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풍수지리

아산 맹씨행단

초암 정만순 2021. 2. 1. 14:13

아산 맹씨행단

 

 

북쪽 향해 앉은 살림집 명당

 

▨ 맹씨행단=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에 있는 조선 초 명정승 고불 맹사성의 옛집.

원래 고려 말 최영이 살던 집이었으나 위화도회군으로 비어있던 중, 고불의 부친인 맹희도가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은거하였다 한다.

고불은 최영의 손자사위이기도 하다.

집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공(工)자형 맞배지붕이다.

건평은 90.72㎡(27.5평).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주택이라 전해진다.

뜰엔 고불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600여년의 은행나무 2그루가 마주 서 있으며, 이 은행나무 아래서 강학을 하였다 하여 맹씨행단(孟氏杏壇)이라 불린다.

이 고택과 집 뒤에 위치한 구괴정(九槐亭),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묶어 ‘아산맹씨행단’이라 한다.

사적 제109호다.

 

 

  

 

  

 

 

땅은 살아있다. 넉넉하게 모든 것을 품는다.

그게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개의치 않는다.

그렇지만 주어지는 쓰임새는 다르다.

주택지로, 정자 터로, 어떤 곳은 동물들의 쉼터가 된다.

주택지로 주어진 곳에 지은 집은 오래 간다.

그 땅의 정기가 그 집에 온전히 흡수되기 때문이다.

풍수를 강조하고자함이 아니라 500, 600년의 내력을 지닌 고택에서 실증된다.

그밖에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랴.

 

집의 좌향은 지세(地勢)가 제1요건이 된다.

곧 자연에 대한 순응이다.

지세에 따른 집은 자연히 배산임수(背山臨水)가 된다.

뒤론 산을 등지고 앞엔 물을 마주한다.

풍수이론에 접목시키자면 뒤의 산은 생기(生氣)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앞의 물은 그 생기가 새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보면 북향집도 무리가 없다.

당연히 명당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필수조건이 있다.

뒤가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햇볕과 바람을 고려함이다.

북향에 뒤마저 높게 되면 1년 내내 햇볕보기 힘들다.

생기품은 바람맞이도 기대난이다.

응달엔 명당이 형성되지 않는다.

음과 양의 조화가 깨진 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서 북향집 명가로 두 곳을 꼽는다.

하나는 이곳 맹씨행단이요, 다른 한 곳은 전북 부안에 있는 인촌 김성수 생가다.

두 곳 모두 뒤가 낮다.

그리고 공(工)자형의 건물 형태를 취한다.

햇볕과 바람을 맞이하기에 유리한 건물구조다.

 

명당의 골격은 천연적으로 이뤄진다.

나머지 약간의 모자람이나 넘침은 비보풍수의 몫이다.

이 맹씨행단을 중심으로 오른쪽을 보라.

도톰하니 둔덕을 이루고 있다.

둔덕너머엔 들판이다.

들판은 야생이다.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이 둔덕은 이 곳을 주택지로 만드는 천연의 담장이 된다.

이 둔덕이 없었다면 이곳은 산토끼가 뛰노는 평범한 산자락에 그쳤을 게다.

 

고택 뒤 언덕에 구괴정이 자리한다.

그 옛날 고불과 황희, 권진 등 세분의 정승이 함께 아홉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 국사(國事)를 논했다는 유서 깊은 정자다.

이곳은 오른쪽의 산 능선과 왼쪽의 고택능선 사이에 자리한다.

앞은 확 트인 들판이다. 바람길이다.

살림집 입지론 최악이다.

정자 터로 자리매김했기에 수백 년을 저렇듯 당당하게 버티고 있을 수 있었을 게다.

 

고택 청룡어깨자락엔 채석장이 흉물스런 몰골로 마을을 넘겨다보고 있다.

행단 뒤쪽 밭에서 쑥을 캐던 마을 아주머니의 한숨 섞인 하소연이 귀에 맴돈다.

‘저 채석장이 생긴 이후로 교통사고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들이 마을 젊은이들에게 참으로 많이 일어났지요.’

산사태만 나도 이금치사(以金致死)라 했는데, 하나의 산 능선이 저렇게 뭉개졌으니…. 마음을 짓누른다. 인간의 욕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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