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 229

하동정씨(河東鄭氏)

하동정씨(河東鄭氏) 신라 말 정치혼란 속 문벌 형성… 본관 같으나 시조 다른 3개파 있어하동정씨(河東鄭氏)는 ‘조선씨족통보’에 따르면 여섯 계통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하동정씨는 본관을 같이하면서 계통을 달리하는 3파가 있다. 첫째 계통은 신라 말기 하동호장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하는 밀직공파(密直公派)이다. 정도정은 신라 진성왕 때 하동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범할 때(923년, 경명왕 7년) 향병을 단련하여 하동성(河東城)을 지켰다. 그 뒤 고려로 통합될 때는 경순왕을 개성까지 호위하여 광평성평장사(廣評省平章事)에 올랐다. 하지만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문하시중을 지낸 정석숭(鄭碩崇)을 일세조로 삼고 있다. 하동정씨 밀직공파의 시조인 정도정의 단비. 정도정의 후손들은 ..

김해김씨(金海金氏)

김해김씨(金海金氏) 가야 수로왕이 시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씨 수로왕 금함서 나왔기때문 김씨로 써…알지왕 신라계 김씨보다 20여년 앞서 印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 왕비로 삼아…아들에 모후 성씨 내려 ‘동조동본이성’ 한국의 김(金)씨는 신라계(알지계)와 가야계(수로계)로 나뉜다. 김(金)씨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성씨(姓氏)이다. 2000년 주택인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21.6%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난해(2010년) 조사된 인구는 1072만명이다. 그중 신라계 김씨가 약 600만명이 넘고, 가야계인 김해김씨가 420만명(2000년 인구센서스에선 412만명)이다. 그 외 김씨 중에서 신라계도 가야계도 아닌 김씨가 있다. 이름하여 사성김해김씨다. 사성김해김씨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귀화..

경주이씨(慶州李氏)

경주이씨(慶州李氏) 인구 142만… 전주이씨 다음으로 많아… 합천·진주·원주 등 수많은 이씨 본산 문과급제자 178명… 공신 10여명 배출… 익재 이제현·백사 이항복 등 유명 인물… 성철 스님·이병철 전 회장도 같은 가문경주이씨는 시조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에서 유래하고 있다 . ‘삼국유사’에 따르면, 기원전 117년에 알평공이 하늘에서 신라의 영산(靈山) 중의 하나인 경주 서북에 있는 금강산(金剛山)의 표암봉(瓢巖峰)에 내려왔다고 전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에는 유리왕(儒理王) 9년 봄에 6부(部)의 이름을 고쳤는데, 양산부(楊山部)는 급량부(及梁部)(李氏)로, 고허부(高墟部)는 사량부(沙梁部)(崔氏)로, 대수부(大樹部)는 점량부(漸梁部)(孫氏)로, 우진부(于珍部)는 본피부(本彼部)(鄭氏)로..

인동장씨(仁同張氏)

인동장씨(仁同張氏) 고려 신호위상장군 장금용이 시조… 칠곡 인동서 뿌리내려 인동장씨(仁同張氏)는 지금의 칠곡지역의 인동을 관향으로 삼고 있는 씨족이다. 인동은 예전에 옥산으로 불렸기 때문에 옥산장씨로 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동장씨의 시조는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이다. 장금용의 아들인 장선(張善)도 고려 문종 때 금오위상장군을 지냈다. 인동장씨의 여헌(旅軒) 장현광은 그의 유록에서 장금용을 시조로 모시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고려 삼중대광 신호위상장군공(장금용)을 시조로 모시는 것은 그분이 선대를 알 수 있는 최초의 선조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조상은 몇 대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 조상이 이곳 인동(옥산) 땅에 거주하신..

양주 한확 부인 남양홍씨 묘 풍수

양주 한확 부인 남양홍씨 묘 귀한 여자 나올 자리 후세 인수대비 배출 조선시대 유일하게 여성의 묘에 신도비가 세워진 곳이 있다.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산54-1에 위치한 한확의 부인 남양부부인 홍씨 묘다. 신도비란 정2품 이상의 벼슬이나 학문과 덕행이 높아 후세의 사표가 될 만한 사람의 묘지 입구에 세우는 비석을 말한다. 내용은 그 사람의 가족 내력과 생전의 업적을 적는다. 이때 글과 글씨는 당대의 문장가와 명필에게 부탁한다. 신도비 첫머리를 보면 신도비명과 함께 누가 글을 지었고 누가 글씨를 썼는지를 알 수 있다. 글 지은 사람은 찬(撰) 글씨를 쓴 사람은 서(書)로 표시하고 있다. 또 비석 제일 위의 비명은 전서로 쓰는데 누가 썼는지를 전(篆)으로 표시하고 있다. 남양홍씨 부인(1403~145..

