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과 치자, 청국장, 대추

불면증과 치자, 청국장, 대추              

  

'황제내경'을 보면 '봄, 여름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고, 가을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겨울에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라'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 시절엔 태양의 길이에 따라 밤낮의 활동 시간이 정해졌을 터이니.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다. 인공태양이 여기저기 걸려 있어 눈을 감을 수 없게 한다. 앤드류 파커는 '눈의 탄생'에서 '빛-스위치 이론'이란 학설을 제기했다. 진화의 과정상 어느 날 눈이 생겨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자 포식자는 이빨과 턱이 발달한 반면, 피식자는 두꺼운 갑옷으로 무장하거나, 위장을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눈은 생존과 직결돼 햇볕이 비치는 동안은 잡아먹거나, 먹히지 않기 위해 각성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 몸에 내장된 생체 시계, 또한 빛에 맞춰져 있다. 눈으로 들어오는 빛이 시신경을 통해 뇌의 교차상핵이라는 곳에 도달하면 생체 시계가 재설정된다. 빛은 잠을 유발시키는 멜라토닌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의 3분의 1을 잠으로 소비한다. 이를 큰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안자고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가 8시간 잠을 자는 동안 서파수면과 렘수면이 교대로 5~6회에 걸쳐 나타나는데, 그 중 400여분 정도가 서파수면이라는 깊은 잠에 빠진다. 이 때 낮 시간에 소모되고 손상된 부분이 회복되고, 감정도 순화된다. 아이들의 경우는 성장호르몬 분비로 뼈와 근육의 발달을 촉진시킨다. 나머지 80~90여분 정도가 렘수면(REM, Rapid eye movement)기로,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며, 깨어있을 때 나타나는 베타파의 뇌파가 감지된다. 이 때 주로 꿈을 꾼다. 또 남자는 발기하고, 여성은 음핵이 확대되며, 심장박동과 호흡, 혈압이 변덕스럽게 오르내린다. 렘수면이 중요한 것은 그날 그날의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꿔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흔히 적게 자고 공부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만 실상 렘수면의 길이가 90분이 되지 않으면 그날 공부한 내용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나 전두엽에 저장되지 않아 오히려 비능률적이다. 렘수면이 없는 바늘두더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처럼 매일 같은 것을 똑같이 학습해야 기억할 수 있다. 통상 잠을 못 자면 그 다음날 피곤해지는 것을 아는 까닭에 어쨌든 잠을 이루려고 한다. 따뜻한 우유나 와인 한잔 마시기, 기분좋은 성관계, 멜라토닌 등등. 이런 걸로 안 되면 수면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스런 수면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낄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허번불수(虛煩不睡), 혼리불수(魂離不睡), 사결불수(思結不睡)에 대한 증상이 있다. 불수(不睡)란 불면증이다. 그 원인이 허번ㆍ혼리ㆍ사결이라는 뜻이다. 허번(虛煩)이란 땀을 많이 냈거나, 설사ㆍ구토를 많이 했거나, 혹은 큰 병을 앓고 난 뒤 열이 명치를 타고 올라와 가슴속에 번열이 맺혀 답답하고, 보다 시원하고 넓은 곳으로 가려고 하고, 입과 목이 마르고 잠을 못 자는 경우를 말한다. 사결(思結)이란 사기결(思氣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많이 하면 기운이 막힌다는 뜻이다. 혼리(魂離)란 혼이 떠난 것처럼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고 놀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가위에 잘 눌려서 잠을 못 잔다는 뜻이다. 각 처방은 동의보감 '꿈'편에 있다. 임상에서 주로 접하는 불면증은 크게 2가지다. 밤새도록 눈이 말똥말똥해서 한 잠도 못 자는 경우와 졸려서 자려고 하면 말똥말똥해지고, 또 조금 있으면 졸리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 치자(梔子)와 청국장이 명약이다. 이 두 개가 합쳐있는 것을 치자시탕(梔子豉湯)이라고 한다. 후자는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이라 역시 시호(柴胡)가 들어가는 처방이 알맞다. 화병으로 인해 가슴이 답답한 증상으로 불면증이 올 때는 가슴 한 가운데 양쪽 젖꼭지 중간에 있는 전중(膻中) 혈 자리에 뜸을 뜨면 며칠 내로 시원해지면서 불면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 일명 화뜸이라고 한다. 그리고 커피나 녹차 같은 각성제 대신 하루 치자 15g, 대추 10알씩 다려서 차 대신에 복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