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남면 가천리 남근석
음기 누르고 마을 평화를 위해…
”박씨 아주머니는 화가 났다. 남편이 바람피웠기 때문이다.
동네 앞에 세워진 좆바위(남근석)가 집에서 빤히 보이기 때문에 집안에 바람피울 사람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 길로 박씨 아주머니는 볏짚단을 가지고 가 좆바위 귀두 부분을 태워버렸다.
귀두 부분이 새까맣게 그을었다.
그러자 남근석의 돌출이 더욱 선명해져 남근의 힘줄처럼 팽팽한 모습이 되었다.
이번에는 김씨 아주머니가 화가 났다. 남편이 바람났기 때문이다.
동네 앞 남근석이 그을면서 더욱더 강해진 양기(陽氣)가 집안에 끼쳐 남편이 바람피운다는 소리를 들었다.
김씨 아주머니는 쓰다 만 페인트 통을 들고 가 남근석 귀두 부분에 아예 통째로 부어버렸다.
그래서 지금 그 남근석은 하얀 페인트칠이 된 채 동네 앞에 서 있다.”
화가 홍성담 선생의 고향마을 이야기다.
남근석(좆바위)이 언제부턴가 민속학 용어로 쓰이면서 수많은 문화유산 답사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 기능과 의미에 대해서는 정확한 해명이 없다.
성기(性器)숭배 사상의 흔적이라느니, 아들을 비는 기자신앙(祈子信仰)의 발로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성기 숭배나 기자신앙의 산물이라면 좆바위는 방방곡곡 마을마을마다 있어야 한다.
특정 마을이나 지역에서만 성기 숭배나 기자신앙이 강했던 것이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몇 군데에서만 볼 수 있는 좆바위는 그것이 세워진 주변의 지형지세에서 공통점이 나타난다.
특정한 지기(地氣)가 강한 곳에만 좆바위를 세운다는 것이다.
과연 특정한 지기란 무엇인가.
흔히 풍수에서는 여자의 기, 음기가 강한 곳에는 남자의 기, 양기를 상징하는 남근석을 세워 음기와 양기의 균형을 꾀한다고 말한다.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의 좆바위도 그 마을의 음기가 강해서 세운 것이라는 게 인근에서 예비군 중대장을 하고 있는 모씨의 설명이다.
옛사람들은 음기가 강한 지형에서는 여자가 드세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음양의 조화를 꾀해 마을의 ‘평화’를 모색하려 했다.
그런 점에서 경남 남해군 남면 가천의 암수바위는 가장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남근처럼 생긴 바위와 그 옆에 아기를 밴 듯 배가 불룩한 바위가 놓여 있어 이 둘을 합해
‘암수바위’라고 부른다.
이 암수바위는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 영조 임금 때 땅 속에 묻혀 있던 것을 캐내 세운 것이다.
정확히 영조 27년(1751) 음력 10월23일인데, 이후 해마다 10월23일 저녁에 이 바위에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 좆바위는 그 길이가 무려 5.8m나 된다.
자식 없는 사람들이 여기서 공을 들이면 아들을 얻기 때문에 미륵과 같은 존재라 하여 미륵바위 혹은 미륵불이라고도 부른다.
그 좆바위 덕분인지 이 마을에는 아들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아들이 많다고 한다.
아무튼 5.8m의 숫바위가 세워진 것은 이곳의 지형이 음기가 강하다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다른 지역의 좆바위와 마찬가지로 이곳 마을의 뒷산들은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은 주산인 망산과 우백호에 해당하는 응봉산이 가파른 바다로 내려가는 아랫부분에 위치해 있다.
주변 산들의 모양이 좋으면 마을에 길한 영향을 주고 그렇지 못하면 흉함을 가져다 주는데, 특히 험한 산세가 온통 바위로 이루어졌으면 그 영향이 신속하고 강력하다고 이야기한다.
이곳 남면 가천마을의 거대한 좆바위 역시 험한 바위가 동네에 끼칠지 모르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즉 주변의 강한 기운을 누르기 위한, 마을 사람 전체의 집단 의지가 반영된 집단 풍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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