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정경연의 풍수기행

양주 남양홍씨 홍지 묘 풍수

초암 정만순 2021. 3. 30. 09:09

양주 남양홍씨 홍지 묘

 

조상덕에 대대손손 벼슬길

 

양주 남양홍씨 홍지 묘

남양홍씨 당홍파의 발복지로 알려진 홍지 묘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산15에 위치한다.

옥녀가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인 옥녀산발형 명당으로 유명한 곳이다.

옥녀산발형은 사방으로 뻗은 산자락을 머리카락으로 본다.

머리카락마다 혈을 맺는다고 본다.

이 때문에 망당산(203.8m) 자락에는 능선마다 남양홍씨 당홍계의 수많은 묘가 있다.

이중 제일 가운데 능선에 홍지의 묘와 그 아래에 부인 개경왕씨 묘가 자리 잡았다.

홍지(洪智)는 고려 말 임진도승(臨陣渡丞)을 역임한 학자로 이성계·무학대사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그러나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려하자 이에 반대하였다.

자신이 고려왕실 수연대군 왕규의 사위이기 때문이다.

조선이 개국되자 그는 벼슬을 버리고 임지인 연천을 떠나 지금의 상수리로 낙향하였다.

태조가 정6품인 사재감직장 벼슬을 내렸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홍지가 죽자 태조는 무학대사에게 묏자리를 잡아주도록 하였다.

무학은 나라를 편안하게 할 터에 친구의 묘 자리를 잡아주었다.

홍지와 달리 그의 후손들은 현실적이었다.

만약 벼슬을 거부한 집안으로 낙인찍히면 후손들의 벼슬길이 막히는 것이 염려되었다.

후손들은 홍지의 묘비에 태조가 내려준 사재감직장 벼슬을 적어 넣었다.

후에 태종은 이를 확인하고 홍지가 죽어서는 조선의 신하가 되었다고 기뻐하며 그의 후손들을 등용하였다고 한다.

후손들의 벼슬을 살펴보면 홍지(16세)의 아들 홍경손(17세)은 첨지중추부사, 손자 홍윤덕(18세)은 봉상시부정, 증손 홍계정(19세)은 예문과대교, 고손 홍춘경(20세)은 황해도관찰사, 춘경의 아들 홍천민(21세) 대제학·도승지, 홍성민(21세) 대제학·호조판서, 천민의 아들 홍서봉(22세) 대제학·영의정을 지냈다.

또 성민의 아들 홍서익(22세) 병조참의, 손자 홍명구(23세) 평안도관찰사, 증손 홍증보(24세) 우의정, 고손 홍득우(25세) 강원도관찰사, 현손 홍치중(26세) 영의정을 하였다.

남양홍씨는 조상을 달리하는 당홍(唐洪)과 토홍(土洪) 두 계파가 있다.

당홍은 고구려 때 당나라에서 귀화해 온 홍학사의 후예이고, 토홍은 본래부터 우리나라에 토착한 성씨라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설이 많아 정확하지는 않다.

두 집안은 조상은 다르지만 같은 종씨라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그래서 서로 결혼도 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두 집안은 모두 329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

이는 전주이씨(884명), 안동권씨(329명), 파평윤씨(336명)에 이어 네 번째다.

그러나 인구수를 감안하면 놀라운 수다.

이중 당홍계에서 206명, 토홍계에서 123명을 냈다.

당홍은 상신 8명, 대제학 3명, 왕비 1명을 배출했는데 대부분 홍지의 후손들이다.

그래서 풍수가들은 망당산 묘역을 조선8대명당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곳 산줄기는 한북정맥 호명산(420m)과 첼봉(516m) 사이에 있는 꾀꼬리봉(425m)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북쪽으로 감악지맥을 분지하여 노아산(337.6m)과 노고산(401m)을 지나 감악산(674m)으로 이어진다.

노고산과 감악산 중간에서 동쪽으로 나온 맥 하나가 수레미고개를 지나 이곳 주산이자 현무봉인 망당산을 세웠다.

산이 야트막하고 정상이 둥글게 생겨 옥녀의 머리로 본다.

이곳 묘역이 유명하다보니 망당산 이름 유래에 대해서도 전하는 말이 많다.

본래는 이곳에 명당이 많아 명당산이라고 불렀는데, 왕릉 자리를 찾으러 다니는 지관들이 자주 들리자 명자를 망자로 바꾸었다는 설이 있다.

다음은 남양홍씨 선조가 당나라 남양 땅에서 왔기 때문에 당나라를 잊지 못한다 하여 망당산이라 이름 했다는 설도 있다.

명당산은 옥녀봉으로 사방으로 수많은 용맥들이 뻗어 내려간다.

이중 중심이 되는 맥을 찾아야 한다.

찾는 방법은 산을 한 바퀴 돌면서 보면 산 정상이 가장 반듯하고 순하게 보이는 곳이 있다.

그곳 중심에서 내려오는 능선이 중심 맥이다.

그리고 좌우를 살펴 청룡과 백호자락이 중심 맥을 감싸주고 있는지를 살핀다.

양팔로 어린아이를 안 듯 감싸주고 있으면 중심맥이 확실하다.

홍지 묘는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자리다.

 



길게 뻗은 용맥 위에는 홍지 묘를 포함하여 모두 6기의 묘가 있다.

이중 홍지 묘와 부인 개경왕씨 묘, 홍춘경 묘, 홍처량 묘 등이 정혈에 위치한다.

길게 뻗은 맥에 여러 혈이 있는 자리를 옥적형(玉笛形)이라고 한다.

능선을 피리로 보고 피리 구멍을 혈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홍지 묘는 옥녀가 피리를 부는 형국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