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풍수지리 94

하동정씨(河東鄭氏)

하동정씨(河東鄭氏) 신라 말 정치혼란 속 문벌 형성… 본관 같으나 시조 다른 3개파 있어하동정씨(河東鄭氏)는 ‘조선씨족통보’에 따르면 여섯 계통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하동정씨는 본관을 같이하면서 계통을 달리하는 3파가 있다. 첫째 계통은 신라 말기 하동호장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하는 밀직공파(密直公派)이다. 정도정은 신라 진성왕 때 하동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범할 때(923년, 경명왕 7년) 향병을 단련하여 하동성(河東城)을 지켰다. 그 뒤 고려로 통합될 때는 경순왕을 개성까지 호위하여 광평성평장사(廣評省平章事)에 올랐다. 하지만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문하시중을 지낸 정석숭(鄭碩崇)을 일세조로 삼고 있다. 하동정씨 밀직공파의 시조인 정도정의 단비. 정도정의 후손들은 ..

김해김씨(金海金氏)

김해김씨(金海金氏) 가야 수로왕이 시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씨 수로왕 금함서 나왔기때문 김씨로 써…알지왕 신라계 김씨보다 20여년 앞서 印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 왕비로 삼아…아들에 모후 성씨 내려 ‘동조동본이성’ 한국의 김(金)씨는 신라계(알지계)와 가야계(수로계)로 나뉜다. 김(金)씨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성씨(姓氏)이다. 2000년 주택인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21.6%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난해(2010년) 조사된 인구는 1072만명이다. 그중 신라계 김씨가 약 600만명이 넘고, 가야계인 김해김씨가 420만명(2000년 인구센서스에선 412만명)이다. 그 외 김씨 중에서 신라계도 가야계도 아닌 김씨가 있다. 이름하여 사성김해김씨다. 사성김해김씨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귀화..

경주이씨(慶州李氏)

경주이씨(慶州李氏) 인구 142만… 전주이씨 다음으로 많아… 합천·진주·원주 등 수많은 이씨 본산 문과급제자 178명… 공신 10여명 배출… 익재 이제현·백사 이항복 등 유명 인물… 성철 스님·이병철 전 회장도 같은 가문경주이씨는 시조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에서 유래하고 있다 . ‘삼국유사’에 따르면, 기원전 117년에 알평공이 하늘에서 신라의 영산(靈山) 중의 하나인 경주 서북에 있는 금강산(金剛山)의 표암봉(瓢巖峰)에 내려왔다고 전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에는 유리왕(儒理王) 9년 봄에 6부(部)의 이름을 고쳤는데, 양산부(楊山部)는 급량부(及梁部)(李氏)로, 고허부(高墟部)는 사량부(沙梁部)(崔氏)로, 대수부(大樹部)는 점량부(漸梁部)(孫氏)로, 우진부(于珍部)는 본피부(本彼部)(鄭氏)로..

인동장씨(仁同張氏)

인동장씨(仁同張氏) 고려 신호위상장군 장금용이 시조… 칠곡 인동서 뿌리내려 인동장씨(仁同張氏)는 지금의 칠곡지역의 인동을 관향으로 삼고 있는 씨족이다. 인동은 예전에 옥산으로 불렸기 때문에 옥산장씨로 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동장씨의 시조는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이다. 장금용의 아들인 장선(張善)도 고려 문종 때 금오위상장군을 지냈다. 인동장씨의 여헌(旅軒) 장현광은 그의 유록에서 장금용을 시조로 모시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고려 삼중대광 신호위상장군공(장금용)을 시조로 모시는 것은 그분이 선대를 알 수 있는 최초의 선조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조상은 몇 대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 조상이 이곳 인동(옥산) 땅에 거주하신..

양지바른 묏자리

양지바른 묏자리 볕만 잘 든다고 명당 아냐, 맥 이어받아야 명당 야트막한 산 아래나 중턱의 햇볕이 잘드는 자리를 보면 흔히 "양지 바르고 산이 험하지 않아 산소 쓰기에 딱 좋겠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조상을 모실때 생전 살았던 마을을 굽어볼 수 있는 마을 뒷산 양지바른 곳을 찾아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햇볕이 따뜻하게 잘 드는 곳은 맞지만, 낮은 구릉의 옆구리나 골짜기에 쓴 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은 명당이라는 단편적인 풍수사상이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마을 주변의 산들은 대체로 기운이 순조롭고 부드럽게 전해지기에 명당은 아니더라도 좋은 터를 찾기에 부족함이 없다. 반대로 산악이 험하고 높으면 에너지가 넘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큰 인물이 ..

