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巨樹 保護樹 記念物/大邱 老巨樹 107

가창 오리 보호수

가창 오리 보호수 @ 탐방일 : 2020. 08. 13 오리(梧里) 오리는 가창면의 관문 역할을 하는 면 소재지 용계리에서 용계천을 따라 산 쪽으로 올라와 대구 시민의 상수원인 가창 댐 위쪽에 위치한 농촌 마을로, 오 1리와 오 2리의 두 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오리는 가창면에서 정대리 다음으로 두 번째로 인구수가 적은 법정리이며, 가창면 총 인구수의 3.7%밖에 되지 않는다. 오리는 동쪽으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냉천리·대일리, 남서쪽으로 정대리, 남동쪽으로 주리, 북쪽으로 대구광역시 달서구·남구와 인접해 있다. 오리의 자연 마을인 양달머구·양지·양달은 청룡산의 남서 비탈면을 등지고 있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며, 응달머구·음지·응달은 최정산과 주암산의 북서 비탈면을 등지고 있는 음지에..

최정산 운흥사 보호수

최정산 운흥사 보호수 @ 탐방일 : 202. 08. 13 운흥사 운흥사(雲興寺)는 신라흥덕왕(興德王)[826~836] 때 승려 운수가 창건하여 동림사(棟林寺)라 하였다고 구전되지만 관련된 기록은 없다. 창건 당시의 위치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고 산 정상부에 자리하였다고 한다. 절이 3개 군의 경계에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자 당시 주지가 절을 조용한 곳으로 옮기려고 하였더니 한 노인이 나타나 절 앞의 연못을 메우면 된다고 하였다. 이에 연못을 메우니 신도들이 하나도 오지 않아 절을 곡산(谷山)으로 옮겨 수암사(燧巖寺)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역시 신도가 없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절 이름을 운흥사로 바꿨더니 번창하였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사명 대사(四溟大師)가 운흥사에서 ..

남평문씨본리세거지와 보호수

남평문씨본리세거지(南平文氏本里世居地)와 보호수 @ 탐방일 : 2020. 08. 09 남평문씨본리세거지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총 규모 11,701㎡(3,546평)에 이른다. 18세기 초부터 남평문씨 일족이 들어와 터를 잡고 집성촌(集姓村)을 이루었던 곳이다. 1715년에 문재철(文在徹)이 이곳에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하며, 문익점의 18대손인 문경호가 터를 닦았다고도 한다. 이곳은 원래 절이 있던 명당터라 한다. 그 터에 남평문씨 일족이 들어온 후 정전법(井田法)에 따라 구획을 정리하고 터전과 도로를 반듯하게 열어 집을 짓고 세거하였다. 마을 앞으로는 천내천이 흐르고 있어 명당의 기본적인 요건인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춘 마을이다. 지금은 조선시대 말에 지은 아홉 ..

마비정 벽화마을과 노거수

마비정 벽화마을과 노거수 @ 탐방일 : 2020. 08. 09 마비정 벽화마을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마비정길 259 2012년 마비정 마을이 농촌 체험 마을 사업을 통해 벽화마을로 조성되었다 마을 전체가 60~70년대의 정겨운 농촌의 풍경을 토담과 벽담을 활용하여 벽화로 꾸며져 있으며, 국내 유일의 연리목+연리지 사랑나무와 국내 최고령 옻나무, 대나무 터널길, 이팝나무 터널길 등 자연과 호흡하며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마비정 벽화마을은 2013년 도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2015년 대한민국 경관 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SBS 런닝맨 촬영지로도 등장하였다. 노거수 느티나무(300살) 연리목(느티나무+돌배나무) 옻나무(대한민국 최고령) # 동영상 & 사진첩 주차장 마비정 벽화의 시작 비..

인흥서원과 왕버들

인흥서원(仁興書院)과 왕버들 @ 탐방일 : 2020. 08. 09(일) 仁興書院(인흥서원)]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730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7호 仁興書院(인흥서원)은 明心寶鑑(명심보감)'을 편저한 秋適(추적) 선생 외에도 秋篁(추황, 1198~1259), 秋濡(추유, 1345~1404), 秋水鏡(추수경, 1530~1660)을 배향한 서원이다. 인흥 서원은 얕은 산자락 아래 동향하여 자리잡았는데, 크게 3개의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인 인흥 서원과 외삼문인 崇奉門(숭봉문)을 축으로 구성된 강학 공간, 배면 우측으로 높게 대지를 조성한 후 내삼문인 追慕門(추모문)과 동서 축으로 사당인 文顯祠(문현사)로 구성된 제향 공간, 사당 우측에 토석 담장으로 일곽을 이룬 藏板閣(장판각..

