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한시 한마당

선시 모음

초암 정만순 2016. 9. 17. 10:21


선시 모음


 

1. 한산시(1)

 

한산은 깊어 내 마음이네

(寒山深 稱我心/한산심 칭아심)

 

寒山深(한산심) 稱我心(칭아심)

純白石(순백석) 勿黃金(물황금)

泉聲響(천성향) 撫伯琴(무백금)

有子期(유자기) 辨此音(변차음)

 

내 마음은 한산(寒山)

황금보다도 흰 돌이 더 아름답네

청아한 샘물소리 백아(伯牙)의 거문고에 실으면

종자기(鍾子期)가 그 소리를 안다네

 

 

한산시(2)

 

바위에 앉으니 안개와 구름이 걷히네

今日巖前坐(금일암전좌)

坐久煙雲收(좌구연운수)

一道淸溪冷(일도청계냉)

千尋碧嶂頭(천심벽장두)

白雲朝影靜(백운조영정)

明月夜光浮(명월야광부)

身上無塵垢(신상무진구)

心中那更憂(심중나갱우)

 

 

바위에 앉으니 안개와 구름이 걷히네

오늘은 바위에 앉아

오래도록 좌선하니

안개와 구름이 다 걷히네.

한 줄기 깨끗하고 찬 시냇물

천 길 푸른 산꼭대기에서 내리네.

아침에는 흰 구름 그림자 고요하고

밤에는 밝은 달빛이 떠 있네.

몸에 더러운 때가 없는데

마음엔들 어찌 근심이 있으리오.

 

 

 

詠花 -(꽃을 노래함)

 

花開滿樹紅 (화개만수홍)

花落萬枝空 (화락만지공)

唯餘一朶在 (유여일타재)

明日定隨風 (명일정수풍)

花開滿樹紅 (화개만수홍)

花落萬枝空 (화락만지공)

唯餘一朶在 (유여일타재)

明日定隨風 (명일정수풍)

 

 

 

知玄後覺 禪師 ( 지현후각 선사)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返景入深林(반경입심림)

復照靑苔上(부조청태상)

 

텅 빈 산,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란도란 사람소리

석양빛이 숲속 깊숙이 들어와

다시금 푸른 이끼 위에 비치네. -

 

(전당시 1책 권126, 왕우승집)

왕유의 선시 녹시(鹿柴)

사슴이 노는 골짜기(鹿柴/녹시)

 

5. 왕유

 

비내리는 가을밤 홀로 선정에 들다(秋夜獨坐)

백발은 끝내 다시 검게 변하기 어렵고

붉은 모래로는 황금을 만들 수가 없네

 

 

獨坐悲雙?(독좌비쌍빈)

空堂欲二更(공당욕이경)

雨中山果落(우중산과락)

燈下草蟲鳴(등하초충명)

白髮終難變(백발종난변)

黃金不可成(황금불가성)

欲知除老病(욕지제로병)

惟有學無生(유유학무생)

 

홀로 앉아 희끗희끗한 양 귀밑털을 슬퍼하노라니

텅 빈 마루에 어느덧 야밤 이경이 되어 오네.

산중엔 비 내리는 가운데 산과실 떨어지고

등잔 밑에선 가을 풀벌레 구슬피우네.

백발은 끝내 다시 검게 변하기 어렵고

단사(丹砂)로 황금을 만들어 낼 수 없네.

생로병사 고통을 제거하는 이치를 터득코자 한다면

오직 불생불멸의 불도를 배우는 길뿐이네. - < 왕유 >

 

 

5. 27 선시

대도는 문이 없다.

길은 어디에나 있다

이 관문을 뚫고 나가면

온 천하를 당당히 걸으리라.

 

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 - 無門關

 

5. 27 선시

오도송(悟道頌)

 

身是菩提樹(신시보리수)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

時時勤拂拭(시시근불식)

莫使有塵埃(막사유진애) <돈황본 육조법보단경에서>

 

이 몸은 보리수(깨달음의 나무)이고

내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번뇌가 끼지 않게 하세.”- 신수 대사

 

5. 28 선시

 

혜능 (慧能)의 오도송(悟道頌)(1)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明鏡亦無臺(명경역무대)

佛性常淸淨(불성상청정)

何處有塵埃(하처유진애)

 

깨달음은 본래 형상이 있는

보리수나무와 같은 것이 아니며

밝은 마음(거울) 또한

경대(鏡臺)와 같은 실제 모양이 없네.

본래마음인 불성은 항상 청정한데

어디에 티끌(번뇌)이 있으리오./ <돈황본 육조법보단경>

 

9.

5. 30 선시

향적사를 찾아서(過香積寺)

不知香積寺(부지향적사)

數里入雲峰(수리입운봉)

古木無人徑(고목무인경)

深化何處鍾(심화하처종)

泉聲咽危石(천성인위석)

日色冷靑松 (일색냉청송)

薄暮空潭曲(박모공담곡)

安禪制毒龍(안선제독룡)

 

(전당시 1책 권126)

향적사 어디쯤인지 몰라

얼마나 산등성이 지나 구름 속을 헤매였나.

고목만 즐비하고 사람 다니는 길조차 없는데

깊은 산속 어디에선가 은은히 범종소리 들려오네.

산골짝 물소리는 기암괴석 사이에서 흐느끼고

푸른 소나무 빛에 햇빛도 푸르네.

선승(禪僧)은 해지는 저녁 텅 빈 물가에 고요히 앉아

좌선하며 마음의 번뇌를 다스리네. - << 왕유 >>

 

10.

 

5. 31 선시

 

 

비내리는 가을밤 홀로 선정에 들다(秋夜獨坐)

獨坐悲雙鬢(독좌비쌍빈)

空堂欲二更(공당욕이경)

雨中山果落(우중산과락)

燈下草蟲鳴(등하초충명)

白髮終難變(백발종난변)

黃金不可成(황금불가성)

欲知除老病(욕지제로병)

惟有學無生(유유학무생)

 

홀로 앉아 희끗희끗한 양 귀밑털을 슬퍼하노라니

텅 빈 마루에 어느덧 야밤 이경이 되어 오네.

산중엔 비 내리는 가운데 산과실 떨어지고

등잔 밑에선 가을 풀벌레 구슬피우네.

백발은 끝내 다시 검게 변하기 어렵고

단사(丹砂)로 황금을 만들어 낼 수 없네.

생로병사 고통을 제거하는 이치를 터득코자 한다면

오직 불생불멸의 불도를 배우는 길뿐이네. - <<왕유>>

 

 

6. 1 선시

 

임종게(臨終偈)白雲和尙(백운화상)

 

人生七十歲 (인생칠십세) 古來亦希有 (고래역희유)

七十七年來 (칠십칠년래) 七十七年去 (칠십칠년거)

處處皆歸路 (처처개귀로) 頭頭是故鄕 (두두시고향)

何須理舟楫 (하수리주즙) 特地欲歸鄕 (특지욕귀향)

我身本不有 (아신본불유) 心亦無所住 (심역무소주)

作灰散四方 (작회산사방) 勿占檀那地 (물점단나지)

 

사람이 칠십을 사는 것 예로부터 드문 일

이른 일곱 해를 살아가다가 이른 일곱 해 만에 떠나니

곳곳이 모두 내 돌아갈 길 낱낱이 바로 내 고향이로다

상여를 만들지 말게 이대로 떠나려네

이 몸 본래 없었고 마음 또한 머문 곳 없었으니

태워서 흩어버리고 남의 땅에 묻지 말게

 

1299(충렬왕 25)1374(공민왕 23). 고려 후기 선사(禪師).

 

 

6. 2 선시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자지

마음 한 번 쉬어지니 모든 일에 한가롭네.

시비를 들이대며 내게 따지지 말게나.

뜬세상의 사람 일을 간섭하지 않노라.

 

飢來喫食困來眠(기래끽식곤래면)

一種平懷萬境閑(일종평회만경한)

莫把是非來辨我(막파시비래변아)

浮生人事不相干(부생인사불상간)

 

백운경한(白雲景閑, 1298~1374)

6.3 선시

못에 담긴 물이 정이 없다하지 말게나.

그 본성은 원래 하나의 맑음뿐이라네.

고요한 달밤이 가장 좋나니

창 너머 때로 마음 씻기는 소리 들려온다네.

 

休言潭水本無情(휴언담수본무정)

厥性由來得一淸(궐성유래득일청)

最愛寥寥明月夜(최애요요명월야)

隔窓時送洗心聲(격창시송세심성)

 

 

무용수연(無用秀演1651~1719) 스님

 

 

 

 

6. 4 선시

 

산새가 물가에서 울고 있는데(鳥鳴澗)

 

할 일을 다 마친 사람 한가로운 데, 계수나무 꽃 떨어지고

밤은 고요하고 봄 산은 텅 비었네.

밝은 달이 중천(中天)에 떠오르자 산새는 놀라서

봄 물가에서 우짖고 있네. - < 왕유 >

 

 

人閑桂花落(인한계화락)

夜靜春山空(야정춘산공)

月出驚山鳥(월출경산조)

時鳴春澗中(시명춘간중)

 

6. 5 선시

 

지난날 매우 어렵게 고생하며

밤마다 다른 사람의 보물만 세었네.

오늘 곰곰이 생각하여

스스로 내 살림을 꾸리기로 하였네.

하나의 보물을 캐내어 보니

깨끗한 수정(水精)구슬이었네.

푸른 눈동자의 달마대사가 있어

은밀히 그것을 사가려고 하네.

나는 그에게 말했네.

이 구슬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라고.

 

- < 한산시 >

 

석일극빈고(昔日極貧苦)

야야수타보(夜夜數他寶)

금일심사량(今日審思量)

자가수영조(自家須營造)

굴득일보장(掘得一寶藏)

순시수정주(純是水精珠)

대유벽안호(大有碧眼胡)

밀의매장거(密擬買將去)

여즉보거언(余卽報渠言)

차주무가수(此珠無價數)

 

 

6. 5 선시

 

 

廬山煙雨(여산연우)

 

 

 

廬山煙雨浙江潮(여산연우절강조)

未到千般恨不消(미도천반한불소)

到得還來無別事(도득환래무별사)

廬山煙雨浙江潮(여산연우절강조)

 

여산의 안개비, 절강의 용출하는 조수(潮水)

천하의 절경을 보지 못할 땐 온갖 한이 남더니만

실제로 와서 보고 나니 별 것 아닐세 그려

여산의 안개비, 절강의 용출(湧出)하는 조수

 

蘇東坡(소동파 1036-1101)

 

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遠近高低各不同(원근고저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가로로 보면 첩첩이 산등성이고,

옆으로 보면 뾰쪽한 봉우리인데

멀거나 가깝게,

높거나 낮게 보아도 제각기 다른 모습이네.

여산의 참모습을 바로 보지 못한 것은

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네.

 

 

 

 

6.7 선시

 

석일극빈고(昔日極貧苦)

야야수타보(夜夜數他寶)

금일심사량(今日審思量)

자가수영조(自家須營造)

굴득일보장(掘得一寶藏)

순시수정주(純是水精珠)

대유벽안호(大有碧眼胡)

밀의매장거(密擬買將去)

여즉보거언(余卽報渠言)

차주무가수(此珠無價數)

 

지난날 매우 어렵게 고생하며

밤마다 다른 사람의 보물만 세었네.

오늘 곰곰이 생각하여

스스로 내 살림을 꾸리기로 하였네.

하나의 보물을 캐내어 보니

깨끗한 수정(水精)구슬이었네.

푸른 눈동자의 달마대사가 있어

은밀히 그것을 사가려고 하네.

나는 그에게 말했네

이 구슬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라고.

 

- <<한산시>>

 

 

6. 8 선시

 

비내리는 가을밤 홀로 선정에 들다(秋夜獨坐)

獨坐悲雙鬢(독좌비쌍빈)

空堂欲二更(공당욕이경)

雨中山果落(우중산과락)

燈下草蟲鳴(등하초충명)

白髮終難變(백발종난변)

黃金不可成(황금불가성)

欲知除老病(욕지제로병)

惟有學無生(유유학무생)

 

홀로 앉아 희끗희끗한 양 귀밑털을 슬퍼하노라니

텅 빈 마루에 어느덧 야밤 이경이 되어 오네.

산중엔 비 내리는 가운데 산과실 떨어지고

등잔 밑에선 가을 풀벌레 구슬피우네.

백발은 끝내 다시 검게 변하기 어렵고

단사(丹砂)로 황금을 만들어 낼 수 없네.

생로병사 고통을 제거하는 이치를 터득코자 한다면

오직 불생불멸의 불도를 배우는 길뿐이네. << 왕유 >>

 

산새가 물가에서 울고 있는데(鳥鳴澗)

 

人閑桂花落(인한계화락)

夜靜春山空(야정춘산공)

月出驚山鳥(월출경산조)

時鳴春澗中(시명춘간중)

 

할 일을 다 마친 사람 한가로운 데, 계수나무 꽃 떨어지고

밤은 고요하고 봄 산은 텅 비었네.

밝은 달이 중천(中天)에 떠오르자 산새는 놀라서

봄 물가에서 우짖고 있네.

 

 

 

6.8 선시

 

분노는 마음속의 불(瞋是心中火)

瞋是心中火(진시심중화)

能燒功德林(능소공덕림)

欲行菩薩道(욕행보살도)

忍辱誰直心(인욕수직심)

분노는 마음속의 불

공덕의 숲을 살라버린다네.

보살의 길을 가려고 하거든

인욕하는 생활과 곧은 마음을 지녀야 하네. - (寒山 - 107)

 

宿昔朱顔成暮齒(숙석주안성모치)

須臾白髮變垂髫(수유백발변수초)

一生幾許傷心事(일생기허상심사)

不向空門何處銷(불향공문하처소)

 

홍안의 미소년이 늙은이 되어

어릴 적 다박머리가 순식간에 백발이 되었구나.

일생 동안 가슴 아팠던 일 그 얼마였던가

부처님께 귀의하지 않았다면 어디서 위안을 받았을꼬.

 

 

금불부도로(金佛不度爐)하고

쇠로 만든 부처는 화로를 건너지 못하고

목불부도화(木佛不度火)하고

나무로 만든 부처는 불을 건너지 못하고

니불부도수(泥佛不度水)하나

진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하지만

진불내리좌(眞佛內裏座)로다

참다운 부처는 속 안에 앉아 있구나

 

금강경오가해 - 벽암록(조주)

 

 

 

 

17.

6. 9 선시

祖意明明百草頭 (조의명명백초두)

草頭直下好開眸 (초두직하호개모)

韶陽三昧何須問 (소양삼매하수문)

體露金風滿月秋 (체로금풍만월추)

 

조사의 뜻은 분명하게 온갖 풀 머리에 있나니

풀 머리에 곧바로 눈을 뜰 시절이 있네

운문의 삼매를 물을 것이 있는가

당체가 금풍을 드러내니 만월의 가을이여

 

-진각혜심(1178-1233) 무의자선집,

 

祖意明明百草頭 (조의명명백초두)

春林花發鳥聲幽 (춘림화발조성유)

朝來雨過山如洗 (조래우과산여세)

紅白枝枝露未收 (홍백지지로미수)

 

온갖 풀끝마다 조사의 뜻 분명한데

봄이 온 숲에는 꽃이 피고 새소리 또한 그윽하다.

아침에 비가 내려 산은 씻은 듯하고

희고 붉은 가지마다 이슬이 맺혀있다.

-감산덕청대사(1546-1623)

 

19. 한산시(6)

분노는 마음속의 불(瞋是心中火)

기사제공 :

瞋是心中火(진시심중화)

能燒功德林(능소공덕림)

欲行菩薩道(욕행보살도)

忍辱誰直心(인욕수직심)

분노는 마음속의 불

공덕의 숲을 살라버린다네.

보살의 길을 가려고 하거든

인욕하는 생활과 곧은 마음을 지녀야 하네.

 

20.

海底泥牛含月珠 (해저니우함월주)

巖前石虎抱兒眠(암전석호포아면)

鐵蛇鑽入金剛眼(철사찬입금강안)

崑崙騎象鷺鷥牽(곤륜기상로사견)

 

바다 밑에 진흙 소가 달을 물고 달아나고

바위 앞의 돌 호랑이 새끼를 안고 졸고 있네.

쇠로된 뱀이 금강의 눈을 뚫고 들어가는데

코끼리를 탄 곤륜을 해오라기가 끌고 가는구나.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

 

 

 

6.10 선시

콧구멍 없는 소

어떤 사람이 콧구멍이 없다고 하는 말을 홀연히 듣고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인 줄 몰록 깨달았네.

유월의 연암산 아래 길에서

야인들이 하릴없이 태평가를 부르도다.

 

忽聞人語無鼻孔 頓覺三千是吾家

홀문인어무비공 돈각삼천시오가

六月燕岩山下路 野人無事泰平歌

유월연암산하로 야인무사태평가

- 경허 성우(鏡虛惺牛)

6.10 선시

 

무쇠소鐵牛

 

但自無心於萬物 (단자무심어만물)

何妨萬物常圍繞 (하방만물상위요)

鐵牛不怕獅子吼 (철우불파사자후)

恰似木人見花鳥 (흡사목인견화조)

木人本體自無情 (목인본체자무정)

花鳥逢人亦不驚 (화조봉인역불경)

心境如如只遮是 (심경여여지차시)

何處菩提道不成 (하처보리도불성)

 

다만 온갖 만물에 무심하다면

만물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 무엇이 방해가 되겠는가.

쇠로 만든 소가 사자의 포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고,

나무로 만든 사람이 꽃을 보고 새를 보는 것과 꼭 같네.

나무로 만든 사람은 본래 자체에 마음이 없으며

꽃과 새도 나무로 만든 사람을 만나도 놀라지 않는다.

마음과 경계가 여여하면 다만 이러할 뿐인데

깨달음 이루지 못한 것을 무엇 대문에 염려하겠는가.

 

- 방거사(龐居士)

6. 11 선시

 

七十餘年游夢宅

幻身幻養未安寧

今朝脫却歸圓寂

古佛堂前覺月明

 

칠십여 년을 꿈속에 살면서

환영의 몸을 환영으로 가꾸느라 편치 못했네.

오늘아침에 벗어 내던지고 고요한 곳으로 돌아가니

옛 부처의 집 앞에 마음 달이 밝아라. - < 任性 선사 > -

 

24 한가로이 산림에 누워

 

閑臥山林萬事竟

何須浮生强求名

杜鵑啼歇三更夜

但愛溪聲與月明

 

한가로이 산림에 누워 세상일 다 잊었는데

부생이 무엇 때문에 억지로 명리를 구하는가.

두견새도 잠이 든 삼경의 깊은 밤에

시냇물 소리와 밝은 달을 좋아할 뿐이네. - 太古普愚 -

 

 

 

 

 

 

6. 12 선시

 

모든 현묘한 이론을 다 갖추고 있어도

그것은 마치 넓은 허공에 터럭 한 오라기를 날리는 것과 같고, 세상에서 가장 높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마치 큰 웅덩이에 물 한 방울 던지는 것과 같다.

 

 

窮諸玄辯 (궁제현변)

若一毫置於太虛 (약일호치어태허)

竭世樞機 (갈세추기)

似一滴投於巨壑 (사일적투어거학) - 德山 -

 

訪舊懷論實可傷

經年獨臥涅槃堂

門無過客窓無紙

爐有寒灰席有霜

病後始知身自苦

健時多爲別人忙

老僧自有安閑法

八苦交煎總不妨 - 굉지(宏智) -

 

 

벗을 찾아 깊은 얘기 나누다 보니 실로 마음이 아프도다.

몇 해가 지나도록 홀로 열반당에 누워있네.

문 앞에는 지나가는 나그네 없고 창문에는 종이마저 떨어졌네.

화로엔 차가운 재만 있고 앉을 자리에는 서리가 끼어있네.

병이 든 후에야 이 몸이 고인 것을 비로소 아나니

건강할 때 열심히 남을 위해 도우라.

노승은 스스로 편안한 도리가 있어서

여덟 가지 고통이 옥죄어 와도 전혀 방해롭지 않네.

 

6. 13 선시

 

학은 세번 울며 날아 가네

십 년을 단정히 앉아 마음의 성을 굳게 지키니

깊은 숲의 새는 길들여져 놀라지도 않는구나.

어젯밤 松潭(송담)에 비바람이 사납더니

고기는 연못 귀퉁이에 모여 있고 학은 세 번 울며 날아가네.

 

十年端坐擁心城

慣得深林鳥不驚

昨夜松潭風雨惡

魚生一角鶴三聲 - 淸虛休靜 -

 

 

 

 

 

 

深嗟末法實悲傷

佛法無人得主張

未解讀文先坐講

不曾行脚便陞堂

將錢討院如狂狗

空腹高心似啞羊

奉勸後賢休繼此

免敎地獄苦時長 - << 靈芝 >>

 

 

말세에 이 슬픈 현상을 깊이 슬퍼하도다.

불법을 외칠 만한 사람이 없구나.

아직은 글 읽을 줄도 모르면서 강석에 앉고

일찍이 행각도 못했는데 법상에 앉네.

돈을 들고 절을 하는 모습은 마치 미친개와 같고

속은 텅 비었는데 마음만 높은 것은 벙어리 염소와 같다.

뒷사람들에게 엎드려 권하노니 이러한 풍속 이제 그만 두어

오랫동안 지옥 고통 받을 일면하기를 바라노라.

 

6. 14 선시

 

한 물건一物〕 ◈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생긴 것도 아니요

일찍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네.

 

有一物於此

從來以來 昭昭靈靈

不曾生不曾滅

名不得狀不得 - 선가귀감, 청허 휴정 대사 -

 

 

고금을 꿰뚫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다.

이름과 형상이 없으나 고금을 꿰뚫고 있으며

하나의 먼지 속에 있으나

동서남북과 상하를 모두 에워싸고 있다.

唯一物於此

絶命相貫古今

處一塵圓六合

 

- 금강경오가해 <함허 득통 >-

 

6. 15 선시

 

 

 

일천 겁을 지나도 옛 것이 아니고

만세에 뻗어 있어도 늘 지금이네.

바다와 산이 서로 많이 바뀌었는데

풍운이 변하는 모습 얼마나 보았던가.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多經海岳相遷

幾見風雲變態

 

- 금강경오가해, 함허 -

 

6. 16 선시

 

물이 다하고 구름이 다한 곳이며,

연기는 소멸하고 불은 꺼진 때더라.

문득 본지풍광을 밟으니

부처를 뛰어넘고 조사를

뛰어넘는 것을 마음대로 하겠더라.

 

水窮雲盡處 烟消火滅時

수궁운진처 연소화멸시

驀然踏着本地風光 管取超佛越祖

맥연답착본지풍광 관취초불월조

 

도를 배우는 일은 처음과 같이 하여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

천 가지 마장과 만 가지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더욱 정신 차리고 하라.

바로 모름지기 허공의 골수를 두들겨 빼내고

금강신장의 뒤통수에 박혀 있는

못을 뽑아 버려야 한다.

 

學道如初不變心

天魔萬難愈惺惺

直須敲出虛空髓

拔卻金剛腦後釘 - < 선요, 고봉 원묘화상 >

 

6.17 선시

 

滿天風雨散虛空 (만천풍우산허공)

月在千江水面中 (월재천강수면중)

山岳高低揷空連 (산악고저삽공연)

茶煎香古途通 (다전향고도통)

하늘에 가득한 비바람 허공에 흩어지니

달은 천강의 물 위에 어려 있고

산은 높고 낮아 허공에 꽂혔는데

차 달이고 향 사르는 곳에 옛길이 통했네

 

 

모든 물과 강은 바다로 흘러가고

온갖 산들은 전부 수미봉에 이르니

바다는 법의 바다요 봉우리는 도의 봉우리로다

바다여 봉우리여

이것이 바다냐 이것이 봉우리냐

뭣고 뭣고

돌솥에 하늘과 땅의 물로

한 잔의 차를 달이니

차 한 잔 들게나, 차 한 잔 들게나.

 

萬水千江盡入海

群山總付須彌峰

海是法海 峰是道峰

海兮峰兮

是者海耶 是者峰耶

zz

石鼎乾坤水

盡成一椀茶

喫茶喫茶

 

, 차 이 한 잔 차맛에는

우주 만상의 진리가 여기에 있으니

이 맛은 어떻다고 보이기도 어려우며

말하기도 어렵구나 아자자 가가소

송 왈

온 산의 단풍경치는

이월의 꽃보다 곱구나 미소 짓는다.

 

 

茶茶這個茶一味

宇宙萬像之眞理

在此難可示

難可說 阿刺刺 呵呵笑

頌曰

萬山楓葉景

勝如二月花微笑

 

- 경봉(鏡峰 18921982) 선사

 

6. 18선시

 

온 누리 중생들 백년을 살지라도

이 마음 못 보면 한갓 꿈속의 잠이라

아미타불을 어찌 멀리 구하랴

이름도 나와 같아 눈 앞에 있는 것을

法界衆生過百年

此心無見夢中眠

阿彌陀佛何求遠

與我同名坐目邊

 

세상사람 물욕은 어느 때나 다할까

금전에 구애되니 좋은 일 늦어지네

해가 먼 산에 빛나니 맑은 기운 흐르고

꽃 핀 나무엔 푸른 가지 무성하네

몇 해 동안이나 그대 생각 떠나지 않았는데

서로 만나 한번 웃으니 마음 변치 않네

비록 천리나 떨어져 살지만

저 맑은 달은 우리의 정을 언제나 알고 있소.

 

世人物慾盡何時(세인물욕진하시)

拘得金錢好事遲(구득금전호사지)

日麗遠山含淑氣(일려원산함숙기)

暗烘芳樹譪碧枝(암홍방수애벽지)

數年長思心無息(수년장사심무식)

一笑相逢意不移(일소상봉의부이)

雖有分居千里外(수유분거천리외)

個中圓月照常知(개중원월조상지)

 

* 경봉선사(1892~1982)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

우담바라 꽃빛이 온누리에 흐르네

 

我 是 訪 吾 物 物 頭 (아시방오물물두)

目 前 卽 見 主 人 樓 (목전즉견주인누)

呵 呵 逢 着 無 疑 惑 (가가봉착무의혹)

優 鉢 花 光 法 界 流 (우발화광법계류)

 

 

月在天江水面中(월재천강수면중)

山岳高低揷空連(산악고저삽공련)

茶煎香熱古途通(다전향설고도통)

 

 

하늘에 가득한 비바람이 허공에 흩어지니

 

달은 일천강의 물위에 떠 있고

 

산악은 높고 낮아 허공에 꽂혔는데

 

차 달이고 향사루는 곳에 옛길을 통했네--- 경봉스님

 

 

 

모든 물과 강은 바다로 흘러가고

온갖 산들은 전부 수미봉에 이르니

바다는 법의 바다요 봉우리는 도의 봉우리로다

바다여 봉우리여

이것이 바다냐 이것이 봉우리냐

뭣고 뭣고

돌솥에 하늘과 땅의 물로

한 잔의 차를 달이니

차 한 잔 들게나, 차 한 잔 들게나.

 

萬水千江盡入海

群山總付須彌峰

海是法海 峰是道峰

海兮峰兮

是者海耶 是者峰耶

zz

石鼎乾坤水

盡成一椀茶

喫茶喫茶

 

, 차 이 한 잔 차맛에는

우주 만상의 진리가 여기에 있으니

이 맛은 어떻다고 보이기도 어려우며

말하기도 어렵구나 아자자 가가소

송 왈

온 산의 단풍경치는

이월의 꽃보다 곱구나 미소 짓는다.

 

 

茶茶這個茶一味

宇宙萬像之眞理

在此難可示

難可說 阿刺刺 呵呵笑

頌曰

萬山楓葉景

勝如二月花微笑

 

 

滿天風雨散虛空(만천풍우산허공)

月在天江水面中(월재천강수면중)

山岳高低揷空連(산악고저삽공련)

茶煎香熱古途通(다전향설고도통)

 

하늘에 가득한 비바람이 허공에 흩어지니

달은 일천강의 물위에 떠 있고

산악은 높고 낮아 허공에 꽂혔는데

차 달이고 향사루는 곳에 옛길을 통했네--- 경봉스님

 

此一炷淸香(차일주청향)三世諸佛(삼세제불)法印(법인)이며 歷代祖師(역대조사)眼目(안목)이며 今日靈駕(금일영가)本來面目(본래면목)이며 一切衆生(일체중생)命根(명근)이니라. 特爲今日(특위금일) 靈駕裝嚴覺路(장엄각로)하야 揷香爐中(삽향로중)하노라 ---경봉스님

 

 

6. 19 선시

초목들도 추운 겨울에는 모두 선정에 들어

찬 눈보라 속에서 정기를 단련 하네

모질고 험한 시간을 그렇게 견디는 것은

봄날 꽃 피워 향기 뿜어내기 위해서 라네

 

草木三冬皆入定

凍寒氷雪練精時

多經風雨險過時

只侍開花香發時

 

둘 다섯은 원래 열인데

여기에 의심 없는 이 누구인가

이 밖에 현묘한 것을 찾는다면

이미 제 이두에 떨어진 것이다

 

二五元來十

無疑者是誰

更求玄妙處

已落第二頭

 

 

- 경봉선사(1892~1982)

 

 

 

아미타불을 어찌 멀리서 구하랴

 

 

 

 

온 누리 중생들 백년을 살지라도/

이 마음 못 보면 한갓 꿈속의 잠이라/

아미타불을 어찌 멀리서 구하랴/

이름도 나와 같아 눈앞에 있는 것을

(法界衆生過百年 此心無見夢中眠

阿彌陀佛何求遠 與我同名坐目邊)”

 

일상생활이 그대로 불법(佛法)이고 도다. 밥하고 옷 만들고 농사짓고 장사하는데 도가 있다.

 

하루 한 시간은 자기 주인공(主人公)을 찾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天晴日頭出

하늘이맑으니 해가 빛나고

 

雨下地上濕

비가 내리니 대지가 젖도다

 

盡情都了說

생각을 다해 설파하였는데

 

只恐信不及

다만 믿지 않을까 두렵도다

 

 

 

 

 

 

 

 

 

 

 

 

 

 

 

 

 

 

 

 

 

 

 

 

 

 

 

 

 

 

 

 

 

 

此一炷淸香(차일주청향)三世諸佛(삼세제불)法印(법인)이며 歷代祖師(역대조사)眼目(안목)이며 今日靈駕(금일영가)本來面目(본래면목)이며 一切衆生(일체중생)命根(명근)이니라. 特爲今日(특위금일) 靈駕裝嚴覺路(장엄각로)하야 揷香爐中(삽향로중)하노라 ---경봉스님

 

 

이 한 가지 맑은 향은 삼세 모든 부처님의 법인이며 역대 모든 조사의 안목이며, 오늘 영가의 본래 모습이며, 일체 중생의 목숨이라. 오늘의 영가가 깨달아가는 길을 장엄하기 위하여 향로 중에 꽂노라.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부운자체본무실 생사거래역여연)

 

 

獨有一物常獨露 澹然不隨於生死 (독유일물상독로 담연불수어생사)

 

 

 

 

생은 한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사는 한조각 뜬 구름 사라짐이라

 

 

뜬 구름 그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생사의 오고 감도 이와 같구나

 

 

오직 한 물건만이 항상 홀로 존재하여,

 

담연하여 생사를 따르지 않는도다

 

 

 

 

제령한진치신망(諸靈限盡致身亡)

 

 

석화광음몽일장(石火光陰夢一場)

 

삼혼묘묘귀하처(三魂渺渺歸何處)

 

 

칠백망망거원향(七魄茫茫去遠鄕)

 

 

모든 영가시여, 목숨(기한)이 다하여 몸을 잃었으니

부싯돌의 불과 같은 한생이 한바탕 꿈과 같다네

 

삼혼은 고요하여 그 간 곳이 어느 곳이며

칠백은 아득하여 또한 어디로 가버렸는가

 

 

 

사람이 어머니 배속에 잉태할 때 1영이 3혼과 7백을 거느리고 들어옵니다.

 

3혼은 천기,지기,인기로서 살과 뼈와 오장육부에 머무르고, 7백은 희노우구애증욕의 7가지 감정으로 이목구비 칠공에 머무릅니다.

 

 

사람이 죽으면 3혼은 하늘로 흩어지고 7백은 땅으로 흩어지고 오직 1영만이 업식을 따라 윤회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이 사람의 몸을 빠져나오는 순간 혼절하여 3일후에 의식이 깨어나는데, 어디가 어디인지 분별할 수도 없고 당황스럽고 춥고 배가 고픕니다. 이승의 미련과 집착들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49일동안 7곱번의 선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만 ,원한이 깊거나 집착이 강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모든 기회를 다 놓쳐버리고 구중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고 맙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가의 앞길에 숙생에 걸친 인연들이 펼쳐집니다.

 

그 인연들은 좋은 것, 나쁜 것, 이리저리 섞인 것등 무수히 많습니다.

 

생전에 수행을 열심히 한 영가는 일찍 정신을 차리고 그중에 좋은 인연을 따라 좋은 곳에 가게 됩니다.

 

하지만 생전에 수행을 하지 못한 영가는 혼미한 상태에서 마지막 49일째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가는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도 숙생에 복을 많이 지은 영가는 떠밀려가는 길 일지라도 좋은 곳으로 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영가의 입장에서 보면 현생의 삶이라는 것은 죽어서 다음 생을 선택할 준비를 하는 것 일 뿐입니다.

 

 

 

 

 

 

 

 

滿天風雨散虛空(만천풍우산허공)

 

 

月在天江水面中(월재천강수면중)

 

 

山岳高低揷空連(산악고저삽공련)

 

 

茶煎香熱古途通(다전향설고도통)

 

 

하늘에 가득한 비바람이 허공에 흩어지니

 

달은 일천강의 물위에 떠 있고

 

산악은 높고 낮아 허공에 꽂혔는데

 

차 달이고 향사루는 곳에 옛길을 통했네--- 경봉스님

作墨戱題其額 贈姜國鈞 / 작묵희재기액 증강국윤

강 속의 달을 지팡이로 툭 치니 - - - 姜希孟/강희맹

 

 

강 속의 달을 지팡이로 툭 치니

물결 따라 달그림자 조각조각 일렁이네

어라, 달이 다 부서져 버렸나

팔을 뻗어 달 조각을 만져보려 하였네

물에 비친 달은 본디 비어있는 달이라

우습다. 너는 지금 헛것을 보는 게야

물결 갈앉으면 달은 다시 둥글 거고

품었던 네 의심도 저절로 없어지리

한 줄기 휘파람 소리에 하늘은 드넓은데

소나무 늙은 등걸 비스듬히 누워 있네.

 

 

胡孫投江月 / 호손투강월

波動影凌亂 / 파동영능란

飜疑月破碎 / 번의월파세

引臂聊戱玩 / 인비료희완

水月性本空 / 수월성본공

笑爾起幻觀 / 소이기환관

波定月應圓 / 파정월응원

爾亦疑思斷 / 이역의사단

長嘯天宇寬 / 장소천우관

松偃老龍幹 / 송언노룡관 - <姜希孟/강희맹.

