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44곳의 풍수지리 조선왕조 518년간 '명당 왕릉'은 4곳 뿐 ▲ 사도세자 융릉 왕릉은 과연 명당인가? 왕릉은 당연히 명당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대 최고의 지관들이 자리를 잡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그러나 명당자리에 묘를 썼는데 왜 조선왕조가 망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혹자는 풍수지리가 원래부터 허황된 것으로 맞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만 뒤집어 보면 왕릉이 명당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역사는 왕권과 신권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왕들은 왕권을 강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에 신하들은 왕을 견제하고 신권을 강화시키려고 한다. 신하들 입장에서는 강력한 왕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런 신하들이라면 왕릉을 명당에 쓸 리 만무하다. 조선왕조의 왕릉은 모두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