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入門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17

초암 정만순 2021. 7. 12. 07:14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제 칠막 야학불명(野鶴不鳴) - 들판의 학은 울지 않고

 

 

"그리고 추풍검마(追風劒魔)의 보고에 의하면 한양 육의전(六矣廛)의 뇌물 상납 사건으로 인해 우리 동지들의 조직이 노출되어 와해될 지경에 처했오"

"하 그렇습니까"

"그래서 그대에게 이번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주고자 하니 절대 실수가 없도록 하시오"

"감사합니다 방주님 기필코 임무를 완수하겠읍니;다"

비천독룡이 깊이 고개숙여 포권(抱拳)의 예를 다한다

"그런데 그대는 손속이 너무 잔인하여 흔적을 남길 수 있으니 내 쌍룡영패(雙龍令牌)를 줄테니 일점혈혼(一點血魂)을 데리고 가서 깔끔하게 처리하고 오오"

일점혈혼은 아주 깔끔하게 암살을 하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주도면밀한 성격의 소유자인데 방주의 직속 수하로서 암살 전문기관인 암수대(暗手隊)의 장인데 그냥 대장으로 불린다

 

죽도 본당에 들어선 비천독룡은 일점혈혼을 찿아 쌍룡영패를 제시하고 방주로 부터 구두로 지시받은 사항을 구술한 뒤 따로 받은 방주의 친서를 전달한다

"이 서찰에는 방주님이 대장께 직접 지시한 내용이 들어있으니 시행하라 하셨소"

"알겠읍니다"

둘은 차 한잔 씩 나눠 마시곤 한양을 향해 길을 떠났다

 

 

조선에선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장사 제도가 있었다

하나는 육의전(六矣廛) 이고 또 하나는 난전(亂廛)이다

조선 조정에서는 시전(市廛)을 설치해 상인들에게 장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빌려주는 대가로 일정한 세금을 거둬들였고, 왕실이나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도 공급받았다.

따라서 시전에는 정부가 허가를 내 준 상인들만 들어와 장사할 수 있었다.

조정은 육의전 상인들에게 장사할 수 있는 권리뿐 아니라 특정 상품을 오직 그 점포에서만 팔 수 있도록 독점권도 줬다.

또 정부에 허가받지 않고 물건을 파는 상점인 난전을 단속할 수 있는 권리도 줬다.

이를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고 했다

하지만 금난전권이 확대되면서 특정 물건을 파는 사람은 적은데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많아지자 물건 값이 크게 올라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시전 상인들은 금난전권을 마구 휘두르며 난전 상인들을 상대로 심한 행패를 부렸는데 근래 육의전과 난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어 한양의 상권 장악을 위해 서로간에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었으며 수시로 노골적인 장사 방해와 기물 파괴 및 폭행 등이 피차 자행 되었는데 이는 좀 더 관과 밀착되어있고 조직력과 자금력 등 힘이 센 육의전 쪽이 밀어 붙이는 형국이었다

 

육의전과 난전은 물품의 호송이나 상권 보호를 위해  흑백양도(黑白兩道)와의 결탁도 공공연 하였는데 흑백양도 또한 조직 관리와 운영을 위한 막대한 자금을 양전으로 부터 지원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양전과 관부(官府)와 흑도와 백도 등 여러 조직들 간의 이해 얽힘이 거미줄 같이 연계되어 있었다 

 

 

 

좌포청(左捕廳) 종사관(從事官) 윤도는 강직하기로 포도청 내에서도 소문난 사람이다

또한 무술에도 상당한 경지를 이루었고 일 처리도 능란하여 윗분의 신망도 두텁고 아랫사람의 존경도 받는 인물이다

 

최근 좌포청이 수집한 첩보에 의하면  육의전 중 무명을 파는 '면포전'과 종이를 파는 '지전' 점포에서 난전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육위전과 난전을 관리하는 고위 관리에게 뇌물을 상납했다는 것이다  

이에 윤도 종사관은 수하를 이끌고 두 점포를 급습하여 회계장부를 수색 압수하고 관련 비리를 분석하기 위해 육위전에 가까이 있는 본인 사가(私家)에서 장부 내용을 분석하여 다음날 좌포청장에게 보고하기로 하였다

밤을 세워 새벽까지 분석 업무를 수행하던 윤도는 비위행위의 단서를 잡고 장부 보관함에 관련 자료를 넣고 자물쇠를 채운 뒤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이 밤이 그의 마지막 이승의 밤일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