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녹우당
비자나무 심어 해로운 기운 물리치다
산과 물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풍수, 선조들이 실증한 건강한 땅을 찾는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지금은 웰빙시대, 건강한 삶을 찾는 방편으로 우리의 이 전통 터 잡이 문화를 취해봄은 어떨까.
녹우당은 해남 윤씨 종가다. 5
00년 내력을 가진 고택. 고산 윤선도의 4대조인 어초은 윤효정이 16세기 초 강진에서 이사를 오면서 터를 잡은 곳이라 전한다.
녹우당은 이 고택의 사랑채에 걸려있는 현판이다.
이 사랑채는 스승이었던 고산에게 효종이 하사한 것이라 한다.
수원에 있던 것을 고산이 낙향할 때 일부를 옮겨와 다시 지었다.
원래는 사랑채의 이름이었으나 지금은 종가 전체를 아우른다.
고산 유적지로 잘 알려져 있으며, 땅끝 마을로 가는 길목인 해남읍 연동마을에 있다.
녹우당(綠雨堂), '푸른 비가 내리는 집' 참으로 시적인 분위기다.
이 집을 거쳐 간 고산이나 그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의 문학적·예술적 혼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유를 살펴보면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녹우당 뒷산인 덕음산 중턱엔 500년이나 된 비자나무숲이 있다.
목책을 둘러친 산길을 따라 걸으면 제법 운치가 날 법도 하지만 여유를 부리며 걷기엔 그리 만만한 길은 아니다.
이 숲 속엔 험상궂은 바위들이 살기품은 호랑이처럼 웅크리고 있다.
이 살기를 차단하는 역할, 즉 염승(厭勝)의 역할을 하도록 조성된 게 이 숲이다.
녹우당은 비자나무 잎들이 바람에 부대끼며 내는 소리가 빗소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녹우당 앞 들판은 넓다.
그래서 장원이란 말이 따라붙는다. 그것도 '녹색의 장원'이다.
녹색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닌가.
사신사내의 국세는 웬만한 면소재지 하나는 들어가고도 남을 만하다.
그만큼 넓다. 녹우당이 위치한 곳은 기가 응집되어 약간 도톰한 부분이다.
따라서 넓은 명당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기에 다소 불리한 측면이 있다.
이게 초입에 소나무 동산을 조성한 이유가 된다.
모자람을 채우는 것, 즉 비보(裨補)다.
100% 완벽한 땅은 없다. 때론 모자람을 채우고 때론 넘침을 덜어내야 한다.
녹우당은 서향이다. 지세를 따르자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서향은 햇볕이나 바람에 취약하다.
그래서 앞을 담으로 막았다.
겨울 찬 서풍을 막고, 숙살지기인 저녁햇살을 막았다.
대신 건물의 왼쪽인 남쪽을 텄다.
서향에 남쪽 대문은 생기가 넘치는 집이다. 자연스레 자연과 건물이 일치가 된다.
녹우당을 굽어보고 있는 주산은 완벽하진 않지만 일자문성 형태다.
산 정상이 일자(一字)인 산을 풍수에선 극히 귀하게 본다.
내려오는 맥도 산의 중심에서 나온 귀한 중출맥이다.
청룡과 백호도 바람막이 역할에 충실하다.
안산도 노적가리 형태다. 노적가리는 곧 재물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이만한 풍수적 길지도 드물다.
터를 고름에 있어서 인간은 객체가 돼야 한다.
그게 집터든 묘지든 같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시각, 자연에 신세진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탈이 없다. 그래야 땅도 우리에게 감응을 한다. 땅은 거짓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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