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官의 風流
양승태 대법원장은 한 달에 평균 두 번 정도 전국의 지방법원들을 순회한다. 문제는 그날 저녁 일정이 끝나면 숙소를 어디로 정하느냐이다.
이 양반은 현지의 직원들이 미리 잡아 놓은 호텔에서 자지 않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그 지역의 올라갈 만한 산 밑으로 이동한다. 거기에다 비서들과 함께 텐트를 치고 비박을 하는 것이다. 바닥에는 매트리스를 깔고 등산 장비를 풀어놓은 다음에 다음 날 아침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아침 일찍 산에 올라가면 그 상쾌한 기분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10여년 전에는 백두대간 종주에 성공하기도 했다. 미국의 최고봉인 휘트니산(4418m)에서 시작하여 요세미티 계곡에 이르는 358㎞의 산악 트레킹 코스인 '존 뮤어 트레일'. 밤에는 곰이 출몰하는 이 길을 배낭 메고 걷던 도중에 대법원장에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약간 등산 중독 증세(?)가 있다고 해야 할까.
김진태 검찰총장은 주역(周易)에 조예가 깊다고 들었다.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주역의 괘를 뽑아보는 취미를 지니고 있다. 이성적 판단인 사판(事判)과 직관적 판단인 이판(理判)도 아울러야만 이사무애(理事無碍)가 된다. 괘를 뽑는다는 것은 이판이다. 진인사(盡人事)를 한 다음에 대천명(待天命)의 과정에 해당한다. 검찰 역사에서 가장 복잡한 시기에 총장을 맡은 그의 행보는 어떤 괘로 설명될 수 있을까?
조병현 서울고등법원장은 한시를 좋아한다. 대학 다닐 때 팔당호가 내려다보이는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의 행유정(杏幽亭)에서 고시공부 하다가 지은 시가 있다. '靑杏栗香幽玄裡, 孤風巍樓士閒居, 絶世原圖慾仙而, 自懼醉夢汚仙處'. '푸른 은행과 밤꽃 향기가 가득한 산골, 고요한 바람 부는 누각에서 선비가 한가하게 앉아 있구나, 원래는 세속을 벗어나 신선이 되고 싶었는데, 몽롱하게 술에 취해 이 선경을 더럽힐까 스스로 걱정이 되네.' 몇 년 전 조 판사가 근무하던 부산지방법원에 필자가 강연을 갔다가 본 법원장실에 걸려 있는 액자에 적혀 있던 그의 시였다. 법관은 말썽의 소지가 없는 취미를 좋아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