賢者 殿閣/조용헌 살롱

演說力과 文章力

초암 정만순 2014. 2. 19. 12:57

演說力과 文章力

 

그리스·로마의 전통 이래로 서양의 도시에는 광장이 발달되어 있다. 광장은 대중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다. 정치 지도자는 이 광장에서 군중을 설득하였다. '데모크라시'라는 것은 광장에서 지도자가 대중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정치 형태이다. 민주주의에서 광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설득을 하려면 말을 잘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지닌 연설을 잘하는 것이 지도자의 필수 자질이 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에 보면 로마의 시저(카이사르)가 암살된 직후에 '포로 로마노'광장에서 로마 시민을 상대로 이루어진 두 진영의 유명한 연설 내용이 나온다. 시저 반대파인 브루투스와 시저 찬성파인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그것이다. '줄리어스 시저'에서는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브루투스 연설을 압도한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작가적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도 있겠지만, 서양의 연설전통(演說傳統)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동양의 한자 문화권에서는 사마천, 이태백, 최치원, 소동파, 이율곡처럼 문장력이 있고, 시를 잘 쓰는 사람들이 대접받았다. 이들이 남긴 문장들은 지금도 암송 대상이다. 이는 답안지로 시험을 치르는 과거제도와 관련이 있다. 과거시험에 합격하려면 일단 문장력이 있어야만 합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치 있게 말을 잘하면 자칫 '교언영색'(巧言令色), 또는 선동가로 폄하될 가능성이 있었다. 말을 적게 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졌다. 문장가 중에 말을 잘 못하는 눌변가(訥辯家)가 많은 것도 이러한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근래에 종편 방송이 생기면서부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부각되고 있다. 정치 이슈는 그동안 신문에서 글을 잘 쓰는 논객(論客)들이 지면을 통하여 주도해 온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종편의 시사토론 프로에 등장하는 말 잘하는 설객(說客)들에게로 상당 부분 정치 담론 주도권이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종편의 주력부대는 시사토론 프로이고, 시사토론은 제작비가 적게 들 뿐만 아니라, 어떤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시간제한 없이 프로그램 편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종편 때문에 '글'에서 '말'로 권력이 이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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