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向日庵
우리나라 해안가에는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네 군데의 관음사찰이 있다. 동해안에는 낙산사 홍련암(紅蓮庵)이 있고, 서해안에는 강화도 보문사(普門寺), 남해안에는 여수의 향일암(向日庵), 남해 금산의 보리암(菩提庵)이다. 유명한 불교의 관음사찰들은 왜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가? '관음(觀音)'이라는 글자에 핵심이 담겨 있다. '소리를 관(觀)한다'는 의미의 '관음'은 바닷가의 파도 소리, 즉 해조음(海潮音)을 듣기 위해서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능엄경(楞嚴經)'에 의하면 사람이 잠을 자면서도 해조음에 집중을 하고 있으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 귀로 소리를 들어서 깨달음을 얻는 경지를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고 하고, 이렇게 도를 통한 보살이 관음보살이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바닷가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알파'파(波)가 나와서 사람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작용이 있다고 한다. 동해 바다가 시적(詩的)이라고 한다면, 서해 바다는 소설적(小說的)이고, 남해 바다는 산문적(散文的)이다. 여수 향일암은 그 산문적인 바다가 법당 앞으로 파랗게 펼쳐져 있다. 바다인데도 거의 호수에 가깝다는 느낌을 줄 만큼 고요한 바다이다. 푸른 비단을 엄청나게 펼쳐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온갖 세파를 겪고도 본성(本性)을 잃지 않은 장년 군자의 평정심 같다고나 할까. 태양은 직접 볼 수 없지만, 그 태양이 바다에 비쳐서 반짝반짝 반사되는 빛을 인간이 바라다보면 위로를 받는다. 잔잔한 바다에서 반사되는 빛은 찢어지고 할퀴어진 인간의 상처에 발라주는 연고와 같다. 동향(東向)으로 되어 있는 향일암에서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세존도(世尊島), 그리고 동북쪽 방향의 남해 보리암을 연결하면 삼각형의 바다가 된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삼각형의 바다 밑에 용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옛날 원효대사가 이 향일암에서 공부하다가 떠날 때 그동안 보던 경전을 바다에 던졌는데, 다시 그 경전들이 육지로 올라와 이 향일암 법당 뒤의 '경전바위'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용궁으로 들어가는 터에 자리 잡은 암자가 향일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