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 229

포항시 송라면 중산1리 마을 돼지 석상

포항시 송라면 중산1리 마을 돼지 석상 뱀혈 터에 세운 ‘돼지 한 쌍’ 마을회관 입구에 세워진 돼지 석상 경북 포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상행하다 보면 고찰 보경사(寶鏡寺)라는 팻말이 눈에 띄는데, 이 팻말을 쫓아 보경사 입구로 한참 들어가면 송라면 중산1리 마을을 만난다. 이곳 마을회관 앞에는 작은 돼지, 큰 돼지가 일렬로 늘어서 마을 뒷산을 쏘아보고 있어 흥미를 끈다. 물론 살아 있는 돼지가 아니라 석상이다. 1990년 초에 작은 돼지 한 마리를 세웠는데 그것만으로는 기세가 약할 듯해 6년 후인 96년 8월23일 마을 부녀회에서 그보다 큰 돼지 한 마리를 다시 세웠다 한다. 왜 세웠을까? “ 사람들에게 운이 있어 흥망이 교차하듯 마을에도 운이 있다.” 중산1리 이원기 이장(56)의 말이다. 지기쇠왕설..

창원 성주사의 100년 된 돼지

창원 성주사의 100년 된 돼지 절터 뜨거운 화기를 눌러라! 경남 창원시 천선동의 성주사는 이르면 가야국 초기, 늦게는 신라 흥덕왕 10년(835)에 세워졌다는 설이 제기될 정도로 아주 오래된 절이다. 이 고색창연한 성주사의 대웅전 입구에는 돼지 석상 한 쌍이 서 있다. 다른 절에서 찾아볼 수 없는 드문 경우다. 돼지 석상은 사찰 풍수뿐만 아니라 고을 풍수에서도 희귀한 사례에 해당한다. 성주사 돼지 석상이 언제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기록이 없다. 성주사 스님들은 50년이 넘은 것은 확실하고, 대충 잡아도 100년 전에 세워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돼지 석상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비슷비슷한 설들이 많다. 절터의 형상이 제비집[燕巢穴]인데 절 앞산이 제비를 노리는 뱀의 머리와 같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

서울 독녀혈(獨女穴) SK빌딩

서울 독녀혈(獨女穴)에 자리잡은 SK빌딩 공주님도 禍 못 피한 氣 센 땅 1950년대 서울 종로구에 유명한 예식장이 하나 있었다. 서울의 명문 자손들이 너도나도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곳에서 결혼한 사람들은 과부가 되거나 이혼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결국 그 결혼식장은 문을 닫았다. 현재 이 자리 일부는 빈터로 남아 있고, 빈자리 한가운데에는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을 뿐이다. 나머지 일부는 현재 SK건설 빌딩이 들어서 있다. 원래 이 땅은 조선시대 율곡 이이 선생이 살았던 집터였지만 예식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즉 일제시기에는 빈터였다. 이렇게 집터와 빈터 되기를 반복하였던 이 땅의 내력은 깊다. ‘조선왕조실록’은 이 일대를 가리켜 ‘독녀혈’(獨女穴)이라고 묘사할 정도였다. 독..

금산 황풍리의 두꺼비 석상

금산 황풍리 두꺼비 석상 두꺼비야 水害를 막아다오 충남 금산군 남일면 황풍리 마을 입구에는 두 마리의 두꺼비 석상이 있다. 한 마리는 금두꺼비고, 다른 한 마리는 은두꺼비다. 마을 사람들이 두꺼비 석상을 세운 까닭을 들려준다. “1980년대의 일이다. 참 많이도 죽었다. 저녁에 본 사람 아침에 못 보고, 아침에 본 사람 저녁에 못 보고. 나갔다 죽어서 돌아오기도 하고, 청년들이 많이 죽었다. 멀쩡한 하늘에 벼락이 내리기도 하고.” 이 마을에 재앙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부가 주도한 새마을운동 때부터였다 한다. 새마을 공사를 하면서 원래 있던 두꺼비탑을 없애버렸는데, 이후 마을에 죽음의 재앙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는 것. 지금 보는 두꺼비 석상은 1986년에 세운 것인데, 예전의 두꺼비탑을 복원한 형..

남해군 남면 가천리 남근석

남해군 남면 가천리 남근석 음기 누르고 마을 평화를 위해… ”박씨 아주머니는 화가 났다. 남편이 바람피웠기 때문이다. 동네 앞에 세워진 좆바위(남근석)가 집에서 빤히 보이기 때문에 집안에 바람피울 사람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 길로 박씨 아주머니는 볏짚단을 가지고 가 좆바위 귀두 부분을 태워버렸다. 귀두 부분이 새까맣게 그을었다. 그러자 남근석의 돌출이 더욱 선명해져 남근의 힘줄처럼 팽팽한 모습이 되었다. 이번에는 김씨 아주머니가 화가 났다. 남편이 바람났기 때문이다. 동네 앞 남근석이 그을면서 더욱더 강해진 양기(陽氣)가 집안에 끼쳐 남편이 바람피운다는 소리를 들었다. 김씨 아주머니는 쓰다 만 페인트 통을 들고 가 남근석 귀두 부분에 아예 통째로 부어버렸다. 그래서 지금 그 남근석은 하얀 페인트칠이..

