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김두규의 국운풍수

'꽃동네 1번지'를 왜 '5길 48'로 불러야 하나

초암 정만순 2018. 6. 15. 13:16


'꽃동네 1번지'를 왜 '5길 48'로 불러야 하나



꽃동네 새동네


필자의 퇴근길 마지막 10km는 사곡(沙谷)→가곡(佳谷)→천담(川潭)→석전(石田)→원치(遠峙)→어치(於峙)→오동(烏洞)을 지나 추동(秋洞)에서 끝난다. 호젓한 산길과 물길, 가파른 고갯길이다.

내가 사는 ‘추동(秋洞)’을 직역하면 ‘가을마을’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익숙하게 들었던 이름은 ‘가라울’이었다.

추동이란 지명은 이곳 말고도 전국에 더러 있다.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가래나무[楸·추]가 많아서라는 설과 농기구 가래와 비슷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그래서인지 옛 마을회관에는 楸洞(추동)이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20년 전 마을회관을 신축하면서 秋洞으로 현판이 바뀌었다. 마을 이름이 30년 사이에 ‘가라울→楸洞→秋洞’으로 바뀌는 것이다.

다른 마을도 마찬가지이다.

사곡은 ‘모라실’이었고, 가곡은 ‘가실’, 천담은 ‘내인’, 석전은 ‘돌무덤’, 원치는 ‘멀터’, 어치는 ‘느재’, 오동은 ‘먹굴’이 본디 이름이었다.

우리말 모라실은 무슨 뜻일까? ‘ᄆᆞᆯ’은 으뜸이란 뜻이다.

이것이 말·마리·마라·모라 등으로 분화한다. ‘실’은 골짜기[谷]나 고을[洞]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따라서 모라실은 으뜸 되는 마을(큰 마을)이란 뜻이다. 그것이 한자로 바뀌면서 모래마을[沙谷]이 되었다. ‘큰 마을’이 ‘모래가 많은 마을’로 바뀌었다.

가곡은 차승원과 유해진이 이장과 군수로 출연한 영화 ‘이장과 군수’의 촬영 무대가 된 곳이다. 가실은 무슨 뜻일까? 우리말 ‘ᄀᆞᆺ’은 가장자리 혹은 산을 뜻한다. 실제 가보면 산으로 둘러싸여 바깥에서는 그곳에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 이 마을회관 표지석에는 가곡[佳谷], 즉 아름다운 골로 이름이 바뀌었다. ‘산골 마을’과 ‘아름다운 마을’은 다르다.

천담은 이전에 ‘내인’이라 불렸는데 어떤 이는 ‘내안’이라고도 하였다. 하회마을처럼 섬진강이 감싸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안’이 ‘내인’으로 바뀐 것 같다. 석전 마을의 본디 이름은 ‘돌무덤’이었다. 돌로 된 무덤이 많은 곳인가? 아직까지 내력을 찾지 못했다. 명산 용골산 아래 큰 바위를 중간에 두고 작은 마을이 들어섰다는 점이 특징이다. 돌무덤이란 말이 찜찜하였던지 언젠가부터 석전(石田·돌밭)으로 바뀌었다.

느재는 무슨 뜻일까? ‘느’는 우리말 ‘ᄂᆞᆯ’의 변화이다. 넓다[廣]는 뜻인데, ᄂᆞᆯ은 지방에 따라 ‘늘’ ‘누루’ ‘놀(노루)’ 등으로 달리 부르고 때로는 자음이 탈락한다. 따라서 느재는 ᄂᆞᆯ재 혹은 늘재가 그 어원이며, 재는 고개를 뜻한다. 즉 ‘느재’라는 큰 고개를 말한다. 실제로 ‘느재 마을’은 큰 고개를 넘어야 나온다. 그런데 ‘느재’가 어치(於峙)란 한자어로 바뀌었고, 한자가 없어진 지금은 그냥 ‘어치’이다. 본디 땅 이름과 마을 이름은 그 땅 생김새나 성격을 바탕으로 생겨나 오랫동안 우리 조상이 써 온 것이다. 그런데 불과 30여 년 사이에 땅 이름이 많이 바뀌었다.


교황이 방문할 음성 꽃동네 입구



최근 ‘도로명’이 채택되면서 또 옛 마을 이름들이 사라지거나 바뀌었다.

백성으로 하여금 우리말로 우리 것을 그대로 표기하게 하자는 것이 세종대왕의 한글이었다. 그러나 정작 땅의 모습과 성격을 담은 마을 이름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시골이야 그렇다지만 도시의 지명 변경은 아쉬움이 더 많다.

옛 경기고(지금의 정독도서관)는 ‘화동(花洞) 1번지’였다. ‘꽃동네 1번지’였다.

조선시대 화초를 재배하여 궁중에 납품하던 곳에서 유래한다.

문자 그대로 조선과 대한민국의 ‘꽃’을 키워낸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북촌로 5길 48’로 디지털화했다. ‘5길 48’에서 도대체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