 

 

 

 

 

 

 

34.

 

흙덩어리가 대광명을 놓다 - 선묘 -

 

 

人法俱忘 心識路絶 (인법구망 심식로절) 나와 너를 함께 잊어버리고 마음과 의식의 길이 끊어지면

 

擧步則大海騰波 (거보칙대해등파) 걸음을 걸을 때마다 대해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

 

彈指則須彌岌峇 (탄지즉수미급합) 손가락을 퉁길 때마다 수미산이 높이 솟는다.

 

泥團土塊 放大光明 (니단토괴 방대광명) 진흙과 흙덩어리는 대광명을 놓고

 

瓠子冬苽 熾然常說 (호자동고 식연상설) 박과 호박은 기세 좋게 언제나 법을 설한다.

 

35.

 

도를 배우다 - 선요, 고봉 원묘 화상 -학도여초불변심

 

學道如初不變心 도를 배우는 일은 처음과 같이 하여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

 

天魔萬難愈惺惺 천 가지 마장과 만 가지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더욱 정신 차리고 하라.

 

直須敲出虛空髓 바로 모름지기 허공의 골수를 두들겨 빼내고

 

拔卻金剛腦後釘 금강신장의 뒤통수에 박혀 있는 못을 뽑아 버려야 한다.

 

36.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 법집별행록절요, 보조 지눌 국사 -

 

實際理地 不受一塵 실제적인 진리의 자리에는 먼지 하나 없지만,

佛事門中 不捨一法 불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6. 19 선시

 

큰 도란 그 마음을 근본으로 삼았고

마음의 법은 본래 머물지 않는 것으로 근본을 삼았다.

머물지 않는 마음의 본체가 신령스럽게 알아 어둡지 않다.

성품과 형상이 텅 비었으되 덕과 작용을 다 품고 있다.

 

大道本乎其心

心法本乎無住

無住心體靈知不昧

性相寂然 包含德用 - 심요전, 청량 징광 대사 -

 

 

두렷이 깨달은 산 가운데 나무 한 그루 있어서

꽃은 피었는데 천지가 아직 나눠지기 이전이네.

푸른색도 아니고 흰 색도 아니고 검은 색도 아닌데

봄바람에도 있지 않고 하늘에도 있지 않네.

 

圓覺山中生一樹

開花天地未分前

非靑非白亦非黑

不在春風不在天 - 석문의범 -

 

 

6. 20 선시

 

이 몸 편히 쉴 곳을 찾았었는데

한산이 오래 살기 제일 좋구나.

미풍이 노송에 불어올 때는

가까이서 듣는 소리 더욱 좋아라.

나무 아래 흰머리 노인이 있어

남남남남 노자를 흥얼거리네.

십년동안 돌아가지 아니했으니

올 때의 그 길을 잊어 버렸네.

 

 

欲得安身處 寒山可長保

微風吹幽松 近聽聲逾好

下有班白人 喃喃讀黃老

十年歸不得 忘却來時道

 

- < 한산 > -

 

개울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곧 부처님의 크나큰 진리의 설법이다.

그렇다면 울긋불긋한 산천초목의 모습이

어찌 청정법신 부처님의 몸이 아니겠는가.

하루 종일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밤이 되면 팔만사천 게송이 되니

이 이치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것인가.

 

 

溪聲便是廣長說

山色豈非淸淨身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似人

 

- 소동파 오동송 -

 

 

6. 21 선시

 

일만 나라의 도성은 개미집이요,

일천 가옥의 호걸들은 구더기일세.

창문의 밝은 달을 베게 삼아 누웠는데,

끝없는 솔바람소리 가지각각 다르구나.

 

萬國都城如蟻垤 (만국도성여의질)

千家豪傑若醯鷄 (천가호걸약혜계)

一窓明月淸虛枕 (일창명월청허침)

無限松風韻不齊 (무한송풍운부제)

 

- 서산집, <청허 휴정 대사 >-

 

 

부처란 중생의 마음 속 부처다.

모두들 자신의 근기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따를 뿐 달리 다른 물건이 아니다.

일체 모든 부처의 근원자리를 알고자 하는가.

다만 자신의 번뇌 무명이 본래로 부처이니라.

 

 

佛是衆生心裏佛

隨自根堪無異物

欲知一切諸佛源

但自無明本是佛

 

- < 보조지눌 > -

 

 

 

6. 22 선시

 

41 .

마음의 길이 끊어지다 - 선가귀감, 청허 휴정 대사 -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絶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미묘한 깨달음은 요컨대 마음의 길이 끊어져야 한다.

 

 

42.

[大丈夫 - 야보도천 -

 

得樹攀枝未足奇 (득수반지미족기)

나 뭇가지를 잡는 것은 족히 기이한 일이 아니니

 

懸崖撒水丈夫兒 (현애살수장부아)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장부로다.

 

水寒夜冷魚難覓 (수한야냉어난멱)

물은 차고 밤도 싸늘하여 고기 찾기 어려우니

 

留得空船載月歸 (유득공선재월귀)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도다.

 

43.

[心外無法 - 천태덕소(天台德韶) -

通玄峰頂 不是人間 통현봉 꼭대기는 인간세상이 아닌데,

 

心外無法 滿目靑山 마음 밖에는 법이 없으니 눈에 가득 온통 푸른 산이네.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 - 마라나 존자 -

 

心隨萬境轉 (심수만경전) 마음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서 굴러다니나

 

轉處悉能幽 (전처실능유) 그 굴러가는 곳마다 모두 다 깊고 그윽하다.

 

隨流認得性 (수류인득성) 흐름을 따르더라도 그 본 성품을 알면

 

無喜亦無憂 (무희역무우)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

 

44.

 

唯我獨尊 - 선문염송 -

承春高下盡鮮姸 봄을 맞으니 높은 산 낮은 들 모두가 아름답고

 

雨過喬林叫杜鵑 울창한 숲에 비 지나가고 나니 두견새 지저귄다.

 

人靜畵樓明月夜 인적은 고요하여 그림같이 달 밝은 밤에

 

醉歌歡酒落花前 꽃잎은 휘날리고 술에 취해 노래 부른다.

 

45. 무정설법 - 소동파 -

 

溪聲便是廣長說

개울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곧 부처님의 크나큰 진리의 설법이다.

 

山色豈非淸淨身

그렇다면 울긋불긋한 산천초목의 모습이 어찌 청정법신 부처님의 몸이 아니겠는가.

 

夜來八萬四千偈

하루 종일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밤이 되면 팔만사천 게송이 되니

 

他日如何擧似人

이 이치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것인가.

 

46.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소멸한다. - 아함경 -

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소멸한다.

 

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 우리 부처님 큰 사문께서는 항상 이러한 말씀을 하신다.

 

47. 傳法 - 지론 -

假使頂戴經塵劫 가령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머리에 이고 한량없는 세월 동안 섬긴다 하더라도,

 

身爲床座遍三千 그리고 자신의 몸이 삼천대천세계와 같이 넓은 평상의 의자가 되어 부처님을 앉고 눕게 하여 받든다 하더라도,

 

若不傳法度衆生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사람들을 제도하지 못하면

 

畢竟無能報恩者 끝내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리라.

 

 

6. 22 선시

 

봄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달빛이 좋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눈이 아름답다.

만약 쓸데없는 일이 마음에 남아 있지 않으면

그것이 곧 인간의 좋은 시절인 것을

 

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 - < 운문 선사 > -

 

 

 

몸을 단련하여 마치 학의 형상과 같고,

천 그루의 소나무 아래서 두어 함의 경전을 두고 있네.

내가 와서 도를 물었는데 아무런 말이 없고,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 하네.

 

鍊得身形似鶴形

千株松下兩函經

我來問道無餘說

雲在靑天水在甁 - 이고(李翶) -

 

 

 

 

50. 부처의 근원 자리 - 보조지눌 -

佛是衆生心裏佛 부처란 중생의 마음 속 부처다.

 

隨自根堪無異物 모두들 자신의 근기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따를 뿐 달리 다른 물건이 아니다.

 

欲知一切諸佛源 일체 모든 부처의 근원자리를 알고자 하는가.

 

但自無明本是佛 다만 자신의 번뇌 무명이 본래로 부처이니라.

 

51. 부처가 있는 곳 - 부 대사 -

夜夜抱佛眠 밤마다 밤마다 부처님을 안고 자고,

 

朝朝還共起 아침마다 아침마다 함께 일어난다.

 

起坐鎭相隨 일어나고 앉고 하는 데 늘 함께하며,

 

語黙同居止 말하고 침묵하는 데도 또한 같이 한다.

 

纖毫不相離 터럭만큼도 서로 떨어져 있지 않는 것이

 

如身影相似 마치 그림자가 몸을 따르는 것과 같다.

 

欲識佛去處 부처가 간 곳을 알고 싶은가.

 

只遮語聲是 다만 이렇게 말을 하는 그것이라네.

 

 

6.23 선시

 

 

우주를 소요하는 것 누가 나를 당할 것인가?

늘 기분대로 자유롭게 배회하노라

돌 침상에 앉고 누우니 옷이 차갑고

꽃 핀 언덕에서 돌아오니 지팡이와

신발이 향기롭구나.

 

宇宙逍遙孰我當(우주소요숙아당)

尋常隨意任彷徉(심상수의임반양)

石床坐臥衣裳冷(석상좌와의상냉)

花塢歸來杖屨香(화오귀래장구향)

 

- 허응당 보우(虛應普雨: ?~1565)

 

 

산하와 대지가 눈앞의 꽃이요

만상 삼라도 또한 그럴 뿐이네

자성이 청정한 줄 바야흐로 알았으니

진진찰찰이 법왕의 몸이구나.

 

 

 

산하대지안전화 山河大地眼前花

만상삼라역부연 萬象森羅亦復然

자성방지원청정 自性方知元淸淨

진진찰찰법왕신 塵塵刹刹法王身

- < 나옹선사 >

 

 

 

 

6. 24 선시

 

푸른 숲 짙은 그늘 여름날은 길고 긴데

누대의 그림자는 연못 속에 거꾸로 잠겼구나.

미풍이 일어나 수정발이 흔들리고

줄기 뻗어 가득 핀 장미로 온 절이 향기롭네.

 

녹수음롱하일장 綠水陰濃夏日長

누대도영입지당 樓臺倒影入池塘

수정렴동미풍기 水晶簾動微風起

만가장미일원향 滿架薔薇一院香

- 위산 영우(771853)선사

 

 

 

 

 

춘삼월 햇빛 모아둘 곳 없어서

버들가지 위에 눈부시게 흩어져 있네.

아깝게도 봄바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물 따라 흘러가는 붉은 꽃잎만 보이는구나.

 

三月韶光沒處收 ( 삼월소광몰처수 )

一時散在柳梢頭 (일시산재유초두)

可憐不見春風面 (가련불견춘풍면 )

却看殘紅逐水流 ( 각간잔홍축수류)

 

- 대혜종고(大慧宗杲1088~1163) 선사

 

 

 

 

 

 

6. 25 선시

 

 

풍동과빈락 風動果頻落

바람 불자 산 나무 열매 자꾸 떨어지고

산고월이침 山高月易沈

산이 높으니 달이 벌써 지려하네.

시중인불견 時中人不見

내 곁에는 아무도 없는데

창외백운심 窓外白雲深

창 밖에 흰 구름만 자욱하구나. -

 

부휴선수(浮休善修1545~1615)선사

 

56.

 

산하대지안전화 山河大地眼前花 산하와 대지가 눈앞의 꽃이요

만상삼라역부연 萬象森羅亦復然 만상 삼라도 또한 그럴 뿐이네

자성방지원청정 自性方知元淸淨 자성이 청정한 줄 바야흐로 알았으니

진진찰찰법왕신 塵塵刹刹法王身 진진찰찰이 법왕의 몸이구나. - 나옹선사

 

 

57.

부운유수시생애 浮雲流水是生涯

구름처럼 떠돌며 물처럼 흘러가는 이 내 생애여

헐박수연괘석지 歇泊隨緣掛錫枝

인연 따라 쉬고 머물며 지팡이 걸어 두네

납자유래무정적 衲子由來無定跡

납자는 원래 정한 곳이 없으니

종교거주부심기 從敎去住負心期

가고 머무는 것 마음에 내맡겼네

 

일사문수(一絲文守 1608~1646)

 

58.

사대원무주 四大元無主 사대는 원래 주인이 없고

오온본래공 五蘊本來空 오온도 본래 공한 것일 뿐

장두임백인 將頭臨白刃 칼날이 내 머리 내리치겠지만

흡사참춘풍 恰似斬春風 흡사 봄바람을 베는 것 같으리라.

 

 

승조(僧肇)법사의 임종게(臨終偈)

 

 

 

 

59.

 

일주무영목 一株無影木 한 그루 그림자 없는 나무를

이취화중재 移就火中栽 불 속에 옮겨 심으니

불가삼춘우 不假三春雨 봄비가 오지 않아도

홍화난만개 紅花爛漫開 붉은 꽃 어지럽게 피어나리라

 

소요태능(逍遙太能1562649)

 

 

60.

 

거년빈미시빈 去年貧未是貧

작년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네.

금년빈시시빈 今年貧始是貧

금년의 가난이 진짜로 가난일세.

거년무탁추지지 去年無卓錐之地

작년에는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추야무 今年錐也無

금년에는 송곳마저 없어져 버렸네.

 

향엄지한(香嚴智閑?~898)스님

 

61.

일발천가반 一鉢千家飯

바루 하나로 천가의 밥을 빌면서

고신만리유 孤身萬里遊

외로운 몸 만리를 떠도네

청목도인소 靑目睹人少

눈 푸른 이 알아주는 사람 없으니

문로백운두 問路白雲頭

흰 구름에게 갈 길을 물어 볼까나.

- 포대화상(布袋和尙)

 

6. 25 선시

 

달은 물 속에 잠기고

가을빛은 정자에 가득하다.

스스로 뜯다마는 내 즐겨하는 가락을

남이야 듣거나 말거나.

 

강정월재수 江靜月在水

산공추만정 山空秋滿亭

자탄환자파 自彈還自罷

초불요인청 初不要人聽

 

만해 한용운스님(1879~1944)

 

 

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하더니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로다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한데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로구나

 

어젯밤 달빛은 누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 오는구나.

 

<전강田岡선사> 오도송

 

 

6. 26 선시

 

 

 

아미타 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시는가

마음속에 깊이 새겨 간절히 잊지 말고

생각 생각 다하여서 생각 없는 곳에 이르면

여섯 문에 자색 금빛 대광명이 비추리라

 

阿彌陀佛在何方(아미타불재하방)

着得心頭切莫忘(착득심두절막망)

念到念窮無念處(념도염궁무념처)

六門常放紫金光(육문상방자금광) - < 나옹선사 >

 

겹겹 쌓인 푸른 산은 아미타불 법당이요

푸른 바다 아득한 곳 부처님의 궁전이네

모든 것은 마음 따라 걸림 없는데

소나무 위 붉은 학 머리 몇 번이나 보았는가

 

靑山疊疊彌陀窟(청산첩첩미타굴)

滄海茫茫寂滅宮(창해망망적멸궁)

物物拈來無(물물염래무가애)

幾看松亭鶴頭紅(기간송정학두홍) - < 원효대사(元曉大師) > -

 

 

 

 

 

 

 

극락세계 법당 앞에 둥근 달과 같은 얼굴

아미타불 금색광명 온 누리에 비추시니

누구든지 오롯하게 아미타불 부르면

찰나 간에 무량공덕 원만하게 이루리라 - <

 

極樂堂前滿月容(극락당전만월용)

玉豪金色照虛空(옥호금색조허공)

若人一念稱名號(약인일념칭명호)

頃刻圓成無量功(경각원성무량공)

 

 

 

 

 

 

6. 27선시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하여

초진수중구[焦盡水中漚]로다

가소기우자[可笑騎牛者]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로구나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물 가운데 거품을 태워 다할지니라.

가히 우습다 소 탄 자여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는구나. - < 서산 대사 > -

내 평생 오로지 거문고 하나 밖엔 몰랐는데

원광 화상 지시로 심금을 뜯게 되었네.

관음의 원통(圓通) 삼매에 몇몇 해나 빠졌었나

물소리 듣고 산을 바라보니 고금을 통했네.

 

유아평생지일금(惟我平生知一琴)

원광지시시심금(圓光指示是心琴)

관음삼매기성상(觀音三昧幾成霜)

청수관산통고금(廳水觀山通古今) -고금 노인

 

 

 

6. 28선시

 

 

趙州古佛路

坐斷千聖路

吹毛覿面提

通身無孔窺

狐兎絶潛蹤

飜身獅子露

打破牢關後

淸風吹太古

 

 

 

조주 옛 부처가

앉아서 일천 성인의 길을 끊고

취모리(吹毛利)의 칼을 들이대매

온몸에 빈틈이 없네

여우와 토끼의 자취는 완전히 사라지고

몸을 뒤집어 문득 사자의 모습이 드러나니

생사의 견고한 관문을 부수고 난 뒤에

맑은 바람이 태고암에 불어오네’ - < 태고 보우 >오도송

 

 

물 위에 어린 밝은 달 고금의 도심(道心)이요,

우주의 화창한 봄볕 고금의 활기(活氣)일세.

매화의 향기, 대의 절개 고금의 의절(義節)이요,

분수와 만족을 아는 것은 고금의 달지(達志)이며

꽃이 웃고 새가 노래함은 고금의 풍류이네.

그러나 지혜의 눈으로 보아라.

마음이 이러하고 경계도 이러하도다.

허무함도 실상도 없고 있는 것에도 없는 것에도 걸림 없으니,

성현이 아니요 일 마친 범부로다. 안녕

금정산에 걸린 달이

집집마다 비추네. 미소

 

수화명월 고금지도심(水和明月 古琴之道心)

우주춘색 고금지활기(宇宙春色 古琴之活氣)

매향죽절 고금지의절(梅香竹節 古琴之義節)

지분지족 고금지달지(知分知足 古琴之達志)

화소조가 고금지풍류(花笑鳥歌 古琴之風流)

수연동정철안간 (雖然銅睛鐵眼看)

심여경여무실무허 (心如境如無實無虛)

유역불관무역불구 (有亦不管無亦不拘)

불시현성요사범부 (不是賢聖了事凡夫) 진중(珍重)

금정쇄야월 (金井鎖夜月)

조파만가문 (照破萬家門) ( ) - < 경봉 선사 >

 

발 아래 하늘 있고, 머리 위에 땅 있네

(脚下靑天頭上巒)

본래 안팎이나 중간은 없는 것

(本無內外亦中間)

절름발이가 걷고, 소경이 봄이여

(跛者 行盲者見)

북산은 말 없이 남산을 대하고 있구나

(北山無語對南山)

 

부엌에서 불 지피다가 홀연히 눈 밝으니

이를 좇아 옛 길이 인연따라 분명하네

누가 내게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위 아래 울려대는 물소리는 젖지 않았다 하리라.

 

(着火廚中眼忽明)

(從玆古路隨緣淸)

(若人問我西來意)

(岩下泉鳴不濕聲)

 

< 한암선사 > 오도송

 

 

 

 

 

 

6. 27선시

 

유물래래부진래 有物來來不盡來

존재하는 만물은 오고 또 와도 다 오지를 못하니

래재진처우종래 來纔盡處又從來

다 왔는가 싶으면 또 다시 오네.

래래본자래무시 來來本自來無時

오고 또 오는 것은 시작이 없는 데서 오는 것

위문군초하소래 爲問君初何所來

그대에게 묻노니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1489~1546)

落花千片萬片(낙화천편만편)

꽃잎은 떨어져 천 조각 만 조각으로 날리고

垂柳長條短條(수유장조단조)

긴 가닥 짧은 가닥 버들가지는 휘늘어졌는데

悄悵天涯獨客(초창천애독객)

슬프구나. 하늘 끝 외로운 나그네

不堪對此魂消(불감대차혼소)

이를 보고 있으니 혼이 녹아내리는 것 같구나.-

 

백암성총(栢庵性聰:1631~1700) 스님

부 설 거 사 오 도 송

 

 

共把寂空雙去法 공파적공쌍거법

공적의 오묘한 법 함께 잡고서

同棲雲鶴一間庵 동서운학일간암

암자에 구름과 학이 같이 사노라.

已和不二歸無二 이화불이귀무이

불이(不二)에 화하여 무이(無二)로 돌아갔거늘

誰問前三與後三 수문전삼여후삼

뉘라서 전 후삼삼 물어오는가

閑看靜中花艶艶 한간정중화염염

고운 꽃 바라보며 한가로이 졸고

任聆窓外鳥남남 님영창외조남남

창밖에 새소리도 때로 듣는 구나

能令直入如來地 능령직입여래지

곧바로 여래지에 들어간다면

何用區區久歷參 하용구구구력참

구구히 오래도록 닦아 무엇하리?

 

 

2.부설거사 팔죽송

此竹彼竹化去竹 차죽피죽화거죽

風打之竹浪打竹 풍타지죽랑타죽

粥粥飯飯生此竹 죽죽반반생차죽

是是非非看彼竹 시시비비간피죽

貧客接待家勢竹 빈객접대가세죽

市政買賣歲月竹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만사불여오심죽

然然然世過然竹 연연연세과연죽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되어가는대로

바람불면 부는대로 물결치면 치는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사는형편대로

옳으면 옳은대로 그르면 그른대로 보이는 그대로

손님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세상물건 사는대로 파는대로 그때 시세대로

세상만사 내맘대로 안되면 안되는대로

그러면 그런대로 그렇다면 그런대로 세상따라 살자.

 

 

 

 

 

 

3.부설거사 임종게

目無所見無分別 耳聽無聲絶是非 分別是非都放下 但看心佛自歸依

목무소견무분별 이청무성절시비 분별시비도방하 단간심불자귀의

 

 

 

눈으로 보는 바없으면 분별이 없고

귀로 듣는 소리 없으면 시비 또한 없도다.

분별과 시비일랑 모두 놓아버리고

다만 마음부처를 보아 스스로 귀의할것이니라.

 

 

 

 

 

6. 28선시

 

牀前看月光(상전간월광)

침상에서 달빛을 내다봤더니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땅 위에 서리가 내린 것 같구나.

擧頭望山月(거두망산월)

머리 들어 산위에 뜬 달을 바라보다가

低首思故鄕(저두사고향)

고개 숙여 고향 집을 생각해 본다.

 

정야사(靜夜思)라는 이백(李白: 701~762)

 

 

 

71

 

宇宙逍遙孰我當(우주소요숙아당)

우주를 소요하는 것 누가 나를 당할 것인가?

尋常隨意任彷徉(심상수의임반양)

늘 기분대로 자유롭게 배회하노라

石床坐臥衣裳冷(석상좌와의상냉)

돌 침상에 앉고 누우니 옷이 차갑고

花塢歸來杖屨香(화오귀래장구향)

꽃 핀 언덕에서 돌아오니 지팡이와

신발이 향기롭구나.

허응당 보우(虛應普雨: ?~1565) 스님

 

아미타불재하방(阿彌陀佛在何方)

착득심두절막망(着得心頭切莫忘)

염도념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

 

아미타불이 어디 있는고?

마음속에 꼭 잡아 잊지 말아라.

생각 생각이 생각 없는 데 이르면

六門(/////)에서 항상 자금광을 놓으리라.

 

아미타불 어느 곳에 계시는가

마음속깊이 새겨 간절히 잊지 말지니

생각이 이르고 생각이 다하여 생각이 끊어진 곳

 

육근의 문에서 항상 금빛광명 찬란하게 나오네

 

 

71

 

宇宙逍遙孰我當(우주소요숙아당)

우주를 소요하는 것 누가 나를 당할 것인가?

尋常隨意任彷徉(심상수의임반양)

늘 기분대로 자유롭게 배회하노라

石床坐臥衣裳冷(석상좌와의상냉)

돌 침상에 앉고 누우니 옷이 차갑고

花塢歸來杖屨香(화오귀래장구향)

꽃 핀 언덕에서 돌아오니 지팡이와

신발이 향기롭구나.

허응당 보우(虛應普雨: ?~1565) 스님

 

 

 

6. 29 선시

 

담장 가득한 이끼 색이 옷에 묻혀오는 듯하고

대나무 사립문은 종일 닫혀 있는데

홀연히 책상에 내리는 먹의 향기는

바다 학이 가져왔나 의심 되구나.

 

滿牆苔色染人衣(만장태색염인의)

盡日常關竹下扉(진일상관죽하비)

忽有墨香來墮案(홀유묵향래타안)

疑言海鶴帶將來(의언해학대장래) -

 

< 초의(草衣:1786~1866) 선사> -

 

꽃잎은 떨어져 천 조각 만 조각으로 날리고

긴 가닥 짧은 가닥 버들가지는 휘늘어졌는데

슬프구나. 하늘 끝 외로운 나그네

이를 보고 있으니 혼이 녹아내리는 것 같구나.

落花千片萬片(낙화천편만편)

垂柳長條短條(수유장조단조)

悄悵天涯獨客(초창천애독객)

不堪對此魂消(불감대차혼소) -

 

 

<< 백암성총(栢庵性聰:1631~1700) 스님 >>

 

 

6. 30 선시

 

동림사 절 앞에서 손님 배웅하는데

달이 밝게 떠 있고 잔나비가 우는구나.

웃으며 헤어지던 여산의 혜원스님

아뿔싸, 그만 호계의 다리를 지나고 말았네.

 

東林送客處(동림송객처)

月出白猿啼(월출백원제)

咲別廬山遠(고별여산원)

何須過虎溪(하수과호계)

 

동진(東晋) 여산(廬山) 혜원(慧遠: 335~417)

 

 

새벽바람에 풍경 소리 멀리 날아가고

저녁 눈발 창틈으로 날아드는데

자나 깨나 선방을 떠나지 않고

은근히 마음 씻으며 살고 있다네.

 

曉風飄磬遠(효풍표경원)

暮雪入廓深(모설입곽심)

 

念在禪房宿(염재선방숙)

慇懃自洗心(은근자세심) -

 

<< 매계수상(梅溪守常) 선사 >> -

 

 

 

 

 

 

 

 

7.1 선시

새벽바람 저문 비 눈 날리는 동산에

쓸쓸히 사라지는 향기, 돌아오지 못하는 넋이여!

발 구르며 불러 봐도 붙잡지 못하는데

온 산의 외로운 달마저 저물어 가네.

 

晨風暮雨雪飄園(신풍모우설표원)

寂寂香銷未返魂(적적향소미반혼)

 

佇立驚呼留不得(저립경호류부득)

萬山孤月又黃昏(만산고월우황혼)

 

-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 1560) -

 

81.

寺在白雲中(사재백운중) 흰 구름 속에 절이 있는데

白雲僧不掃(백운승불소) 스님은 흰 구름을 쓸지 않다가

客來門始開(객래문시개) 손님이 찾아오자 비로소 문을 여니

萬壑松花老(만학송화노) 온 골짜기에 송화가 쇠었네.

 

 

조선조 중기 이달(李達: 1539~1618)

 

 

 

76. 三年竄逐病相仍(삼년찬축병상잉) 삼년의 은둔 생활 병까지 들고 보니

一室生涯轉似僧(일실생애전사승) 한 칸 집에 사는 신세 스님을 닮았네.

雪滿四山人不到(설만사산인부도) 눈 덮인 사방 산엔 찾아오는 사람 없고

海濤聲裏坐挑燈(해도성리좌도등) 눈보라 소리 속에 앉아 등불의 심지를 돋운다.

 

 

고려 말의 문신 최해(崔瀣: 1287~1340)

 

 

 

78. 山近月遠覺月小(산근월원각월소)

산이 가깝고 달이 멀어 달이 작게 보여져

便道此山大於月(변도차산대어월)

이 산이 달보다 크다고 말하지만

若人有眼大如天(약인유안대여천)

만약 하늘처럼 큰 눈을 가진 이가 있다면

還見山小月更闊(환견산소월갱활)

산이 작고 달이 큰 걸 다시 보리라.

 

중국의 왕양명(王陽明: 1472~1528)

 

 

79. 7. 1 선시

하늘과 땅은 텅 빈 한 채의 집이요

예와 지금은 눈 한번 깜박이는 순간이라네.

그 가운데 있는 한 주인은

영원토록 얼굴 한번 변하지 않네.

 

天地一虛堂(천지일허당)

古今一瞬息(고금일순식)

其中一主人(기중일주인)

曠劫一顔色(광겁일안색)

 

 

하늘을 날아가는 외기러기 울음 슬프고

들판에 우짖는 벌레 소리도 슬프다.

가을 강가에서 그대와 이별하니

산에는 노을이 물들고 있구나.

 

長天一雁怨(장천일안원)

大野百蟲悲(대야백충비)

別友秋江畔(별우추강반)

牛山落日時(우산낙일시) -< 서산스님 >

 

 

 

 

 

82.

獨坐無來客(독좌무래객) 찾아오는 손님 없어 혼자 앉아 있으니

空庭雨氣昏(공정우기혼) 빈 뜰이 비 올려나 어둑하구나.

魚搖荷葉動(어요하엽동) 물고기가 흔드는지 연잎이 움직이고

鵲踏樹梢翻(작답수초번) 까치가 밟았는지 나뭇가지 흔들린다. -

 

서거정(1420~1488)

 

83. 黃昏緩步行(황혼완보행) 황혼에 천천히 걸어가노니

松韻和灘聲(송운화탄성) 솔바람 여울 소리 섞여 울리고

素月更流彩(소월갱유채) 달빛마저 하얗게 흘러내리니

悠然心境淸(유연심경청) 마음속이 유난히 맑아지누나

 

조선조 중기의 문신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

 

84.

 

7. 7 선시

찾아오는 손님 없어 혼자 앉아 있으니

빈 뜰이 비 올려나 어둑하구나.

물고기가 흔드는지 연잎이 움직이고

까치가 밟았는지 나뭇가지 흔들린다.

 

獨坐無來客(독좌무래객)

空庭雨氣昏(공정우기혼)

魚搖荷葉動(어요하엽동)

鵲踏樹梢翻(작답수초번) -<< 서거정(1420~1488) >> -

 

길은 실낱 같이 구부러져 푸른 산으로 닿았는데

절간이 어디냐고 묻기도 귀찮아 스님 가는대로 따라왔네.

산에 도착하자마자 맑은 시냇물 소리를 들으니

인간 세상 온갖 시비 찧어 부수어 버리는구나.

 

線路縈紆接翠微(선로영우접취미)

不煩問寺逐僧歸(불번문사축승귀)

到山才聽淸溪響(도산재청청계향)

舂破人間百是非(춘파인간백시비)

 

-<<이규보(李奎報: 1168~1241)>>-

 

 

 

85.

 

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 봄비가 가늘어 방울도 되지 않고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밤중에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눈 녹은 남쪽 시내 물이 불어났으니

草芽多少生(초아다소생) 새싹들도 많이 돋아났겠지.

 

봄밤에 가늘게 내리는 가랑비 소리를 희미하게 듣고 눈 녹은 시냇가에 돋아날 새싹들을 생각하는 시상이 무척 자연스럽다. 대지를 적셔주는 봄날의 밤비가 만물을 소생시키는 영양임을 이 시는 은연중 일깨워 준다.

 

고려 말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

 

世事不堪說(세사불감설)

세상일 차마 말할 수 없지만

心悲安可窮(심비안가궁)

마음의 슬픔 어찌 다할 수 있으리오.

春風雙涕淚(춘풍쌍체루)

봄바람에 두줄기 눈물 흘리며

獨臥萬山中(독와만산중)

홀로 산속 깊이 누워 있다네.

 

조선조 효종 때의 문신 김육(金堉:1580~1658)

 

 

7. 2 선시

 

연꽃잎 달빛 향해 가슴을 열고

버들잎 바람 불어 얼굴이 간지럽네.

밤새도록 뜰 앞에서 춤을 추다가

날이 밝아 비단소매 분 냄새가 축축하네.

부용월향회중조 芙蓉月向懷中照

양류풍래면상취 楊柳風來面上吹

야반정전자지무 夜半庭前柘枝舞

천명라수습연지 天明羅袖濕臙脂 - < 선문 염송 >

 

 

 

비개인 남산에 아지랑이도 걷히고

산 빛 의연히 옛 암자를 마주하네.

고요히 홀로 앉아 바라보니 마음마저 맑아져

이렇게 반평생 어깨에 장삼 걸치고 살았네.

 

우수남악권청람 雨收南岳捲靑嵐

산색의연대고암 山色依然對古庵

독좌겅관심사정 獨坐靜觀心思淨

반생견괘칠근삼 半生肩掛七斤杉

 

- << 일선정관(一禪靜觀15331608) >> -

 

 

7. 3 선시

 

구름 걷힌 가을 하늘 달이 못에 도장을 찍었네

그지없는 물에 비친 달빛 누구에게 말해줄까

하늘과 땅을 뚫어 막힘 없는 눈을 뜨면

큰 도는 분명하여 참구할 필요 없네

 

운권추공월인담 雲捲秋空月印潭

한광무제여수담 寒光無際與誰談

활개투지통천안 豁開透地通天眼

대도분명불용참 大道分明不用參 - <<예장 종경(豫章 宗鏡)선사>>

 

돌아와 발을 씻고 침상에 올라 자다

산 위로 달이 가는 줄 미처 몰랐네

숲 속의 새소리에 문득 눈을 떠보니

소나무 가지에 붉은 해가 걸렸구나

 

귀래세족상상수 歸來洗足上床睡

곤중부지산월이 困重不知山月移

격림유조홀환성 隔林幽鳥忽喚醒

일단홍일괘송지 一團紅日掛松枝 -<< 석옥 청공(石屋 淸珙) 선사 >> -

 

7. 4 선시

 

운방(선방)에 높이 누워 세상 티끌을 멀리 떠나

단지 솔바람 좋아서 선방문(禪房門)을 열어 놓았네.

서릿발 같은 삼척검(三尺劍)으로

마음 속의 정령(精靈, 잡된 생각) 모두 잘랐네.

 

雲房高臥遠塵紛

只愛松風不閉門

一柄寒霜三尺劍

爲人提起斬精魂

 

스님과 산 그리고 물은 진정한 세 친구

학과 더불어 구름·소나무와 지내는 세계

텅 비고 고요한 본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이생에 어찌 이 몸이 한가하랴.

 

僧兼山水三知己

鶴與雲松一世間

虛寂本心如不識

此生安得此身閑 ― 《청허당집1, 각행대사

 

 

 

종이와 붓으로 서른 해 가까이

나는 다라니 ( 대진언)를 글로 옮겼다네

누군가 묻기를 내 마음(소감) 이 어떤가

오직 주사는 붉고 먹물은 검을 뿐이라네

 

紙筆卅餘年 (지필삽여년)

我移大眞言 (아이대진언)

誰問如何感 (수문여하감)

唯丹朱墨玄 (유단주묵현)

 

 

종이와 붓으로 서른 해 가까이

나는 다라니 ( 대진언)를 글로 옮겼다네

누군가 묻기를 내 마음(소감) 이 어떤가

오직 주사는 붉고 먹물은 검을 뿐이라네

 

 

紙筆卅餘年 (지필삽여년)

我移大眞言 (아이대진언)

誰問如何感 (수문여하감)

唯丹朱墨玄 (유단주묵현)

 

 

7. 5 진언행자 선진

 

 

외로운 암자 이 공적함이여

한 줄기 길다랗게 바람이 불어오네 (바람구멍 열리네 )

보고 듣는 당체가 불멸이건만

서녘으로부터(달마대사께서) 오신 뜻은 왜 묻는고?

