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김씨 시조묘
'김일성 시조묘설'에 툭하면 봉변당한다는데…
2018. 6. 12일 이른바 '세기의 담판'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정'을 받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보다
더 세계적 인물이 되었다.
트럼프는 그가 통치하는 나라까지 "한·중 사이에서 아주 멋진 장소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칭찬하였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원래 김 위원장 조상은 전북 전주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살길을 찾아 김계상대(代)에 이르러 북으로 갔으며, 이후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가난을 면치 못했다.
이들이 만경대에 정착한 것은 김일성의 증조부(김응우) 대로, 지주 이평택의 묘지기가 된 1860년대였다.
그런데 그곳이 길지(吉地)였다.
만경대는 돈 많은 이들이 앞다투어 땅을 구입하여 조상 묘지를 쓸 정도로 수려한 곳이었다(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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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만경대뿐만 아니라 전주도 그들에게 늘 관심의 땅이었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한 직후 그해 8월 언론사 대표 40명이 박지원 문광부 장관과 북을 방문하였다.
장영배 당시 전주MBC 사장도 일원이었다.
장 사장은 전주 김씨 시조묘와 전주를 소개하는 앨범을 만들어 박 장관을 통해 김용순 대남비서에게 전했다.
방문 마지막 날 김정일 위원장 주최 만찬이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일행들은 김 위원장과 자유롭게 건배하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장 사장이 와인 잔을 들고 김 위원장에게 가서 "전주MBC 장영배 사장입니다" 하고 소개하였다. 김 위원장은 "아, 전주MBC!" 하면서 반가워하였다. 이어 장 사장은 "전주에 전주 김씨 시조묘가 있습니다. 아십니까? 한번 오시지요"라고 말을 건넸다. 김 위원장은 "알고 있습니다. 수령님(김일성)이 계셨더라면 벌써 가셨을 것입니다. 답방하면 당연히 가야지요" 하고 화답하였다.
6·15 공동 선언문에 '김정일 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명시되었기 때문에 장 사장이 시조묘를 한번 찾으라고 한 것이다. 당시 전북경찰청은 만약을 대비하여 전주 김씨 시조묘 주변 경호 연습을 하였다. 또 모악산 입구에서 대대적 환경 미화가 이루어져 지금 모습을 갖추었다.
'모악산 김일성 시조묘설'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손석우씨가 1928년에 발간된 전주 김씨 대종보(무진보)와 재미 교포 언론인 문명자(1930~2008)씨 인터뷰를 근거로 세상에 알리고 나서이다(1993년 '터').
1992년 문 기자가 김일성 주석을 인터뷰할 때 김 주석이 자신의 시조묘가 모악산에 있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모악산은 민족 종교의 태생지이기도 하다.
진묵대사와 강증산이 득도한 곳은 김일성 시조묘 지근에 있는 대원사이다.
최근 어느 선원(仙院)의 총재가 이곳에서 득도하였다 하여 많은 땅을 사들여 성역화하고 있다.
김지하 시인도 모악산을 예사로이 보지 않는다.
"풍수적으로 한반도의 배꼽은 모악산이다.
모악산 저쪽 즉 금산사 쪽이 자궁에 해당하고, 모악산 이쪽 즉 전주 쪽이 이를 지탱해주는 척추이다."
최근 전주 김씨 시조묘를 찾는 이가 부쩍 늘었다.
20여년 전 손석우씨는 '애꿎은 김일성 때문에 시조묘가 훼손되는 것을 전주 김씨 후손들이 속상해하는데 미우면 김일성이 밉지 시조묘가 밉겠는가?'라고 자신의 책에서 묘지 훼손의 어리석음을 탓한 바 있다. 그런데 어리석음은 반복된다. 지난달 말 필자는 전주 김씨 시조묘를 찾았다. 사람의 정수리[百會穴]에 해당하는 봉분 위에 누군가 불을 피운 흔적이 뚜렷하였다. 백회혈에 뜸을 놓아 지기(地氣)를 차단하겠다는 의도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싫다고 그 시조묘를 훼손하는 것은 전주 김씨에 대한 모욕이며 죄를 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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