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入門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15

초암 정만순 2021. 7. 11. 05:22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제 육막 흑무만당(黑霧滿堂) - 검은 안개가 집안에 그득하네

 

 

세정사 전투에서 퇴패하여 금정수 획득에 실패한 비천독룡과 그 일행이 향한 곳은 진안 천반산 죽도였다

 

천반산은 전라도 진안에 있다

천반산의 주봉 서쪽 약 반오리 지점 평평한 곳에 옛 성터가 있는데, 북동쪽은 절벽이어서 남쪽과 서쪽에만 성벽을 구축하였다.

그 아래에는 송판서굴과 할미굴이 있다.

성의 둘레는 약 오리로 삼국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에는 대량천이 흐르며 남쪽에는 장수천이 흘러 서쪽의 죽도에서 두 하천이 합류하여 용담천으로 흘러간다

 

죽도는 진안군 수동리에 있다.

첨반산 서쪽 끝너리에 자리 잡고 있는데 깎아 세운 듯한 바위산 절벽을 맑은 물이 한 바퀴 휘돌아 흐르고 있기에 산이지만 마치 섬처럼 보인다

육지로 이어지는 곳은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한 길이라 사실상의 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죽도와 육지가 이어지는 지역에는 날카로운 암릉이 있는데, 그 모양이 병풍같다고 하여 병풍 바위로 부르거나, 닭의 벼슬을 닮았다 하여 벼슬 바위라고 불렀다.

 

 

묘수서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형님 정말 분통 터지는 일입니다 형님과 함께 일을 도모하여 실패한 적이 없는데 이번 일은 너무나 아깝게 됐읍니다"

비천독룡이 그 말을 뱓는다

"그러게 분명히 우리가 우세할 줄 알고 쳐들어 같는데 그놈의 성수신의 인지 돌팔이 인지 하는 놈 때문에 일을 망쳤잖아 참 재수없어서 말이야"

"그 자가 그렇게 무공이 고강한가요?"

"이십 여년 전 흑백대전(黑白大戰)이 일어났을 때 묘향산 천지평에서 한판 붙었는데 백여수를 겨루었는데도 결판이 나지 않더군 그래서 독연(毒煙)을 사용하여 아작을 내려고 했는데 이 자의 별호가 성수신의가 아닌가 대번에 해독을 해버리더라고. 그래서 다음을 기약하자 말하고 뒷걸음을 쳤지"

말을 하는 가운데서도 다섯 명의 발걸음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는다

"그나저나 귀환하면 방주님의 엄한 문책이 걱정입니다"

"나에게 맡기게 어르신의 화를 풀어 줄 묘책이 있으니까"

 

 

죽도가 가까워 졌다

죽도는 지형 상 참 묘한 곳이다

서쪽과 남북쪽 삼면이 다 강으로 둘러 싸여있고 동쪽은 천길 낭떠러지인데 낭떠러지 앞에도 작은 물길이 있으니 사실상 육지 안에 있는 섬이나 다름없다

그 죽도에 명세방(明世坊) 중앙 본단이 있는데 울창한 수림과 바위들에 가려 외부에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그만큼 은밀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겄이다

또한 명세방주의 거처인 영사동(靈蛇洞)은 깍아지른 절벽 중턱에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다

본시 엄청나게 큰 이무기가 용이 되지 못한 분노로 암벽을 뚤고 지나갔다는 전설이 있었으나 입구가 무너져 존재 자체를 몰랐었는데 호기심 많고 끈질긴 현 영세교주의 탐색으로 발견되었고 각고의 공사 끝에 긴 천연동굴에 인공적 건축술을 가미하여 석굴 은신처로 새롭게 태어났다

 

북쪽 강변에 다가오자 비천독룡이 말했다

"당주는 나와 같이 교주님을 배알하러 가고 너희 세명은 본당  각자 거소로 가서 대령하라"

"예 알겠읍니다 우호법(右護法)님"

알고보니 묘수서는 명세교의 당주(堂主)이고 비천독룡은 우호법이었던 것이다

 

비천독룡이 강변 버드나무 잎사귀를 훑더니 수면을 향해 확 뿌리니 장풍을 타고 잎사귀는 강가에서 절벽 앞까지 내려 앉았다

'등평도수(登萍渡水)'

버드나무 잎사귀를 밟고 강을 건너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경탄할 만하다

절벽 앞에 서자 묘수서가 품안에서 신호탄을 꺼내 점화한다

"쉬이잉 펑"

하늘 높이 올라간 신호탄이 터지며 불빛과 소리가 울려 퍼져 고요한 허공을 찢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