 

 

孤庵斯空寂 ( 고암사공적 )

一長風口開 ( 일장풍구개 )

見聞當不滅 ( 견문당불멸 )

豈問自西來 ( 기문자서래 )

 

7. 6 진언행자 선진

 

 

 

두류산에 암자가 하나 있으니

암자의 이름은 내은적이라.

산 깊고 물 또한 깊어

노니는 선객은 찾아오기 어렵다네.

동서에 누대가 있으니

()은 좁아도 마음은 좁지 않다네.

청허라는 한 주인은

천지를 이불 삼아 누웠다네.

여름 날 솔바람을 즐기노니

구름은 청백으로 조화를 부리누나.

 

 

頭流有一庵

庵名內隱寂

山深水亦深

遊客難尋跡

東西各有臺

物窄心不窄

淸虛一主人

天地爲幕席

夏日愛松風

臥看雲靑白

 

― 《청허당집1, 내은적

 

 

7. 5 선시

 

우사연등(芋社燃燈)

 

초의란 늙은 중이 먹에서 참선하여

등 그림자 심심(心心)에 먹 그림자 둥글었네

등 불꽃 베낼세라 그대로 한 번 도니

천연스런 연꽃이 불 속에서 솟아나네

 

 

草衣老衲墨參禪(초의노납묵참선)

燈影心心墨影圓(등영심심묵영원)

不剪燈花留一轉(부전등화유일전)

天然擎出火中蓮(천연경출화중연)

 

 

유초의선(留草衣禪)

 

눈앞의 조주차를 공짜로 마셔대고

손 속 에는 굳건히 범지화를 쥐었다네

외친 뒤에 귓문이 차츰차츰 젖어드니

봄바람 어드멘들 산가가 아니리오.

 

 

眼前白喫趙州茶(안전백끽조주다)

手裏牢拈梵志華(수리로념범지화)

喝後耳門飮箇漸(갈후이문음개점)

春風何處不山家(춘풍하처불상가) - 추사 김정희

 

7. 7 선시

 

추일만흥(秋日晩興) 3

도황 해자 좋은 철을 서울에서 지내자니

기러기 나는 -원문 결- 가에 가을 흥이 끝이 없네

어정이라 저기 저 낚싯줄 늘인 곳에

갈매기 해방인 양 자유로이 조으누나

 

稻黃蟹紫過京裏(도황해자과경리)

秋興無端鴈(추흥무단안구변)

最是漁亭垂釣處(최시어정수조처)

任放沙禽自在眠(임방사금자재면)

 

7. 7 선시

지붕머리 은하수라 유기는 빗겼는데

내일 아침 기쁜 일을 촛불 꽃이 알려주네

좋은 손님 오실 때는 술과 밥이 많을 테니

길한 상서 집에 가득 밤빛도 하얗구나

 

銀河當屋柳旗斜(은하당옥유기사)

喜事明朝占燭華(히사명조점촉화)

佳客來時多酒食(가객래시다주식)

夜光生白吉祥家(야광생백길상가)

 

 

이끼 꽃 수도 없이 댓돌머리 솟아 나니

산 집의 제일 가을 짐작하고 남겠구만

석류 뒤 국화 앞에 구경거리 잇따르니

장원홍 저게 바로 풍류를 아울렀네

 

碧花無數出堦頭(벽화무수출계두)

占斷山家第一秋(점단산가제일추)

榴後菊前容續玩(류후국전용속완)

壯元紅是竝風流(장원홍시병풍류) - 추사 김정희

 

 

 

초량(初涼)

 

능각진 봉우리는 여위고 푸르다면

슬슬한 가는 물살 깁 무늬 흐르누나

또렷또렷 먼 하늘에 외론 꿈 꼿꼿한데

여기저기 이슬 땅엔 온갖 벌레 가을 소리

 

楞楞山出瘦靑意(릉릉산출돌청의)

瑟瑟波明經縠流(슬슬파명경곡류)(=고운비단곡)

的的遙天孤夢直(적적요천고몽직)

頭頭露地百蟲秋(두두로지백충추)

 

민 행대장의 서장관 행차를 보내다

[送閔行臺丈書狀之行]

 

인생이 황하수를 건너지 못할진대

요연에 가 본 이도 그 또한 많지 않소

지구를 감돌자면 무릇 얼마나 될고

호도껍질 그 속에서 때 놓칠 걸 한탄하네

 

人生未得渡黃河(인생미득도황하)

看到遼燕亦不多(간도료연역불다)

繞出地毬凡幾許(요출지구범기허)

胡桃殼裏歎蹉跎(호도각리탄차타)

 

우통(尤侗) 시인 옛제 부른 죽지사를 읽어보면

우리 동방 사이와 다르단 걸 알았거든

사모라 판포를 다투어 곱게 보며

구주의 백성들이 곧 한관의 위의라고

 

尤家昔唱竹枝詞(우가석창죽지사)

解識吾東異四夷(해식오동이사이)

紗帽版袍爭艶看(사모판포쟁염간)

九疇人是漢官儀구주인시한관의)

 

 

때마침 이역에서 가을 바람 만난다면

좋은 국화 시든 난초 생각이 많을밖에

정녕히 알고말고 요양성 바깥 길에

돌아가는 제비가 오는 기럭 원망하리

 

恰從異域過秋風(흡종이역과춘풍)

佳菊衰蘭思不窮(가국애란사불궁)


 


때마침 이역에서 가을 바람 만난다면

좋은 국화 시든 난초 생각이 많을밖에

정녕히 알고말고 요양성 바깥 길에

돌아가는 제비가 오는 기럭 원망하리

 

恰從異域過秋風(흡종이역과춘풍)

佳菊衰蘭思不窮(가국애란사불궁)

定識遼陽城外路(정식료양성외로)

儘敎歸燕怨來鴻(진교귀연원래홍)

 

서쪽 이웃의 이씨 노인에게 장난삼아 바치다

[戲呈西隣李叟

 

백발로 즐거움 없어 자다 말고 길이 탄식하노니

서쪽 이웃 작은 모임에 좋은 자리 부러워라

느릅나무 잎새 떨어져 산집은 고요하고

무를 쪄서 만든 사일의 떡이 향기롭네

좋은 모임은 오늘 밤 달만큼 푸짐할 수 없고

덧없는 인생은 흥취가 소년에게만 있다오

아래께 비바람이 거듭 머리를 돌리어

수척한 국화꽃이 이미 절반이나 상하였네

 

白髮無歡寤歎長(백발무환오탄장)

西隣小集羨淸芳(서린소집선정방)

枌楡葉脫山齋靜(분류엽탈산재정)

蘿菔蒸成社餠香(라복증성사병향)

嘉會莫饒今夜月(가회막요금야월)

浮生只在少年場(부생지재소년장)

向來風雨重回首(향래풍우중회수)

瘦損黃花半已傷(수손황화반이상)

 

 

초가을에 대하여 여덟 가지를 읊다

 

[新秋八詠]

도화세풍(稻花細風)

 

이삭에 실바람 불어라 완전히 기울지 않아

흔들리는 벼 야로의 집 울타리와 가지런한데

담록색 벼 열매는 아직 잎 속에 숨어 있고

 

노르스름한 분가루는 꽃이라 이름하네

늙은이는 기뻐하며 갠 하늘 백로를 바라보고

논매던 손은 석양까지 한가히 조는도다

이곳이 바로 소요하며 날 보내기 좋아라

권세의 길은 위험해라 기아가 있고말고

 

 

細風吹穗未全斜(세풍흡수미전사)

䆉稏平籬野老家(요아평리야노가)

淡綠稃胎猶隱葉(담록부태유은엽)

微黃粉屑强名花(미황분설강명화)

叟心喜悅看晴鷺(수심희열간청로)

耘手閑眠到夕鴉(운수한면도석아)

是處消搖堪遣日(시처소요감견일)

勢途危險有機牙(세도위험유기아)

 

 

 

 

호리미월(瓠籬微月)

 

죽죽 뻗는 박넝쿨에 박 열매 드리웠는데

반 갈고리 초승달이 집 서쪽에 기울었어라

두어 흔적 희미한 달은 막 봉오리 펼쳤는데

한 그물 푸르름엔 울타리를 분별 못 하겠네

문에 나부끼는 나방은 박쥐 날개를 따르고

마당에 앉은 늙은 개는 노인과 짝하였도다

가을이라 술 빚어 술병을 기울이나니

융왕이 월지로 술 마신 것 부럽지 않네그려

 

瓠葉灕灕瓠子垂(호엽리리호자수)

半鉤新月屋西敧(반구신월옥서기)

數痕微白初開萼(수흔미백초개악)

一罩純靑不辨籬(일조순청불변리)

閃戶飛蛾隨蝠翼(섬호비아수복익)

坐庭老犬伴鷄皮(좌정노견반계피)

秋來酒熟傾壺口(추래주숙경호구)

未羨戎王飮月支(미선융왕음월지)

 

초근충음(草根蟲吟)

 

벌레 소리 가을 뜻은 둘 다 흔적이 없고

기와 그림자 비껴 흘러 들집은 어둑한데

선명한 뜨락 모래엔 이슬 방울이 맺히고

움직이는 숲 달은 담장 밑을 비추누나

절로 굳은 절개 있어 경쇠 치길 좋아한 거지

어찌 깊은 원한 있어 은총 못 입은 걸 한하랴

부질없이 인간의 게으른 아낙만 놀래킬 뿐

천손까지 재촉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네

 

 

蟲聲秋意兩無痕(충성추의양무흔)

瓦影斜流野閣昏(와영사류야각혼)

的歷庭沙生露眼(적력정사생로면)

婆娑林月照墻根(파사림월조장근)

自應硜節欣敲磬(자응갱절흔고경)

 

豈有深冤恨覆盆(개유심원한복분)

空向人間驚懶婦(공향인간경뢰부)

不聞催促到天孫(불문최촉도천손)

 

 

 

수초형비(樹梢螢飛)

 

남은 안개비 뚝뚝 떨어져 거친 들 적시어라

반딧불이 빛을 날리며 띠 지붕을 지나네

담 머리에 구름이 짙어 갈 길을 놓쳤다가

뻘밭에 바람이 그치자 새순에 와서 앉아라

풀 사이 요란하게 반짝인 건 상관할 바 아니요

꽃 사이에 한 점 붙어 있는 걸 사랑하나니

서리 오고 낙엽질 때가 참으로 염려되어라

굴도 없고 둥지도 없는 네가 가련쿠나

 

餘霏滴瀝濕荒郊(여비적력습황교)

熠熠飛光度屋茅(습습비광도옥모)

垣角雲沈迷去路(원각운침미거로)

塘坳風定妥新梢(당요풍정타신소)

非關草際千星亂(비관초제천성난)

自愛花間一點膠(자애화간일점교)

霜後飄零眞可念(상후표령진가념)

憐渠無穴又無巢(인거무혈우무소)

 

 

고림창흔(高林漲痕)

 

맑고 푸른 가을 강에 한 상앗대 깊어라

지난 일 어리둥절하여 찾아 낼 길이 없구려

수숫잎은 바람에 한들한들 절벽에 붙어 있고

띠뿌리는 흙을 띤 채 높은 숲에 엉겨 있네

쪽 곧은 평행선 물줄기는 누인 베를 가로놓은 듯

꺾여 가닥진 가지는 거문고줄 걸기에 알맞으리

상전벽해 천지개벽이 잠깐 사이의 일이니

목로 집에서 주머니 돈 아낌없이 털어 마시세

 

秋江湛碧一篙深(추강담벽일호심)

往事如狂不可尋(왕사여광불가심)

薥葉裊風棲峻壁(촉엽뇨풍서준벽)

茅根帶土上穹林(아근대토상궁림)

平行一字疑橫練(평행일자의횡련)

衝折丫枝合掛琴(충절아지합괘금)

靑海黃塵彈指事(청해황진탄지사)

壚頭莫惜倒囊金(로두막석도낭금)

 

 

현애초식(懸崖樵蝕)

 

기러기 줄 고기 비늘처럼 나란히 열을 지어

슬픈 노래 호쾌한 피리로 나루를 함께 이르네

책 뜯어 먹는 좀벌레가 붉은 절벽을 타고 오른 듯

 

뽕잎 갉아먹는 봄 누에가 푸른 비탈을 오른 듯

등 뒤에 붉게 쌓인 건 새 싸리나무이고요

손 끝에 늘어진 푸른 빛은 늙은 소나무 가장이라네

해마다 산간 초막집에 머무는 날이면

맑은 이슬 가을 바람 기후가 변함없구려

 

 

잡초는 말끔하여 머리를 막 깎은 듯하고,

나뭇짐은 때로 반쯤 기운 비녀 같기도 하네

둥그런 흔적은 마치 용린 거울을 대한 듯하고,

두 길은 때로 연미의 가장귀처럼 나누이네

 

 

雁齒魚鱗隊隊排(안치어인대대배)

哀歌豪笛渡頭偕(애가호적도두혜)

齮書小蠹緣丹壁이서소두연단벽)

蝕葉春蠶上翠厓(식엽춘잠상취애)

背後赤攢新楛矢(배후적찬신고시)

指端靑落古松釵(지단청낙고송채)

年年草棲山日(년년초루서산일)

玉露飊金氣不乖(옥로표금기불괴)

 

잡초는 말끔하여 머리를 막 깎은 듯하고,

나뭇짐은 때로 반쯤 기운 비녀 같기도 하네

둥그런 흔적은 마치 용린 거울을 대한 듯하고,

두 길은 때로 연미의 가장귀처럼 나누이네

 

석계완의(石溪浣衣)

 

하늘은 청명하고 해는 중천에 떴는데

모든 집이 빨래하러 일제히 이르러라

열 폭의 옷은 온 바위를 덮어 펼쳐져 있고

수많은 방망이 소리는 온 시내를 부술 듯하네

분주한 붉은 다리는 빈사의 여자종이요

고개 숙인 검은 머리는 장사꾼의 아내로세

황혼에 빨래 통 이고 늦게야 돌아오노라면

사립문 안 홀만한 방에서 아이가 울어대네

 

玉宇澄明日未西(옥우징명일미서)

千家洴澼到來齊(천가병벽도래제)

十綪衣鋪包全石(십천의포포전석)

百杵聲高碎一溪(백저성고쇄일계)

赤脚亂行貧士婢(적각난행빈사비)

鴉鬟低首賈人妻(아양저수가인처)

黃昏戴白携歸晩(황혼대백휴귀만)

蓽戶兒啼小似圭(필호아제소사규)

 

사정쇄망(沙汀曬網)

 

은하수 새벽에 하늘 가득한 별 옮기어라

해 뜬 어부의 집에 버들잎이 푸르른데

발 틈으로는 맑고 푸른 물이 환히 비치고

고기 비린내는 실바람 백사장에 진동하누나

 

희미한 그물 그림자는 지나는 나비를 놀래키고

선명한 모래빛은 반딧불처럼 반짝이어라

낮엔 말리고 밤엔 담그며 세월을 보내노니

이 가운데서 꽤나 심령을 기를 만하네

 

明河曉轉滿天星(명하효전만천성)

日出漁家柳髮靑(일출어가류발청)

麂眼映開澄綠水(궤안영개징록수)

魚腥吹動細風汀(어성취동세풍정)

熹微絲影驚過蝶(희미사영경과접)

的歷沙光閃亂螢(적역사광섬난형)

晝晒宵沈銷歲月(주쇄소침소세월)

此中多小養心靈(차중다소양심령)

 

가을에 해거 도위가 왔으므로 달밤에 앞 강에서 배를 띄우다

[秋日海尉至前江泛月

 

달을 내고 나서 강을 내었으니

하늘의 의사가 분명하도다

금물결 갑자기 번쩍번쩍 빛나니

그 누가 놀라 부르짖지 않으리오

바람 물결이 벽옥을 갈아 내니

비루한 사내가 당장 청수해지네

황제가 처음 배를 만들 때에

작은 배를 응당 먼저 만들어

 

이 경쾌한 물건을 물에 띄우고

용이하게 선경에 당도했으리

왕성엔 십만 가호나 모여 살아

연기가 늘 자욱이 끼어 있으니

아무리 좋은 관현악이 있은들

어떻게 맑은 소리를 낼 수 있으랴

 

 

生月乃生江(생월래생강)

天公意分明(천공의분명)

金波忽瀲灩(금파홀렴염)

何人不叫驚(하인불규경)

風漪碾碧玉(풍의연벽옥)

鄙夫立地淸(비부입지청)

黃帝作舟時(황제작주시)

艓子應先成(접자응선성)

泛此輕快物(범차경쾌물)

容易抵瑤京(용이저요경)

王城十萬家(왕성십만가)

煙火常相縈(연화상상영)

縱有絲與竹(종유사여죽)

何能發淸聲(하능발청성)

 

 

이청풍 복현 이 가을에 찾아와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李淸風 復 鉉 秋日相過之作

 

서루에 홀로 서니 생각이 아득했는데

나루터 석양 아래 나그네가 배를 돌려라

단풍잎 한 숲 속엔 소가 걸어다니고

만 조각 찬 구름 아랜 기러기 울며 날아가네

늙은이 필력 신기하여 흐린 눈 닦고 보고

가을 산은 그림 같아 읊는 어깨 솟구쳐라

도주의 시구를 누가 능히 화답하리요

산음의 이현편에 부끄럽기 그지없네

 

獨立書樓思渺然(독립서루사묘연)

渡頭殘照客回船(도두잔조객회선)

一林黃葉牛行路(일림황엽우행로)

萬片寒雲雁叫天(만편한운안규천)

老筆有神揩病眼(노필유신개병안)

秋山如畫聳吟肩(추산여화용음견)

道州詩句誰能和(도주시구수능화)

慚愧山陰理縣編(참괴산음리현편)

 

구월 이일에 성수가 오다

[九月二日惺叟至

 

단풍잎 국화꽃 아래 홀로 누각 기대 있는데

조용히 노 저어라 황혼에 남주를 들렀네

풀벌레는 산창의 밤에 함께 울어대고

벼논의 게는 멀리 택국의 가을이 생각키네

상락주는 새로 빚어 초하룻날 마셨건마는

유랑하는 행색은 또 남녘으로 발길 돌려라

인생의 떠돌이 생활 원래 정처가 없으니

몇 번이나 협곡에 내린 배를 맞이할런고

 

病葉寒花獨倚樓(병엽한화독의루)

黃昏柔櫓過藍洲(황혼유로과람주)

草蟲同語山窓夕(초충동어산창석)

稻蟹遙憐澤國秋(도해요련택국추)

桑落新醅聊朔飮(상낙신배료삭음)

蓬飄行色又南輈(봉표행색우남주)

人生契闊元無定(인생계활원무정)

能幾重迎下峽舟(능기중영하협주)

 

 

흰구름[白雲]

 

갈바람이 흰구름에 불어

하늘에 가려진 것 하나 없네

이 몸도 갑자기 가벼워져서

훌쩍 날아 세상을 나가고 싶어

 

秋風吹白雲(추풍취백운)

碧落無纖翳(벽낙무섬예)

忽念此身輕(홀념차신경)

飄然思出世(표연사출세)

 

 

오징어 노래[烏鰂魚行]

 

오징어가 물가를 돌다가

갑자기 백로 그림자를 보았는데

새하얗기 한 조각 눈결이요

눈에 빛나기 잔잔한 물과 같아

머리 들고 백로에게 말하기를

그대 뜻을 나는 모르겠네

기왕에 고기 잡아 먹으려면서

무슨 멋으로 청백한 체하는가

 

烏鰂水邊行(오즉수변행)

忽逢白鷺影(홀봉백로영)

皎然一片雪(교연일편설)

炯與水同靜(동여수동정)

擧頭謂白鷺(거두위백로)

子志吾不省(자지오불성)

旣欲得魚噉(기욕득어담)

云何淸節秉(운하청절병)

 

 

내 배에는 언제나 한 주머니 먹물 있어

한 번만 뿜어내도 주위가 다 시커멓기에

고기들 눈이 흐려 지척 분간을 못하고

꼬리 치며 가려 해도 남북을 분간 못하지

 

내가 입으로 삼켜대도 고기들은 깜박 몰라

나는 늘 배부르고 고기는 늘 속는다네

그대는 깃이 너무 희고 털도 너무 유별나서

위 아래가 흰옷인데 누가 의심 안 하겠나

간 곳마다 고운 얼굴 물에 먼저 비치기에

먼 데서 바라보고 고기 모두 피해가니

온종일 서 있은들 그대 무얼 기대하리

다리만 시근시근 배는 늘 고프지

까마귀 찾아가서 그 옷을 빌어 입고

본색일랑 감춰두고 적당하게 살아가소

그리하면 고기를 산더미같이 잡아

암컷도 먹이고 새끼들도 먹일거네

백로가 오징어에게 말하기를

네 말도 일리는 있다마는

하늘이 나에게 결백함을 주었으며

자신이 보기에도 더러운 곳 없는 난데

어찌하여 그 작은 밥통 하나 채우자고

얼굴과 모양을 그렇게야 바꾸겠나

고기가 오면 먹고 달아나면 쫓지 않고

꼿꼿이 서 있으며 천명대로 살 뿐이지

오징어가 화를 내고 먹물을 뿜으면서

멍청하다 너야말로 굶어죽어 마땅하리

 

 

 

 

 

烏鰂水邊行(오즉수변행)

忽逢白鷺影(홀봉백로영)

皎然一片雪(교연일편설)

 

눈에 빛나기 잔잔한 물과 같아 / 炯與水同靜(동여수동정)

머리 들고 백로에게 말하기를 / 擧頭謂白鷺(거두위백로)

그대 뜻을 나는 모르겠네 / 子志吾不省(자지오불성)

기왕에 고기 잡아 먹으려면서 / 旣欲得魚噉(기욕득어담)

무슨 멋으로 청백한 체하는가 / 云何淸節秉(운하청절병)

 

 

我腹常眝一囊墨(아복상저일낭묵)

一吐能令數丈黑(일토능령수장흑)

魚目昏昏咫尺迷(어목혼혼지척미)

掉尾欲往忘南北(도미욕왕망남북)

我開口呑魚不覺(아개구탄어불각)

我腹常飽魚常惑(아복상포어상혹)

子羽太潔毛太奇(자우태결모태기)

縞衣素裳誰不疑(호의소상수불의)

行處玉貌先照水(행처옥모선조수)

魚皆遠望謹避之(어개원망근피지)

子終日立將何待(자종일입장하대)

子脛但酸腸常飢(자경단산장상기)

子見烏鬼乞其羽(자견오귀걸기우)

和光合汙從便宜(화광합오종편의)

然後得魚如陵阜(연후득어여능부)

啗子之雌與子兒(담자지자여자아)

白鷺謂烏鰂(백로위오즉)

汝言亦有理(여언역유리)

天旣賦予以潔白(천기부여이결백)

予亦自視無塵滓(여역자시무진재)

豈爲充玆一寸嗉(기위충현일촌소)

變易形貌乃如是(변이형모래여시)

魚來則食去不追(어래칙식거불추)

我惟直立天命俟(아유직립천명사)

烏鰂含墨噀且嗔(오즉함묵손차진)

愚哉汝鷺當餓死(우재여로당아사)

 

 

 

귀양살이에서의 여덟 가지 취미생활[遷居八趣] 금호자고(金壺字考), 천인(遷人)은 적객(謫客)을 이른 것이라고 하였음

 

 

서풍은 집을 지나서 오고

동풍은 나를 지나서 가네

바람 오는 소리만 들릴 뿐

바람 이는 곳은 볼 수가 없어

 

西風過家來(서풍과가래)

東風過我去(동풍과아거)

只聞風來聲(지뭉풍래성)

不見風起處불견풍기처)

위는 바람을 읊은 것[吟風](음풍)

밝은 달이 동해에 떠오르면

금물결이 만리를 일렁이는데

어찌하여 강 위에 뜬 달은

적막하게 그 강물만 비춰줄까

 

明月出東溟(명월출동명)

金波盪萬里(금파탕만리)

何如江上月(하여강상월)

寂寞照江水(적막조강수)

 

 

 

위는 달을 노래한 것[弄月](롱월)

 

뜻이 있어 구름을 보는 것도 아니며

뜻없이 구름을 보는 것도 아니라네

뜻이야 있거나 없거나 간에

석양이 되도록 바라본다오

 

有意不看雲(유의불간운)

無意不看雲(무의불간운)

聊將有無意(료장유무의)

留眼到斜曛(유안도사훈)

 

 

 

위는 구름을 보는 것[看雲](간운)

 

고향이 예서 팔백 리나 되어

개거나 비오거나 그게 그거로되

갠 날은 왠지 가깝다 싶고

비오는 날은 더 멀게만 느껴진다

 

家鄕八百里(가향팔백리)

晴雨無增損(청우무증손)

晴日思如近(청일사여근)

雨日思如遠(우일사여원)

 

 

위는 비를 대했을 때[對雨](대우)

 

 

북극이 땅 위로 솟은 것이

천리에서 사도가 틀린다는데

그래도 망향대에 올라

서글픈 심사로 해 지도록 있다

 

北極之出地(북극지출지)

千里差四度(천리차사도)

猶登望鄕臺유등망향대)

怊悵至日暮(초창지일모)

 

 

위는 산에 오르는 것[登山]

 

흐르는 물 저절로 흘러가며

가도 가도 막힘이 없누나

생각하면 천지가 창조될 때

산이 무너져 사태가 났던가보지

 

流水自然去(유수자연거)

活活無阻礙(활활무조애)

憶得鴻荒初(억득홍황초)

丘陵有崩汰(구능유붕태)

 

위는 물에 갔을 때[臨水]

 

백 가지 꽃 다 꺾어서 봐도

우리집 꽃만은 다 못하네

그는 꽃이 달라서가 아니라

다만 우리집에 있기 때문이야

 

折取百花看(절취백화간)

不如吾家花(불여오가화)

也非花品別(야비화품별)

秪是在吾家(지시재오가)

 

 

 

 

위는 꽃을 찾는 것[訪花]

 

실버들 천 가지 만 가지

가지마다 모두가 청춘이로세

그 가지들 봄비에 젖으면

가지가지 사람 괴롭게 만든다네

위는 버들을 찾는 것[隨柳]

 

 

楊柳千萬絲(양류천만사)

絲絲得靑春(사사득청춘)

絲絲霑好雨(사사점호우)

絲絲惱殺人(사사뇌살인)

 

 

위는 버들을 찾는 것[隨柳]

 

국화 시절에 혜보무구와 함께 죽란사에서 모임을 갖다

[菊花同徯父无咎竹欄宴集

 

옛날의 국화주를

금년에는 조금만 기울이네

남쪽 언덕에서는 예를 익히고

동쪽 산협으로 밭 갈러 왔다오

성중의 풍류 맛은 떨어지고

산 속이래야 기상이 원만하지

국화 향기 아직은 남아 있어도

계절은 이미 겨울로 가는구나

 

舊日黃花酒

今年只細傾(금년지세경)

南皐猶讀禮(남고유독예)

東峽已歸耕(동협이귀경)

城邑風流減(성읍풍류감)

山林氣象贏(산림기상영)

幽香雖未歇유향수미헐)

亦旣歲崢嶸(역기세쟁영)

 

 

꽃 아래서 혼자 마시며 정언 김상우를 생각하며 시를 써 부치다[花下獨酌憶金正言 商雨 簡寄

 

국화 아래서 혼자 잔질하며

머나먼 곳 사람 생각하네

궁벽한 땅 누구와 함께 있을까

해 저물어 국화 너를 가까이하리

살짝 취해 시름 잠시 잊었더니

밝은 가지 새롭게 눈에 비치네

전해 듣기에 많은 백발들이

쓸쓸히 강가에 가 누웠다네

 

 

獨酌黃花下(독작황화하)

迢迢憶遠人(초초억원인)

地偏誰共住(지편수공주)

歲暮汝爲親(세모여위친)

薄醉排愁暫(박취배수잠)

明枝照眼新(명지조안신)

傳聞多白髮(전문다백발)

寥落臥江濱(요낙와강빈)

 

 

꽃 아래서 홀로 잔질하다[花下獨酌

 

오모 차림으로 갈바람 속에서

국화 앞에 쓸쓸히 앉아 있네

그윽이 풍기는 너무 예쁜 색이

고적한 사람 위로를 해 준다

빛나는 태양 아래 누렇게 널려 있고

담담한 석양 놀에 분홍빛 간들거리네

석공은 지금 보이지 않고

맑은 그림자 제멋대로 누워 있구나

 

 

烏帽秋風裏(오모추풍리)

蕭然坐菊花(소연좌국화)

絶憐幽艶色(절연유염색)

能慰寂寥家(능위적요가)

黃擺輝輝日(황파휘휘일)

紅吹澹澹霞(홍취담담하)

石公今不見(석공금불견)

淸影任橫斜(청영임횡사)

 

음주(飮酒

 

국미는 취하게 만들어 좋고

운화는 안기를 비스듬히 하지

혼자서 천 년 전 벗을 생각하고

권세 있는 집안엔 가지 않아

만물 형태도 변함이 없겠으랴만

어이하여 우리 인생 한계가 있을까

뜰에 옮겨 가는 해 그림자를 보게

꽃 그림자 몇 가지로나 갈라지는가

 

좋은 말들 앞 다투어 들어오고

고관들 와 집에 가득하면

의대가 달아오를까 걱정되어

짐짓 술집 곁으로 간다네

마셔도 끄떡없어야 비범한 자이지만

고결한 자가 방탕해지기도 하지

자기 만족이 그저 제일이니

우묵한 잔이라도 웃질랑 말게

 

 

 

 

麴米醺皆好(국미훈개호)

雲和抱更斜(운화포경사)

獨思千載友(독사천재우)

不向五侯家(불향오후가)

物態寧無變(물태영무변)

吾生奈有涯(오생내유애)

閒看庭日轉(한간정일전)

花影幾枝叉(화영기지차)

 

細馬爭門入(세마쟁문입)

豐貂滿院來(풍초만원래)

直愁衣帶熱(직수의대열)

故傍酒家廻(고방주가회)

牢落聊全性(로낙료전성)

嶔崎任散才(금기임산재)

所欣惟自適(소흔유자적)

莫笑坳堂杯(막소요당배)

 

자온대 밑에서 달밤에 뱃놀이를 즐기며

[自溫臺下汎月

 

이처럼 맑디맑은 강 위의 달을

인간 중에 그 뉘와 구경을 할꼬

푸른 하늘 너무도 아름다운데

가을 강물 똑같이 어우러졌네

오늘밤에 호방한 놀이 이루어

타향에서 잠시 잠깐 즐거움 누리네

끼륵끼륵 바다로 가는 기러기

어인 일로 구름 끝 지나 가나

 

江月淸如此(강월청여차)

人間誰與看(인간수여간)

碧天容宛轉(벽천용완전)

秋水共闌干(추수공란간)

廓落成今夜(곽낙성금야)

飄零得暫歡표령득잠환)

一聲歸海雁(일성귀해안)

何事度雲端하사도운단)

 

 

산중에서 지은 절구[山中絶句]

7. 8 선시

바다 하늘 서릿 기운 산 어귀에 들어오니

자줏빛에 분홍빛 비단폭이 어우러져

북한산의 백운대만 좋다고 말을 마소

그곳 풍경 오로지 고향이 가까울 따름

 

海天霜氣入山門(해천산기입산문)

紫錦紅羅點綴繁(자금홍라점철번)

莫說白雲臺上好(막설백운대상호)

風光秖是近鄕園(풍광지시근향원)

 

고마 해가 지자 저녁 조수 밀려드니

갈바람에 돛단배 쌍쌍이 돌아오네

너희들은 한양성 그곳에서 왔을 텐데

요사이 국화꽃이 몇 가지나 피었더뇨

 

姑麻日落暮潮來(고마일낙모조래)

蒲帆秋風兩兩廻(포범추풍양양회)

爾自漢陽城下發(이자한양성외발)

菊花能見幾枝開(국화능견기지개)

 

 

백마강 물줄기는 하늘가에 비꼈는데

부여라 옛 나라에 저녁 연기 깔렸네

눈을 들어 천여 리 산하를 바라보니

비바람 치던 삼한 전쟁이 사라졌네

 

白馬江流天畔橫백마강류천반횡)

扶餘故國暮煙平(부여고국모연평)

山河擧目千餘里(산하거목천여리)

風雨三韓小戰爭(풍우삼한소전쟁) - << 추사 김정희 >> -

 

 

가을이 되어[秋至]

 

작은 시내 시든 버들 산들바람 일어나니

서재의 새벽꿈에 가을 기운 들어오네

흘러가는 세월은 어찌할 도리 없거니

빈궁 영달 벗어나 내 취향을 따르리

술 끊으란 아내 요구 술 한층 더 마시고

시 삼가란 벗 충고 시 구상을 더 한다네

세상만사 생각하면 모든 것이 환상이니

도성문 밖 저 동쪽에 푸른 종산 드높다네

 

 

小溪衰柳有輕風(소계세류유경풍)

秋入書樓曉夢中(추입서루효몽중)

無可奈何徂歲月(무가내하조세월)

從吾所好外窮通(종오소호외궁통)

妻要止酒彌崇飮(처요지주미숭음)

友戒耽詩愈刻工(우계침시유각공)

萬事商量都是幻(만사상량도시환)

鍾山靑出國門東(종산청출국문동)

 

가을밤 남고와 함께

[秋夜同南皐]

 

덧없는 세월 속에 반백 머리 안타까워

가을 회포 설레이지 않는 날이 없다오

돌길 봉한 구름에 세 산이 아련하고

출렁이는 은하수 오경밤이 깊어간다

은어 태운 학사는 오히려 세속 그리고

말을 탔던 산공은 수고로움 마다했지

 

세밑에 외로이 읊는 시름을 뉘게 말하랴

차가운 잔 홀로 잡아 수고에게 권한다네

이때 남고(南皐)가 수고라고 자칭하였다.

