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 229

수맥과 풍수

수맥과 풍수 수맥은 아무런 죄가 없다 무덤 아래에 수맥이 흐르는지 확인하는 사람들. 건물 아래에 수맥이 흐르면 건강이 나빠지고, 건물에 금이 간다’ ‘공부방 밑에 수맥이 흐르면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 ‘묘지 아래에 수맥이 흐르면 우환이 생긴다’ ‘수맥을 차단하려면 동판을 까는 등 수맥 방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모두 수맥과 관련된 말이다. 풍수 강연 중에 흔히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수맥과 풍수’의 연관성에 대해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수맥과 풍수는 전혀 관계가 없다. 물론 수맥(水脈)이란 용어가 풍수에 등장한다. 조선조 지관(地官) 선발 고시과목에 수맥이란 용어가 언급된다. 하지만 이때 수맥이란 땅 위 물길의 모양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 쓰이는 땅 밑에 흐르는 물길을 말하는 수맥과는 다르다. 그..

강화 마니산 참성단 풍수

강화 마니산 참성단 모든 땅의 우두머리… '민족의 성지'로 추앙강화 마니산 참성단 강화 마니산(摩尼山, 469m)은 풍수전문가들 사이에서 기가 가장 센 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한남정맥의 끝자락에 있기 때문이다. 기는 대부분 끝에 모인다. 사람의 주먹 끝에 기가 모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남정맥은 백두대간 속리산에서부터 한강 남쪽을 따라 이어진 산맥이다. 김포 문수산에서 물살 빠른 강화해협을 건너 고려산·혈구산·진강산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는 그 마지막에 마니산을 세웠다. 마니산은 『고려사』, 『세종실록지리』, 『태종실록』 등에 마리산(摩利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리는 고어로 머리를 뜻한다. 그러므로 마니산은 땅의 우두머리란 뜻을 담고 있다. 마니산 정상에 오르면 돌로 쌓은 참성단(塹星壇)이 있..

포천 백사 이항복 묘

포천 백사 이항복 묘 비좁은 옛 선영 뒤로하고 진짜 명당 찾다 포천 백사 이항복 묘 오성대감으로 널리 알려진 백사(白沙) 이항복(1556~1618)의 묘는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 산4-2에 있다. 묘역에는 이항복과 정경부인 안동권씨 부인의 묘가 쌍분으로 있다. 그 왼쪽 아래에는 정경부인 금성오씨 묘가 홓로 있다. 첫 부인인 안동권씨는 권율의 딸이다. 어린 시절 바로 옆집에 살았다. 이 때문에 권율 장군과의 일화가 유명하다. 오성의 집 감나무 가지가 권율의 집으로 휘어 들어가자 그 집 하인들이 감을 따먹었다. 화가 난 오성이 권율 집으로 뛰어 들어가 방문에 주먹을 찔러 넣고는 “이 주먹이 누구 주먹이냐”고 물었다. 권율이 “너의 주먹이지 누구 주먹이겠냐”고 하였다. 그러자 “그럼 감나무 가지의 감은 ..

음성 안동권씨 권근 3대 묘소

음성 안동권씨 권근 3대 묘소 한 용맥에 '3개 대혈'… 조선 초대 대제학을 지낸 양촌 권근과 그의 둘째 아들 권제, 손자 권람의 묘는 충북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7(능안로 377-15)에 위치한다. 풍수가들 사이에 조선8대명당으로 알려질 만큼 유명한 묘다. 풍수 초보자도 첫눈에 보면 대혈임을 알 수 있는 자리다. 묘역 아래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제일 위의 권근, 가운데 권제, 제일 아래 권람 묘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역량이 큰 자리다. 한 용맥에 대혈 3개가 있는 것은 매우 드믄 경우다. 안동권씨는 신라왕실의 후손으로 본래의 성은 김씨였다. 시조인 김행이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태조 왕건은 김행이 임기응변인 권도(權道)에 능하다며 권씨 성을 하..

신의 집터 임자 있나

신의 집터 임자 있나 소리꾼· 무당· 교회에는 명당자리 당대 최고 소리꾼의 집터이자 귀신의 집터였던 곳에 현재 교회(아래)가 들어서 있다. 귀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무당 집터의 요건은 일반 사람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북 순창군에는 옛날부터 소리꾼과 무당들이 많이 살았다. 신분 차별의식이 강했던 과거에는 그 같은 사실이 자랑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후손이나 인근 사람들이 밝히기를 꺼려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무당이 살았던 집이 교회 또는 암자로 바뀌거나 절터가 무당의 집터로 바뀌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땅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용도를 잘 알지 못하고 일반인들이 그곳에 들어가 살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그 한 예를 교수인 고향 후배한테서 ..

