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묘소
2018.4. 8일 일요일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 갔다.
이때쯤 피는 수양벚꽃이 일품이다. 가는 길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
이틀 전 4월 6일은 그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선고가 내려진 날이었다.
일시적인 오류로 인하여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원본 이미지가 삭제되어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뷰어 내 로딩이 불가능한 큰 사이즈의 이미지입니다.
일시적인 오류로 인하여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원본 이미지가 삭제되어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어 내 로딩이 불가능한 큰 사이즈의 이미지입니다.
평소보다 참배객이 많았다.
참배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 이들의 이야기엔 몇 가지 유형이 있었다.
"이 나라와 박근혜 대통령을 굽어 살피소서!"(70대 여인)
"유죄 선고를 내린 재판장 천벌받아야 해!"(70대 남자 일행 5명)
또 하나 빠지지 않는 말이 있었다. "정말, 박 대통령 부부 묘에 물이 차는 것일까?"(60대 남자 일행 3명)
마지막 발언은 오래전부터 전해져온 이른바 '냉혈론(冷穴論)'이다.
1993년 육관도사로 유명했던 손석우씨가 이곳을 가리켜 "시신이 썩지 않는 냉혈의 땅"이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유럽의 수맥이론을 풍수에 접목하여 '지관신부'로 유명했던 임응승 신부(2015년 작고)가 "이곳에 수맥이 흐른다"고 가세하였다. "간접적으로 후손들에게 수차례 이장을 권장했다"는 신부님의 말을 필자도 들은 적이 있다.
'냉혈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잠잠해지더니 유죄 선고와 더불어 다시 떠오른다.
그 시작은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이곳에 안장될 때부터였다.
이 터를 잡은 이는 당대 최고의 술사 지창룡과 손석우씨로 알려졌다. 실제 그들은 그렇게 자랑하였다.
그런데 20년 후 손씨가 발을 뺀다.
"내가 육 여사 장지에 도착했을 때 지씨가 이미 자리를 정해놓았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나에게 의견을 묻기에 '냉혈이어서 시신이 썩지 않고, 음양교구가 안 되니 딸이라도 시집을 가 살 수 없게 된다'고 하였다."(손석우)
이에 대해 지씨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육 여사가 저격당한 날 밤중에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
다음 날 현장에 갔더니 이미 최 풍수와 남 풍수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구덩이를 파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내가 현장 작업을 지휘하였다.
무덤 뒤 약한 용세(내룡)가 마음에 걸려 수백 트럭의 흙을 날라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그런데 지씨가 언급한 '최 풍수와 남 풍수'는 지금까지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과연 이곳은 냉혈이 맞을까?
땅속 일은 알 수 없고, 술사들의 주장은 저마다 달라 모두 믿기 어렵다.
다만 지씨 말대로 수백 트럭의 흙으로 내룡을 만들었다면 이곳은 묘 뒤[龍]가 허(虛)함을 의미한다.
용이 없으면 혈(穴)도 없다.
"자리가 습하여 해마다 잔디 교체를 한다"는 말을 1990년대 후반 그곳 관리인에게 들은 적 있다.
또한 박 전 대통령 무덤 뒷산과 그 앞산인 장군봉(장군 묘역) 사이에 고갯길이 있어 바람이 세다.
바람[風]과 물[水]에 문제가 있다.
이곳만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묘는 창빈안씨(선조임금 할머니) 묘역을 침범한 '범장론(犯葬論)'의 덫에 걸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는 자리를 정할 때 봉황이 알을 품는 길지라 하였으나 구덩이를 파던 중 돌이 나오는 바람에 '봉황항문파열론'(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의 덫에 걸렸다.
이승만 대통령 묘만이 그나마 제대로 된 자리로, 신령스러운 거북이 물을 마시는 '영구음수형(靈龜飮水形)'이라고 한다.(지창룡)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대통령들처럼 연고지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생가와 선영'은 당연 길지이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그곳은 새로운 관광지가 되며, 죽으면 고향으로 간다는 '귀향장(歸鄕葬)'의 모범이 될 것이다.
혼령이 되어 조상님들, 고향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