 

 

荏苒流光惜二毛(임염유광석이모)

秋懷無日不蕭騷(추회무일불소소)

雲封石路三山逈(운봉석로삼산형)

風動銀河五夜高(풍동은하오야고)

學士焚魚猶戀俗(학사분어유연속)

山公騎馬枉辭勞(산공기마왕사노)

孤吟歲暮愁誰語(고음세모수수어)

獨把寒杯勸瘦皐(독파한배권수고)

 

 

단풍을 읊다. 절구[詠紅葉絶句]

 

기울어진 암벽이 중천에 높이 솟아

날다람쥐 건너려도 의지할 게 전혀 없네

어느 누가 빨간 연지 듬뿍 묻은 붓으로

서시의 눈썹 가에 아름답게 찍어놨나

 

 

側壁欹嵒到半天(측벽의암도반천)

蒼鼯欲度絶攀緣(창오욕도절반연)

誰將颯沓臙脂筆(수장삽답연지필)

細點西施翠黛邊(세점서시취대변)

 

 

 

크고 넓은 바윗돌 구름 기운 배었는데 /

뻗은 덩굴 그윽하고 이끼 자라 두툼하다 /

한 장의 붉은 일산 밑에 앉아 즐기노니 /

석양에 빛난 빛이 사람 옷에 가득하네 /

 

盤陀老石飽陰霏(반타노석포음비)

風蔓幽幽土蘚肥(풍만유유토선비)

坐愛一張紅傘子(좌애일장홍산자)

夕陽輝映滿人衣(석양휘영만인의)

 

 

윗가지는 붉어 곱고 아랫가지 누르스름 /

병중의 단장인가 누런 모습 쓸쓸하다 /

하늘이 단비 이슬 아낀 것이 아니라 /

약한 가지 모진 풍상 견디지를 못해서지 /

 

上枝紅艶下枝黃(상지홍염하지황)

黃暈蕭條病裏妝(황운소조병리장)

不是天心慳雨露(불시천심간우로)

無緣弱質冒風霜(무연약질창풍상)

 

 

 

 

 

 

해묵은 도랑가에 시들어진 가을풀 /

외론 꽃가지 하나 사랑겹기 그지없네 /

여보게들 이걸 꺾어 운대 향해 가지 마소 /

자줏빛에 붉은 비단 눈앞에 널렸거니 /

둥글넓적 나비 나래 뾰족한 제비 꼬리 /

온갖 모양 가위로 섬세하게 오려낸 듯 /

잎사귀마다 이처럼 기묘함을 이뤘으나 /

일만 섬 붉은 서리로 어찌하며 물들일꼬 /

 

 

秋草離離古澗邊(수초이리고간변)

一枝孤艶更堪憐(일지고염갱감련)

且休折向雲臺去(차휴절향운대거)

紫錦紅羅滿眼前(자금홍라만안전)

蝶翅翩燕尾尖(접시편선연미첨)

交刀剪出巧纖纖(교도전출교섬섬)

雖令葉葉成如許(수령엽엽성여허)

那得紅霜萬斛霑나득홍상만곡점)

 

 

 

가을비가 내리는 날 남고를 기다려도 오지 않으므로 쪽지를 보내 초청하였다

[秋雨 期南皐不至 簡邀]

 

 

저번에 풍우칠 때 만나잔 약속

다정하게 지키어 어기지 마소

자주자주 못 만남 또한 아는데

이제 또 비 뿌리니 어찌 하리까

못가의 집 차가운 꽃이 고요코

시냇 다리 낙엽이 흩날리누나

다행히도 찾아온 손님이 없어

작은 서실 단정히 앉아 있다오

 

夙昔期風雨(숙석기풍우)

殷勤戒莫違(은근계막위)

亦知無數數(역지무수수)

其奈又霏霏(기내우비비)

池館寒花靜(지관한화정)

溪橋落葉飛(개교낙엽비)

幸稀車馬客(행희차마객)

端坐小書幃(단좌소서위)

 

 

 

 

 

 

 

 

 

가을 마음[秋心]

 

부슬부슬 산중 비가 차가운 못에 뿌리니

가을 풀 가을꽃이 작은 담에 누웠구나

설령 푸른 하늘이 깨끗하게 갠다 해도

시든 화초 그 어찌 오경 서리 대항하랴

 

우물가 차가운 연기 푸른 오동 감쌌는데

두레박 소리 끊기자 우는 까마귀 지나간다

해가 지고 별 나올 적 천금이나 다름없는

황혼 무렵 한 시각이 사그라짐 느끼겠네

 

우수수 가을바람 버들가지 불어대니

가지마다 잎 떨어져 춤사위가 볼품없네

귀공자여 찾아와서 말고삐 매지 마소

병든 허리 자줏빛의 고삐가 부끄러워

 

곱디 고운 월계화 한 떨기 꽃나무가

한쪽에는 떨어지고 한쪽에는 싸늘하다

생각난다 지난날 봄바람에 좋게 피어

자줏빛에 붉은빛을 우리 함께 보았지

 

산골 석류 옹골차고 해변 석류 둥글둥글

바람에 가지 흔들려 편안치를 못하구나

어이 애써 시고 쓴 물속에 가득 머금고서

요염하게 붉은 뺨 사람 눈길 끄는지

霏霏山雨落寒塘(비비산우낙한당)

秋草秋花臥小牆(추초추화와소장)

縱使碧天澄霽了(종사벽천징제료)

殘芳那抵五更霜(잔방나지오경상)

 

金井寒煙鎖碧梧(금정한연쇄벽오)

轆轤聲斷度啼烏(록로성단도제오)

偏知日沒星生際(편지일몰성생제)

銷得黃昏一刻殊(소득황혼일각수)

 

秋風摵摵柳彊彊(추풍색색류강강)

拂盡千條舞不長(불진천조무불장)

莫敎王孫來繫馬(막교왕손래계마)

病腰羞殺紫絲韁(병요수살자사강)

 

月季嬋娟一瓣團(월계선연판단)

半邊虧落半邊寒(반변휴낙반변한)

憶曾好發春風裏(억증호발춘풍리)

時紫時紅許共看(시자시홍허공간)

 

산골 석류 옹골차고 해변 석류 둥글둥글 /

바람에 가지 흔들려 편안치를 못하구나 /

어이 애써 시고 쓴 물속에 가득 머금고서 /

요염하게 붉은 뺨 사람 눈길 끄는지 /

山榴磅礴海榴團(산류방박해류단)

搖蕩風枝耐却安(요탕풍지내각안)

何若滿含酸苦汁(하약만함산고즙)

巧將紅頰媚人看(교장홍협미인간)

 

가을바람을 주제로 두보의 운을 차한 여덟 수

[秋風八首次杜韻

 

온 누리의 구멍에 일제히 이는 바람

높은 하늘 휘몰아쳐 가을 음기 밀어내네

일만 골짝 찬 구름에 교룡이 조화부리고

일천 숲 안개비에 제비 참새 자취 없어

이슬 받던 손바닥 푸른 연잎 꺾이었고

서리 견딘 굳은 마음 붉은 파초 끊어졌구나

꽃다운 초목 점차로 세밑으로 달려가니

시름 생각 어지러워 거문고를 의지하네

 

 

衆竅齊吹雜嘯吟(중규제취잡소음)

長天捭闔盪秋陰(천장벽합탕추음)

寒雲萬壑蛟螭變(한운만학교리변)

煙雨千林燕雀深(연우천림연작심)

綠藕摧垂承露掌(록우최수승로장)

紅焦鬪斷耐霜心(홍초투단내상심)

冉冉群芳趨歲暮(염염군방추세모)

幽愁撩亂倚枯琴(유수료난의고금)

서산 위의 누런 구름 저녁 까마귀 일어날 제

시내 건넌 차가운 비 모래알이 날리누나

음산한 첩첩 산중 외론 나무 흐릿하고

겹성에 밥짓는 연기 집집마다 싸늘하다

지붕에 매인 늙은 오이 시든 덩굴 남았고

섬돌에 덮인 연한 이끼 꽃무늬가 바래졌네

창가에 홀로 취한 술 무엇으로 해소할꼬

향로 연기 사라질 때 저녁 차를 맛본다오

 

西嶽黃雲起暮鴉(서악황운기오아)

度溪寒雨定飛沙(도계한우정비사)

陰霏疊嶂迷孤樹(음비첩장미고수)

煙火重城冷萬家(연화중성냉만가)

縋屋老瓜餘敗蔓추옥노과여패만)

緣階弱蘚洗團花(연계약선세단화)

當牕獨醉憑誰解(당창독취빙수해)

金鴨銷時點晩茶(금압소시점만다)

 

 

 

 

 

 

 

 

 

운길산 산기슭에 누런 잎이 흩날리니

소양강 이북에서 철 이른 기럭 돌아오네

낮은 무논에 자란 벼 이제 붉게 익었고

팔딱 뛰는 냇물 고기 희뿌옇게 살쪘구나

장한은 진정으로 순채 생각 이뤘거니

전군 어찌 반드시 마의를 저버리랴

세속에서 물러남은 실로 좋은 일이건만

절반은 남에 의해 절반은 자신이 어겨

 

 

雲吉山前黃葉飛(운고산전황엽비)

昭陽江北早鴻歸(소양강북조홍귀)

汚邪水稻紅初熟(오사수도홍초숙)

撥剌溪魚白正肥(발랄계어백정비)

張翰眞成憶蓴菜(장한진성억순체)

錢君豈必負麻衣(전군기필부마의)

世間休退誠能事(세간휴퇴성능사)

半被人牽半自違(반피인견반자위)

 

 

 

 

 

 

 

 

운길산 산기슭에 누런 잎이 흩날리니

소양강 이북에서 철 이른 기럭 돌아오네

낮은 무논에 자란 벼 이제 붉게 익었고

팔딱 뛰는 냇물 고기 희뿌옇게 살쪘구나

장한은 진정으로 순채 생각 이뤘거니

전군 어찌 반드시 마의를 저버리랴

세속에서 물러남은 실로 좋은 일이건만

절반은 남에 의해 절반은 자신이 어겨

 

 

雲吉山前黃葉飛(운고산전황엽비)

昭陽江北早鴻歸(소양강북조홍귀)

汚邪水稻紅初熟(오사수도홍초숙)

撥剌溪魚白正肥(발랄계어백정비)

張翰眞成憶蓴菜(장한진성억순체)

錢君豈必負麻衣(전군기필부마의)

世間休退誠能事(세간휴퇴성능사)

半被人牽半自違(반피인견반자위)

 

 

瀟洒江湖日月遲(소선강호일월지)

紅牌一面誤心期(홍패일면오심기)

蛇蚹避景終誰待(사부피경종수대)

蚊睫營巢也自危(문첩영소야자위)

歲晏觚稜雲裏逈(세안고능운리형)

身閑簾幕雨中垂(신한렴막우중수)

唯應季子無長策(수응계자무장책)

不信榮名解救飢(불신영명해구기)

 

瀟洒江湖日月遲(소선강호일월지)

紅牌一面誤心期(홍패일면오심기)

蛇蚹避景終誰待(사부피경종수대)

蚊睫營巢也自危(문첩영소야자위)

歲晏觚稜雲裏逈(세안고능운리형)

身閑簾幕雨中垂(신한렴막우중수)

唯應季子無長策(수응계자무장책)

不信榮名解救飢(불신영명해구기)

 

드높은 산 큰 도읍 철관이 웅장한데

오문이라 대궐 길 구산에 곧장 닿았네

푸른 하늘 돌기둥은 무지개 타 달아나고

넓은 바다 유람선은 달빛 몰아 돌아온다

기중가가 들어오니 보는 자가 놀라고

유형차가 굴러가자 일꾼들이 한가롭네

지 난 봄에 길을 가다 중령포를 지났는데

삼나무며 전나무들 울창하여 올라볼 만

 

華嶽名都壯鐵關(화악명도철관)

午門輦路直緱山(오문련로직구산)

靑天石柱騎虹迸(청천석주기홍병)

滄海樓船駕月還(창해루선가월환)

起重架來觀者愕(기중가래관자악)

游衡車轉役夫閒(유형차전역부한)

前春路過中泠浦(전춘로과중령포)

杉檜森森尙可攀(삼회삼삼상가반)

 

 

삼일포란 이름난 호수 십주속에 들었는데

머언 옛날 영랑이 술랑 짝해 노닐었지

깊은 못의 신룡은 요초 갈기 서투르고 /

둥지의 학 놀잇배 떠가는 소리 들을 뿐 /

상전 벽해 도리어 눈앞의 일이라면 /

백제 소언 그 또한 풍류가 아니었나 /

신선이 벽곡한 일 뉘라서 믿을 건고 /

가을철에 백 두락의 메벼를 거둔다네 /

 

 

三日名湖列十洲(삼일명호열십주)

永郞云伴述郞游(영랑운반술랑유)

湫龍不慣耕瑤草(추용불관경요초)

巢鶴唯聞駕綵舟(소학유문가채주)

碧海桑田還卽事(벽해상전환즉사)

白隄蘇堰也風流(백제소언야풍류)

神仙辟穀能誰信(신선벽곡능수신)

秔稻秋天百頃收(갱도추천백경수)

 

 

태액지 동쪽에 홍화문이 드높은데 /

겹지붕의 복도가 안으로 서로 통했구나 /

들창문에 동방 햇살 거꾸로 내리쏘고 /

날쌘 바람 버드나무 살랑살랑 불어오네 /

당 나라 때의 사신은 모두 책부 관리였고 /

한 나라 때의 훈척은 전부 원수들이었지 /

건양문 서쪽 가에 대궐문이 열렸는데 /

오색 안개 그 안에 옥서 은대 들어 있네 /

 

 

弘化門臨太液東(홍화문임태액동)

橑棼閣道內相通(로분각도내상통)

罘罳倒射蒼龍日(부시도시창용일)

楊柳徐吹駿馬風(양유서취준마풍)

唐代詞臣皆策府(당대사신개책부)

漢家勳戚摠元戎(한가훈척총원융)

建陽西畔開閶闔(건양서반개창합)

玉署銀臺彩靄中(옥서은대채애)

 

오경밤 촛불 아래 시 쓰기 게으른데

꼬끼오 어린 숫닭 새벽 소식 더디네

맑고 찬 가을 기운 야윈 뼈를 침범하고

쓸쓸할사 취한 시름 눈썹 위에 오르누나

해국이라 문장이 정교해도 진부하고

세속길에 명예 규범 깨끗해도 위태롭네

일만 가닥 얽힌 생각 그 모두 허무할 뿐

아무쪼록 헌호따라 흉금을 펼쳐야지

 

五更殘燭懶題詩(오경잔촉뢰제시)

腷膊雛鷄報曉遲(픽박추계보효지)

秋氣澄寒侵瘦骨(추기징한침수골)

醉愁牢落上疏眉(취수로낙상소미)

文章海國工猶朽(문장해국공유후)

名撿塵途潔亦危(명검진도결역위)

萬緖縈紆皆妄耳(만서영우개망이)

須從軒昊展心期(수종헌호전심기)

 

가을밤에 지은 절구[秋夜絶句] 남고(南皐)와 함께 지었다

 

아침 구름 시꺼멓고 저녁 구름 누런데

짙은 그늘 깊은 골짝 온 숲이 쓸쓸하다

까막까치 깃든 뒤에 차가운 못 지나가며

슬피 우는 기럭소리 차마 듣지 못하겠네

 

朝雲揫黑暮雲黃(조운추흑모운황)

脩壑層陰萬木荒(수학층음만목황)

叵耐鵲棲鴉定後(파내작서아정후)

一聲哀雁度寒塘(일성애안도한당)

 

 

 

 

석류 열매 흔들려 종려 잎을 때리는데

가을비 가을바람 작은 주렴 침범하네

깊숙한 방 단정하게 숙녀처럼 앉았으니

한 가닥 향로 연기 가녀리게 피어난다

 

榴顋搖蕩打棕髥(류시요탕타종염)

秋雨秋風鬪小簾(추우추풍투소렴)

端坐曲房如靜女(단좌곡방여정여)

一爐香縷上纖纖(일로향루상섬섬)

 

 

서울거리 삼경 밤 시간은 깊어가는데

징소리 낭랑하고 북소리 낭랑하며

문밖 길에 우르릉 수레가 굴러가니

서리 맞은 신발 차림 높은 관리 달려가네

 

紫陌三更漏報闌(자맥삼경루보란)

金聲鏗戛鼓聲寒(금성갱알고성한)

闐闐轍跡門前路(전전철적문전로)

一對霜靴走達官(일대상화주달관)

 

 

 

 

가을밤[秋夜]

 

사랑스런 임천에 정이 있는데

문 밖에는 오가는 거마의 소리

대난간을 열심히 엮어 맞추나

꽃나무 잎 시들어 앙상하기만

찬 이슬 가지마다 빛깔 다른데

가을벌레 저마다 울음을 우네

혼자 걷다 다시금 혼자 앉을 제

밝은 달이 그윽한 흉금에 비춰

 

情結林泉愛(정결임천애)

門臨車馬音(문임차마음)

竹欄勤點綴(죽란근점철)

花木强蕭森(화목강소삼)

涼露枝枝色(양로지지색)

秋蟲喙喙吟(추충훼훼음)

獨行還獨坐(독행환독좌)

明月照幽襟(명월조유금)

 

온천에서 느낌을 쓰다[溫泉志感]

 

경진년 과거사를 또렷하게도

유민들이 이제껏 얘기를 하네

복성이 세자 행차 따라왔는데

한밤중 높고 맑은 노래 들렸네

쌀 주어 망가진 밭 보상하였고

조세 감면 장마의 피해 위문해

내린 분부 사신이 따르지 않아

울분에 찬 백성들 마음 보겠네

 

歷歷庚辰事(역력경진사)

遺黎說至今(유례설지금)

福星隨鶴馭(복성수학어)

中夜聽龍吟(중야청용음)

賜米酬殘圃(사미수잔포)

蠲租問苦霖(견조문고림)

使臣違敎令(사신위고령)

扼見群心(액완견군심)

 

저물녘 수원에 당도하여[暮次水原]

 

살랑바람 길손 길 날이 저문데

관가 누각 단청한 기둥이 밝네

지난날 마을 주막 길이 아련코

새 진영 고각소리 웅장하여라

객창의 잠자리에 성주 그리고

편히 사는 시골의 백성 부러워

주구를 가까이서 우러러보니

승냥이 범 어찌 감히 밟을까보냐

 

客路輕風暮((객로경풍모)

官樓畫棟明(관루화동명)

閭閻迷舊店(려염미구점)

鼓角壯新營(고각장신영)

旅宿懷明主(여숙회명주)

安居羨野氓(안거선야맹)

珠丘瞻密邇(주구첨밀이)

豺虎敢縱橫(시호감종횡)

 

 

가을 문암산장에 노닐며-[秋日游門巖山莊

 

필마라 간단한 차림 한양을 벗어나니

푸른 산 붉은 나무 또다시 선향이로세

이 걸음은 태반이 천석 구경 위한 거라

본디 마음 벼베기 때문만이 아니라네

묵객이라 풍류는 활달한 게 본색이니

야인이 속이는 것쯤 아랑곳 아니하네

금년에도 전원의 언약 이미 어긋나니

한마당의 꿈 언제나 대궐에 감돈다네

 

匹馬輕裝出漢陽(필마경장출한양)

靑山紅樹又仙鄕(청산홍수우선향)

此行强半爲泉石(차행강반위천석)

本意不全謀稻粱(본의불전모도량)

墨客風流須曠達(묵객풍류수광달)

野人欺蔽任毫芒(야인기불임모망)=(초두+)=풍성할불.

今年已敗田園約(금년이패전원약)

一夢尋常繞肅章(일몽심상요숙장)

 

가을에 문암산장에서 지은 잡시-[秋日門巖山莊雜詩

 

서까래 두서너 개 호젓한 초가집에

뜰에 가득 향그런 벼 흐뭇하게 바라보니

동방삭의 장안 쌀이 절로 생각나는구나

구양수의 영미 전원 그것과는 어떨는지

 

茅棟蕭條只數椽(모동소조지수연)

恰看香稻滿階前(흡간향도만계전)

試思方朔長安米(시사방삭장안미)

爭似歐陽穎尾田(쟁사구양영미전)

 

골짝 깊고 샘물 차서 기온 아니 고른데

구월이라 동풍이 너무도 무정하네

금년에 찰벼 심어 후회가 막심하니

내년에는 아무쪼록 메벼를 심어야지

 

谷深泉寒氣未平(곡심천한기미평)

東風九月太無情(동풍구월태무정)

今年悔種緗毛稬(금년회종상모나)

來歲須栽坼背秔(래세수재탁배갱)

 

산속이라 풍경은 늦가을에 접어들어

온 가족 빠짐없이 돌밭머리 나와 있네

볕에 말린 목화는 아이에게 줍게 하고

서리 맞은 콩깍지는 할멈 시켜 거둔다네

 

 

山裏煙光屬晩秋(산리연광속망추)

全家都在石田頭(전가도재석전두)

棉花日晒敎兒拾(목화일쇄교아습)

豆莢霜凋倩媼收(두협상조청온수)

 

 

서쪽으로 오 리쯤에 어시장과 서로 통해

늦가을 강어귀에 장삿배가 들어오네

아침상의 새우국 이상하다 하였더니

어젯밤 숯을 팔고 돌아왔다 이르네

 

水市西通五里纔(수시서통오리재)

高秋穴口賈船來(고추혈구가선래)

朝盤怪有紅鰕漿(조반괴유홍하장)

聞道前宵賣炭廻(문도전소매탄회)

 

 

나무꾼이 앞산에서 노루 잡아 돌아오니

온 마을 환호소리 산중 사립 술렁이네

흙화로에 구워내고 파 마늘 곁들이니

농가에선 고기맛 못 본다고 뉘 말하리

 

樵叟前林打鹿歸(초수전림타록귀)

一村讙賀動山扉(일촌훤하동산비)

地爐燒炙兼蔥蒜(지려소자겸총산)

誰道農家未齧肥(수도농가미설비)

 

 

 

 

청제봉 북쪽으론 칠원과 접해 있어

아름다운 산수가 무릉도원 흡사한데

금년에는 쌀독 빌까 걱정할 게 없으렷다

팔구 뿌리 인삼을 이제 방금 캐냈으니

 

靑帝峯陰接潻園(청제봉음접칠원)

溪山恰是武陵源(계산흡시무능원)

今年不患罌無粟(금년불환앵무속)

新採人蔘八九根(신체인삼팔구근)

 

 

삼경 밤 울타리에 사나운 범 들어와

우레 같은 한 소리에 온 산중이 고요터니

소년 하나 사립문을 밀치고 빠져나가

시내까지 쫓아가서 개 빼앗아 돌아오네

 

籬落三更猛虎來(리낙삼경맹호래)

萬山寥寂一聲雷(만산요적일성뢰)

少年獨出柴門去(소년독출자문거)

趕到前溪取狗廻(간도전계취구회)

 

 

 

석문이라 동쪽에는 절간이 그윽한데

산중 잎 서리 맞아 일만 나무 빨갛네

어찌하면 지둔같은 고승을 한 번 만나

시냇물과 구름 속을 나귀 타고 왕래할꼬

 

禪房窈窕石門東(선방요조석문동)

山葉經霜萬樹紅(산엽경상만수홍)

安得僧如支遁者(안득승려지둔자)

騎驢來往水雲中(기려래왕수운중)

 

 

 

가을날 회포를 적다[秋日書懷]

 

 

동녘으로 향해가면 우리 집 수운향이라 / 吾家東指水雲鄕(오가동지수운향)

생각하니 가을이면 즐거운 일 많았었지 / 細憶秋來樂事長(세억추래락사장)

밤밭에 바람 불 제 붉은 열매 떨어지고 / 風度栗園朱果落(풍도율원주과낙)

어촌에 달이 뜰 제 자줏빛 게 향그로웠지 / 月臨漁港紫螯香(월임어항자오향)

마을길 잠시 걸어도 모두가 시의 소재 / 乍行籬塢皆詩料(사행이오개시료)

구태여 돈 들여서 술 마실 필요 없어 / 不費銀錢有酒觴(불비은전유주상)

객지 생활 여러 해에 돌아가지 못하고 / 旅泊經年歸未得(여박경년귀미득)

고향 편지 올 때마다 남몰래 마음 아프네 / 每逢書札暗魂傷(매봉서찰암혼상)

 

 

 

가을날 배를 타고 두모포로 나가다-[秋日乘舟出豆毛浦

 

 

지는 햇살 강촌을 내리비칠 때 / 落日臨江屋(낙일임강옥)

맑은 가을 두메골 올라가는 배 / 淸秋上峽船(청추상협선)

돛을 높이 달고서 가지 못하고 / 不成揚帆過(불성양범과)

쓸쓸히 등불 벗해 잠을 이뤘네 / 聊作伴燈眠(료작반등안)

산골짜기 은거할 높은 뜻 지녀 / 丘壑懷高志(구학회고지)

시서 익힌 젊은 날 애석할 따름 / 詩書惜壯年(시서석장년)

명예 마당 하찮은 이해와 득실 / 名場小得失(명장소득실)

약한 아내 동정을 도리어 받네 / 還被弱妻憐(환피약처련)

 

 

 

월파정에 올라[登月波亭]

 

낙동강 위에 있는데 곧 선산(善山) 땅이다

 

 

누관은 인물 따라 세워졌는데 / 樓館從人設(루관종인설)

풍연은 지방마다 서로 다르네 / 風煙逐地殊풍연축지수)

빈 강물엔 옥토가 잠기어 있고 / 水虛涵玉兎(수허함옥토)

솟은 산은 금오와 잇닿았고녀 금오산성(金烏山城)은 부상(扶桑)과 약목(若木) 사이에 있다.

 

/ 山聳接金烏(산용접금오)

뱃길은 남쪽 바다 멀리 통하고 / 舟楫通南海(선접통남해)

관방되어 도성을 보호한다네 / 關防護上都(관방호상도)

아내가 그런대로 정분이 있어 / 細君頗有分(세군파유분)

산천 유람 어울려 함께 한다오 / 遊覽與之俱(유람여지구)

 

 

 

달의 별칭이다.

 

 

웅진에서 고적을 회상하며[熊津懷古]

 

공산(公山)은 백제의 옛 도읍지이다

서리맞은 숲 너머 하얀 성이요 / 粉堞霜林外(분첩상림외)

금강이란 강에는 붉은 배로세 / 紅船錦水中(홍선금수중)

들판은 넓디넓은 금마 잇닿고 / 地連金馬闊(지연금마활)

산봉우리 웅장한 계룡 마주해 / 山對碧鷄雄(산대벽계웅)

서글퍼라 도읍지 자주 옮기어 / 都邑悲遷變(도읍비천변)

나라의 지도 서적 어지럽기만 / 圖書憶混同(도서억혼동)

공연히 천험 요새 버려 던지어 / 無端棄天險(무단기천험)

용을 낚는 공적을 이루게 했네 / 成就釣龍功(성취조용공)

 

공주에 당도하여 이장을 만나 함께 길을 가면서

 

[行次公州逢李丈偕行] 이장은 소암(蘇巖)이다

 

금릉을 향해 가던 도중에 / 知向金陵道(지향금능도)

금강이라 강변에 함께 만나서 / 相逢錦水邊(상봉금수변)

바람 앞에 한쌍의 검정색 일산 / 風前雙早蓋(풍전쌍조개)

흰 눈 속에 하나의 붉은 배로세 / 雪裏一紅船(설리일홍선)

꾸준히 길을 걸어 쉬지를 않고 / 行邁仍無倦(행매잉무권)

시를 지어 스스로 읊음도 좋아 / 詩篇好自傳(시편호자전)

병속에는 죽력이 들어 있기에 / 壺中有竹瀝(호중유죽력)

돈을 쓰지 않고도 실컷 마시네 / 取醉不須錢(취취불수전)

 

하담에서 유숙하며[宿荷潭

 

서글퍼라 서로 돌아온 배는 / 惆悵西歸櫂(추창서귀도)

어느새 칠년 세월 까마득한데 / 微茫已七年(미망이칠년)

이제는 치포관을 드높이 쓰고 / 緇冠今突爾(치관금돌이)

당당할사 화개가 펄펄 나네 / 華蓋獨翩然(화개독편연)

해묵은 풀 첫눈에 얽히어 있고 / 宿草纏初雪(숙초전초설)

저녁 연기 삼나무 감싸 덮었다 / 高檆冪暮煙(고삼멱모연)

깃들인 참새들이 짹짹거리니 / 啁啾有棲雀(조추유서작)

흐르는 눈물방울 어찌 거두리 / 那禁涕漣漣(나금체련련)

 

실제(失題)

 

맑은 새벽 옛 우물에 양치하니

옛 우물이 붉어 타는 듯하구나

복사꽃 만발한 걸 알지 못하고

단사천 있지 않나 의심을 하네

 

淸晨漱古井(청진수고정)

古井紅如燃(고정홍여연)

不知桃花發(부지도화발)

疑有丹砂泉(의유단사천)

 

 

 

뭇 꽃다움 시내 집에 비추이는데

아침 해에 조각 노을 불그레하네

숲의 새는 짓궂게도 꽃잎 쪼으니

이따금 술잔 안에 떨어뜨리누나

 

 

 

群芳照澗戶(군방조간호)

朝日片霞紅(조일편하홍)

林禽啄花蕊(임수탁화예)

時時落酒中(시시낙주중)

 

약 캐는 길 외딴 곳에 뚫리었는데

등라 얽힌 마루에 운무가 쌓였네

산사람 홀로 앉아 술 따를 적에

나는 꽃과 더불어 다시 만나네

 

藥徑通幽窅(약경통유요)

蘿軒積雲霧(라헌적운무)

山人獨酌時(산인독작시)

復與飛花遇(부흥비화우)

 

 

시내를 타고 가다 살짝 앉으니

인정을 사로잡는 곱고 푸르름

사랑에 겨워 원심처에 이르니

꽃과 버들 밝아 마을이 있네

 

 

緣溪行且坐(연계행차좌)

芳綠近人情(방록근인정)

愛到源深處(애도원심처)

有村花柳明(유촌화류명)

 

7. 9 선시

 

첩첩산중 산봉우리 토굴 한 칸 마련하여

노승이 반 칸 구름이 반 칸

간밤에 비바람 따라 구름 훨훨 날아가다

불현듯 한가한 노승보고서 더없이 부러워했다네.

 

千峯頂上一閒屋

老僧半閒雲半閒

昨夜雲隨風雨去

回頭方羨老僧閒 - <<. 志芝 (지지스님) >> -

 

 

할 일을 다 마친 사람 한가로운 데,

계수나무 꽃 떨어지고

밤은 고요하고 봄 산은 텅 비었네.

밝은 달이 중천(中天)에 떠오르자 산새는 놀라서

봄 물가에서 우짖고 있네.

 

人閑桂花落(인한계화락)

夜靜春山空(야정춘산공)

月出驚山鳥(월출경산조)

時鳴春澗中(시명춘간중) - << 왕유 >>

 

 

 

7. 10 선시

 

보신과 화신은 진실이 아니고 거짓된 인연이요,

법신은 청정해서 가없이 넓도다.

천강에 물이 있으니 천강에 달이 뜨고

만리에 구름이 없으니 만리가 하늘이더라.

 

報化非眞了妄緣 法身淸淨廣無邊

보화비진료망연 법신청정광무변

千江有水千江月 萬里無雲萬里天

천강유수천강월 만리무운만리천

 

7. 10 선시

 

雲捲秋空月印潭 (운권(말 권)추공월인담)

寒光無際與誰談 ( 한광무제여유담)

豁開透地通天眼 ((뚤린 골 활)개투지통천안)

大道分明不用參 (대도분명불용참)

 

구름 걷힌 가을하늘의 달이 못에 비치니

찬 빛의 끝없음을 누구와 더불어 얘기할거나.

천지를 꿰뚫는 안목을 활짝 여니

대도가 분명하여 참구할 게 없도다.

- << . 豫章宗鏡 >>

 

우습다 소 탄 자여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는구나.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저 바다 거품을 태워 다하라.

 

可笑騎牛子 (가소기우자)

騎牛更覓牛 (기우갱멱우)

斫來無影樹 (작래무영수)

銷盡海中漚 (소진해중구)

 

- << 逍遙太能 소요태능 >> -

 

夜夜抱佛眠

朝朝還共起

欲識佛去處

只這語聲是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나네.

만약 부처님 가신 곳을 알고자 하면

다만 이 말소리일 뿐이라. - <부대사 禪詩>

 

 

 

7. 11 선시

 

삼십 년을 검을 찾은 나그네여

몇 번이나 낙엽 지고 가지 돋았나.

복사꽃을 한 번 본 뒤로부터는

지금까지 다시는 의심이 없어.

 

三十年來尋劒客 (삼십년래심검객)

幾回落葉又抽枝 (기회낙엽우추지)

自從一見桃花後 (자종일견도화후)

直至如今更不疑 (직지여금갱불의)

 

 

- << 靈雲志勤 (영운지근) >>

 

 

 

걸음걸음 산문을 나오는데

시냇가에 꽃 날리고 새가 우는구나.

안개골 가득히 길을 잃은 채

천 봉 저 빗줄기 속에 외로이 서 있다.

 

步步出山門 (보보산출문)

鳥鳴花落溪 (조명화락계)

烟沙去路迷 (연사거로미)

獨立千峯雨 (독립천봉우)

- << 白谷處能백곡처능 >> -

 

 

 

 

 

 

7. 12 선시

 

 

바람 고요한데 꽃은 오히려 떨어지고

새 울어도 산은 더욱 고요 해지네

하늘은 흰 구름과 함께 밝아오고

물은 밝은 달빛과 같이 흘러 가네.

 

風靜花猶落 풍정화유락

鳥鳴山更幽 조명산갱유

天共白雲曉 천공백운효

水和明月流 수화명월류

 

//讀罷楞嚴 (독파능엄)

능엄경을 독파하고 나서

- << 淸虛休靜 (청허휴정) >> -

 

 

 

 

 

 

 

 

 

 

 

心眼俱通

심안을 함께 통하여

 

심안을 함께 통하여 법계에 두루 하니

항하사의 묘용이 자취가 없음이로다.

구름이 걷힌 강은 맑고 하늘은 드넓으니

밝은 달과 갈대꽃이 한 무늬의 가을 일세

 

 

心眼俱通法界周(심안구통법계주)

恒沙妙用沒踪由(항사묘용몰종유)

雲牧江湛天空豁(운목강단천공활)

明月開花一樣秋(명월개화일양추)

 

-豫章宗鏡 -

 

마음눈 갖추고 삼라만상 두루 통하니

간지스강 모래 쓰임조차 자취가 없음이니

구름 걷혀 강 깊고 하늘은 탁 트였으니

밝은 달과 갈대꽃이 한 폭의 가을이로다.

 

 

心眼俱通法界周 심안구통법계주

恒沙妙用沒踪由 항사묘용몰종유

雲收江湛天空豁 운수강담천공활

明月蘆花一樣秋 명월노화일양추

 

-豫章宗鏡 -

 

 

 

 

 

 

 

 

 

 

 

 

 

 

 

 

 

 

작자미상

 

 

 

是是非非都不關 (시시비비도부관)

옳다, 그르다 도무지 관계없고

 

山山水水任自閑 (산산수수임자한)

산산, 물물이 스스로 한가하네

 

莫問西天安養國 (막문서천안양국)

서방 극락세계 어디냐고 묻지를 말게

 

白雲斷處有靑山 (백운단처유청산)

흰구름 걷히면 그대로 청산인 것을.

靑山綠水眞我面 청산녹수진아면

明月淸風誰主人 명월청풍수주인

莫謂本來無一物 막위본래무일물

塵塵刹刹法王身 진진찰찰법왕신

청산과 녹수는 참된 내 얼굴인데

명월과 청풍의 주인은 누구인가?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이르지 말게나.