김제 정구례 가옥

김제 정구례 가옥 김제들녘만큼 넉넉했던 만석꾼 쌀뒤주 만석꾼 쌀뒤주로 유명한 정구례가옥(현재는 정종수고택)은 전북 김제시 장화동 210-1(장화2길 150-5) 후장마을에 있다. 삼한시대 저수지인 벽골제에서 불과 2.5km 떨어진 곳이다. 1989년 김제군이 시로 승격되기 이전에는 월촌면 장화리였다. 1998년 교촌동과 월촌면을 병합하면서 관할은 교월동이 되었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김제평야 한 가운데 있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효녀가수 현숙이 기증한 ‘전장·후장’ 마을 표석이 서있다. 현숙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월촌초등학교와 김제여자고등학교를 다녔다. 본래 마을 이름은 꽃잔 또는 화산이었다. 마을 서쪽의 야산 이름은 화초산이다. 이로 보아 꽃잔은 마을 모양이 넓게 퍼진 꽃받침처럼 생긴데서..

군포 정난종 묘

군포 정난종 묘 인재 풍년… 풍수가 발길 끊이지 않는 곳 조선 전기 이조판서와 우참찬(정2품)을 역임한 허백당 정난종(鄭蘭宗, 1433~1489)과 그의 후손들 묘는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산3-1에 있다. 동래정씨(東來鄭氏)는 조선시대에 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 17명, 대제학 2명, 호당 6명, 공신 4명, 판서 20여명, 문과급제자 198명, 무과급제자 484명을 배출하였다. 상신 수로는 왕족인 전주이씨 22명, 외척인 안동김씨 19명에 이어 세 번째다. 이중 13명의 정승이 정난종의 후손에서 나왔다. 이 때문에 풍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묘역은 신도비·상석·혼유석·향로석·장명등·문인석·동자석 등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서 묘제·석조미술·금석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화성 수원백씨 백천장 묘

화성 수원백씨 백천장 묘 살아있는 脈 꿈틀… 고려시대 문신이자 수원백씨 9세조인 문익공 백천장 선생 묘는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기안동 산7(기안길 65)에 있다. 당시의 묘지 양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경기도 내 몇 안 되는 고려시대 묘다. 사도세자와 정조의 융건릉에서 직선거리로 2km에 위치한다. 본래 왕릉이 조성되면 반경 10리 이내의 산소는 모두 이장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정조는 백천장의 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주변에 깃발을 나열하여 꽂고 그 안쪽은 옮기는 것을 제외시켜 주었다. 기안동은 깃발 안쪽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백천장은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와 정당문학을 역임하였다. 원나라에 가서 유학하고 금자광록대부 이부상서를 거쳐 우승상에 올랐다. 당시는 원나라가 세계를 ..

김해 흥부암

[우리 문화 우리 풍수] 김해 흥부암 - 호랑이와 제왕의 땅 사나운 호랑이 주춧돌로 꽉!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국을 하고 있는 김해 임호산(林虎山) 꼭대기 가파른 자리에 위치한 가야불교의 성지 흥부암(興府庵)은 가락국의 수로왕 때 장유화상(長遊和尙)이 도성의 흥성을 빌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수로왕릉이 있는 경남 김해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예부터 그 형상이 거북, 용, 호랑이 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믿어져 왔다. 이 때문에 김해 사람들은 언젠가는 이곳에서 수로왕 이후 사라진 ‘훌륭한’ 임금이 다시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해의 산들은 다음 세 가지의 기운을 갖고 있다. 첫째, 거북을 닮아 인자하며 오래 살 뿐만 아니라 성군(聖君)의 출현을 상징한다. 둘째, 용의 기상을 닮아 풍운조화를 주관..

익산 미륵사지

익산 미륵사지 용맥 없어 기가 없거나 약한 땅… 길지는 아냐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한다. 뒤로는 익산·논산·군산 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미륵산(429.6m)이 솟아 있다. 앞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만경평야가 펼쳐져 있다. 절은 온데간데없고 석탑만 최근 복원되었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크고 오래되었으며, 미술사적으로는 목탑에서 석탑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형태라고 한다. 이곳은 얼핏 배산임수 지형의 명당처럼 보인다. 그러나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용맥이 없다. 용맥을 따라 기가 전달되는데, 용맥이 없으면 기가 없거나 약한 땅이 된다. 사람도 기가 약하면 오래 살 수 없다. 땅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주변 산세가 좋아도 길지로 보기 어렵다. 미륵사는 백제 제3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