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 이씨 '구암사적'
철길까지 비켜간 '개바위'의 위세
▨ 구암사적=
전의 이씨 시조인 태사공 휘 도(全義李太師公諱棹)의 묘소는 풍수학설상 복호형(伏虎形)이라 한다. 이 묘소로부터 동북쪽으로 500m쯤에 어미개가 새끼를 거느린 형상의 바위들이 있는데 이를 구암(狗岩)이라 한다. 이는 호랑이의 먹이가 되는 명당필수의 개바위이며, 우리 자손이 소중히 여겨왔다. 1902년 경부선 철도 부설 당시와 1990년 탄약창 철도 부설 당시 전 문중이 한뜻으로 파괴의 위험으로부터 구출해 보전하는 등 우리 전의 이씨가 영원히 후세에 전하는 유적이다. 경오년(庚午年) 6월 전의 이씨 화수회 본부.
충남 연기군 전의면 유천리 마을 앞으론 1번 국도와 경부선 철도, 그리고 인근 군부대로 들어가는 철로가 지난다.
경부선 철길과 군부대 철길 사이엔 한그루의 나무가 서 있고, 그 아래엔 큰 바위 하나와 몇개의 작은 바위들이 놓여 있다.
큰 바위는 어미 개를 닮았고, 작은 바위들은 어미 개 곁에서 노는 강아지를 닮았다.
그 옆엔 표석 두개가 있다.
하나는 ‘구암(狗岩)’이라 적혔고, 다른 하나엔 ‘구암사적(狗岩事蹟)’이라 적혀있다.
이 바위들을 피해 철길도 크게 휘어져 있다.
왜 철길이 저렇게 휘어지게 되었을까.
표석에 나타나듯 원인은 인근에 있는 전의 이씨 시조인 태사공 이도의 묘 때문이다.
풍수이론에 형국론(形局論)이란 게 있다.
산의 모양을 사람이나 동·식물, 문자 등에 비유해 집터나 묘지 터를 찾는 이론이다.
풍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니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이니 하는 말들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금계포란형이란 말 그대로 지형이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닭의 형상인 만큼 그 땅엔 닭의 기운이 있다고 본다.
장군대좌형은 장군이 자리에 버티고 앉은 자세다.
따라서 장군의 기가 서려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에는 세트와 같이 붙어 다니는 것이 있다.
금계포란형엔 알같이 생긴 바위나 언덕이 앞에 있어야 한다.
장군대좌형엔 장수에게 필요한 깃발이나 북, 병졸로 볼 수 있는 산이나 바위가 주위에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호랑이 형국엔 그 먹이가 되는 개나 소, 말 등을 닮은 언덕이나 바위가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다고 본다.
즉 재앙을 불러온다는 얘기다.
전의 이씨 시조묘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의 명당이다.
반드시 안산에 먹잇감이 있어야 한다. 그 먹잇감이 이 개바위가 된다.
천안시 북면 은지리 은석산 정상엔 어사 박문수 묘가 있다. 이 묘가 장군대좌형이다.
그런데 이 묘 주위엔 병졸이라 내세울 만한 특별한 지형이 없다.
병사를 거느리지 못한 장군, 아무런 위력을 갖지 못한 장군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발복은 기대난이다.
이 묘 아래 산자락엔 유명한 아우내 장터가 있다.
3·1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그곳이다.
요즘엔 병천순대로 널리 알려진, 연중 사람들이 북적대는 유서 깊은 장터다.
그런데 이 장터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풍수에 닿는다.
풍수로 인해, 정확히 말해 박문수 묘로 인해 개설된 시장이다.
병졸 없는 장수인 박문수 묘는 어떻게 해서든 병졸을 모아야 했다.
그래야 싸움에 이길 수 있다.
그래야 발복이 된다.
이렇게 해서 개설된 것이 이 병천시장이다.
시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병졸이 된다.
요즈음 줄을 이어 다니는 자동차는 병사를 실어 나르는 트럭쯤으로 봐도 되겠다.
장군의 입장에선 대군을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만물엔 저마다의 기(氣)가 있으며, 그 기가 산세로 나타난다고 보는 게 형국론이다.
살아있는 땅, 그 땅의 용도를 찾아주는 풍수는 환경을 중시하는 전통 터잡이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