온 세계 티끌마다 부처의 몸인 것을.

 

 

欲得安身處 寒山可長保

이 몸 편히 쉴 곳을 찾았었는데 한산이 오래 살기 제일 좋구나.

 

微風吹幽松 近聽聲逾好

미풍이 노송에 불어올 때는 가까이서 듣는 소리 더욱 좋아라.

 

下有班白人 喃喃讀黃老

나무 아래 흰머리 노인이 있어 남남남남 노자를 흥얼거리네.

 

十年歸不得 忘却來時道

십년동안 돌아가지 아니했으니 올 때의 그 길을 잊어 버렸네.

- 한산 시 -

 

개미집의 구더기 - 서산집, 청허 휴정 대사 -

萬國都城如蟻垤 (만국도성여의질) 일만 나라의 도성은 개미집이요,

 

千家豪傑若醯鷄 (천가호걸약혜계) 일천 가옥의 호걸들은 구더기일세.

 

一窓明月淸虛枕 (일창명월청허침) 창문의 밝은 달을 베게 삼아 누웠는데,

 

無限松風韻不齊 (무한송풍운부제) 끝없는 솔바람소리 가지각각 다르구나.

[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 - 마라나 존자 -

 

心隨萬境轉 (심수만경전) 마음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서 굴러다니나

 

轉處悉能幽 (전처실능유) 그 굴러가는 곳마다 모두 다 깊고 그윽하다.

 

隨流認得性 (수류인득성) 흐름을 따르더라도 그 본 성품을 알면

 

無喜亦無憂 (무희역무우)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

 

 

 

 

 

이 글은 서천 제22摩羅那 존자의 게송이다.

[

 

唯我獨尊 - 선문염송 -

承春高下盡鮮姸 봄을 맞으니 높은 산 낮은 들 모두가 아름답고

 

雨過喬林叫杜鵑 울창한 숲에 비 지나가고 나니 두견새 지저귄다.

 

人靜畵樓明月夜 인적은 고요하여 그림같이 달 밝은 밤에

 

醉歌歡酒落花前 꽃잎은 휘날리고 술에 취해 노래 부른다

[

 

彌勒佛의 화신 - 포대 화상 -

一鉢千家飯 孤身萬里遊 발우 하나로 집집마다 밥을 빌며 외로운 나그네 되어 만리를 떠다니네.

 

靑日睹人少 問路白雲頭 밝은 대낮에도 보이는 사람 없어 내 갈 길을 흰 구름에게 물어 본다.

 

彌勒眞彌勒 分身百千億 미륵불로, 또 미륵불로 천만억으로 분신하며,

 

時時示時人 時人自不識 언제나 사람들에게 나타나도사람들은 미륵을 아는 이 없다.

 

 

[

마음을 구하고 마음을 다스려라. - 돈오입도요문론 -

聖人求心不求佛 성인은 마음을 구하고 부처를 구하지 않으며,

 

愚人求佛不求心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구하고 마음을 구하지 않는다.

 

智人調心不調身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다스리지 않으며,

 

愚人調身不調心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다.

 

[

맑은 향기를 누구에게 주었으랴 - 선문염송-

靈鷲拈花示上機 (영취염화시상기) 영축산에서 꽃을 든 것은 상근기에게 보인 것이다.

 

肯同浮木接盲龜 (긍동부목접맹구) 물에 뜬 나무가 눈 먼 거북을 만난 것과 어찌 같겠는가.

 

飮光不是微微笑 (음광불시미미소) 음광 존자가 가만히 미소하지 않았더라면

 

無限淸香付與誰 (무한청향부여수) 무한한 맑은 향기를 누구에게 주었으랴


7.11 선시

 

歷劫傳傳無盡燈 역겁전전무진등

영겁(永劫)을 이어 다 함 없는 등불

不會桃別鎭長明 불회도별진장명

켜짐도 없고 꺼짐도 없는 큰 밝음이어라

任他雨灑兼風亂 임타우쇄겸풍란

저 비를 뿌리고자 일어난 바람이

漏屋虛窓影自淸 루옥허창영자청

낡은 방 창의 헛된 내 그림자를 맑게 하누나

 

 

終日忘機坐 종일망기좌 하루종일 모든 일 잊고 앉았노라면

諸天花雨飄 제천화우표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네

生涯何所有 생애하소유 내 평생 무슨 살림 있겠나

壁上掛單瓢 벽상괘단표 벽에 걸린 표주박 뿐일세

 

月入松聲白 월입송성백 달빛 들어 솔 바람 소리는 희고

松含月色寒 송함월색한 달빛 머금은 소나무는 차가워라

贈君般若劍 증군반야검 그대에게 지혜의 검 보내노니

歸臥月松間 귀와월송간 돌아와 달과 소나무 사이에 누우려무나

 

함월 해원

 

7. 12 선시

◉ 「(念佛)

부르고 불러서 입묘(入妙) 부르고

외고 외워 귀진(歸眞)을 염송하누나.

부르고 염불함이 만나는 곳에

여래께서 즉시로 현신하시리

 

呼呼呼入妙 念念念歸眞

호호호입묘 념념념귀진

呼念相交處 如來卽現身

호념상교처 여래즉현신

 

-해담 치익(海曇 致益, 1862-1942)

 

서방 부처님 염불하는 법

 

반드시 생사 뛰어넘나니 마음과 입 서로 응하면

왕생극락은 손가락 튕기는 것과 같소

한 생각에 연꽃 즈려 밟나니

누가 팔 천리를 (간다) 말하였소

염불공덕 이루고 목숨 마칠 적에

아미타불 오시어 그대 맞이하실거요

 

西方念佛法 決定超生死

心口若相應 徃生如彈指

一念踏蓮花 誰道八千里

功成待命終 大聖來迎爾

 

- 서산대사 휴정 심법요초心法要抄

7. 13 선시

 

한가한 거처(閑居)

 

향기론 채소 한 사발로 아침 식사 너끈하고

일곱 근 먹장삼에 봄잠이 아주 달다.

묻노라 암자에서 그 누구와 함께 있나

감실 안에 만수동자 나와 함께 지낸다네.

香蔬一鉢卯餐足 黲衲七斤春睡甘

향소일발묘찬족 참납칠근춘수감

且問庵中誰與共 曼殊童子是同龕

차문암중수여공 만수동자시동감

-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바람과 달(風月)

 

바위 샘이 흰 달을 마중하더니

뜨락의 잣나무는 청풍 부른다.

몸은 소리 빛깔 속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소리 빛깔 속이 아닐세.

 

 

巖泉迎白月 庭柏引淸風

암천영백월 정백인청풍

身是坐聲色 心非聲色中

신시좌성색 심비성색중

 

-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7. 14 선시

 

 

악함 없고 선함 또한 없는 것이니

법마다 텅 빈 줄을 깨달아 아네.

평탄한 옛 길로 돌아오는데

도처에 수양버들 바람이 분다.

 

 

無惡亦無善 了知法法空

무악역무선 요지법법공

坦平還古路 到處綠楊風

탄평환고로 도처녹양풍

 

-해담 치익(海曇 致益, 1862-1942)

요공 스님에게 주다(示了空禪子)

 

 

 

 

바람과 달(風月)

 

 

내 집 이름 태허당이라 부르니

청허를 사랑해서만은 아니다.

육기는 무궁히 변화 하느니

비록 비었어도 빈 것 아닐세.

 

 

吾堂號太虛 不獨愛淸虛

오당호태허 불독애청허

六氣無窮化 雖虛不是虛

육기무궁화 수허불시허

 

-동계 경일(東溪 敬一, 16361695),

태허당을 조롱한 객의 시에 차운하다(次客嘲太虛堂韻 )

 

7. 15 선시

 

염화

 

가르침 밖 참된 소식 별도로 전해지니

고운 이름 오롯하다 옛 장부가 돌아왔네.

5백년 지난 뒤엔 누가 이를 이을꼬

염화시중 한 맥락이 호응하여 떨어지리.

 

別傳敎外眞消息 專美須還古丈夫

별전교외진소식 전미수환고장부

後五百年誰繼此 拈花一脉落鳴呼

후오백년수계차 염화일맥낙명호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부휴 스님에게 주다(贈浮休子)

 

 

발분

 

잡아 던져 털어 봐도 별다른 것 없으니

남 앞에서 곧장 직접 집으로 가야하리.

발분하여 공부하여 번드쳐 내던지니

현묘한 말 묘한 구절 눈 속의 티끌일세.

 

拈搥竪拂別無他 直要當人自到家

염추수불별무타 직요당인자도가

發憤做功飜一擲 玄言妙句眼中沙

발분주공번일척 현언묘구안중사

 

-부휴 선수(浮休 善修, 15431615)

섬스님에게 화답을 구하는 말로 주다(賽暹禪和求語)

 

 

 

7. 16 선시

푸른 눈

 

일 만 개의 묏부리를 스승 찾아 쏘다녔고

도를 묻고 선()을 구해 푸른 눈이 시렸었지.

조사(祖師)의 뜻 이제껏 몇 번 땅을 쓸었던고

일생에 일이 없이 일체를 참간(參看)하리.

 

尋師踏盡萬峯巒 問道求禪碧眼寒

심사답진만봉만 문도구선벽안한

祖意如今幾掃地 一生無事切參看

조의여금기소지 일생무사체참간

 

-부휴 선수(浮休 善修, 15431615)

() 선백께 드림(贈巖禪伯)

 

돌이켜 제게서 천진불을 구할지니

어이 다시 그를 좇아 아버지를 묻는가.

만약 능히 어머니의 얼굴을 얻는다면

하나하나 사물마다 온통 모두 석가이리.

 

反求自己天眞佛 何更從他問阿爺

반구자기천진불 하갱종타문아야

若能信得娘生面 物物頭頭總釋迦

약능신득낭생면 물물두두총석가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함께 사는 도반에게 보여주다(示同住道伴)

 

7. 17 선시

 

 

약속

 

날은 곧 뉘엿한데 사립문서 작별하니

눈 가득한 산의 다리 길조차 분명찮다.

좋은 기약 다시 두면 언제가 좋겠는가

골짝 새들 조잘대고 꽃향기 가득할 때.

 

柴門相送日將曛 雪滿山橋路不分

시문상송일장훈 설만산교로불분

佳期更有何時好 谷鳥喃喃花正芬

가기갱유하시호 곡조남남화정분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송별(送別)

 

 

대장부

 

유교를 꿰뚫어도 쓸 곳이 안쓰럽고

불경을 능히 외나 마음 외려 미혹하다.

조사(祖師)의 활구(活句)로 의심덩이 깨야지만

곧바로 이름 하여 대장부라 하리라.

 

儒敎貫通憮用處 䆁經能誦轉心迷

유교관통무용처 석경능송전심미

祖師活句疑團破 是即名爲大丈夫

조화활구의단파 시즉명위대장부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안택 스님에게 주다(賽禪德安宅)

 

 

 

7. 18 선시

 

적막

 

돌길에 이끼 덮여 옛 절은 텅 비었고

고운(孤雲)의 지난 자취 저녁 안개 잠겨있다.

오경에 꿈을 깨니 세상은 적막한데

밝은 달빛 학 울음이 하늘 끝서 들리네.

 

石逕苔封古寺空 孤雲逝迹暮烟籠

석경태봉고사공 고운서적모연롱

夢破五更人寂寂 磨霄鶴唳月明中

몽파오경인적적 마소학려월명중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불일암에 묵고서(宿佛日庵)

 

둥근 등불

 

동글동글 등불 얼굴 사방이 꼭 같은데

빈 집에 높이 걸려 어두웠다 밝아진다.

재로 되면 구름이 해 가린 것 같다가도

심지 잘라 돋워주자 오래오래 환하여라

 

團團燈面殺無方 高掛堂空暗復光

단단등면살무방 고괘당공암부광

灰燼政如雲弊日 切須挑盡致明長

회신정여운폐일 절수도진치명장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7. 19선시

 

◉「면등(面燈)

 

용천검 한 자루를 구름 끝에 보내시니

번쩍이는 찬 빛이 폐부를 비추누나.

전륜왕의 세 치 쇠보다 훨씬 더 나으리니

바위 골짝 지녀 가면 늙은 몸이 편안하리.

 

龍泉一柄送雲端 焰焰寒光照肺肝

용천일병송운단 염염한광조폐간

猶勝輪王三寸鐵 持歸岩壑老身安

유승륜왕삼촌철 지귀암학로신안

 

-정관 일선(靜觀 一禪, 1533-1608)

검을 준 데 대해 사례하다(謝惠劒)

 

나비 꿈

 

 

골짝서 객과 함께 봄밤을 보내는데

나비 꿈이 오경 종에 이제 막 놀라누나.

달빛 잠긴 향각엔 사람 아직 잠 안 깨고

두견새 울음소리 어지런 뫼 높은 데서.

 

 

洞中携客度春宵 蝶夢初驚漏五敲

동중휴객도춘소 접몽초경루오고

香閣月沉人未起 杜鵑啼在亂峯高

향각월침인미기 두견제재난봉고

 

-정관 일선(靜觀 一禪, 1533-1608)

두견이 소리를 듣고(聞杜鵑)

 

 

 

 

7. 20 선시

일 없는 사내

 

눈썹 날려 눈 깜빡임 묘하다 할 수 없고

맞대면해 기뻐함도 충분하지 않다네.

일생에 아무런 할 일 없는 사내가

벽운암서 봄가을로 늘 누움만 하겠는가?

 

揚眉瞬目非臻妙 對面熈怡亦未堪

양미순목비진묘 대면희이역미감

爭似一生無事漢 春秋長臥碧雲庵

쟁사일생무사한 춘추장와벽운암

 

-정관 일선(靜觀 一禪, 1533-1608)

() 도인에게 주다(贈俊道人)

 

 

 

각각각각

각각각각 화두조

때로 화두 권하누나.

선창에 밤새 누워

들으려니 부끄럽네.

 

 

各各話頭鳥 時時勸話頭

각각화두조 시시권화두

禪窓終夜臥 聞此可無羞

선창종야와 문차가무수

 

-정관 일선(靜觀 一禪, 1533-1608)

화두조(話頭鳥)

 

 

7. 21 선시

 

 

 

 

산 채로 잡다

 

 

꽃 피어나자 산 얼굴 붉고

여린 바람에 새 마음 야릇.

여러 해 동안 잡으려던 놈

오늘사 문득 사로잡았네.

 

 

花發山紅面 風柔鳥亂心

화발산홍면 풍유조란심

多年求捉漢 今日忽生擒

다년구촉한 금일홀생금

 

-허응 보우(虛應 普雨, 1509-1565)

우연히 읊다(偶吟)

 

 

고한(高閑)

 

 

도는 몸에 있어서 산에는 있지 않아

티끌 속에 일 없는 것 이게 바로 고한(高閑)일세.

방공(龐公) 또한 아내와 자식까지 두었지만

큰 부락 성 마을서 홀로 사립 닫았다네.

 

 

道在於身不在山 塵中無事是高閑

도재어신부재산 진중무사시고한

龐公亦有妻并子 萬落村城獨掩關

방공역유처병자 만락촌성독엄관

 

- 허응 보우(虛應 普雨, 1509-1565),

상사 신양숙의 운에 따라 9수를 대신 짓다(代次愼上舍養叔韻九章)

 

 

 

 

 

 

 

7. 22 선시

 

빈 산 속

 

 

돌 위로 어지러운 시냇물 소리

못 가엔 푸른 풀 돋아나온다.

빈 산에 비바람 하도 많아서

꽃 져도 쓰는 사람 아무도 없네.

 

 

石上亂溪聲 池邊生綠草

석상난계성 지변생녹초

空山風雨多 花落無人掃

공산풍우다 화락무인소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초가집(草屋)

 

피리 소리

 

 

배에서 밤 피리 소리 듣노니

어디서 묵어 자는 어옹이던가?

해 뜨자 아무도 보이지 않고

새 울고 꽃만 절로 붉게 피었네.

 

 

舟中聞夜笛 何處宿漁翁

주중문야적 하처숙어옹

日出無人見 鳥啼花自紅

일출무인견 조제화자홍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동호에서 밤중에 배를 대고(東湖夜泊)

 

7. 23 선시

 

귀머거리

 

귀로 사물 바라보고 눈으로는 들으니

마음 들음 어이해 귓부리를 쓰겠는가?

모름지기 두 귀 먼 것 안타까워하지 말라

소리란 원래부터 듣는데서 현혹되니.

 

耳以觀來目以聞 心聞何用耳根聞

이이관래목이문 심문하용이근문

不須恨却聾雙耳 聲響元來醉自聞

불수한각농쌍이 성향원래취자문

 

-허응 보우(虛應 普雨, 1509-1565), (의옥(義玉) 스님에게 보이다. 의옥은 귀가 먹어 주눅이 들었다.(示義玉禪人, 玉以耳聾爲屈)

 

성색

 

흰 눈 머리털 봄 바람 얼굴

산과 저자 속 소요하누나.

다함이 없는 소리와 빛깔

닿는 곳 절로 텅 비었구려.

 

 

雪髮春風面 逍遙山市中

설발춘풍면 소요산시중

無窮聲與色 觸處自空空

무궁성여색 촉처자공공

 

 

-벽송 지엄(碧松 智儼, 14641534), 옥륜 선덕에게 주다(贈玉崙禪德)

 

 

 

7. 24 선시

 

 

마음 밖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자니

다만 이 수행이 그윽하고 그윽하다.

세상사람 일러줘도 모두들 믿지 않고

문득 마음 밖을 따라 부처를 찾는다네.

 

飢來喫飯倦來眠 只此修行玄更玄

기래끽반권래면 지차수행현갱현

說與世人渾不信 却從心外覔金仙

설여세인혼불신 각종심외멱금선

 

-중관 해안(中觀 海眼, 1567~ ? ), 의고 2(擬古二首)

 

 

아무 일도

 

 

비온 뒤 담장 아래 새 죽순이 솟아나고

뜰에 바람 지나가자 지는 꽃잎 옷에 붙네.

온 종일 향로에 향 심지 꽂는 외에

산집엔 다시금 아무 일도 없다네.

 

 

雨餘牆下抽新筍 風過庭隅襯落花

우여장하추신순 풍과정우친락화

 

盡日一爐香炷外 更無閑事到山家

진일일로향주외 갱무한사도산가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閑中雜詠六首

 

 

 

 

새해

 

 

물병엔 두 셋의 우물물을 담았고

창에는 너덧 조각 산 구름이 담겼네.

이웃 스님 살림살이 궁색하다 말을 마소

화로에 맑은 향을 또 하나 사르노라.

 

 

甁貯二三井澗水 窓栖四五片山雲

병저이삼정간수 창서사오편산운

隣僧莫道生涯拙 爐爇淸香又一分

인승막도생애졸 노설청향우일분

 

-중관 해안(中觀 海眼, 1567~ ? ), 제석의 대화에 답하다(畣分歲話)

 

7. 25 선시

 

이름

내 듣기로 이름은 실지의 손님이라

붓과 혀는 원래부터 참됨이 아니라네.

바위 곁의 천년 묵은 말라죽은 나무가

용호(龍虎)의 소리 내니 여전한 봄날일세.

 

吾聞名者實之賓 筆舌元來不是眞

오문명자실지빈 필설원래불시진

嵓畔千年枯死樹 龍吟虎嘯一般春

암반천년고사수 용음호소일반춘

 

-중관 해안(中觀 海眼, 1567~ ? ),

인백 선자 경린이 시를 청하기에(仁伯禪子敬麟賽句)

 

 

# 등불 하나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희미하니

아는 이는 말하는 자의 잘못을 말하잖네.

서쪽서 온 등불 하나 돌이켜 생각하면

어이 어노(魚魯) 구분 같은 훈몽(訓蒙)을 말하리오.

 

人心危假道心微 知者不言言者非

인심위가도심미 지자불언언자비

還憶西來燈一點 豈云魚魯訓蒙機

환억서래등일점 기운어노훈몽기

 

右夢中作

-중관 해안(中觀 海眼, 1567~ ? ),

꿈에 한 문사를 보고 꿈속에서 짓다((夢見一文士, 夢中作)

 

 

7. 26 선시

 

 

심우(尋牛)

 

 

도란 본래 마음에서 얻는 법인데

어이 굳이 밖에서 구하려드나.

평평한 밭 풀 우거진 언덕에서도

곳마다 소 찾기가 좋을 터인데.

 

 

道本從心得 何勞向外求

도본종심득 하로향외구

平田芳草岸 隨處好尋牛

평전방초안 수처호심우

 

-한계 현일(寒溪 玄一, 16301716), 산놀이 하는 승려에게 주다(贈遊山僧)

 

소원

 

 

일 없는 게 산승이라 말하지 마시게나

불볕더위 날 가물어 푹푹 찜이 안타깝네.

아침저녁 이를 위해 향 한 심지 사르노니

성심으로 나라 근심 농사 풍년 원하노라.

 

 

莫言無事是山僧 亦恨炎天旱氣蒸

막언무사시산승 역한염천한기증

朝夕爲焚香一炷 誠心憂國願年豊

조석위분향일주 성심우국원년풍

 

-한계 현일(寒溪 玄一, 16301716), 오랜 가뭄에 차운해 짓다(久旱次韵)

 

7. 26 선시

 

불과(佛果)

 

 

어버이 묻힌 옛 동산을 멀리서 생각자니

몸은 비록 못 가지만 마음만은 늘 앞서네.

사람들아 내 가는 길 비웃지 말려마

인하여 깨달으면 불과(佛果)가 원만하리.

 

 

遙憶親鄕古壠山 身雖未赴意常前

요억친향고롱산 신수미부의상전

世人莫笑吾行履 因卽悟時佛果圓

세인막소오행리 인즉오시불과원

 

-화담 법린(華曇 法璘, 1848-1902), 추석날 성묘하러 가지 못하고(秋夕未赴省墓)

 

 

 

금강산

 

 

가을바람 날 일으켜 금강산에 가게 하니

강물은 푸르고 들판 벼는 향기롭다.

곧장 비로봉 정상 향해 올라서자

대천세계 작기가 해당화와 한가질세.

 

 

秋風起我送金剛 江水蒼蒼野稻香

추풍기아송금강 강수창창야도향

直向毘盧頂上立 大千世界小如棠

직향비로정상립 대천세계소여당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금강산(金剛山)

강촌

 

 

7. 27 선시

 

淸江一曲抱村流

長夏江村事事幽

自去自來梁上燕

相親相近水中鷗

老妻畵紙爲棋局

稚子敲針作釣鉤

多病所須唯藥物

微軀此外更何求

 

맑은 강 한 구비 마을을 안고 흘러가니

긴 여름 강촌이 일마다 그윽하네

절로 가고 절고 오는 건 서까래 위 제비요

서로 친하고 서로 가까운 건 물 속에 백구로다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아이는 바늘을 두드려 낚시를 만든다

병 많은 내가 바라는 바는 오직 약물 뿐이요

적은 몸 나는 이 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

- << 두보 (杜甫, 712~770) >>

 

 

 

 

 

7. 27 선시

 

파초

 

 

한 그루 파초를 뜨락에 심어두니

밤중에 보슬비 소리조차 들리누나.

매운 바람 툭 쳐서 꺾을까 걱정되어

아이 시켜 돌 주워와 터진 담장 고친다네.

 

 

芭蕉一樹種幽庭 中夜猶聽細雨聲

파초일수종유정 중야유청세우성

剛怕疾風輕破折 囑兒拾石補虧牆

강파질풍경파절 촉아습석보휴장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산거(山居)2

 

[국화

 

 

진작에 석대 서편 국화를 심었더니

여린 잎 성근 줄기 작은 시내 비춘다.

계절 돌아 가을 되어 꽃술을 터뜨리면

온갖 새들 적막히 울지 않음 비웃으리.

 

 

曾將菊種石臺西 嫩葉疎莖映小溪

증장국종석대서 눈엽소경영소계

轉到霜天方吐萼 笑他百鳥寂無嗁

전도상천방토악 소타백조적무제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산거(山居)

 

 

7. 28 선시

 

나비

 

대 씻고 솔 다듬고 홀로 문을 닫고서

내가 나를 잊은 채 적막히 말이 없다.

늦은 나비 날아와 그 무슨 심사인지

밝은 창에 착 붙었다 동산 향해 가누나.

 

洗竹科松獨掩門 我還忘我寂無言

세죽과송독엄문 아환망아적무언

飛來晩蜨何心事 忽著明囱卻向園

비래만접하심사 홀착명창각향원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홀로 앉아(獨坐)

 

 

거미줄

 

두 그루 복사 오얏 지난해에 옮겨 심어

햇볕 쬐고 안개 젖어 가지마다 꽃 가득해.

팔랑팔랑 나비 모습 아껴 보려 하여서

지팡이로 거미줄을 자주 없애 주노라.

 

 

兩株桃李去年移 烘日蒸霞也滿枝

양주도리거년이 홍일증하야만지

爲愛翩翩蝴蜨影 頻持竹杖去蛛絲

위애편편호접영 빈지죽장거주사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산거잡영(山居雜詠)

 

 

7. 29 선시

 

아직 사람으로

 

快哉渾沌身

不飯復不尿

遭得誰鑽鑿

因玆立九竅

朝朝爲衣食

歲歲愁租調

千箇爭一錢

聚頭亡命叫

 

아직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 혼돈의 몸은 그지 없이 유쾌했고

밥 먹고 오줌누는 번거로움도 없었는데

어쩌다 누구에게 구멍을 뚫렸는가

그래서 사람이 되어 아홉구멍을 갖춘 몸이 되었는가

덕분에 날마다 입고 먹기에 허둥지둥

해마다 세금낼 걱정뿐

돈 한 푼에 천 사람이 다투어

와글와글 모여서 목숨 걸고 외쳐대네

 

 

 

* 혼돈(混沌)

혼돈은 <장자 莊子>응제왕편에

 

 

 

7. 29 선시

 

아침 해

 

 

새벽에 동해바다 앉아서 보니

가로 걸린 구름이 산 모양 짓네.

붉고 푸른 빛깔을 산이 머금다

아침 해를 그 사이서 토해내누나.

 

 

 

 

坐見扶桑曉 橫雲作假山

좌견부상효 횡운작가산

山含紅翠色 朝日吐其間

산함홍취색 조일토기간

 

-동계 경일(東溪 敬一, 16361695),

(구름이 만든 가짜산을 노래하다(詠雲假山)

 

 

달 구슬

 

푸른 바다 용이 손아귀에 구슬 쥐고

밤에 천문(天門) 올라가 천도(天都)에 바치누나.

항아 아씨 어여쁜 무지개 옷 비춰보다

그림자 있나 없나 단총(丹叢) 기대 웃는다네.

 

 

碧海龍兒掌頷珠 夜昇閶閤獻天都

벽해용아장함주 야승창합헌천도

姮娥照取霓裳美 笑倚丹叢影有無

항아조취예상미 소의단총영유무

 

-동계 경일(東溪 敬一, 16361695),

달을 읊다(詠月)

 

 

7. 30 선시

 

맑은 바람

 

정수리 위 눈을 늘상 뜨고 있으니

삶과 죽음 길 따위는 상관도 않네.

맑은 바람 태허를 불어가더니

만고에 한 도만이 살아 있구나.

 

 

常開頂門眼 不關生死路

상개정문안 불관생사로

淸風吹太虛 萬古活一道

청풍취태허 만고활일도

 

-동계 경일(東溪 敬一, 16361695),

(임종게(臨終偈)

 

 

우습다

 

우습다 소 등 타고 다시 소를 찾다니

모름지기 머리 위에 머릴 얹진 않는 법.

조계의 거울 속엔 아무 물건 없건만

천하의 선승들은 면벽하고 찾는다네.

 

 

可笑騎牛更覔牛 不須頭上更安頭

가소기우갱멱우 불수두상갱안두

曺溪鏡裡元無物 天下禪流面壁求

조계경리원무물 천하선류면벽구

 

-동계 경일(東溪 敬一, 16361695),

우연히 읊다(偶吟)

 

 

7. 31 선시

 

아침 내내

 

아침 내내 밥 먹어도 무슨 밥을 먹으며

밤새도록 잠 잤어도 잠잔 것이 아니로다.

고개 숙여 못 아래 그림자만 보느라

밝은 달이 하늘 위에 있는 줄을 모른다네.

 

 

終朝喫飯何曾飯 竟夜沉眠未是眠

종조끽반하증반 경야침면미시면

低首只看潭底影 不知明月在靑天

저수지간담저영 불지명월재청천

-동계 경일(東溪 敬一, 16361695),

우연히 읊다(偶吟)

 

 

 

마음대로

 

자던 새 떠나려니 이별 한이 많은 듯

짹짹짹 우는 듯이 또 노래하는 듯해.

어여뻐라 취향 따라 남북으로 날아가서

만수(萬水)와 천산(千山) 속을 제멋대로 쏘다니리.

 

 

宿鳥辭群別恨多 啾啾如泣又如歌

숙조사군별한다 추추여읍우여가

可憐異趣飛南北 萬水千山自在過

가련이취비남북 만수천산자재과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새가 한 가지서 함께 자고 날 밝으면 각자 날아간다(鳥宿共一枝, 天明各自飛)

 

 

8. 1 선시

 

잡초

 

숲 속 중이 선적(禪寂) 중에 안거(安居)를 함께 하니

그를 것도 없지만은 옳을 것도 없다네.

설령 약초밭에 악초가 난다해도

봄의 뜻이 어여뻐서 김을 매지 않는다오.

 

 

林僧禪寂共安居 不但無非是亦無

임승선적공안거 부단무비시역무

縱有藥欄生惡草 爲憐春意不鋤除

종유약란생악초 위련춘의불서제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대중에게 보이다(示衆)

 

 

냇물 소리

 

 

허공을 쳐부수어 해와 달을 파묻으니

산하와 대지 모두 구덩이에 들었구나.

병중에 병 안든 자 어디로 가는 게요

금강산 냇물 소리 고금에 한가질세.

 

 

打破虛空埋日月 山河大地一坑藏

타파허공매일월 산하대지일갱장

病中不病者何去 溪水金剛今古聲

병중불병자하거 계수금강금고성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임종게(臨終偈)

 

 

 

8. 2 선시

 

쇠 피리

 

녹양방초 사이사이 우거져 있는 곳에

가고픈 대로 맡겨 맘껏 놓아 먹였지.

문득 고삐 풀어주자 종적조차 없어서

쇠 피리 느긋하게 옛 산에서 부누나.

 

 

綠楊芳草間離離 牧爾縱橫任所歸

녹양방초간리리 목이종횡임소귀

忽放索頭無縱迹 閑將鐵笛故山吹

홀방삭두무종적 한장철적고산취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소가 없다(無牛)

 

 

흰 구름

 

 

일흔 살 늙은 중이 흰 구름에 앉아서

흰 구름 집을 삼고 또 문을 삼는다네.

만약 누가 마음 속 일 물어볼 것 같으면

건곤에 아침 가고 저녁 옴과는 다르다고.

 

 

七十老僧坐白雲 白雲爲室又爲門

칠십노승좌백운 백운위실우위문

有人若問心中事 不似乾坤朝又昏

유인약문심중사 불사건곤조우혼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우연히 읊조리다(偶吟)

 

 

 

8. 3 선시

 

염불 소리

 

 

염불 소리 드높아 맑고도 화창하니

신상(神象)마저 덩실덩실 춤을 추게 하누나.

어여뻐라 그대의 소리 가락 웅장하여

가슴 속에 몇 이랑 물결 간직했나 모르겠네.

 

 

頌佛聲高淸且和 却敎神象舞婆娑

송불성고창차화 각교신상무파사

多君玉齒潮音壯 不識胷藏幾頃波

다군옥치조음장 불식흉장기경파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어산의 인스님이 말을 구하므로 주다(賽仁魚山求語)

 

 

 

뜰 앞의 잣나무

 

 

올해는 지난해보다 가난이 더 심해서

길 떠나는 그대에게 줄 물건이 하나 없네.

서쪽서 온 뜰아래 잣나무를 주노니

때때로 마음 쏟아 명심하여 잊지 말게.

 

 

今年貧甚去年貧 無物臨行可贈君

금년빈심거년빈 무물임행가증군

惟付西來庭下栢 時時着意又書紳

유부서래정하백 시시착의우서신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급 스님이 말을 구하므로 시를 지어 주다(伋師求語作句贈之)

8.4 선시

 

나는야

 

약초밭에 샘물 끌어 국로(國老)에 물을 주고

대밭에는 가시울로 조동(朝童)을 보호하네.

흥망의 시끄러움 문을 닫고 안 받으니

나는야 세상 속의 일없는 늙은일세.

 

 

藥圃引泉澆國老 筠庭插棘護朝童

약포인천요국로 균정삽극호조동

杜門不受興亡擾 我是世間無事翁

두문불수흥망요 아시세간무사옹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한중잡영(閑中雜詠)6-1

 

차 석잔

 

 

새벽 미음 한 국자 든든히 먹고

낮엔 밥 한 그릇에 배가 부르다.

목마르면 차를 석잔 달여 마시니

깨달음 있고 없곤 상관 않으리.

 

 

寅漿飫一杓 午飯飽一盂

인장어일표 오반포일우

渴來茶三椀 不管會有無

갈래차삼완 불관회유무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한 스님에게 대답하다(有一禪者答云)

 

 

8. 5 선시

 

득실

 

부귀해도 오정(五鼎) 음식 외려 가볍고

빈궁하나 소쿠리 밥 충분하도다.

백년 간 떠돌기야 한 가질러니

피차간 어이 잃고 얻음이 되리.

 

 

富貴猶輕五鼎飡 貧窮自足一簞食

부귀유경오정손 빈궁자족일단사

等是浮休百歲間 此何爲失彼何得

등시부휴백세간 차하위실피하득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우연히 쓰다(偶書)

 

분명

 

 

천 봉우리 우뚝 솟아 흰 구름을 찌르고

한 줄기 물 흘러흘러 푸른 바위 쏟아 붓네.

저절로 듣고 봄이 몹시도 또렷하여

그대들께 알리노니 밖에서 찾지 말라.

 

 

千峰突兀攙白雲 一水潺湲瀉蒼石

천봉돌올참백운 일수잔원사창석

自然聞見甚分明 爲報諸人休外覔

자연문견심분명 위보제인휴외멱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게송을 지어 여러 스님에게 보이다(作偈示諸德)

 

 

 

 

8. 6 선시

 

거울 속

 

한 조각 가을 소리에 오동잎이 떨어지니

늙은 중이 놀라 일어나 가을바람 묻는구나.

아침나절 홀로 걸어 냇가에 서있자니

칠십년 세월이 거울 속에 담겼구나.

 

 

一片秋聲落井桐 老僧驚起問西風

일편추성낙정동 노승경기문서풍

朝來獨步臨溪上 七十年光在鏡中

조래독보임계상 칠십년광재경중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초가을에 느낌이 있어(初秋有感)

 

 

몸에게

 

이 땅에 나고부터 너를 의지 하였더니

너와 나 서로서로 50여년 얼러왔네.

다만 염려 그대와 작별하는 그날에

백년 우정 하루아침 소원해짐일러라.