양주 남양홍씨 홍지 묘 풍수

양주 남양홍씨 홍지 묘 조상덕에 대대손손 벼슬길 양주 남양홍씨 홍지 묘 남양홍씨 당홍파의 발복지로 알려진 홍지 묘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산15에 위치한다. 옥녀가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인 옥녀산발형 명당으로 유명한 곳이다. 옥녀산발형은 사방으로 뻗은 산자락을 머리카락으로 본다. 머리카락마다 혈을 맺는다고 본다. 이 때문에 망당산(203.8m) 자락에는 능선마다 남양홍씨 당홍계의 수많은 묘가 있다. 이중 제일 가운데 능선에 홍지의 묘와 그 아래에 부인 개경왕씨 묘가 자리 잡았다. 홍지(洪智)는 고려 말 임진도승(臨陣渡丞)을 역임한 학자로 이성계·무학대사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그러나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려하자 이에 반대하였다. 자신이 고려왕실 수연대군 왕규의 사위이기 때문이다. 조선이 개국되자 ..

의령 홍의장군 곽재우 생가 풍수

의령 홍의장군 곽재우 생가 홍의장군 기개 빼닮아 홍의장군으로 유명한 곽재우(1552~1617) 생가는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817에 위치한다. 곽재우는 임진왜란 때 전국에서 제일 먼저 거병하여 왜적을 무찔렀던 의병장이다. 생가는 의령군이 2005년 새롭게 복원한 것이다. 조선중기 경상우도 지역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구조를 본떴다. 주변에는 곽재우장군 문화공원을 만들어 의병박물관과 의병체험장을 꾸며놓았다.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더욱이 의령군은 국회에 청원하여 2010년부터 매년 6월 1일을 국가기념일인 ‘의병의 날’로 제정토록 하였다.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다. 이곳을 방문할 때는 생가로 곧바로 가지 말고 마을 앞 현고수를 먼저 보기 바란다. 수령..

서울 잠실의 풍수와 롯데월드타워

서울 잠실의 풍수와 롯데월드타워 역풍 받는 배에 555m짜리 돛 펼친 꼴 잠실의 풍수와 롯데월드타워 서울 송파구 잠실은 본래 섬이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강북 쪽에 가까웠다. 대동여지도를 비롯하여 옛 지도를 보면 강북 쪽은 강폭이 좁고 강남 쪽은 넓었다. 이 때문에 1970년대 이전까지는 성동구에 속했다. 잠실 땅은 모래가 퇴적되어 생긴 것이라는 설과 아차산에서 맥이 이어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후자가 맞는 것 같다. 잠실 재건축 당시 땅 파는 것을 보았는데 생토가 나왔기 때문이다. 맥이 이이진 곳은 생토가 나오지만 퇴적된 땅은 주로 자잘·모래·점토가 나온다. 옛날에는 강북 자양동 쪽의 물길을 신천강, 강남 송파구 쪽은 송파강이라 불렀다. 홍수 때는 두 곳 모두 물이 흘렀지만 보통 때는..

밀양 영남루 풍수

밀양 영남루 거북 머리처럼 생긴 혈처… 경관도 탁월 밀양 영남루는 경남 밀양시 내일동 36-1(영남루1길 16-11) 밀양강가 절벽에 위치한다.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객사에 속했던 건물로 연회를 열거나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로 꼽힐 만큼 풍경이 뛰어나다. 누각이란 지표보다 높게 바닥을 띄워 마루를 깔고,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는 건물을 말한다. 정자와 비슷하나 규모에서 차이가 난다. 대체로 누각은 공적인 연회와 행사를 펼치는 곳으로 크고 웅장하다. 또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지대에 위치한다. 이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권력자들이 이용했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정자는 사적인 공간으로 규모가 작다. 대개 자연을..

관악산 연주대 풍수

관악산 연주대 용이 몸 꿈틀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형상 관악산 최고봉 절벽 위에 연주대(戀主臺)가 있다. 연주란 주인을 사모하여 그리워한다는 뜻이고, 대는 높고 평평한 곳이라는 의미다. 고려가 이성계의 의해 멸망하자 고려의 충신인 강득룡, 서견, 남을진 등이 이곳에서 멀리 개경 쪽을 바라보면서 통곡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주인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연주대라 하였다. 처음 이곳에 터를 닦은 사람은 의상대사다.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지금의 연주암 자리에 관악사를 지을 때 깎아지른 바위틈에 돌을 채워 위를 평평하게 만든 후 의상대를 세웠다. 그리고 좌선을 하며 도를 닦았다. 연주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한다. 조선 3대 왕 태종은 장자인 양녕대군(1394~1462)을 폐하고 셋째인 충녕대군을 세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