賢者 殿閣/조용헌 살롱

철새의 상징

초암 정만순 2014. 2. 18. 10:50

 

철새의 상징

 

공자님이 세상 살면서 가장 어렵다고 한 것이 바로 '시중(時中)'이다. '시중'이란 '적절한 시간'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는 타이밍과 그만두어야 하는 타이밍을 알기가 가장 어렵다.


'때'를 아는 일이야말로 모든 판단력의 정점이요, 최상위급 지혜에 해당한다. 철이 든다는 것은 때를 안다는 말이다. 봄이면 씨를 뿌려야 하는 시간이고, 겨울이 되면 저장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걸 모르면 인생에서 헤맨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한반도로 날아오는 철새들을 우리 조상들은 신기한 새로 여겼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새이니까. 중앙아시아와 만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고대인들은 이 철새를 숭배하였다. 죽은 조상의 영혼이 다시 새로 변하여 돌아오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죽은 영혼이 하늘로 갔다가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다고 여기는 사생관(死生觀)에서 볼 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는 철새는 사람의 영혼을 상징하기에 딱 들어맞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새의 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솟대'를 동네 입구에 세워 놓은 것이 그러한 숭배의 전통을 말해준다. 철새가 날아오면서 조상의 메시지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였다. 동북아시아의 솟대는 '새점(占)'의 전통이 매우 뿌리 깊은 전통임을 알려준다.

이 지역에는 철새뿐만 아니라 날아다니는 조류를 신성하게 여기는 신화가 퍼져 있다. 청나라의 민족 시조인 아이신기오르(愛新覺羅)도 하늘에서 내려온 새(神鵲)가 물고 온 열매를 먹고 임신한 선녀가 낳은 아들이다. 하늘의 메신저가 '새'라는 말이다. 신라의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나 닭 계(鷄) 자를 써서 계림(鷄林)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조류 숭배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서양은 시간을 중시하였고 동양은 공간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공간 이동의 자유를 더 중시한 경향이 있다. 철새는 이 공간 이동의 자유를 상징하는 생물이다. 수천 년 동안 솟대에 모셔놓고 신성시했던 이 철새가 이제는 조류인플루엔자를 옮기는 문제의 새로 전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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