 

 

我生落地即憑渠 渠我相將五十餘

아생낙지즉빙거 거아상장오십여

秪恐與渠分手日 百年交道一朝踈

지공여거분수일 백년교도일조소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혼자 마음을 대신해서 몸에게 주다(自代心贈身形)

8. 7 선시

 

새벽 달

 

 

()이 거울 본체라면 마음은 빛과 같아

성품 만약 해맑으면 마음 절로 드러나리.

묵은 구름 바람이 쓸자 천리 하늘 말끔한데

푸른 하늘 외론 달이 새벽까지 푸르구나.

 

 

性如鏡體心如光 性若澄淸心自彰

성여경체심여광 성약징청심자창

風掃宿雲千里盡 碧天孤月曉蒼蒼

풍소숙운천리진 벽천고월효창창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성심(性心) 노숙에게 답하다(答性心老宿)

 

 

 

때때로

 

 

능히 넓고 깊기가 한바다 다름없고

더하거나 줄지 않음 허공과 한 가지라.

이따금 비밀스레 돌아드는 빛 비추니

마음 절로 빌 적에 경계도 절로 비네.

 

 

能廣能㴱如大海 無增無減若虛空

능광능심여대해 무증무감약허공

時時密密回光照 心自空時境自空

시시밀밀회광조 심자공시경자공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일원상(一圓相)

 

8. 8 선시

 

가을

 

 

처마 둘레 대 우거져 빗소리 익숙한데

골짝 가득 물든 단풍 가을빛이 곱구나.

어여쁜 국화는 새벽 이슬에 울고 있고

우수수 붉은 잎이 뜨락 가지 떨어진다.

 

 

遶檐竹密雨聲慣 滿洞楓殷秋色多

요첨죽밀우성관 만동풍은추색다

艶艶黃花啼曉露 蕭蕭赤葉下庭柯

염염황화제효로 소소적엽하정가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가을날 우연히 쓰다(秋日偶書)

 

빈주

 

 

마음은 몸 가운데 주인이지만

몸은 마음 밖의 손님 아닐세.

마음이 편안하면 몸도 고요해

주인 손님 힘써 서로 가까웁다네.

 

 

心是身中主 身非心外賓

심시신중주 신비심외빈

心安身亦靜 賓主力相親

심안신역정 빈주력상친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안심 비구가 게송을 구하기에(安心比丘求偈)

 

 

 

 

 

 

 

 

 

8. 9. 선시

 

한바탕 꿈

 

한단의 베개 위 일 황당하긴 하지만

총욕(寵辱)이란 참으로 한바탕 꿈 진배없다.

내 능히 이 이치를 궁구했다 할진댄

이 같은 순경(順境) 만나 두서없음 물리치리.

 

邯鄲枕上事荒唐 寵辱眞同夢一塲

한단침상사황당 총욕진동몽일장

盡道吾能窮此理 逢些順境却顚忙

진도오능궁차리 봉사순경각전망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우연히 쓰다(偶書)

 

 

 

가볍던 장삼 무거워 몹시 쇠함 알겠고

익숙턴 경전 생소하니 병 깊음을 깨닫네.

다만 이 마음만은 끝내 늙지 않아서

흥이 일면 이따금 다시 길게 읊조리네.

 

舊輕衲重知衰甚 曾熟經生覺病深

구경납중지쇠심 증숙경생각병심

唯有此心終不老 興來時復一長吟

유유차심종불로 흥래시부일장음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우연히 읊다(偶吟)

 

8. 10. 선시

 

봄 깊어

 

 

봄 깊어 날은 긴데 사람 일을 끊으니

바람이 배꽃 쳐서 뜰 가득 눈이로다.

처마 기댄 예쁜 나무 그림자 서로 얽혀

산보하며 읊노라니 마음 절로 기쁘다.

 

 

春深日永人事絕 風打梨花滿庭雪

춘심일영인사절 풍타이화만정설

倚檐佳木影交加 散步行吟自怡悅

의첨가목영교가 산보행음자이열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저무는 봄날(暮春即事)

 

 

 

8. 10. 선시

 

진면목

 

산의 앞뒤로 달빛 환하고

바다의 안팎에 바람은 맑다.

누구의 진면목을 묻는 것인가

하늘에 점찍은 기러기 있네.

 

 

月皛山前後 風淸海外中

월효산전후 풍청해외중

問誰眞面目 更有點天鴻

문수진면목 갱유점천홍

 

-벽송 지엄(碧松 智儼, 14641534),

학희선자에게 주다(贈學熈禪子)

 

심법

 

법은 마음 밖의 법이 아니요

마음은 법 가운데 마음이라네.

마음의 법 본래부터 있지 않다면

무엇으로 법의 마음 전하겠는가?

 

 

法非心外法 心是法中心

법비심외법 심시법중심

心法本非有 有何傳法心

심법본비유 유하전법심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설순대사가 게송을 구하므로(雪淳大師求偈)

 

8.11 선시

 

한 방

 

일만 의심 온통 모두 의심 덩이 향해가니

의심 가고 오는 중에 의심을 절로 보네.

모름지기 용을 잡고 봉을 치는 솜씨라야

한 주먹 주먹질로 무쇠 성문 넘기리라.

 

 

萬疑都就一疑團 疑去疑來疑自看

만의도취일의단 의거의래의자간

須是拏龍打鳳手 一拳拳倒鐵城關

수시나룡타봉수 일권권도철성관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난법사에게 주다(贈蘭法師)

 

 

 

도강

 

정종(正宗)의 소식이 재미가 없다 해도

쓰지 않고 어이하고 또 어찌 한단 말가.

은산과 철벽을 깨부수고 가야지만

그제야 바야흐로 사생 강물 건너가리.

 

正宗消息沒滋味 不用如何又若何

정종소식몰자미 불용여하우약하

打破銀山鐵壁去 此時方渡死生河

타파은산철벽거 차시방도사생하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순장로에게 주다(贈淳長老)

 

 

8.12 선시

 

그제야

 

도를 봄에 뜻 있으면 도가 외려 어지럽고

안락 구함 마음 두면 도리어 불안하다.

안락 없고 봄도 없는 경지에 다다르면

그제야 이 일이 복잡잖음 알게 되리.

 

 

情存見道還迷道 心要求安轉不安

정존견도환미도 심요구안전불안

安到無安見無見 方知此事勿多般

안도무안견무견 방지차사물다반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도안 장로에게 부치다(寄道安長老)

 

 

솔바람

 

 

비 갠 뒤 정원은 빗질한 듯 고요하고

들창에 바람 들자 가을인양 서늘하다.

산 빛과 냇물소리 솔가지 퉁소 소리

진세의 일 어이해 마음에 이를쏘냐.

 

 

雨餘庭院靜如掃 風過軒窓凉似秋

우여정원정여소 풍과헌창량사추

山色溪聲又松籟 有何塵事到心頭

산색계성우송뢰 유하진사도심두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우연히 절구 한 수를 쓰다(偶書一絕)

 

 

새해

 

 

추위 더위 갈마듦은 보통의 일이거니

사람들 어지러이 한해 축하 분주하다.

묵은 해 가고 새해 온들 기뻐할 게 무언가

귀밑머리 한 오리 흰 터럭만 느는 걸.

 

 

寒暄代謝是尋常 人盡奔波賀歲忙

한훤대사시심상 인진분파하세망

舊去新來何所喜 鬢邊添得一莖霜

구거신래하소희 수변첨득일경상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초봄에 열()선백께 부치다(春初寄悅禪伯)

 

 

8.13 선시

 

바다 보물

 

어제 새벽 해를 쫓아 푸른 산을 내려가

오늘 저녁 볕을 따라 절문으로 드누나.

두 어깨 무거운 걸 괴이타 하지 마라

용궁의 바다 보물 짊어지고 왔다네.

 

昨趂晨曦下翠微 今隨夕照入松扉

작진신희하취미 금수석조입송비

諸人莫恠雙肩重 擔得龍宮海藏歸

제인막괴쌍견중 담득용궁해장귀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무인년 116일 대중을 이끌고 산을 나서 이튿날 대장경을 나눠 지고 돌아오며 지은 게송(戊寅十一月六日 率衆出山明日分負藏經迴有偈)

 

달빛 노래

 

진흙 소 바다 들어 아득히 간데없고

삼생의 한 큰 인연 깨달아 이르렀네.

어인 일 다시금 번뇌 생각 일거들랑

재각으로 찾아와 달빛 노래 빌어보게.

 

泥牛入海杳茫然 了達三生一大緣

니우입해묘망연 요달삼생일대연

何事更生煩惱念 也來齋閣乞陳篇

하사갱생번뇌념 야래재각걸진편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임종게(臨終偈)

 

 

 

8.14 선시

그저

 

눈 가득한 천지에 바람 빛깔 싸늘한데

지는 해에 고개 돌려 바다 구름 사이 본다.

한번 떠난 고향은 천산의 밖에 있어

꿈 속 넋만 유유히 그저 갔다 돌아오네.

 

 

雪滿乾坤風色寒 回頭日落海雲間

설만건곤풍색한 회두일락해운간

故鄕一別千山外 魂夢悠悠空去還

고향일별천산외 혼몽유유공거환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나그네로 지어 읊다(客作吟)

 

 

 

장부의 뜻

 

 

솔과 대의 절조로 서리 눈을 견디니

물과 달의 정신이 어이 티끌 물들까?

장하다 장부의 뜻 깊이깊이 간직해

명산을 찾아가서 주인이 되시게나.

 

 

松筠節操凌霜雪 水月精神豈染塵

송균절조능상설 수월정신기염진

壯哉深包丈夫志 須訪名山作主人

장재심포장부지 수방명산작주인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 선덕이 말을 구하므로 주다(賽俊禪德求語)

 

8. 15 선시

 

참선

 

참선은 많은 말이 필요치 않으니

평소처럼 묵묵히 스스로를 봄에 있네.

조주의 ()’자를 망각할 것 같으면

입 있어도 할 말 없어 나는 상관 않으리.

 

叅禪不用多言語 只在尋常默自看

참선불용다언어 지재심상묵자간

趙州無字如忘却 雖口無言我不干

조주무자여망각 수구무언아불간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 산인에게 주다.(贈默山人)

분별심

 

한 바다에 뭇 고기 노니니

저마다 한 큰 바다 지녔네.

바다는 분별심 없으니

여러 부처의 법도 이렇다.

 

 

一海衆魚游 各有一大海

일해중어유 각유일대해

海無分別心 諸佛法如是

해무분별심 제불법여시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가르침을 구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다(示求法人)

 

 

 

 

8. 16 선시

 

붉은 잎

 

나고 멸함이 실상 아니요

실상이 바로 생멸인 것을.

봄 가고 나서 가을 아니라

푸른 잎 붉게 물든 것일세.

生滅非實相 實相是生滅

생멸비실상 실상시생멸

非春去又秋 靑葉染紅色

비춘거우추 청엽염홍색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가을 빛(秋色)

 

 

나무하고 물 긷기

 

 

정밀함 속에서 늘 정밀해도

거친 가운데 더욱 거칠다.

예순에 몸소 나무하고 물 길어오니

몸은 되도 마음은 고되지 않네.

 

 

精底每每精 麁底轉轉麁

정저매매정 추저전전추

六十躬柴水 體劬心不劬

육심궁시수 체구심불구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뜻을 말하다(叙意)

 

 

8. 17 선시

 

가을

 

 

손도 없고 발도 없는 어떤 물건이

허공 몰아 작은 다락 쳐들어왔네.

풍경 소리 낮잠을 놀라 깨보니

산 빛 이미 깊어진 가을이로다.

 

 

有物無手足 驅空入小樓

風鈴驚午夢 山色已深秋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높은 누각에서 자고(宿高樓)

 

 

가석타

 

 

가석타 세상사람

제 몸 귀함 모르고서,

부귀만을 선망하여

불법 구함 이와 같네.

 

 

可惜世間人 不知自身貴

가석세간인 불지자신귀

羡他豪富人 求佛法如是

선타호부인 구불법여시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남의 요구에 응해서 짓다(求他作)

 

 

8. 18 선시

 

 

 

지식으로 아는 것을 안다고 하면

손으로 허공 웅킴 다름없으리.

앎은 단지 스스로 자길 아는 것

앎 없어야 다시금 알 것을 아네.

 

 

若以知知知 如以手掬空

知但自知已 無知更知知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지지편을 보고서(看到知知篇)

 

 

 

 

생각

 

 

생각으로 생각을 생각한다면

생각하고 생각해도 참 생각은 아니리.

망녕된 생각을 진짜 다스려야만

괴롭잖게 한 생각이 없어지리라.

 

 

如以念念念 念念非眞念

여이념염염 념염비진염

將眞治妄念 未苦無一念

장진치망념 미고무일념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무제(無題)

 

 

8. 19 선시

 

부싯돌

 

 

부싯돌 치는 사이 50년 세월 지나

인간의 영욕이 온통 모두 헛것일세.

오늘 아침 껄껄 웃고 표연히 떠나가니

장삼 입은 중의 행장 만리의 바람 뿐.

 

 

五十年光石火中 人間榮辱揔虛空

오십년광석화중 인간영욕총허공

今朝大笑飄然去 一衲行裝萬里風

금조대소표연거 일납행장만리풍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대중과 떠나며(捨衆)

 

 

갈림길

 

사람마다 문 밖에는 길이 평탄하지만

평탄한 그 가운데 갈림길이 다시 있지.

바른 길 문득 잃고 갈림길로 들어서면

하늘 덮은 가시밭길 홀로 헤매게 되리.

 

 

人人門外路平坦 平坦坦中更有歧

인인문외로평탄 평탄탄중갱유기

正路忽迷歧路入 漫天荊棘獨蹰躇

정로홀미기로입 만천형극독주저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길을 잃다(失路)

 

8. 21 선시

 

 

물아(物我)가 한 뿌리임 진작에 알았으니

손길 따라 등불 밝혀 겹겹 어둠 깨뜨리리.

백년간 마음잡아 묵은 종이 뚫는대도

의심 깸이 운문산에 앉음만 같겠는가?

 

 

已知物我是同根 順手明燈破重昬

이지물아시동근 순수명등파중혼

百歲將心鑚古紙 白拈爭似坐雲門

백세장심찬고지 백염쟁사좌운문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산집의 그윽한 흥취(山居幽趣)

 

바위 구석 어여쁜 꽃 몇 겹으로 달렸는데

이곳 사람 함박꽃이라 말하여 주는구나.

한 가지 비스듬이 공중으로 뻗어가서

앞산의 옥순봉을 살짝 덮어 가려주네.

 

 

巖角仙花著數重 土人道是木芙蓉

암각선화착수중 사인도시목부용

一枝斜展空中去 微礙前山玉筍峯

일지사전공중거 미애전산옥순봉

 

-아암 혜장(兒庵 惠藏, 1772~1811),

산거잡흥(山居雜興)

 

 

 

서쪽 하늘

 

어느 곳 청산인들 적막치 않으랴만

원래의 자취를 다 없애지 못하였네.

아득한 한 생각은 서역 하늘 밖에 있어

어이해 허공 솟아 줄 다리를 건너갈꼬.

 

 

何處靑山不寂寥 原來形跡未能消

하처청산부적료 원래형적미능소

迢迢一念西天外 那得騰空渡索橋

소소일념서천외 나득등공도삭교

 

-아암 혜장(兒庵 惠藏, 1772~1811),

산거잡흥(山居雜興)

[

 

주역 공부

 

말쑥한 선방에 하루해가 아주 긴데

다 헤진 베적삼에 대 침상도 부서졌네.

올 들어 이천역(伊川易)은 아예 읽지 않으면서

자명(慈明)과 중상역(仲翔易)만 곰곰이 생각하네.

 

 

瀟灑禪房白日長 敝麻衫子破筠牀

소쇄선방백일장 폐마삼자파균상

年來不讀伊川易 思殺慈明與仲翔

년래부독이천역 사쇄자명여중상

 

-아암 혜장(兒庵 惠藏, 1772~1811),

산거잡흥(山居雜興)

 

 

목어

 

일천 상자 대장경은 한 마음을 말하고

목어(木魚) 치는 소리 속에 뜰 그늘 옮겨간다.

하늘 꽃 마구 짐은 어느 해 일이던가

처마 너머 보이느니 짝져 나는 새 뿐일세.

 

 

大藏千凾說一心 木魚聲裏轉庭陰

대장천함설일심 목어성리전정음

天花亂落何年事 惟見飛檐兩兩禽

천화난락하년사 유견비첨양양금

 

-아암 혜장(兒庵 惠藏, 1772~1811),

산거잡흥(山居雜興)

 

8. 20 선시

 

주렴 가득

 

주렴 가득 산 빛이 고요 속에 선명하니

푸른 나무 붉은 놀 눈에 가득 어여쁘다.

사미에게 당부하여 차를 끓여 내게 하니

베갯머리 원래부터 지장(地漿) 샘이 있다네.

 

 

一簾山色靜中鮮 碧樹丹霞滿目妍

일렴산색정중선 벽수단하만목연

叮囑沙彌須煑茗 枕頭原有地漿泉

정촉사미수자명 침두원유지장천

 

-아암 혜장(兒庵 惠藏, 1772~1811),

산거잡흥(山居雜興))

 

 

능엄경

 

 

한쪽 어깨 앙상하다 육수의(六銖衣)가 가벼운데

예불타가 등불 빛이 어느새 오경일세.

10책의 능엄경을 차례차례 펼쳐보니

그 가운데 마음 일을 뉘와 함께 얘기할꼬.

 

 

一肩癯著六銖輕 禮佛燈光自五更

일견구착육수경 예불등광자오경

十册楞嚴開次第 可中心事與誰呈

십책능엄개차제 가중심사여수정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8. 21 선시

 

적막

 

뭇 봉우리 한데 모여 창안으로 들어오고

눈보라 매서워라 지난해와 다름없네.

사람 자취 적막하다 낮 기운도 싸늘하여

매화꽃 지는 곳에 삼생이 텅 비었다.

 

群峰蝟集到窓中 風雪凄然去歲同

군봉위집도창중 풍설처연거세동

人境寥寥晝氣冷 梅花落處三生空

인경료료주기냉 매화낙처삼생공

 

-만해(萬海, 1879-1944), 산주(山晝)

파초

 

아무 일도 없는 것이 고요함은 아니니

첫 맹세 안 저버림 새로움이 이것이라.

파초처럼 비온 뒤에 우뚝 설 것 같으면

이 몸 어이 티끌세상 내달림을 마다하랴.

 

絶無一事還非靜 莫負初盟是爲新

절무일사환비정 막부초맹시위신

倘若芭蕉雨後立 此身何厭走黃塵

당약파초우후립 차신하염주황진

 

-만해(萬海, 1879-1944), 오세암(五歲庵)

 

8. 22 선시

 

동행

 

향기론 채소 한 사발에 아침 식사 너끈하고

일곱 근 먹장삼에 봄잠이 아주 달다.

묻노라 암자에서 그 누구와 함께 있나

감실 안에 만수동자 나와 함께 지낸다네.

 

 

香蔬一鉢卯餐足 黲衲七斤春睡甘

향소일발묘찬족 참납칠근춘수감

且問庵中誰與共 曼殊童子是同龕

차문암중수여공 만수동자시동감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한가한 거처(閑居)

 

 

 

꾀꼬리

 

 

산 푸른데 비 지나고

초록 버들 안개 잠겨.

학은 그저 왔다갔다

꾀꼬리는 조잘조잘.

 

 

山靑仍過雨 柳綠更含煙

산청잉과우 유록갱함연

逸鶴閑來往 流鶯自後先

일학한래왕 류앵자후선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한중잡영(閑中雜詠)

 

 

 

 

8. 23 선시

 

선관(禪觀)

黃面瞿曇不良久(황면구담불량구)

室中維摩亦不默(실중유마역불묵)

恰似吹毛新發硏(흡사취모신발연)

外道天魔 處不得(외도천마처불득)

 

금빛 얼굴의 부처님은 유구한 세월도 없나니,

방장실의 유마힐도 침묵하지 않도다.

선의 본바탕은 새로이 연마한 취모리(번개같이 빠른) 검과도 같으니,

외도와 천마(天魔)도 넘보지 못하네. - << 백운 화상 >> -

 

 

苟能頓捨尊三寶 何用黃金側地看

구능돈사존삼보 하용황금측지관

白馬新莊開壯麗 蒼鷹舊宅掃荒寒

백마신장개장려 창응구택소황한

已成蘭若諸塵淨 須信檀那一寸丹

이성난야제진정 수신단나일촌단

珍重義龍興法雨 普霑能使沃焦安

진중의용흥법우 보점능사옥초안

 

_ 萬德山白蓮社第四代眞靜國師湖山錄卷第三

진실로 존귀하신 삼보를 버려두고

어떻게 황금 땅을 쓸 수 있겠는가

백마를 새로이 아름답게 단장하고

흰매에 옛집의 황량함을 쓸어내니

이미 절이 되어 모든 것이 깨끗해져

모름지기 믿는 단월이 한마음이다.

진중한 뜻으로 용이 법우를 내리니

가피를 입어 옥초가 편안해졌다 - << 진정국사 >>

 

 

8. 24 선시

 

 

자적

 

무엇하러 괴롭게 불경을 보나

광명이 일어남을 막을 수 없네.

시 짓기는 제 뜻에 맞으면 그만

남 향해 읊조림을 뉘라 즐기리.

 

 

何用看經苦 光明起莫禁

하용간경고 광명기막금

構詞惟自適 誰肯向人吟

구사유자적 수긍향인음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유연(悠然)

 

천지일향 (天地一香)

 

티끌과 정토(淨土)가 모두 한 암자,

방장실을 떠나지 않고도 남방을 두루 순방했네.

선재동자(善財童子)는 무엇 때문에 그리도 심한 고생을 자처하여, 백십성을 순력했는가.

塵刹都盧在一庵(진찰도노재일암)

不離方丈遍詢南(불리방장편순남)

善財何用勤 甚(선재하용근구심)

百十城中枉歷參(백십성중왕력참) - << 원감 국사 >> -

 

 

 

산비둘기

 

가파른 산 마른 뼈를 석대(石臺)에 기대이니

오래 앉은 포단에 이끼조차 돋아날 듯.

벌 나비 놀며 날며 바쁘게 지나가고

산비둘기 비 부르며 꾸룩꾸룩 우는구나.

 

 

鶴骨崚嶒倚石臺 蒲團坐久欲生菭

학골능증의석대 포단좌구욕생태

游蜂飛蜨悤悤過 又有山鳩喚雨來

유봉비접총총과 우유산구환우래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봄날(春日即事)

 

 

踏 雪 野 中 去 (답설야중거)

不 須 湖 亂 行 (불수호란행)

今 日 俄 行 跡 (금일아행적)

燧 作 後 人 程 (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행여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게 가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가는 이 발자취는

반드시 후인들의 길잡이가 되리니'

 

草屋 초옥

 

草屋無三壁 세 벽이 없는 초옥에

老僧眠竹床 노승은 대나무상에서 잠들었다

靑山一半濕 청산은 반쯤 젖었는데

疎雨過殘陽 성긴 비가 석양에 지나는구나

 

過法光寺 법광사를 지나며

 

風雨天間屋 하늘 사이 천간 집에 비바람이요

苔塵萬佛金 부처 금색 몸은 먼지와 이끼와 먼지로 덮였구나

定知禪客淚 참말로 알겠구나! 선객이 여기와서

到此不應禁 눈물을 금치 못하는 까닭을

 

過邸舍聞琴 저택 밖에서 가야금 소리를 듣고

 

白雪亂織手 백설이 날리듯 여인은 가야금을 켜더라

曲終情米終 곡은 끝났으되 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秋江開鏡色 가을강가에 커다란 거울이 열려

畵出數靑峰 푸른 산봉우리 몇을 담고 있다

 

感興集古詩 감흥을 모은 고시

 

天道分明人自昧 천도는 분명한데 사람 자신이 부족하고 어두워

功名得失欣悲 부귀공명과 득실에 부질없이 웃고 운다.

年當少日須思老 젊을 때 늙음을 생각하고

身在安時莫忘危 몸이 편할 때 위급함을 잊지 말라.

 

高祖宅中花似錦 한고조 유방의 뜰에 꽃은 비단 같았고

魏王堤畔柳如絲 위왕 조조의 못둑에 버들은 실버들로 푸르렀다

良辰美景忍虛負 좋은 철에 좋은 경치 헛되이 보내지 마라

驟雨飄風無定期 소나기와 모진 바람 일정한 때 없나니

 

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하니 一物(일물)何物(하물)

凡有事物小不能大하고 大不能小로대 此則反是하야 能小而細入隣虛하고 能大而廣包法界”(범유사물 소불능대 대불능소 차즉반시 능소이세입인허 능대이광포법계)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하고 선萬歲而長今(선만세이장금)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이 물건이 무슨 물건인고

무릇 온갖 사물들이 작은 것은 능히 클 수 없고 큰 것은 능히 작아질 수 없으나 이것(한 물건)은 사물과 반대로 능히 작고 미세하여 인허(분자정도의 작은 것)에 들어가기도 하고 능히 커서 법계를 널리 에워싸느니라

이라천겁을 지나도 옛이 아니고 만세에 뻗쳐있어도 항상 지금이 마음자리요, -함허득통 금강경 서문

 

 

 

무일화(無一花)

 

一念不生全體現(일념불생전체현)

此體如何得喩齊(차체여하득유제)

透水月華虛可見(투수월화허가견)

無心鑑象照常空(무심감상조상공)

洞中流水如藍染(동중류수여람염)

門外靑山盡不成(문외청산진불성)

山色水聲全體露(산색수성전체로)

箇中誰是悟無生(개중수시오무생)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전체가 나타나려니,

이 본체를 어떻게 말 할 수 있으리요.

물 속 달빛은 허공에서도 볼 수 있으나,

무심의 거울은 비추어도 항상 허공이로다.

골짜기 흐르는 물은 쪽물인 것 같고,

문밖의 청산은 자연 그대로이다.

산색, 물소리에 전체가 드러났으니,

그 속에서 무생(無生 : 모든 법의 실상은 생멸(生滅)이 없는 것)의 깨달음을 얻었노라.

 

 

8. 25 선시

 

언덕 가득 구름 안개 다만 적막하여도

십년간 병발(甁鉢)로 인간 세상 멀리했지.

나무 구멍 천종 녹을 멀리서도 알아서

소나무 창 반나절 잠과 맞바꾸지 않는다네.

 

 

一塢雲霞只寂然 十年瓶鉢遠人煙

일오운하지적연 십년병발원인연

遙知槐穴千鍾祿 不博松牕半日眠

요지괴혈천종록 불박송창반일면

 

-아암 혜장(兒庵 惠藏, 1772~1811), 산거잡흥(山居雜興)

 

 

 

선관(禪觀)

黃面瞿曇不良久(황면구담불량구)

室中維摩亦不默(실중유마역불묵)

恰似吹毛新發硏(흡사취모신발연)

外道天魔 處不得(외도천마처불득)

 

금빛 얼굴의 부처님은 유구한 세월도 없나니,

방장실의 유마힐도 침묵하지 않도다.

선의 본바탕은 새로이 연마한 취모리(번개같이 빠른) 검과도 같으니, 외도와 천마(天魔)도 넘보지 못하네. - << 백운 화상 >> -

 

 

苟能頓捨尊三寶 何用黃金側地看

 

구능돈사존삼보 하용황금측지관

白馬新莊開壯麗 蒼鷹舊宅掃荒寒

백마신장개장려 창응구택소황한

已成蘭若諸塵淨 須信檀那一寸丹

이성난야제진정 수신단나일촌단

珍重義龍興法雨 普霑能使沃焦安

진중의용흥법우 보점능사옥초안

 

_ 萬德山白蓮社第四代眞靜國師湖山錄卷第三

 

 

진실로 존귀하신 삼보를 버려두고

어떻게 황금 땅을 쓸 수 있겠는가

백마를 새로이 아름답게 단장하고

흰매에 옛집의 황량함을 쓸어내니

이미 절이 되어 모든 것이 깨끗해져

모름지기 믿는 단월이 한마음이다.

진중한 뜻으로 용이 법우를 내리니

가피를 입어 옥초가 편안해졌다 - << 진정국사 >>

 

 

8. 25 선시

 

청천(聽泉)

 

계족산 봉우리 앞 옛 도량,

이제와 보니 푸른 산 빛 유별나네.

부처님 소리 바로 맑은 시냇물 소리인데,

무엇 때문에 귀찮게 다시 부처님 소리 세우리.

 

聽泉(청천)

 

鷄足峯前古道場(계족봉전고도장)

今來山翠別生光(금래산취별생광)

廣長自有淸溪舌(광장자유청계설)

何必喃喃更擧揚(하필남남경거양)

천지일향 (天地一香)

 

티끌과 정토(淨土)가 모두 한 암자,

방장실을 떠나지 않고도 남방을 두루 순방했네.

선재동자(善財童子)는 무엇 때문에 그리도 심한 고생을 자처하여, 백십성을 순력했는가.

 

백십성(百十城): 수를 셀 수 없는 여러 곳

순력(巡歷): 돌아다닌다

 

 

천지일향(天地一香)

塵刹都盧在一庵(진찰도노재일암)

不離方丈遍詢南(불리방장편순남)

善財何用勤 甚(선재하용근구심)

百十城中枉歷參(백십성중왕력참)

 

- <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

 

 

 

 

 

 

 

 

 

 

천지일향 (天地一香)

 

티끌과 정토(淨土)가 모두 한 암자,

방장실을 떠나지 않고도 남방을 두루 순방했네.

선재동자(善財童子)는 무엇 때문에 그리도 심한 고생을 자처하여, 백십성을 순력했는가.

塵刹都盧在一庵(진찰도노재일암)

不離方丈遍詢南(불리방장편순남)

善財何用勤 甚(선재하용근구심)

百十城中枉歷參(백십성중왕력참) - << 원감 국사 >> -

 

言語示法

趙州스님: 죽을 먹었는가? 學僧: 먹었습니다. 趙州스님: 그렇다면 발우를 씻어라. 이때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다.

言聲示法

玄沙스님: 개울물 소리를 듣는가? 學僧: 듣습니다. 玄沙스님: 개울 속으로 들어가라. 이때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다.

聲示法

'까마귀의 울음소리, 까치의 지저귐, 나귀의 울음소리, 개의 짖음이 모두 여래의 법륜을 굴리는 것이다'라는 데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色聲示法

망치로 치거나 拂子를 세우거나 손가락을 퉁기거나 눈썹을 치켜올리거나 방망이로 때리거나 할()을 하는 갖가지 작용이 다 祖師禪이다. 그러므로 소리를 듣고 깨달을 때도 있고, 물체를 보고 깨달을 때도 있다.

826 선시

 

많은 성에 노닐기를 마친 뒤

묘향산에서 구름과 벗해 한가롭구나

홀로 앉아 밤은 깊어 가는데

앞 봉우리 달빛은 마냥 차갑고나. - < 편양 언기 >

 

 

백성유방필 (百城遊方畢)

향악반운한 (香岳伴雲閑)

독좌향심야 (獨坐向深夜)

전봉월색한 (前峰月色寒)

 

 

뜬 인생 참으로 쏜살 같이 지나가니

얻고 잃음 슬픔 기쁨 어이 족히 헤아리랴.

그대 보라 귀천(貴賤)과 현우(賢愚)를 가리잖고

마침내는 똑같이 무덤 흙이 되는 것을.

 

 

浮生正似隙中駒 得喪悲歡何足數

부생정시극중구 득상비환하족수

君看貴賤與賢愚 畢竟同成一丘土

군간귀천여현우 필경동성일구토

 

 

-원감 충지(圓鑑 沖止, 1226-1292),

'시인(示人)'

 

827 선시

 

 

눈앞의 세월은 따를 수가 없느니

포환(泡幻) 같은 사람일은 거의 글러 버렸네.

헛되이 살다 그저 죽음 참으로 부끄러워

장단(長短)과 영고(榮枯)를 의심치 못하겠네.

 

過眼年光不可追 幻泡人事幾成非

과안년광불가추 환포인사기성비

虛生浪死眞堪恥 長短榮枯未足疑

허생낭사진감치 장단영고미족의

 

-우세 의천(祐世 義天, 1055-1101),

유감(有感)

 

참문(參問)함엔 아만(我慢)을 제거해야 마땅하고

수행에는 탐진치(貪嗔痴)를 없앰이 합당하다.

헐뜯음과 기림이 바람처럼 들려와도

만사에 무심해야 도가 절로 새로우리.

 

參問須宜除我慢 修行只合去貪嗔

참문수의제아만 수행지합거탐진

雖聞毁譽如風過 萬事無心道自新

수문훼예여풍과 만사무심도자신

 

-부휴 선수(浮休 善修, 15431615),

() 상인에게 주다(贈峻上人)

 

 

829 선시

 

 

홀로 앉은 깊은 산에 온갖 일들 가벼워

온 종일 사립 닫고 무생(無生)을 배우노라.

생애를 점검하니 남아있는 물건 없고

한 잔의 새 차에다 한 권 경전 뿐이로다.

 

獨坐深山萬事輕 掩關終日學無生

독좌심산만사경 엄관종일학무생

生涯點檢無餘物 一椀新茶一卷經

생애점검무여물 일완신차일권경

 

-부휴 선수(浮休 善修, 15431615),

() 선백께 드림(贈巖禪伯)2

 

스승 찾아 도를 배움 별것이 없으니

소를 그저 잡아타고 제 집에 가는 걸세.

백척의 장대 끝서 능히 활보한다면

그 많은 부처쯤은 눈앞의 꽃이로다.

 

尋師學道別無他 只在騎牛自到家

심사학도별무타 지재기우자도가

百尺竿頭能闊步 恒沙諸佛眼前花

백척간두능활보 항사제불안전화

 

-부휴 선수(浮休 善修, 15431615),

증모선자(贈某禪子(어느 승려에게 주다)

 

 

 

829 선시

 

 

진흙 소 바다 들어 아득히 간데없고

삼생의 한 큰 인연 깨달아 이르렀네.

어인 일 다시금 번뇌 생각 일거들랑

재각으로 찾아와 달빛 노래 빌어보게.

 

泥牛入海杳茫然 了達三生一大緣

니우입해묘망연 요달삼생일대연

何事更生煩惱念 也來齋閣乞陳篇

하사갱생번뇌념 야래재각걸진편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임종게(臨終偈)

 

 

무생의 노래 속에 평생을 다 보내니

시내 산 몇 번이나 단풍들고 푸르렀나.

천고의 나그네 정 백대의 일들일랑

뜬 구름 일고 흩고 달이 차고 기움일세.

 

無生歌曲送平生 幾度溪山黃又靑

무생가곡송평생 기도계산황우청

千古旅情百代事 浮雲起滅月虧盈

천고여정백대사 부운기멸월휴영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자조(自嘲)

 

 

830 선시

 

치악산 푸른 일천 뫼에 옷이 죄 헤지고

금강산 만길 봉우리에 갓이 다 부서졌네.

오대산 산길은 발길 두루 미쳤겠고

묘향산 우는 시내 한도 없이 들었겠군.

