없소"

"헤헤 나도 이 한몸 간수는 한다오 그런데 어딜가던 길인가요"

"아 내가 머물던 고창 선운산으로 가던 길이었오"

"아이구 그럼 잘 되었네요 나도 마침 선운산으로 가던 길 이었는데 선운산 경치가 그렇게 멋지다면서요"

"확실히 그렇소 마치 선경과 같다오"

"제가 초행길이라 길눈이 어둡소이다 혹시 동행해도 될까요"

"뭐 그렇게 합시다 나는 진명이라 하오만 댁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오"

"나는 초우리 합니다 김초우"

"그런데 형씨 시장하지 않으세요 우리 국밥이라도 한그릇 하고 갑시다"

"좋지요 나도 몹시 시장하던 차에 잘 되었네요"

 

 

 

 

둘은 근처 주막집에 자리를 잦고 앉았다

초우가 주모를 향해 소리쳤다

"주모 여기 국밥 두 그릇하고 부추전 하나 부탁합시다 그리고 탁배기도 한 병이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주모가 밥상을 차리는 사이 초우가 말했다

"그런데 형씨의 나이가 몄살인가요 나는 열여덟 이오만"

"아 그래요 나는 스물입니다"

"아하하 잘되었네요 나는 원래 독자로 자란터라 형제가 없어 늘 허전하였는데 우리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호형호제 함이 어떻겠소"

진명도 늘 외롭게 지낸터라 이에 맞장구를 친다

"좋아요 그럼 내가 형이요 자네는 동생일세 동생아"

"예 형님 고마워요"

이윽고 밥상이 평상위로 올라왔다

"자 형님 우리의 좋은 인연을 축하하는 의미로 제가 술한잔 따라 드리리다"

일순 진명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나는 술을 할 줄 모르는데"

"에이 그래도 딱 한잔만 하슈 빼지말고"

진명이 말했다 

" 딱 한 잔이다 자꾸 권하면 형동생 파기다"

그리고는 초우가 따라준술잔을 받고 초우의 잔에도 술을 가득 따라준다

"이 좋은 날 우리 술잔 박치기 한번 합시다 형님"

"좋네 한번 박음세"

이렇게 오늘 이자리에서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한쌍이 새롭게 탄생하였다

 

 

 

 

 

 

 

 

 

 

 

함허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