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비경을 찾아..우천의 제단(기도터)
명산에는 제단이라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기우제를 지내는 곳이 한두 곳은 다 있다.
지리산은 옛날 국가 공식 제단인 노고단, 삼신봉,신선너덜들 제단 등을 제외하고도 소박하게 서민들이 기도 드리고 제를 지내는 곳이 많다.
이런 소박한 제단을 말할 때 우리는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우천 허만수 선생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진주의 부농집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갔다 온 상당한 엘리트인 우천은 광복과 함께 귀국하며 결혼과 처자식의 가정을 일구었으나,이내 그 모든 인연을 끊고 지리산에 들어 죽을 때 까지 지리산 세석 근처에서 기거하며 스스로 지리산이 되었다고 한다.
1976.6월 행방도 없이 홀연히 사라질 때 까지 그는 지리산의 산길 조성, 조난자 구호 등 산과 사람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서 중산리 입구에는 그를 추모하는 공식 추모 탑도 있다. 이 분이 지리산의 아주 중요하고, 전망 좋고, 기도처로 영험한 곳에 제단 혹은 기도터를 많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분이 한 것인지, 아님 그 이전부터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리산의 제단 하면 허우천 선생이 깊이 관여 되어 있다고 본다.
<중산리 들머리에 있는 우천의 추모비..."산을 위해 태어난 산 사람">
<추모비 뒤쪽...그의 행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권력과 세상풍파에 억압받고 탄압받고,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은 많은 민초들은 그 아픔을 이끌고 할수있는 마지막 행위, 즉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과 신에게 빌고,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을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산으로 찾아와 그 간절함을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허우천은 그런 민초들의 아픔을 보고, 느끼면서 무엇을 생각 했을까? 그런 아픔을 조금이라 보듬어 주기위해 전망 좋고, 아늑하고, 식수가 있는 곳에 그리고 이왕이면 산의 기운도 왕성한 곳에 기도 터나 제단을 만들어 그들의 정신과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크고 작은 제단을 지리산 곳곳에 만들어 놓았는데, 그중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4곳을 지리산 비경으로 소개해 보려고 한다.
▶ 제1 제단.
뭐니 뭐니 해도 지리산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영신대에 있는 제단이다. 전망은 대성골을 보면서 노고단을 향한다. 영신대 비경에서 별도로 기록을 했으니 생략한다.
<영신대에는 크고 작은 기도터가 많치만 이곳이 가장 중심부이고, 큰 제단이다>
▶ 제2 제단.
창불대에 있는 제단이다. 사실 이 곳은 기도터 보다는 수행터로 어울린다. 전망은 불무장등을 넘어 반야봉을 향한다. 이곳도 창불대에서 자세하게 소개를 해서 여기서는 생략 한다.
<천길 절벽위에 쌓았다>
▶ 제3 제단.
음양수샘 위에 있는 제단이다.각 제단의 특징 중 하나인 훌륭한 전망과 샘을 갖춘 아주 좋은 제단이라 생각한다. 제단의 조금 위쪽에 돌무덤이 별도로 존재하고 전망은 남부능선,삼신봉을 향한다.
<사람 발길이 잦아 제단의 윤곽이 가장 뚜렷하고 온전한 음양수샘 제단>
<음양수 제단 위 돌무덤>
<이렇게 모든 제단에서 보면 그 전망이 아주 훌륭하다...음양수샘 제단에서 보이는 남부능선>
▶ 제4 제단.
거림 옛길로 올라가서 남부능선 주능선 근처에 있다. 커다란 바위 위에 제단을 설치했고, 전망은 거림골과 남부능선을 향한다.
<이 곳이 가장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였다>
돌로 쌓은 제단형태가 모두 엇비슷해 한 사람이 쌓은 것으로 보여지며,개인적으로 창불대 제단과 거림의 제단이 조용하고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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