 

衣穿雉嶽靑千朶 冠破金剛萬仭峯

의천치악청천타 관파금강만인봉

五臺山路行應徧 香嶽鳴泉聽不窮

오대산로행응편 향악명천청불궁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행각하는 사미에게 주다(贈行脚沙彌)

 

 

 

언덕 가 높은 나무 초록 그늘 맑은데

두 마리 꾀꼬리가 늦은 소리 보내온다.

고향에서 들을 제도 서글픔 많았거니

하물며 여러 해의 만리 정을 어이할꼬.

 

岸邊高樹綠陰淸 兩箇黃鸝送晩聲

안변고수녹음청 양개황리송만성

故鄕聞爾多惆悵 何況經年萬里情

고향문이다추창 하황경년만리정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꾀꼬리 소리를 듣고 느낌이 있어(聞鶯有感)

831 선시

 

평생을 부끄럽게 입으로만 나불대다

끝판에 와 깨달으니 백억(百億)의 말 저편일세.

말을 해도 옳지 않고 말 없어도 안 된다면

사람들 모름지기 자각하길 청하노라.

 

平生慚愧口喃喃 末後了然超百億

평생참괴구남남 말후료연초백억

有言無言俱不是 伏請諸人須自覺

유언무언구불시 복청제인수자각

 

-정관 일선(靜觀 一禪, 1533-1608), 임종게(臨終偈)

 

 

눈썹 날려 눈 깜빡임 묘하다 할 수 없고

맞대면해 기뻐함도 충분하지 않다네.

일생에 아무런 할 일 없는 사내가

벽운암서 봄가을로 늘 누움만 하겠는가?

 

 

揚眉瞬目非臻妙 對面熈怡亦未堪

양미순목비진묘 대면희이역미감

爭似一生無事漢 春秋長臥碧雲庵

쟁사일생무사한 춘추장와벽운암

 

 

-정관 일선(靜觀 一禪, 1533-1608),

() 도인에게 주다(贈俊道人)

 

 

 

91 선시

 

골짝서 객과 함께 봄밤을 보내는데

나비 꿈이 오경 종에 이제 막 놀라누나.

달빛 잠긴 향각엔 사람 아직 잠 안 깨고

두견새 울음소리 어지런 뫼 높은 데서.

 

 

洞中携客度春宵 蝶夢初驚漏五敲

동중휴객도춘소 접몽초경루오고

香閣月沉人未起 杜鵑啼在亂峯高

향각월침인미기 두견제재난봉고

 

 

-정관 일선(靜觀 一禪, 1533-1608),

두견이 소리를 듣고(聞杜鵑)

 

 

 

 

치악산 뫼 높고 험해

우뚝 솟아 하늘 뚫네.

산꼭대기 꽃 막 피자

산 아래엔 녹음 짙다.

 

 

雉嶽峯高峻 巍巍貫大靑

치악봉고준 외외관대청

山頭花始發 山下綠陰成

산두화시발 산하록음성

 

-정관 일선(靜觀 一禪, 1533-1608),

상원에 제하다(題上院)

 

 

성문동(聲聞洞)에는 구름 잠겼고

미륵봉(彌勒峯)에는 비가 내린다.

산이 깊어서 세상 일 적어

찬찬히 살핌 헛되지 않네.

 

雲鎻聲聞洞 雨垂彌勒峯

운쇄성문동 우수미륵봉

山深塵事少 觀察不空空

산심진사소 관찰불공공

 

-정관 일선(靜觀 一禪, 1533-1608),

은선암에 머물다가 우연히 읊다(留隱仙偶吟)

92 선시

 

 

돌 위로 어지러운 시냇물 소리

못 가엔 푸른 풀 돋아나온다.

빈 산에 비바람 하도 많아서

꽃 져도 쓰는 사람 아무도 없네.

 

 

石上亂溪聲 池邊生綠草

석상난계성 지변생녹초

空山風雨多 花落無人掃

공산풍우다 화락무인소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초가집(草屋)

 

 

배에서 밤 피리 소리 듣노니

어디서 묵어 자는 어옹이던가?

해 뜨자 아무도 보이지 않고

새 울고 꽃만 절로 붉게 피었네.

舟中聞夜笛 何處宿漁翁

주중문야적 하처숙어옹

日出無人見 鳥啼花自紅

일출무인견 조제화자홍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동호에서 밤중에 배를 대고(東湖夜泊)

 

93 선시

 

이름나면 세상 피함 어려워져서

 

마음 편히 지낼 만한 곳이 없다네.

석장(錫杖)을 날리면서 가고 또 가도

산에 듦이 깊잖을까 염려한다네.

有名難避世 無處可安心

유명난피세 무처가안심

飛錫又飛錫 入山恐不深

비석우비석 입산공불심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도중에 느낌이 있어(途中有感)

 

 

풀집은 세 벽마저 없는데

늙은 중 죽상서 잠자네.

청산은 절반쯤 젖었고

성근 비 석양에 지나네.

 

 

草屋無三壁 老僧眠竹床

초옥무삼벽 노승면죽상

靑山一半濕 踈雨過殘陽

청산일반습 소우과잔양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초옥(草屋)

 

94 선시

 

세상 일은 공중의 새

뜬 인생은 물 위 거품.

천하의 땅 안 많아도

산승에겐 지팡이 끝뿐.

 

 

世事空中鳥 浮生水上漚

세사공중조 부생수상구

天下無多地 山僧一杖頭

천하무다지 산승일장두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강호도인에게 주다(贈江湖道人)

동해 바다 곁으로 금강산 높이 솟아

고요한 산 시끄런 시내 저마다 참되도다.

웃노라 저 늙은 중 이 이치를 알지 못해

굶주림을 도()로 여겨 정신만 힘 드누나.

 

 

金剛山聳海東濵 峯默溪喧各自眞

금강산용해동빈 봉묵계훤각자진

堪笑老僧斯不識 飢虛爲道謾勞神

감소노승사불식 기허위도만로신

 

 

-허응 보우(虛應 普雨, 1509-1565),

벽곡하는 노승에게 주다(寄辟穀老僧)

 

95 선시

 

고기 뛰고 솔개 남이 무어냐고 물으니

목마르고 배고픔과 다른 것이 아닌 것을.

평소에 어른 공경 어진이 높임 외에

달리 선()을 찾는다면 도리어 어긋나리.

魚躍鳶飛問汝何 渴泉飢粟亦非他

어약연비문여하 갈천기속역비타

尋常敬長尊賢外 更擬求禪却轉差

심상경장존현외 갱의구선각전차

-허응 보우(虛應 普雨, 1509-1565),

운선인이 송을 구하기에(雲禪人求頌)

 

귀로 사물 바라보고 눈으로는 들으니

마음 들음 어이해 귓부리를 쓰겠는가?

모름지기 두 귀 먼 것 안타까워하지 말라

소리란 원래부터 듣는데서 현혹되니.

耳以觀來目以聞 心聞何用耳根聞

이이관래목이문 심문하용이근문

不須恨却聾雙耳 聲響元來醉自聞

불수한각농쌍이 성향원래취자문

 

 

-허응 보우(虛應 普雨, 1509-1565), (의옥(義玉) 스님에게 보이다. 의옥은 귀가 먹어 주눅이 들었다.(示義玉禪人, 玉以耳聾爲屈)

 

96 선시

 

달빛 창문 처마 나무 가녀린 그림자에

고요한 밤 비 갠 여울 서늘한 물소리라.

사미 불러 이 즐거움 함께 하려 하다가도

정 드러내 삿된 관법(觀法) 일으킬까 염려하네.

月窓細影簷前樹 靜夜寒聲霽後灘

월창세영첨전수 정야한성제후탄

欲喚小師同此樂 恐將情見起邪觀

욕환소사동차락 공장정견기사관

 

 

-허응 보우(虛應 普雨, 1509-1565),

비 갠 밤 가을 창가에 앉아 읊다(霽夜秋窓坐咏)

 

 

잠 깨어 한가로이 발을 걷으니

비 갠 뒤 푸른 산 모습 바꿨네.

어느 곳 구름 가 절에서인지

아득히 재 올리는 종소리 들려.

 

 

睡餘閑捲箔 雨後轉靑山

수여한권박 우후전청산

何處雲邊寺 齋鍾杳靄間

하처운변사 재종묘애간

 

 

-허응 보우(虛應 普雨, 1509-1565),

잠 깨어 종소리를 듣고 쓰다(睡餘聞鍾即事)

 

97 선시

 

 

낙락하고 우뚝한 이

 

푸른 눈을 뉘라 열리.

저물녘 산 빛 속에

봄새 제 이름 부른다.

 

 

落落巍巍子 誰開碧眼睛

낙락외외자 수개벽안청

夕陽山色裏 春鳥自呼名

석양산색리 춘조자호명

 

 

-벽송 지엄(碧松 智儼, 14641534),

달마 진영에 붙인 찬(讃達摩眞)

 

배고프면 숲 속에 가 도톨밤을 주워오고

목마르면 바위 아래 맑은 물을 길어온다.

만종(萬鐘)과 구정(九鼎)의 공경 벼슬 즐겁지만

어이 산승 반나절의 한가함과 맞바꾸랴.

 

 

飢向林間收橡栗 渴尋巖底汲淸湍

기향임간수상률 갈심암저급청단

萬鐘九鼎公卿樂 爭換山僧半日閑

만종구정공경락 쟁환산승반일한

 

 

-허응 보우(虛應 普雨, 1509-1565),

산거잡영(山居雜咏)

 

98 선시

 

벽송당 안에 사는 멍청이 바보는

성글고 게을러서 잘 하는 일 하나 없네.

바위 아래 길 쪽으로 그저 내려가서는

눈 들어 구름 밖의 하늘 붕새 붙잡기만.

碧松堂裏之愚子 咄咄踈慵百不能

벽송당리지우자 돌돌소용백불능

只得行行巖下路 擡眸雲外搏天鵬

지득행행암하로 대모운외박천붕

 

 

-벽송 지엄(碧松 智儼, 14641534),

자조(自嘲)

 

 

산의 앞뒤로 달빛 환하고

바다의 안팎에 바람은 맑다.

누구의 진면목을 묻는 것인가

하늘에 점찍은 기러기 있네.

月皛山前後 風淸海外中

월효산전후 풍청해외중

問誰眞面目 更有點天鴻

문수진면목 갱유점천홍

 

-벽송 지엄(碧松 智儼, 14641534),

학희선자에게 주다(贈學熈禪子)

 

99 선시

 

 

경계 끝나 사람 없고 새마저도 드문데

지는 꽃 적막하게 푸른 이끼 위에 진다.

노승은 일이 없어 소나무 달 마주 보며

흰 구름이 이따금 오고감을 웃는다.

 

境了人空鳥亦稀 落花寂寂委靑苔

경료인공조역희 낙화적적위청태

老僧無事對松月 卻笑白雲時往來

노승무사대송월 각소백운시왕래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

요암(了庵)

 

 

 

음 밝기 거울처럼 자취가 없다 해도

모르는 새 정 생기면 성품 홀연 어두우리.

지견(知見)을 지견 따라 보지 아니 해야만

새 소리와 산 빛이 참된 근원 되리라.

此心明若鏡無痕 不覺情生性忽昏

차심명약경무흔 불각정생성홀혼

知見不隨知見見 鳥聲山色是眞源

지견불수지견견 조성산색시진원

 

 

-허응 보우(虛應 普雨, 1509-1565),

사미에게 보여주다(示小師)

 

910 선시

 

그대를 만나서 막야검을 건네주니

칼날에 푸른 이끼 끼지 않게 하시게.

오온산 앞에서 도적을 보게 되면

한 번씩 휘둘러서 하나하나 베시게나.

 

 

逢君贈與鏌鎁釼 勿使鋒鋩生綠苔

봉군증여막야검 물사봉망생록태

五蘊山前如見賊 一揮能斬箇箇來

오온산전여견적 일휘능참개개래

 

 

-벽송 지엄(碧松 智儼, 14641534),

법준(法俊) 선백에게 보이다(示法俊禪伯)

 

 

어제 새벽 해를 쫓아 푸른 산을 내려가

오늘 저녁볕을 따라 절문으로 드누나.

두 어깨 무거운 걸 괴이타 하지 마라

용궁의 바다 보물 짊어지고 왔다네.

 

昨趂晨曦下翠微 今隨夕照入松扉

작진신희하취미 금수석조입송비

諸人莫恠雙肩重 擔得龍宮海藏歸

제인막괴쌍견중 담득용궁해장귀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911 선시

 

 

선방은 적막하여 흡사 중도 없는 듯

비에 젖은 낮은 처마 담쟁이가 층을 졌네.

낮잠에서 놀라 깨니 날은 이미 저녁인데

사미는 불씨 내와 감실에 등을 켠다.

禪房閴寂似無僧 雨浥低簷薜茘層

선방격적사무승 우읍저첨벽려층

午睡驚來日已夕 山童吹火上龕燈

오수경래일이석 산동취화상감등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빗속에 자다가 깨어(雨中睡起)

 

 

 

내 늘 널 부르면 너는 바로 대답하고

네가 내게 질문하면 내가 즉시 대답했지.

이 사이에 불법이 없다고 하지 말라

이제껏 실 한끝도 들어갈 틈 없었나니.

 

 

吾常呼汝汝斯應 汝或訊吾吾輒酬

오상호여여사응 여혹신오오첩수

莫道此間無佛法 從來不隔一絲頭

막도차간무불법 종래불격일사두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시자가 게송을 구하므로 써서 주다(侍者求偈書以贈之

 

912 선시

 

봄 깊어 날은 긴데 사람 일을 끊으니

바람이 배꽃 쳐서 뜰 가득 눈이로다.

처마 기댄 예쁜 나무 그림자 서로 얽혀

산보하며 읊노라니 마음 절로 기쁘다.

 

 

春深日永人事絕 風打梨花滿庭雪

춘심일영인사절 풍타이화만정설

倚檐佳木影交加 散步行吟自怡悅

의첨가목영교가 산보행음자이열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저무는 봄날(暮春即事)

 

 

 

천 봉우리 우뚝 솟아 흰 구름을 찌르고

한 줄기 물 흘러 흘러 푸른 바위 쏟아 붓네.

저절로 듣고 봄이 몹시도 또렷하여

그대들께 알리노니 밖에서 찾지 말라.

 

 

千峰突兀攙白雲 一水潺湲瀉蒼石

천봉돌올참백운 일수잔원사창석

自然聞見甚分明 爲報諸人休外覔

자연문견심분명 위보제인휴외멱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게송을 지어 여러 스님에게 보이다(作偈示諸德)



파초

 

 

한 그루 파초를 뜨락에 심어두니

밤중에 보슬비 소리조차 들리누나.

매운 바람 툭 쳐서 꺾을까 걱정되어

아이 시켜 돌 주워와 터진 담장 고친다네.

 

 

芭蕉一樹種幽庭 中夜猶聽細雨聲

파초일수종유정 중야유청세우성

剛怕疾風輕破折 囑兒拾石補虧牆

강파질풍경파절 촉아습석보휴장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산거(山居)2

 

 

국화

 

 

진작에 석대 서편 국화를 심었더니

여린 잎 성근 줄기 작은 시내 비춘다.

계절 돌아 가을 되어 꽃술을 터뜨리면

온갖 새들 적막히 울지 않음 비웃으리.

 

 

曾將菊種石臺西 嫩葉疎莖映小溪

증장국종석대서 눈엽소경영소계

轉到霜天方吐萼 笑他百鳥寂無嗁

전도상천방토악 소타백조적무제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산거(山居)

 

 

 

 

 

 

 

 

 

 

 

 

 

 

본래 스스로 완전무결하다. - 벽장회해 -

 

靈光獨耀 逈脫根塵 신령스런 광명이 홀로 빛나서 육근 육진을 멀리 벗어났도다.

體露眞常 不拘文字 본체가 참되고 항상함을 드러내니 문자에 구애되지 않네.

心性無染 本自圓成 심성은 물들지 않아 본래 스스로 원만하나니

但離妄緣 則如如佛 다만 망령된 인연만 떠나버리면 곧 여여한 부처라네.

 

[한 생각 청정한 마음 - 문수보살 -

若人靜坐一須臾 만약 어떤 사람이 잠깐 동안만 고요히 앉아 있어도

勝造恒沙七寶塔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칠보탑을 쌓은 것보다 수승하다.

寶塔畢竟化爲塵 칠보탑은 필경에 먼지로 변하지만

一念淨心成正覺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은 정각을 이룬다.

[

마음을 구하고 마음을 다스려라. - 돈오입도요문론 -

聖人求心不求佛 성인은 마음을 구하고 부처를 구하지 않으며,

 

愚人求佛不求心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구하고 마음을 구하지 않는다.

 

智人調心不調身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다스리지 않으며,

 

愚人調身不調心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다.

 

[

모두가 부처다. - 석문의범 -

栴檀木做衆生像 (전단목주중생상) 전단향나무로 중생의 모습을 만들고

 

及與如來菩薩形 (급여여래보살형) 여래와 보살의 모습도 만들어

 

萬面千頭雖各異 (만면천두수각이) 비록 천만 가지 얼굴이 다 다르지만

 

若聞薰氣一般香 (약문훈기일반향) 만약 그 향기를 맡아보면 모두가 같은 전단향의 향기라네.

 

 

[

맑은 향기를 누구에게 주었으랴 - 선문염송-

靈鷲拈花示上機 (영취염화시상기) 영축산에서 꽃을 든 것은 상근기에게 보인 것이다.

 

肯同浮木接盲龜 (긍동부목접맹구) 물에 뜬 나무가 눈 먼 거북을 만난 것과 어찌 같겠는가.

 

飮光不是微微笑 (음광불시미미소) 음광 존자가 가만히 미소하지 않았더라면

 

無限淸香付與誰 (무한청향부여수) 무한한 맑은 향기를 누구에게 주었으랴.

 

 

[본래 스스로 완전무결하다. - 벽장회해 -

 

靈光獨耀 逈脫根塵 신령스런 광명이 홀로 빛나서 육근 육진을 멀리 벗어났도다.

體露眞常 不拘文字 본체가 참되고 항상함을 드러내니 문자에 구애되지 않네.

心性無染 本自圓成 심성은 물들지 않아 본래 스스로 원만하나니

但離妄緣 則如如佛 다만 망령된 인연만 떠나버리면 곧 여여한 부처라네.

 

[

한 생각 청정한 마음 - 문수보살 -

若人靜坐一須臾 만약 어떤 사람이 잠깐 동안만 고요히 앉아 있어도

勝造恒沙七寶塔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칠보탑을 쌓은 것보다 수승하다.

寶塔畢竟化爲塵 칠보탑은 필경에 먼지로 변하지만

一念淨心成正覺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은 정각을 이룬다

[

古寺를 지나면서 - 淸虛休靜 -

花落僧長閉 꽃은 지는데 스님은 절문을 닫아 건 지 오래고

 

春尋客不歸 봄을 찾아온 나그네는 돌아갈 줄 모른다.

 

風搖巢鶴影 바람이 불어 둥지에 앉은 학의 그림자를 흔들고

 

雲濕坐禪衣 구름은 흘러들어 좌선하는 스님의 옷깃을 적신다.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다. - 화엄경-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상을 다 그리네.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오온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기면, 만들지 않는 것이 없네.(:다 실)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며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네.

 

應知佛與心 體性皆無盡 응당히 알라. 부처와 마음은 그 체성이 모두 끝이 없네.

 

 

[

나무로 만든 꼭두각시 - 寶公 -

斂容入定坐禪 (염용입정좌선) 자세를 단단히 하고 앉아 선정에 들며

 

攝境安心覺觀 (섭경안심각관) 경계를 거두어들이고 마음을 안정시켜 관하는 것은

 

機關木人修道 (기관목인수도) 마치 나무로 만든 꼭두각시가 도를 닦는 것과 같으니

 

何時得達彼岸 (하시득달피안) 어느 세월에 피안에 도달할 수가 있겠는가.

 

 

[

병든 비구 - 靈巖石刻-

四海無家病比丘 사방에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병든 비구여,

 

孤燈獨照破牀頭 외로운 등불만 파손된 침상을 홀로 비추고 있네.

 

寂廖心在呻吟裏 적막하고 쓸쓸하여 신음소리 처량한데

 

粥藥須人仗道流 죽 한 그릇 먹으려 해도 도반에게 간청한다.

 

病人易得生煩惱 병을 앓는 사람은 슬픈 생각 더욱 많고

 

健者長懷惻隱心 성한 사람들은 측은한 마음뿐일세.

 

彼此夢身安可保 피차가 모두 꿈 같은 인생이라 어찌 오래 보전하랴.

 

老僧書偈示叢林 노승은 이 글을 써서 총림에 보이노라.

 

[

 

큰 웅덩이의 물 한 방울 - 德山 -

窮諸玄辯 (궁제현변) 모든 현묘한 이론을 다 갖추고 있어도

 

若一毫置於太虛 (약일호치어태허) 그것은 마치 넓은 허공에 터럭 한 오라기를 날리는 것과 같고,

 

竭世樞機 (갈세추기) 세상에서 가장 높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더라도

 

似一滴投於巨壑 (사일적투어거학) 그것은 마치 큰 웅덩이에 물 한 방울 던지는 것과 같다.

 

 

내일이 있다고 기다리지 말라. - 眞淨克文 -

 

剃髮因驚雪滿刀 (체발인경설만도) 삭발하다 칼날 위에 흰 털이 수북한 것을 보고 새삼 놀라는 것은

 

方知歲月不相饒 (방지세월불상요) 남은 세월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을비로소 알았기 때문이다.

 

逃生脫死勤成佛 (도생탈사근성불) 생사를 벗어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여 성불해야 하나니.

 

莫待明朝與後朝 (막대명조여후조) 내일이 있고 또 내일이 있다고 기다리지 말라.

 

 

병든 스님을 살펴보다. - 굉지(宏智) -

 

訪舊懷論實可傷 벗을 찾아 깊은 얘기 나누다 보니 실로 마음이 아프도다.

 

經年獨臥涅槃堂 몇 해가 지나도록 홀로 열반당에 누워있네.

 

門無過客窓無紙 문 앞에는 지나가는 나그네 없고 창문에는 종이마저 떨어졌네.

 

爐有寒灰席有霜 화로엔 차가운 재만 있고 앉을 자리에는 서리가 끼어있네.

 

病後始知身自苦 병이 든 후에야 이 몸이 고인 것을 비로소 아나니

 

健時多爲別人忙 건강할 때 열심히 남을 위해 도우라.

 

老僧自有安閑法 노승은 스스로 편안한 도리가 있어서

 

八苦交煎總不妨 여덟 가지 고통이 옥죄어 와도 전혀 방해롭지 않네.

 

 

[

누가 이몸의 주인인가 - 동산양개(洞山良价) -

不求名利不求榮 명리도 구하지 아니하고 영화도 구하지 아니하며

 

只麽隨緣度此生 다만 인연을 따라 한 생을 살아갈 뿐이다.

 

三寸氣消誰是主 심장의 기운이 사라지면 누가 이 몸의 주인인가.

 

百年身後謾虛名 백년 세월 이후에는 부질없는 헛된 이름뿐일세.

 

衣裳破處重重補 옷이 떨어지면 겹겹이 꿰매 입고

 

粮食無時旋旋營 식량이 떨어지면 가끔씩 구해온다.

 

一箇幻軀能幾日 일개의 허깨비 같은 몸 며칠이나 가겠는가.

 

爲他閒事長無明 쓸데없는 일을 위해 무명만 키우도다.

 

 

[텅 비었으되 다 품고 있다 - 심요전, 청량 징광 대사 -

 

大道本乎其心 큰 도란 그 마음을 근본으로 삼았고

 

心法本乎無住 마음의 법은 본래 머물지 않는 것으로 근본을 삼았다.

 

無住心體靈知不昧 머물지 않는 마음의 본체가 신령스럽게 알아 어둡지 않다.

 

性相寂然 包含德用 성품과 형상이 텅 비었으되 덕과 작용을 다 품고 있다.

 

봄에는 아름다운 백화가 만발하고

가을에는 밝은 달이 온천지 비추도다.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 불어오고

겨울에는 아름다운 흰눈이 날리도다.

쓸대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좋은 시절이라네.

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

- 조주선사, 오도송-

 

푸른 산 푸른 물이 나의 참모습이니,

밝은 달, 맑은 바람의 주인은 누구인가.

본래부터 한물건도 없다 이르지 마라.

온 세계 티끌마다 부처님 몸, 아니런가.

靑山綠水眞我面

明月淸風誰主人

莫謂本來無一物

塵塵刹刹法王身

- 무학대사, 오도송-

 

뜬 구름 자체는 본래 공한 것

본래 공인 것은 바로 저 허공이니,

허공에 구름 일고 사라지나니

일고 사라짐 자체도 온데 없는 본래 공이네.

浮雲自體本來空

本來空是太虛空

太虛空中雲起滅

나옹선사 오도송

 

선불장 가운데 앉아서

성성히 눈여겨 잘보니

보고 듣는 것 다른 것이 아니라

다만 본래의 옛 주인일세

 

 

選 佛 場 中 坐 (선불장중좌)

惺 惺 着 眠 着 (성성착면착)

見 聞 非 他 物 (견문비타물)

元 是 舊 主 人 (원시구주인)

태고선사 오도송

 

 

조주에 사는 옛 조사, 앉은 채 천성의 길을 끊었네

칼날을 바로 눈 앞에 대어도,

온몸에 하나의 구멍도 없네.

여우나 토끼도 자취 감춘 중,

문득 뛰어드는 사자 한 마리

철벽같은 그 관문 때려부수니.

맑은 바람이 태고를 불어버리네

 

趙 州 古 佛 老, 坐 斷 千 聖 路 (조주고불로, 좌단천성로)

吹 毛 面 提, 通 身 無 孔 窺 (취모적면제, 통신무공규)

狐 兎 絶 潛 踪, 身 師 子 露 (호토절잠종, 번신사자로)

打 破 牢 關 後, 淸 風 吹 太 古 (타파뇌관후, 청충취태고)

 

 

영조선사 오도송

 

높은 산 깊은 골에 터를 골라서

숲속에 암자 하나 짓고 사노라.

선나를 닦고 불이를 보고

도를 탐구하여 삼학(三學)이루네.

옥 캐는 사람 중에 뉘 이르럿노.

꽃을 물고 오는 새만 지저귀는구나.

세상 일 모두 잊고 소연히 앉아

한 맛인 법문 참구하노리

 

占 得 幽 居 地 (점득유거지)

萬 松 嶺 上 庵 (만송영상암)

入 禪 看 不 二 (입선간불이)

探 道 喜 成 三 (탐도희성삼)

采 玉 人 誰 到 (채옥인수도)

含 花 鳥 自 (함화조자남) = +

然 無 外 事 (소연무외사)

一 味 法 門 參 (일미법문참)

 

雲 香 (운 향)

 

無思無慮又無牽(무사무려우무견)

閑往閑來任自然(한왕한래임자연)

只得溪山何所事(지득계산하소사)

好隨年月度年年(호수년월도년년)

 

생각도 없고 근심도 없고 아무것도 걸릴 걸 없으니

한가히 가고 한가히 와서 자연에 맡기노라.

산골짝 시냇물에 머물러 있으니

해와 달을 따라 세월이 흐르는구나.

 

- 鐘峯禪師(종봉선사)- (1544~1610)

 

뜬 구름 자체는 본래 공한 것

본래 공인 것은 바로 저 허공이니,

허공에 구름 일고 사라지나니

일고 사라짐 자체도 온데 없는 본래 공이네.

 

浮雲自體本來空

本來空是太虛空

太虛空中雲起滅

起滅無從本來空

 

-월저선사, 임종계-

 

중성나열야명심 衆星羅列夜明深

별들이 널려 있는 깊은 밤

 

암점고등월미침 岩點孤燈月未沈

바위에 외로운 등불 하나 달은 기우는데

 

원만광화불마형 圓滿光華不磨瑩

뚜렷이 찬 광명은 이지러지지 않고 빛나니

 

괘재청천시아심 掛在靑天是我心

내 마음 푸른 하늘에 걸려 있다네

 

 

한산시에

 

수리무인도(數里無人到) 멀리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곳

산황시각추(山黃始覺秋) 산이 단풍들어 가을인 줄 알았네

암간일각수(巖間一覺睡) 바위틈에 한 숨 자다 깨어 보니

망각백년우(忘却百年憂) 사는 걱정 모두 다 날라 가버렸네

 

 

부용도개(芙蓉道楷)스님

 

산자무심벽(山自無心碧) 산은 무심히 푸르고

운자무심백(雲自無心白) 구름은 무심히 희구나

기중일상인(其中一上人) 그 가운데 스님 한사람

역시무심객(亦是無心客) 또한 무심한 나그네로세

- 서산스님

 

조의명명백초두 祖意明明百草頭

풀 끝마다 조사의 뜻 분명하고

 

춘림화발조성유 春林花發鳥聲幽

봄 숲에 꽃피자 새소리 그윽하다.

 

조래우과산여세 朝來雨過山如洗

아침빗발 스쳐간 산은 세수를 하였나?

 

홍백지지로미수 紅白枝枝露未收

붉고 흰 가지마다 이슬이 맺혔다. - 감산덕청(山德淸)

 

 

몽과비란상벽허 夢跨飛鸞上碧虛

꿈에 난새를 타고 푸른 허공에 올랐다가

 

시지신세일거려 始知身世一遽廬

비로소 몸도 세상도 한 움막임을 알았네

 

귀래착인한탄도 歸來錯認邯鄲道

한바탕 꿈길에서 깨어나 돌아오니

 

산조일성춘우여 山鳥一聲春雨餘

산새의 울음소리 봄비 끝에 들리네

중국 송나라 때 대혜종고(大慧宗 ) 선사가

 

일조불명처 一鳥不鳴處 새 한 마리 울지 않는 곳

이인상대한 二人相對閑 두 사람이 한가롭게 마주 앉았네

진관여법복 塵冠與法服 속세의 유자와 산중의 스님

막작양반관 莫作兩般看 승속을 구분하여 둘로 보지 마시게

 

이조를 대표하는 고승 서산스님은

 

桃紅復含宿雨 도홍부함숙우

복사꽃 연분홍 간밤 비에 젖어 있고

柳綠更帶春煙 유록갱대춘연

푸른 버들가지에 봄 안개 어리네.

花落家童未掃 화락가동미소

꽃잎은 시나브로 떨어지고 있는데

鶯啼山客猶眠 앵제산객유면

꾀꼬리 울음 속에 나그네는 졸고 있네.

 

왕유(王維 699~759)

 

안자고비수자류 雁自高飛水自流

기러기 높이 날고 물은 절로 흐르는데

백운홍수잡산두 白雲紅樹雜山頭

산머리에 흰 구름 단풍이 섞여있다.

계변낙엽미귀로 溪邊落葉迷歸路

개울가엔 낙엽 쌓여 갈 길이 안보이고

임리소종산객수 林裡疎鍾散客愁

숲속에 먼 종소리 나그네 시름을 흩는구나.

 

부휴선수(浮休善修1543~1615)

 

일년의중보 一年衣重補

한 해에 옷 두 번 기워 입고

일일발양세 一日鉢兩洗

하루에 바리 두 번을 씻고 사네.

불효산중취 不曉山中趣

산에 사는 흥취를 모른다면

산중역진세 山中亦塵世

산중도 속세와 다를 바 없네.

 

 

 

연담유일(蓮潭有一, 1720~1799)

 

풍동과빈락 風動果頻落 바람 불자 산 나무 열매 자꾸 떨어지고

산고월이침 山高月易沈 산이 높으니 달이 벌써 지려하네.

시중인불견 時中人不見 내 곁에는 아무도 없는데

창외백운심 窓外白雲深 창 밖에 흰 구름만 자욱하구나.

 

이조 중기 부휴선수(浮休善修1545~1615)선사가

 

녹수음롱하일장 綠水陰濃夏日長 푸른 숲 짙은 그늘 여름날은 길고 긴데

누대도영입지당 樓臺倒影入池塘 누대의 그림자는 연못 속에 거꾸로 잠겼구나.

수정렴동미풍기 水晶簾動微風起 미풍이 일어나 수정발이 흔들리고

만가장미일원향 滿架薔薇一院香 줄기 뻗어 가득 핀 장미로 온 절이 향기롭네.

 

중국 선종사에 위앙종을 연 위산 영우(771853)선사가

 

간수무성요죽류 澗水無聲遶竹流 개울물 소리 없이 대밭을 감아 흐르고

죽서화초농춘유 竹西花草弄春柔 대밭 가 꽃과 풀은 봄기운에 취했구나.

모첨상대좌종일 茅簷相對坐終日 풀집 처마를 보며 진종일 앉자 있으니

일조불명산갱유 一鳥不鳴山更幽 새 한 마리 울지 않아 산이 더욱 깊네.

 

왕안석(王安石1021~1086)

 

격쇄허공무내외 擊碎虛空無內外 허공을 쳐부수니 안팎이 없고

일진불입로당당 一塵不立露堂堂 티끌 하나 없는 자리 당당히 드러났네.

번신직투위음후 飜身直透威音後 몸을 뒤쳐 위음의 뒤를 뚫으니

만월한광조파상 滿月寒光照破床 보름달 찬 빛이 낡은 상을 비추네.

 

고려 때 나옹스님(1320~1378)

 

유무좌단로진상 有無坐斷露眞常 있네 없네 깔아뭉개 진상을 드러내니

일점고명약태양 一點孤明若太陽 한 점 밝은 그것 태양 같구나.

직하승당유끽방 直下承當猶喫棒 바로 곧 알아채도 방망이 맞을 건데

나감냉좌암사량 那堪冷坐暗思量 어찌 쓸쓸히 앉아 이리저리 생각하랴.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

 

청신고수앵류명 淸晨高樹鶯留鳴 맑은 새벽 나뭇가지 높이 꾀꼬리 울음

문이하심아이경 問爾何心我耳驚 묻노니, 네 무슨 마음으로 내 귀를 놀라게 하냐?

원득원통무애력 願得圓通無碍力 원컨대, 막힘없는 원통의 힘을 얻어

보문진성불문성 普聞眞性不聞聲 널리 진여의 본성을 듣고 소리는 듣지 말자.

 

오암(鰲巖 1710~1792)대사는

 

월락서봉효경명 月落西峰曉磬鳴 서산에 달 지고 새벽 풍경 울리니

죽풍소슬주신청 竹風蕭瑟做新晴 댓바람 소슬한 게 기분 맑게 하구나

연단예흘빙경궤 蓮壇禮訖凭經几 불단에 예불하고 경상에 기대니

재시선창일반명 纔是禪窓一半明 이제사 선창이 반쯤 밝아오네

 

연파(蓮坡·1772~1811)대사는

 

지피생한불등암 紙被生寒佛燈暗 홑이불에 한기 들고 불등은 희미한데

사미일야불명종 沙彌一夜不鳴鍾 사미승은 밤이 새도 종을 치지 않는구 나.