고산서당과 보호수

고산서당 (孤山書堂) 과 보호수 @ 탐방일 : 2020. 08. 05 고산서당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 산 22 문화재자료 제15호 1984년 7월 25일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다. 고산서당은 앞쪽으로 남천(南川)과 고산 들녘이 바라다 보이는 성동 서원골 야산자락에 있으며, 정확한 건축연도는 알 수 없으나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가 이곳에서 강학한 바 있으므로 1500년대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뒤편에 퇴계와 우복 선생의 강학(講學)유허비(遺墟碑)와 아름드리 정자나 무가 있어 고산서당의 내력을 짐작할 수 있다 고산서당은 방형(方形) 토장(土檣)으로 둘려져 있고 건물구조는 납도리 위에 3량(樑)가구로 결조된 간결한 구조로 대량(大樑)은 만곡(..

현풍곽씨 십이정려각과 보호수

현풍곽씨 십이정려각과 보호수 @ 탐방일 : 2020. 08. 02 현풍곽씨 십이정려각 종목 :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9호 지정일 : 1995.05.12 소재지 : 대구 달성군 현풍면 지리 1348-2 시대 : 조선시대 현풍 곽씨 집안의 유교 도덕에 기본이 되는 삼강을 지킨 28인의 정려비로, 선조 31년(1598)부터 영조 때(재위 1567∼1608)까지 포상된 12명을 한 곳에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을 잘 지키면 이를 국가에서 포상하며 기리도록 하였다. 한 마을의 한 성씨(곽씨)에서 12명의 포상자가 나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서, 정려를 받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때 안음현감 곽준이 황석산성에서 두 ..

추보당 배롱나무 꽃

추보당 배롱나무 꽃 @ 탐방일 : 2020. 08. 02 추보당(追報堂) 소재지 : 대구 달성군 현풍면 대리 667-2번지 달성군 현풍읍 솔례마을은 예로부터 도덕과 절의를 숭상해 삼강의 도를 다하는 현풍 곽씨의 세거지다. 이곳에 자리잡은 현풍곽씨 종택인 포산고가(苞山古家) 추보당은 대구시 문화재 56호이다 추보당은 청백리 곽안방의 제청으로 솔예마을의 뒤편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곽안방의 자는 여주이고 본관은 포산이다. 시조 곽경의 12대손으로 한훤당 김굉필과 함께 점필재 김종직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좌익공신 원종이등훈에 녹선되었고 청백리로서 국승에 올랐다. 솔례마을 뒤편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본 당은 주변에 담장이나 출입문을 두지 않고 당으로 오르는 계단만..

서계서원 배롱나무

서계서원 배롱나무 @ 방문일 2020. 08. 01 서계서원 (西溪書院) 대구광역시 북구 무태조야동에 있는 서원 서계서원 (西溪書院)은 1781년(정조 5) 지방유림의 공의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이문화(李文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이문화는 호 오천(烏川), 자 백중(佰中)이다. 윤택(尹澤)에게 학문을 배웠고 권근, 이숭인 등과 교유하여 문장과 경학이 뛰어났다. 1380년 문과에 급제한 뒤 대사헌, 예조판서, 호조판서를 지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801년(순조 1) 이주(李輈)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그 뒤 점차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

삼가헌과 배롱나무 꽃

삼가헌과 배롱나무 꽃 # 탐방일 : 2020. 07. 26(일) $ 동영상 @ 삼가헌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 있는 조선후기 대문간채·사랑채·안채·별당·연못 등으로 구성된 주택. 국가민속문화재 104호이다. 이 집은 현 소유자의 6대조 박광석(朴光錫)이 1747년(영조 23)에 건축한 것이다.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좌향을 잡은 서사택(西四宅)의 하나로, 넓은 터에 대문간채·사랑채·안채·별당·연못을 배치하였다. 대문간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一자형 평면으로 곳간 2칸, 대문간 1칸, 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ㄱ자형 평면으로 사랑대청 4칸, 온돌방 2칸을 두었으며,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2칸의 온돌방에는 각기 골방이 있으며, 툇마루에 연하여서는 1칸의 청지기방이 있다. 사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