賢者 殿閣/조용헌 살롱

金鰲島(금오도) 비렁길

초암 정만순 2014. 2. 17. 11:47

 

金鰲島(금오도) 비렁길

 

섬은 마지막 남은 오지이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 섬은 아직까지 오지로 남아 있다. 배를 타고 물을 건넌다는 것은 왠지 모를 고립감을 준다. 그 고립감이 새로운 차원으로 몰입하게 도와주는 힘이 된다.

여수 돌산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금오도(金鰲島)의 비렁길은 1960~70년대 느꼈던 이 땅의 자연 풍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길이었다. 벼랑(절벽)을 이 지역 사투리로 부르면 '비렁'이다. 금오도는 섬 주변이 해발 80~ 90m 높이의 절벽으로 감싸고 있는 지형이었다. '비렁길'은 해안가의 절벽 주위로 난 길을 걷는 코스다. 함구미 마을에서 장지마을까지 총 18.5㎞. 천천히 걸으면 7~8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다.

비렁길을 걸으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풍경은 온통 푸른색으로 빛나는 남녘의 바다였다. 중간 중간에 섬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달력에 나오는 사진 같은 풍광을 연출한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다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해안 절벽을 따라 걷는 길은 시간이 멈춘 신화적인 공간을 내가 걸어가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였다. 시간이 멈추면 진공 상태로 들어간다. 진공 상태에서는 과거도 잊어버리고 미래도 생각나지 않고, 가슴을 짓누르는 근심 걱정도 잊을 수 있다.

길옆에는 남녘에서 자라는 대나무 숲과 동백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붉은 동백꽃은 피어서 이미 지고 있었다. 그 나무들에서 나오는 냄새들도 향긋하다. 평소에 잘 못 보던 수종(樹種)들을 보면 '내가 낯선 곳에 왔구나' 하는 실감을 준다. 비렁길 중간 중간에 전망을 즐길 수 있는 포인트가 있었다.

'미역널방'(미역널바위)은 100m 높이의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 있었다. '단애'(斷崖)라고 하는 곳이 바로 이런 지점이다. 섬 주민들이 미역을 말리던 장소였다고 한다. 한 시간 정도 더 가니까 신선대(神仙臺)가 나오는데, 이곳 역시 도끼로 잘라놓은 것 같은 바위 절벽의 형상이다. 이러한 장소에서 2~3시간 바둑을 두면 바위에서 나오는 암기(岩氣)를 충분히 받는다. 얼굴의 피부가 팽팽해지는가 하면 허벅지에서 힘이 솟는다. 비렁길을 걷고 나니까 보름치 보약을 먹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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