응진숙객개문조 應瞋宿客開門早 나그네로 와서 자고 문 일찍 연다 투덜 대겠지만

요간암전설압송 要看庵前雪壓松 암자 앞 눈에 눌린 소나무를 봐야겠네.

 

이 시는 고려 말 문신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

 

일일간산간부족 日日看山看不足 날마다 산을 보아도 보는 것이 모자라고

시시청수청무염 時時聽水聽無厭 때마다 물소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아

자연이목개청쾌 自然耳目皆淸快 귀와 눈이 저절로 맑고 시원해

성색중간호양염 聲色中間好養恬 소리와 색깔 그 속에 고요함을 기르네.

 

고려 때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 : 1226~1292)의 시이다.

 

 

반륜명월백운추 半輪明月白雲秋 하늘에는 초승달 산에는 흰 구름

풍송천성하처시 風送泉聲何處是 어디서 물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나

시방무량광불찰 十方無量光佛刹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 나라 다니며

진미래제작불사 盡未來際作佛事 미래제가 다하도록 부처님 일 하리라.

 

이 시는 고려 대각국사 의천(義天 : 10551101)의 임종게로

춘산무반독심유 春山無伴獨尋幽 길동무도 없이 혼자 봄 산 깊숙이 들어가니

협로도화친장두 挾路桃花襯杖頭 길가의 복사꽃 지팡이에 스친다.

일숙상운소우야 一宿上雲疎雨夜 상운암의 밤은 성근 비에 젖는데

선심시사양유유 禪心詩思兩悠悠 선심과 시 생각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이 시는 불우한 생애를 마쳤던 조선조 명종 때의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 선사의 시이다.

 

일완다출일편심 一椀茶出一片心 한 잔의 차에 한 조각 마음이 나오니

일편심재일완다 一片心在一椀茶 한 조각 마음이 차 한자에 담겼네.

당용일완다일상 當用一椀茶一嘗 , 이 차 한 잔 마셔보시게

일상응생무량락 一嘗應生無量樂 한 번 맛보면 근심 걱정 모두 사라진다네.

 

 

 

이 시는 함허득통(涵虛得通1376~1433)선사의 시이다.

 

막소생애박 莫笑生涯薄 내 생애 박복하다 비웃지 말라

요현일소도 腰懸一小刀 허리에 찬 작은 칼 하나로

등등천지내 騰騰天地內 하늘과 땅 사이에 늠름하나니

처처진오가 處處盡吾家 이 세상 모든 곳이 내 집이라네

 

이 시의 작자 침굉(枕肱:1618~1686) 스님은

 

일입서문고로망 一入西門古路忘 한 번 서산문에 들어와 옛길을 잊었으니

수류수처몰사량 隨流隨處沒思量 흐르거나 머물거나 아무 생각 없다네.

산중세월수능기 山中歲月誰能紀 산중의 세월 그 누가 기억하랴.

기견괴음청우황 只見槐陰靑又黃 괴목나무 잎들이 푸르다 노래진다.

 

조선조 중엽 보응영허(普應暎虛 : 1541~1609)대사는

 

채약홀미로 採藥忽迷路 약초 캐다 갑자기 길을 잃었네.

천봉추엽리 千峰秋葉裏 온 산이 단풍잎이 물든 속에서

산승급수귀 山僧汲水歸 산에 사는 스님은 물을 길어 가더니

임말다연귀 林末茶烟起 차를 달이는지 숲 끝 저쪽에 연기가 난다.

 

 

 

이 시는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

 

십년단좌옹심성 十年端坐擁心城 십년을 단정히 앉아 마음의 성을 지켰더니

관득심림조불경 慣得深林鳥不驚 숲속의 새들도 길들어져 놀라지를 않는구나.

작야송담풍우악 昨夜松潭風雨惡 어젯밤 소나무 못 밑에 비바람 몰아치더니

어생일각학삼성 魚生一角鶴三聲 고기는 못 한 구석에 모여 있고 학은 세 번

울며 날아가네.

 

이 시는 서산 스님의 오도송(悟道頌)

 

망인제연희칠년 妄認諸緣希七年 헛된 인연 잘못 알고 살아온 77년이여!

창봉사업총망연 窓蜂事業摠茫然 창가에 부딪치는 벌처럼 해온 일도 부질없어라

홀등피안등등운 忽登彼岸騰騰運 훨훨 털고 문득 저 언덕에 올라가면서

시각부구해상원 始覺浮 海上圓 비로소 바다 위에 거품인 줄 이제 알았네.

 

이 시는 범해각안(梵海覺岸)

 

山深水密生虛 산심수밀생허뢰 산은 깊고 물은 찬데 텅 빈 적막의 소리여

月皎風微夜氣凉 월교풍미야기량 달은 밝고 바람 자서 밤기운 서늘하다.

却恨時人昏入夢 각한시인혼입몽 사람들은 지금 한창 꿈속에 들었겠지

不知淸夜興何長 부지청야흥하장 맑은 밤 이 흥취를 누가 어찌 알려나.

함허득통(涵虛得通 : 1376~1433)선사의 시다.

 

이도명산의욕관 爾名山意欲觀 도라고 이름 붙인 산을 보고 싶어서

장려종일고제반 杖藜終日苦 攀 지팡이 짚고 온종일 고생고생 올라갔었지

행행홀견산진면 行行忽見山眞面 가고가다 홀연히 산의 참 모습을 보았네.

운자고비수자원 雲自高飛水自湲 구름은 절로 높이 날고 물은 절로 흘러가더군.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1515-1565) 선사는

 

소우추산외 踈雨秋山外 가을 산 밖에는 성근 비 내리고

사양고수변 斜陽古樹邊 늙은 나무 가에는 석양이 비친다.

모천고안향 暮天孤雁響 저문 하늘에 외로운 기러기 울음소리

하사객수견 何事客愁牽 무슨 일로 나그네의 근심을 당겨 주는가?

 

가을이 되면 객지에 가서 사는 사람들에게 고향생각이 일어난다고 한다. 아무래도 가을은 생각나는 것이 많은 계절인가 보다. 그래서 사색의 계절이라고 불러왔는지 모른다.

조선조 영조 때의 허정법종(虛靜法宗1670~1733) 스님은

 

 

천마(千魔)와 만난(萬難)이야 허깨비와 같은 법

여울가에 버려진 뒤집힌 배 다름없다.

금강(金剛)과 밤 가시를 통째로 삼켜야만

부모님께 몸 받기 전 그때를 알게 되리.

 

 

千魔萬難看如幻 直似灘頭掇轉船

천마만난간여환 직사탄두철전선

呑透金剛并栗莿 方知父母未生前

탄투금강병율자 방지부모미미생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영운장로에게 주다(贈靈雲長老)

 

 

천마(千魔)와 만난(萬難)이야 허깨비와 같은 법

여울가에 버려진 뒤집힌 배 다름없다.

금강(金剛)과 밤 가시를 통째로 삼켜야만

부모님께 몸 받기 전 그때를 알게 되리.

 

 

千魔萬難看如幻 直似灘頭掇轉船

천마만난간여환 직사탄두철전선

呑透金剛并栗莿 方知父母未生前

탄투금강병율자 방지부모미미생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영운장로에게 주다(贈靈雲長老)

 

 

이름나면 세상 피함 어려워져서

마음 편히 지낼 만한 곳이 없다네.

석장(錫杖)을 날리면서 가고 또 가도

산에 듦이 깊잖을까 염려한다네.

 

 

有名難避世 無處可安心

유명난피세 무처가안심

飛錫又飛錫 入山恐不深

비석우비석 입산공불심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도중에 느낌이 있어(途中有感

 

세상 일은 공중의 새

뜬 인생은 물 위 거품.

천하의 땅 안 많아도

산승에겐 지팡이 끝뿐.

 

 

世事空中鳥 浮生水上漚

세사공중조 부생수상구

天下無多地 山僧一杖頭

천하무다지 산승일장두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강호도인에게 주다(贈江湖道人)

 

양 기슭 갈대꽃에 한 잎의 조각배로

바람 맑고 고요한 밤 달빛이 바늘 같네.

천척의 낚싯줄을 깊은 물에 던져놓고

금린(金鱗)을 낚아야만 그제야 편히 쉬리.

 

 

兩岸蘆花一葉舟 風淸夜靜月如鉤

양안노화일엽주 풍청야정월여구

絲綸千尺拋深浪 釣得金鱗始便休

사륜천척포심랑 조득금린시편휴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 어부(漁父)

 

한 치의 시간이 한 치의 금쪽이란

옛 사람이 내린 훈계 뜻이 어찌 깊은지.

승려라도 혹시나 푸른 눈이 안 열리면

늙어서도 헛 애쓰며 붉은 마음 토로하리.

 

 

一寸光陰一寸金 古人垂誡意何深

일촌광음일촌금 고인수계의하심

闍梨倘不開靑眼 老漢徒勞吐赤心

도리당불개청안 노한도로토적심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 () 상인에게 주다(贈壯上人)

 

 

공업(功業)을 멀리하고 지나친 술 말아야지

석 잔도 마다커늘 하물며 많이 하랴.

수보(手報) 없단 불경 말씀 기억하여 둘지니

승려로써 경계 않고 말년에 어이 할까.

 

 

破除功業酒無過 三爵猶辭矧敢多

파제공업주무과 삼사유사신감다

記得經中無手語 僧而不誡末如何

기득경중무수어 승이불계말여하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 술 즐기는 승려를 경계하다(誡嗜酒禪者)

 

비워야만 한웅큼도 모두 담나니

바다 또한 물병에 전부 채우리.

평범하든 거룩하든 모든 물건은

이름 짓기 어렵고 형상도 없네.

 

 

空應皆納掬 海亦盡盛瓶

공응개납국 해역진성병

有物通凡聖 難名又沒形

유물통범성 난명우몰형

 

-월봉 무주(月峯 無住, 1623-?), () 선사에게 보이다(示海禪)2

 

 

다른 사람 장단점은 말하지 마시게나

무익할 뿐 아니라 재앙을 부른다네.

제 입을 물병처럼 지킬 수만 있다면

이것이 몸 편히 할 으뜸가는 방편일세.

 

 

休說人之短與長 非徒無益又招殃

유설인지단여장 비도무익우초앙

若能守口如瓶去 此是安身第一方

약능수구여병거 차시안신제일방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허생에게 주다(贈許生)

 

 

 

기울고 굽은 길에 갈림길도 많은데

굽은 곳엔 가시 많고 갈림길엔 의심 많네.

길 갈 때 갈림길과 굽은 길 가지 마소

가운데 길로 가야 바야흐로 평탄하리.

 

 

路多邪曲又多岐 曲處多荊岐處疑

노다사곡우다기 곡처다형기처의

行路莫行岐與曲 正當中路路方夷

행로막행기여곡 정당중로노방이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갈림길을 꺼림(忌多路)

 

 

마당 쓸고 향 사르며 한낮에도 사립 닫아

이 몸은 고적해도 이 마음은 한가하다.

갈바람에 산창 아래 나뭇잎 떨어지니

일없이 언제나 옛 가르침 살펴보리.

 

 

掃地焚香晝掩關 此身孤寂此心閑

소지분향주엄관 차신고적차심한

秋風葉落山窓下 無事常將古敎看

추풍낙엽산창하 무사상장고교간

 

-부휴 선수(浮休 善修, 15431615), 산속의 한가한 노래(山中閑咏)

바람 맑고 달 밝아 한밤 못은 서늘한데

외론 등불 마주 앉아 마음 절로 한가롭다.

한 알의 영주(靈珠)는 그 빛이 찬란커늘

다시금 어디에서 안심처(安心處)를 묻는가.

 

 

風淸月白夜塘寒 坐對孤燈意自閑

풍청월백야당한 좌대고등의자한

一顆靈珠光梷爛 更於何處問心安

일과영주광정란 갱어하처문심안

 

-정관 일선(靜觀 一禪, 1533-1608), 밤에 앉아(夜坐)

 

 

비 갠 남악에 푸른 이내 걷히자

산 빛은 변함없이 묵은 암자 마주 섰다.

홀로 앉아 가만 보니 마음 생각 해맑은데

반평생 어깨에다 일곱 근 장삼 걸쳤네.

 

 

雨收南岳捲靑嵐 山色依然對古庵

우수남악권청람 산색의연대고암

獨坐靜觀心思淨 半生肩掛七斤衫

독좌정관심사정 반생견괘칠근삼

 

-정관 일선(靜觀 一禪, 1533-1608), 산당에서 비갠 뒤(山堂雨後)

도 배움은 모름지기 성경(聖經) 공부 먼저이니

성경은 다만 그저 내 마음에 있다네.

갑작스레 집안으로 난 길을 밟아 딛고

긴 하늘 돌아보니 기러기 앉는 가을일세.

 

 

學道先須究聖經 聖經只在我心頭

학도선수구성경 성경지재아심두

驀然踏著家中路 回首長空落鴈秋

맥연답착가중로 회수장공낙안추

 

-벽송 지엄(碧松 智儼, 14641534), 희준 선덕에게 주다(贈曦峻禪德)

 

 

 

섬돌 앞 비 맞고 꽃이 웃는데

난간 밖 바람에 솔이 우누나.

묘한 뜻 어이 다 궁구하리오

이게 바로 원통(圓通) 바로 그것이라오.

 

 

花笑階前雨 松鳴檻外風

화소계전우 송명함외풍

何須窮妙旨 這箇是圓通

하수궁묘지 저개시원통

 

-벽송 지엄(碧松 智儼, 14641534), 진일(眞一) 선자에게 보이다(示眞一禪子)

 

 

[일년 내내 무주(無住)를 찾아 다니고

온 세상서 몰향(沒鄕)을 찾아 헤맸네.

푸른 산과 도회의 자줏빛 거리

어느 곳이 그가 있을 도량이더냐.

 

 

三際尋無住 十方覔沒鄕

삼제심무주 시방멱몰향

靑山與紫陌 何處是渠塲

청산여자맥 하처시거량

 

-월봉 무주(月峯 無住, 1623-?), 주인공을 찾아가다(訪主人公)

 

 

석단의 바람 등불 오경에 가물대고

달도 잠든 뜨락 꽃엔 이슬 기운 서늘하다.

게다가 유인(幽人)은 잠을 못 이루는데

작은 난간 물새가 끼룩대며 지나간다.

 

 

石壇風燭五㪅殘 月宿庭花露氣寒

석단풍촉오경잔 월숙정화로기한

況復幽人長不寐 渚禽呼過小欄干

황부유인장불매 저금호과소난간

 

-월하 계오(月荷 戒悟, 17731849), 피향당에 쓰다(題披香堂)

 

상운암 담장 절반 햇빛 받아 붉은데

서리 숲 온기 돌자 바람결에 새가 운다.

모를괘라 어떤 이 창 안에 있으면서

눈 감고 향로 향에 온갖 생각 비었으리.

 

 

曦色雲庵半堵紅 霜林初暖鳥啼風

희색운암반도홍 상림초난조제풍

不知人在蘿窓內 瞑目爐薰百念空

부지인재나창내 명목로훈백념공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 법천사 상운암에 제하다(題法泉上雲庵)

 

 

[관음보살 일천 개 손 지녀 계시니

바른 눈으로 보면 없는 이 뉘랴.

손 하나 없다 해서 혐의 하리오

아직도 999개 남아 있나니.

 

 

觀音菩薩有千手 正眼看來誰不有

관음보살유천수 정안간래수불유

一箇雖殘何須嫌 猶存九百九十九

일개수잔하수혐 유존구백구십구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 오른손이 없는 손님에게 주다(贈無右手客)

 

 

[

밤낮의 냇물 소리 장광설인데

여기 어이 묵계라고 이름 지었나.

말하고 침묵함이 다가 아니니

이 속 알기 어려워서 묵계라 했지.

 

 

日夜溪聲廣舌長 云何這裡默爲名

일야계성광설장 운하저리묵위명

即聲即默非聲默 此裡難明故默名

즉성즉묵비성묵 차리난명고묵명

 

-응윤(應允, 1743-1804), 묵계에 제하다(題默溪)

 

[

환해(幻海)에 부침하며 몇 번 봄을 보내고서

시렁 위서 또 다시 꼭두각시 놀음 했지.

이제서야 껍질 벗고 티끌세상 벗어나면

정계(淨界)에선 연꽃이 곱게 새로 피어나리.

 

 

幻海浮沉度幾春 棚頭又作弄傀人

환해부침도기춘 붕두우작롱괴인

如今脫殼超塵累 淨界蓮花發艶新

여금탈각초진루 정계연화쟁염신

 

-명찰(明詧, 1640~1708), 임종게(臨終偈)

 

 

[

기괴한 얘기하면 선지식이라 하고

해박하게 많이 알면 성인(聖人)에다 견준다네.

경전과 시부(詩賦)에 비록 능하다 해도

마음 밭이 안 밝으면 모두 헛일이라네.

 

 

奇談恠語稱知識 愽覽多聞擬聖流

기담괴어칭지식 박람다문의성류

雖善經書詩賦筆 未明心地盡虛頭

수선경서시부필 미명심지진허두

 

-무주(無住, 1623-?), 세상의 뜬 명예를 탄식함(歎世浮譽)4

 

 

[나무 인형 피리 불며 구름 속으로 달아나고

돌 여자가 금()을 타며 바다 위로 오는구나.

그 가운데 한 늙은이 이목구비 하나 없이

깔깔깔 박수치며 파안대소(破顔大笑) 하누나.

 

 

木人吹笛雲中走 石女彈琴海上來

목인취적운중주 석녀탄금해상래

箇裡有翁無面目 呵呵拊掌笑顔開

개리유옹무면목 가가부장소안개

 

-무주(無住, 1623-?), 무적당의 원수좌에게 부침(寄無迹堂元首座)3

 

 

[

산 구경 물 구경에 나날을 허송하고

음풍영월 하느라 정신이 피로하다.

서쪽에서 온 그 뜻을 활연히 깨달아야

바야흐로 출가했다 말할 수 있으리라.

 

 

翫水看山虛送日 吟風詠月謾勞神

완수간산허송일 음풍영월만로신

豁然悟得西來意 方是名爲出世人

활연오득서래의 방시명위출세인

 

-정관(靜觀, 1533-1608), 시승에게 주다(贈詩僧)

 

[ 구름 속

 

 

 

 

꾀죄죄 흰 머리 늙은 노인이

처마 밑서 땔나무 장작을 팬다.

지팡이 멈추고 앞길 물으니

손을 들어 구름 속 가리키누나.

 

 

白首龍鍾老 簷前柝火松

백수용종로 첨전탁화송

植杖問前路 擧手點雲中

식장문전로 거수점운중

 

-계오(戒悟, 17731849), 석문노인(石門老人)

 

 

[

시절과 인간은 시들어짊 있건만

하늘의 꽃 소식은 매화에 먼저 오네.

돌집에서 늙은 중이 향 사르며 앉았자니

서창으로 든 달빛이 한동안 배회한다.

 

 

時節人間有謝來 上天花詔下先梅

시절인간유사래 상천화조하선매

老僧石屋焚香坐 月入西窓久徘佪

노승석옥분향좌 월입서창구배회

 

-계오(戒悟, 17731849), 회포를 읊다(咏懷)

 

 

 

[애증

 

 

남 아끼면 남이 나를 사랑하지만

미워하면 남도 나를 미워한다네.

아끼고 미워함은 내게 달린 것

어이 굳이 산승에게 물으시는가?

 

 

愛人人我愛 憎人人我憎

愛憎惟在我 何必問山僧

 

-계오(戒悟, 17731849), 석산 한상사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謹次石山韓上舍)

 

 

[개 가죽

 

 

내 집에 한 마리 개가 있는데

사나워 사람을 따르질 않네.

개 죽자 그대가 먼데서 오니

서 푼 주고 가죽과 맞바꿔 갖게.

 

 

吾家一隻狗 獰性沒人追

狗死君來遠 三錢換得皮

 

-응윤(應允, 1743-1804), 진허 스님에게 주다(贈振虛師)

 

 

[칠십 여년 세월을 환해(幻海)에서 노닐다가

오늘 아침 허물 벗고 처음으로 돌아간다.

툭 터진 진성(眞性)은 원래 걸림 없나니

깨달음에 생사 뿌리 어이해 있으리오.

 

 

七十餘年遊幻海 今朝脫殼返初源

칠십여년유환해 금조탈각반초원

廓然眞性元無碍 那有菩提生死根

확연진성원무애 나유보리생사근

 

-부휴(浮休, 15431615), 임종게(臨終偈)

헛세월 보내는 것 참으로 가석하니

세간의 사람들이 시비 속에 늙어가네.

부들방석 위에서 단정히 가만 앉아

부지런히 공부해서 조풍(祖風) 이음만 못하리.

 

 

虛負光陰眞可惜 世間人老是非中

허부광음진가석 세간인로시비중

不如端坐蒲團上 勤做功夫繼祖風

불여단좌포단상 근주공부계조풍

 

-부휴(浮休, 15431615), 경세(警世)2

 

 

[

 

 

[

백년의 세월이 틈 사이로 지나는 듯

어이 인간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 건가.

마땅히 강건할 때 부지런히 애써야지

생사가 갈릴 때는 한가하지 못 하리.

 

 

百歲光陰如過隙 何能久住在人間

백년광음여과극 하능구주재인간

冝隨强健須勤做 生死臨時不自閑

의수강건수근주 생사임시부자한

 

-부휴(浮休, 15431615), 경세(警世)1

 

 

[한바탕 웃음

 

 

꽃 떨구는 바람에 강호에 봄 다가고

저물녘 한가한 구름 푸른 허공 지나간다.

그걸 보다 인간 세상 헛 것임을 깨달으니

한바탕 웃음 속에 만사 모두 잊으리.

 

 

江湖春盡落花風 日暮閑雲過碧空

강호춘진낙화풍 일모한운과벽공

憑渠料得人間幻 萬事都忘一笑中

빙거료득인간환 만사도망일소중

 

-부휴(浮休, 15431615), 한조각 한가론 구름 푸른 허공 지나가네(一片閑雲過碧空)

 

 

[웃음거리

 

 

진리 찾다 시비의 실마리 속 잘못 들어

여러 해 웃음거리 된 줄도 몰랐었네.

꿈 깨고야 비로소 헛된 신세 알게 되니

흰구름 끝 늙어 마침 마음에 맹서한다.

 

 

尋眞誤入是非端 不覺多年作笑端

심진오입시비단 불각다년작소단

夢罷始知身世幻 誓心終老白雲端

몽파시지신세환 서심종로백운단

 

-부휴(浮休, 15431615), 감회(感懷)

 

 

[

묵좌

 

 

마음 비워 가만 앉아 홀로 문을 닫았는데

한 소리 봄 새 울음 푸른 산 구름 잠겨.

한가한 맛 안개 속에 실컷 얻어 가졌지만

다만 혼자 기뻐할 뿐 그대에겐 못 드리리.

 

 

默坐虛懷獨掩門 一聲春鳥碧山雲

묵좌허회독엄문 일성춘조벽산운

烟霞剩得閑中趣 只自熙怡不贈君

연하잉득한중취 지자희이부증군

 

-부휴(浮休, 15431615), () 선백께 드림(贈巖禪伯)1

 

 

[참문(參問)함엔 아만(我慢)을 제거해야 마땅하고

수행에는 탐진치(貪嗔痴)를 없앰이 합당하다.

헐뜯음과 기림이 바람처럼 들려와도

만사에 무심해야 도가 절로 새로우리.

 

 

參問須宜除我慢 修行只合去貪嗔

참문수의제아만 수행지합거탐진

雖聞毁譽如風過 萬事無心道自新

수문훼예여풍과 만사무심도자신

 

-부휴(浮休, 15431615), () 상인에게 주다(贈峻上人)

 

 

[이미 지나간 아주 작은 일들도

 

꿈속에선 선명하게 생각이 나네.

건망증 고친 사람 창을 들고 쫓아냈다는

그 말에 참으로 일리가 있네.

아내를 놔두고 이사를 했다는 것도

우연히 한 말만은 아닐 것이네.

몇 년간 병든 채로 지내온 지금

기심(機心)을 내려놓는 것이 약보다 낫네.

 

往事細如毛 明明夢中記 操戈欲逐儒 此言殊有理

徙室或忘妻 非徒偶語爾 一病今幾年 息機勝藥餌

 

 

 

[

누구인들 영 영 죽지 않으리

죽는 일은 옛날부터 균등하였다.

처음엔 8척 사나이로 생각던 것이

별안간 한줌의 먼지로 되어진다.

황천에 동트는 날 없는데

푸른 풀은 때가 되면 살아난다.

가슴 아파 지는 데까지 다다르니까

소나무 바람이 사람을 시름겹게 만드는구나.

誰家長不死 死事舊來均 始憶八尺漢

俄成一聚塵 黃泉無曉日 靑草有時春

行到傷心處 松風愁殺人 - << 寒山詩(한산시) >> -

 

 

심우시(尋牛詩)

 

此物元非無處尋 이 물건 원래 찾을 곳 없는 것 아니나

山中但覺白雲深 산속엔 다만 흰 구름만 깊었어라.

絶壑斷崖攀不得 깊은 골 깎아지른 벼랑 오를 수 없고

風生虎嘯復龍唫 바람 일자 범이 울고 용마저 우짖누나.

狐狸滿山凡幾多 여우 살쾡이 가득한 산 몇 번 지났을까

回頭又問是甚麽 고개 돌려 예가 어디인지를 다시 묻는다.

忽看披艸踏花跡 홀연 풀을 헤쳐 보고 꽃 자취를 밟아가다

別徑何須更他覓 다른 길을 무에 다시 찾을 필요 있으랴.

 

- << 만해 >> -

 

 

至今何必更聞聲 지금 하필 그 소리를 다시 들을까

揖白白兮踏靑靑 밝고 찬란한 모습에 읍하고 뒤따라

不離一步立看彼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서서 보노라니

毛角元非到此成 털과 뿔 본디 이런 것이 아니네.

 

已見更疑不得渠 보았으나 잡을 수 없다 의심이 다시 들어

擾擾毛心亦難除 흔들리는 모심(毛心) 누르기 어려워라.

頓覺其轡已在手 그 고삐 내 손에 있음 단박 깨치니

大似元來不離居 이는 분명 원래부터 떨어진 적 없었든 듯.

 

- << 만해 >> -

 

 

飼養馴致兩加身 꼴 먹이고 길들이며 보호해 줌은

恐彼野性逸入塵 혹여 저 야성이 날뛰어 진속에 들어갈까 봐.

片時不待羈與絆 한시라도 코뚜레와 멍에가 없다면

萬事於今必須人 지금 모든 게 사람의 손이 필요하리.

 

 

不費鞭影任歸家 채찍 그림자(鞭影) 쓰지 않고 귀가길 맡겨두니

溪山何妨隔烟霞 산과 물 연기 노을에 막혔어도 무슨 방해가 되리.

斜日吃盡長程艸 날 저물어 긴 길의 풀을 다 먹어 치우니

春風未見香入牙 봄바람 불지 않아도 풀 향기가 입으로 들어오누나.

 

自任逸蹄水復山 물과 산으로 마음껏 뛰어다녀

綠水靑山白日間 종일토록 청산녹수에 노니네.

雖然已在桃林野 이 몸 비록 복사꽃 핀 들에 있어도

片夢猶在小窓間 선 꿈은 외려 작은 창문 새로 들어오누나.

 

 

非徒色空空亦空 색이 공만인 것이 아니라 공 또한 공이거늘

已無塞處又無通 막힌 곳이 없었으니 통할 것도 없구나.

纖塵不立依天劍 띠끌 세상의 불립문자 천검(天劍)에 의지하니

肯許千秋有祖宗 어찌 천추토록 조종(祖宗)이 있음을 허용하리.

 

 

三明六通元非功 삼명육통(三明六通)은 원래 힘쓸 것이 아니거늘,

何似若盲復如聾 어찌 눈멀고 다시 귀 먼 것처럼 하랴.

回首毛角未生外 돌아보니 털과 뿔이 밖으로 나지 않았는데

春來依舊百花紅 여전히 봄은 찾아와 백화가 만발하구나.

 

 

入泥入水任去來 진흙 속에도 물속에도 마음대로 오가면서

哭笑無端不盈腮 끝없이 울고 웃는 모습 얼굴에 드러내지 않네.

他日茫茫苦海裏 훗날 망망한 고해 속에서도

更敎蓮花火中開 다시금 연꽃으로 불꽃 속에 피게 하리.

 

 

 

7. 5 선시

 

별들이 널려 있는 깊은 밤

바위에 외로운 등불 하나 달은 기우는데

뚜렷이 찬 광명은 이지러지지 않고 빛나니

내 마음 푸른 하늘에 걸려 있다네

 

중성나열야명심 衆星羅列夜明深

암점고등월미침 岩點孤燈月未沈

원만광화불마형 圓滿光華不磨瑩

괘재청천시아심 掛在靑天是我心 - << 한산시 >>

 

산은 무심히 푸르고

구름은 무심히 희구나

그 가운데 스님 한사람

또한 무심한 나그네로세

 

산자무심벽(山自無心碧)

운자무심백(雲自無心白)

기중일상인(其中一上人)

역시무심객(亦是無心客) - 서산스님

 

 

 

 

7. 5 선시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가 되기까지

금계를 굳게 지켜 범하지 않으리라.

오직 원하노니 여러 부처님께서는 증명하소서

차라리 목숨을 버리더라도 마침내 물러서지 않으오리다.

 

自從今身至佛身

堅持禁戒不毁犯

唯願諸佛作證明

寧捨身命終不退 - << 자장 율사>>

 

달은 금반지가 되어 푸른 하늘에 걸려 있고

물은 옥가루가 되어 긴 내에 떨어지네.

이 가운데 무한한 진여의 풍경이여

어찌 산사람의 붓으로 펼쳐낼 수 있으랴.

 

月作金環掛碧天(월작금환괘벽천)

水爲玉屑落長川(수위옥소낙장천)

箇中無限眞風景(개중무한진풍경)

豈易山人筆下宣(기이산인필하선) - << 월파(月波1695~?) 대사>>

 

 

有一物於此 從來以來 昭昭靈靈

不曾生不曾滅 名不得狀不得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생긴 것도 아니요 일찍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네.

 

- 선가귀감, 청허 휴정 대사 -

 

다만 온갖 만물에 무심하다면

만물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 무엇이 방해가 되겠는가.

쇠로 만든 소가 사자의 포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고,

나무로 만든 사람이 꽃을 보고 새를 보는 것과 꼭 같네.

나무로 만든 사람은 본래 자체에 마음이 없으며

꽃과 새도 나무로 만든 사람을 만나도 놀라지 않는다.

마음과 경계가 여여하면 다만 이러할 뿐인데

깨달음 이루지 못한 것을 무엇 때문에 염려하겠는가.

 

但自無心於萬物 何妨萬物常圍繞

鐵牛不怕獅子吼 恰似木人見花鳥

木人本體自無情 花鳥逢人亦不驚

心境如如只遮是 何處菩提道不成 - 방거사(龐居士,700년대 )

 

꿈속에서 꿈속의 일 말하지 말라.

꿈이 가면 꿈이 오고 꿈은 쉬지 않는다.

근심 속에서 근심 속의 말을 말하지 말라.

근심이 가면 근심이 오고 근심이 다시 근심이 된다.

夢裏莫說夢裏事(몽리막설몽리사)

夢去夢來夢不休(몽고몽래몽불휴)

愁中莫說愁中語(수중막설수중어)

愁去愁來愁復愁(수거수래수부수)

괄허(括虛1720~1789) 스님

 

푸른 숲 짙은 그늘 여름날은 길고 긴데

누대의 그림자는 연못 속에 거꾸로 잠겼구나.

미풍이 일어나 수정발이 흔들리고

줄기 뻗어 가득 핀 장미로 온 절이 향기롭네.

 

녹수음롱하일장 綠水陰濃夏日長

누대도영입지당 樓臺倒影入池塘

수정렴동미풍기 水晶簾動微風起

만가장미일원향 滿架薔薇一院香 -

 

< 고봉원묘(高峯原妙 : 12381295) >

 

 

7.5 선시

 

흰 구름 쌓이는 산속의 삼

앉고 눕고 거닐면서 스스로 한가롭네.

차가운 시냇물은 반야를 말하는데

달빛 실은 맑은 바람 온몸이 서늘하네.

 

白雲堆裏屋三間(백운퇴리옥삼간)

坐臥經行得自閑(좌와경행득자한)

澗水冷冷談般若(간수냉냉담반야)

淸風和月遍身寒(청풍화월변신한) - << 나옹집(懶翁集) >> -

 

천리 길 찾아와 임의 안부 묻나이다.

청산에 홀로 서서 몇 해를 보냈나요?

만약 부처님 법이 행하지 못하는 말세를 만났다면

나 역시 임처럼 목숨 아끼지 않았으리.

 

千里歸來問舍人(천리귀래문사인)

靑山獨立幾經春(청산독립기경춘)

若逢末世難行法(약봉말세난행법)

我亦如君不惜身(아역여군불석신)

 

- <<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 >> -

 

- 한산 시 -

 

欲得安身處 寒山可長保 이 몸 편히 쉴 곳을 찾았었는데 한산이 오래 살기 제일 좋구나.

 

微風吹幽松 近聽聲逾好 미풍이 노송에 불어올 때는 가까이서 듣는 소리 더욱 좋아라.

 

下有班白人 喃喃讀黃老 나무 아래 흰머리 노인이 있어 남남남남 노자를 흥얼거리네.

 

十年歸不得 忘却來時道 십년동안 돌아가지 아니했으니 올 때의 그 길을 잊어 버렸네.

 

번뇌를 멀리 벗어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니

승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할지어다.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았다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塵勞逈脫事非常 (진노형탈사비상)

緊把繩頭做一場 (긴파승두주일장)

不是一番寒徹骨 (불시일번한철골)

爭得梅花撲鼻香 (쟁득매화박비향) - 황벽희운 -

 

 

봄을 맞으니 높은 산 낮은 들 모두가 아름답고

울창한 숲에 비 지나가고 나니 두견새 지저귄다.

인적은 고요하여 그림같이 달 밝은 밤에

꽃잎은 휘날리고 술에 취해 노래 부른다.

 

承春高下盡鮮姸

雨過喬林叫杜鵑

人靜畵樓明月夜

醉歌歡酒落花前 - 선문염송 -

 

 

 

저 스님아 산이 좋다 말하지 말게

좋다면서 왜 다시 산을 나오나,

저 뒷날 내 자취 두고 보게나

한 번 들면 다시는 안 돌아오리

 

僧乎莫道靑山好

山好何事更出山

試看他日吾踪跡

一入靑山更不還 - << 고운 최치원 >> -

 

태어나기 전이나 죽은 후에도 홀로 신령스러운 것이여

일체 부처님이 여기서 나왔다네

미친 마음만 쉬면 바로 볼 수 있나니

가을 물 맑은 하늘, 달이 떠 있구나

 

신전신후독영영 身前身後獨靈靈

일체여래출차경 一切如來出此經

헐즉광심변상견 歇盡狂心便相見

수추천정월정정 水秋天淨月亭亭

굉지정각(宏智正覺:1091~1157)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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