다시 돌아보는 사찰과 명당

다시 돌아보는 사찰과 명당 해 하려는 기운 서린 땅 ‘대사찰의 몰락’ 불렀다 ▲ 발굴된 양주 회암사지- 1997년부터 지금까지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양주 회암사지는 왕궁의 구조를 인용한 건물지들이 옛 영화를 짐작케 한다. ■산 좋고 물 좋은 신륵사 아늑한 산들에 둘러싸여 명예·권력 모여 앞쪽에 휘둘러 흐르는 남한강 ‘금상첨화’ 아름다운 자연 어우러져 ‘천년고찰’ 명성 ■옛 영광만 남은 고달사지·회암사지 골짜기 안쪽에 잡은 터 “이해 못할 선택” 결국 유학자들의 숭유억불로 인해 ‘폐사’ 그나마 천보산 맥 받는 회암사 뒤늦게 빛 당대의 고승들이 터를 잡았으나 풍수의 기운을 따라 각각 흥망성쇠가 갈렸으니, 쓸쓸히 터만 남은 대사찰(大寺刹)의 옛 영화가 그립구나. 지난 2013년 3월 조광선생과 함께 풍수테..

해남 녹우당

해남 녹우당 비자나무 심어 해로운 기운 물리치다 산과 물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풍수, 선조들이 실증한 건강한 땅을 찾는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지금은 웰빙시대, 건강한 삶을 찾는 방편으로 우리의 이 전통 터 잡이 문화를 취해봄은 어떨까. 녹우당은 해남 윤씨 종가다. 5 00년 내력을 가진 고택. 고산 윤선도의 4대조인 어초은 윤효정이 16세기 초 강진에서 이사를 오면서 터를 잡은 곳이라 전한다. 녹우당은 이 고택의 사랑채에 걸려있는 현판이다. 이 사랑채는 스승이었던 고산에게 효종이 하사한 것이라 한다. 수원에 있던 것을 고산이 낙향할 때 일부를 옮겨와 다시 지었다. 원래는 사랑채의 이름이었으나 지금은 종가 전체를 아우른다. 고산 유적지로 잘 알려져 있으며, 땅끝 마을로 가는 길목인 해남읍 연동마을에 ..

아산 맹씨행단

아산 맹씨행단 북쪽 향해 앉은 살림집 명당 ▨ 맹씨행단=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에 있는 조선 초 명정승 고불 맹사성의 옛집. 원래 고려 말 최영이 살던 집이었으나 위화도회군으로 비어있던 중, 고불의 부친인 맹희도가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은거하였다 한다. 고불은 최영의 손자사위이기도 하다. 집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공(工)자형 맞배지붕이다. 건평은 90.72㎡(27.5평).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주택이라 전해진다. 뜰엔 고불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600여년의 은행나무 2그루가 마주 서 있으며, 이 은행나무 아래서 강학을 하였다 하여 맹씨행단(孟氏杏壇)이라 불린다. 이 고택과 집 뒤에 위치한 구괴정(九槐亭),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묶어 ‘아산맹씨행단’이라 한다. 사적 제109호다. 땅은 살..

전의 이씨 '구암사적'

전의 이씨 '구암사적' 철길까지 비켜간 '개바위'의 위세 ▨ 구암사적= 전의 이씨 시조인 태사공 휘 도(全義李太師公諱棹)의 묘소는 풍수학설상 복호형(伏虎形)이라 한다. 이 묘소로부터 동북쪽으로 500m쯤에 어미개가 새끼를 거느린 형상의 바위들이 있는데 이를 구암(狗岩)이라 한다. 이는 호랑이의 먹이가 되는 명당필수의 개바위이며, 우리 자손이 소중히 여겨왔다. 1902년 경부선 철도 부설 당시와 1990년 탄약창 철도 부설 당시 전 문중이 한뜻으로 파괴의 위험으로부터 구출해 보전하는 등 우리 전의 이씨가 영원히 후세에 전하는 유적이다. 경오년(庚午年) 6월 전의 이씨 화수회 본부. 충남 연기군 전의면 유천리 마을 앞으론 1번 국도와 경부선 철도, 그리고 인근 군부대로 들어가는 철로가 지난다. 경부선 철길과..

구례 운조루

구례 운조루 ▨ 운조루= 1776년 조선 영조 때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가 세운 집. 원래 99간의 대저택이었으나 지금은 60여 간이 남아있다. 운조루의 택호(宅號)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으로,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왔다고 한다. 행정구역명으론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이며, 중요민속자료 제8호다. 인근에 한국풍수의 비조인 도선국사가 이인(異人)으로부터 풍수의 이치를 가르침 받았다는 사도리(沙圖里)가 있다. 금구몰니(金龜沒泥), 금환낙지(金環落地), 오보교취(五寶交聚). 비기(秘記)에 전하는 전남 구례의 오미리에 있다는 3개의 명당이다. 이중 금구몰니형 명당은 운조루(雲鳥樓) 터로 알려져 있다. 류씨 집안이 이 터를 잡을 때 거북형상의 큰 돌이 나왔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