포천 전계대원군 묘

포천 전계대원군 묘 머슴살이 했던 왕족, 사후에야 편히 눕다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276-1 선단초등학교 뒤편에는 철종의 아버지인 전계대원군 묘가 있다. 묘역 입구에서 뒷산을 보면 고축사(誥軸砂)가 반듯하게 서 있다. 고축사란 정상이 일자(一字) 모양이고 그 양쪽에 뿔처럼 생긴 작은 봉우리가 있는 것을 말한다. 풍수지리 고전인 『지리인자수지』에는 고축사가 있으면 왕과 가까이 한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일까 철종의 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묘를 품고 있다. 조선 왕족 중에서 철종과 그 가족들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경우가 없을 것이다. 특히 전계대원군은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비참한 가족사를 안고 멸시와 천대 속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살다간 인물이다. 대원군이란 왕이 후사 없이 죽으면, 종친 중에서 왕위를 계..

꽃절, 굿절 , 떡절

꽃절, 굿절, 떡절 땅 기운 묻어나는 순 우리말 절(寺)이름 순 우리말 이름을 가지고 있는 ‘굿절’, ‘꽃절’, ‘떡절’은 땅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왼쪽부터) 우리나라 절들은 대부분 공식 명칭에 ‘사(寺)’를 쓴다. 예컨대 ‘해인사(海印寺)’라고 하지 ‘해인절’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절’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절 모르고 시주하기’ ‘절에 가면 중노릇 하고 싶다’ ‘절에 가서 젓국 달라 한다’ 등 ‘절’과 관련된 속담도 많다. 그만큼 ‘사’라는 말보다는 ‘절’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더 친숙했음을 뜻한다. 전국적으로 공식 명칭에 ‘절’을 쓰는 곳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데, 잘 알려진 곳을 꼽자면 ‘떡절’(경북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굿절’(경기 여주읍 가업..

양지바른 묏자리

양지바른 묏자리 볕만 잘 든다고 명당 아냐, 맥 이어받아야 명당 야트막한 산 아래나 중턱의 햇볕이 잘드는 자리를 보면 흔히 "양지 바르고 산이 험하지 않아 산소 쓰기에 딱 좋겠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조상을 모실때 생전 살았던 마을을 굽어볼 수 있는 마을 뒷산 양지바른 곳을 찾아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햇볕이 따뜻하게 잘 드는 곳은 맞지만, 낮은 구릉의 옆구리나 골짜기에 쓴 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은 명당이라는 단편적인 풍수사상이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마을 주변의 산들은 대체로 기운이 순조롭고 부드럽게 전해지기에 명당은 아니더라도 좋은 터를 찾기에 부족함이 없다. 반대로 산악이 험하고 높으면 에너지가 넘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큰 인물이 ..

다시 돌아보는 사찰과 명당

다시 돌아보는 사찰과 명당 해 하려는 기운 서린 땅 ‘대사찰의 몰락’ 불렀다 ▲ 발굴된 양주 회암사지- 1997년부터 지금까지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양주 회암사지는 왕궁의 구조를 인용한 건물지들이 옛 영화를 짐작케 한다. ■산 좋고 물 좋은 신륵사 아늑한 산들에 둘러싸여 명예·권력 모여 앞쪽에 휘둘러 흐르는 남한강 ‘금상첨화’ 아름다운 자연 어우러져 ‘천년고찰’ 명성 ■옛 영광만 남은 고달사지·회암사지 골짜기 안쪽에 잡은 터 “이해 못할 선택” 결국 유학자들의 숭유억불로 인해 ‘폐사’ 그나마 천보산 맥 받는 회암사 뒤늦게 빛 당대의 고승들이 터를 잡았으나 풍수의 기운을 따라 각각 흥망성쇠가 갈렸으니, 쓸쓸히 터만 남은 대사찰(大寺刹)의 옛 영화가 그립구나. 지난 2013년 3월 조광선생과 함께 풍수테..

익산 쌍릉

익산 쌍릉 혈의 기운 약하고 발복 오래 가지 못해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전하는 익산 쌍릉은 전북 익산시 석왕동 6-13(쌍능길 65)에 위치한다. 남북으로 180m의 거리를 두고 두 개의 능이 자리하고 있다. 규모가 큰 대왕릉은 백제 30대 무왕(재위 600~641), 소왕릉은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무덤은 규모 차이는 있지만 구조는 동일하다. 그러나 무덤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있어왔다. 청주한씨들은 문중의 시조인 마한 왕의 능이라며 오래전부터 제사를 지내왔다. 그 근거는 조선전기에 편찬된 《고려사》 〈지리지〉다. 전주목 금마군 편에 “후조선 무강왕과 왕비의 능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한씨들은 본래 기자의 후손으로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바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