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의 적용와 희귀성 穴은 귀하다. 그리고 쓰임새가 각각 다르다 대전시 서구 원정동 동춘당 송준길이 1672년에 졸했다. 그는 학행으로 천거되어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고 일생을 종질이자 진외가 6촌인 우암 송시열과 학문적으로나 당파로나 궤를 같이한 인물이다. 영조 때 우암과 함께 문묘에 배향 되었고 사계 김장생의 제자로 예학에 밝고으며 학문적 깊이가 있는 분이었다. 그가 졸하자 초장지를 충남 연기군에 정했다가 이후 공주 등으로 이장을 했으며 그 후로도 서너번의 이장을 거쳐 최종적으로 아들 묘소 뒤인 이 자리에 안장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6천 7장 정도는 되는 것으로 보임) 어느 분이 이 자리를 조선 8대 명당이라고 인터넷에 버젓이 올려 놧던데 그 분은 정말로 이 자리를 그렇게 크게 보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