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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비경을 찾아...창불대와 가섭,좌고대

초암 정만순 2015. 8. 14. 10:34

지리산 비경을 찾아...창불대와 가섭,좌고대

 

 

 

 

▶ 창불대(唱佛臺).

 

수십 미터의 절벽으로 된 큰 암봉 3개가 모여 있는 창불대.

부처를 위해 오분향례를 하거나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곳이라 하며, 불도의 성불을 위해 이 곳 깍아지른 천길 낭떠러지에서 노래를 부른다 ?. 사실 이 곳에 서면 그 위압감과 공포감으로 노래가 나올 수 없을 거 같다. 어쩌면 오직 하나를 위한 일념으로 집중하고 경계하라는 뜻에서 이런 위험한 곳이 창붕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대성골과 반야봉을 바라보는 백척간두 암봉에 서면 이 곳이 육산의 지리산이란 느낌은 온데 간데 없어 지고 오히려 높이에 따른 공포감이 아찔하게 몰려오는 창불대에는 지리산의 아픈 상처, 빨치산과 토벌대의 핏빛 상처가 남아 있는 곳이다.

빨치산 마지막 토벌작전으로 잔여 빨치산들이 창불대 아래 대성골과 건너 빗점골로 모이게 되고, 그곳에서 대다수가 몰살을 당하는 피의 계곡, 아픔의 산하, 눈물과 회환이 가득한 한 서린 현장이 된 곳이다. 패퇴한  일부 여자 빨치산들은 이곳 창불대까지 밀려나 건너편 바위(일명 자살바위)에서 피지 못한 푸른 꽃으로 바위 아래 깊은 곳으로 꺽이는 눈물의 결정을 한 곳이다. 

 

가는 길은 낙남정맥 길에 있어 음양수샘에서 직진(출입금지 표시 뒷)으로 올라오던가, 영신봉 이정표를 넘어 곧장 내려 가던가 하면 된다. 산죽이 간혹 있지만 비교적 길이 잘 나 있어 의지만 있다면 찾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창불대 전경>

 

 

 

 

<자살바위에서 본 전경>

 

 

 

 

 

 

 

근데 지리산 최고의 암릉 지대인 이곳이 창불대(좌측),병풍바위(우측),자살바위(중간) 이렇게 불려지고 있는데, 자살바위는 대성골 빨치산과 마지막 전투에서 빨치산 여성대원들이 이 바위에서 투신자살을 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고, 병풍바위는 그 모양에서 그렇게 부르는 거 같은 데 사실은 이 암봉 모두가 창불대로 불려져야 한다. 수백년 전부터 불리어져 오던 것을 근세에 어떤 사연으로 다르게 부른다면 그건 정통성에 어긋나고 지리산의 역사와 가치를 훼손 하는 것이기에 난 이 곳 모두를 창불대라 부른다.  

 

 

<자살바위라 칭하는 우측암벽...원경>
 

 

 

 

<자살바위 아래로 잣나무 근처에 는 검은 동굴(?)...정말 궁금한 곳이다>

 

 

 

<자살바위 돌덩이...굴러 떨어질거 같은 모양이다>

 



<병풍바위라 칭하는 창불대 우측 끝 부분 암봉>

 

 

 

 

 

 

<너무 길어 그 끝이 안보인다>

 

 

 

 

<창불대 좌측 암봉>
 

 

 

 

 

 

 

 

 

좌,우측의 암봉 사이에 제단이 있다. 제단 이라기보다는 수도처가 맞을 거 같다. 깍아지른 천길 절벽 끝에서 도를 참구하는 수행,참선의 자리로 아주 적합하다. 도에 대한 확철대오를 하던지, 끝 모를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던지, 생사를 걸고 용맹정진 하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그 수행터에 서니 너무 아찔하다. 발 아래를 다 내려다 볼수 없을 정도로 천길단애를 형성하고 있다.

 

<수행터>

 

 

 

<창불대 중앙에서 본 대성골....앞쪽에서 밑을 보기가 겁날 정도로  아찔하다>

 

 

 

 

 

 

 


암봉에 금새 떨어질듯한 큰 돌맹이가 있는 일명 자살 바위란 곳, 이념과 사상이 과연 인간 위에 군림하는가? 인간이 그것에 종속을 해야 하는가?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과 목숨을 걸고 싸우고, 그 싸움에서 지면 생명을 그렇게 던지는 게 그게 과연 善 인가? 아쉽고 서글프다. 지리산에 들면 이래서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창불대에서 본 반야봉... 구름속의 섬모양으로>

 

 

 

 

 

 


 가섭대, 좌고대.

 

이 곳은 세석산장 근처에 있어 쉽게 찾아 갈거라 생각했는데,가장 힘들고 어렵게 찾았다.

들머리인 세석 풍력 바람개비 직전 넓은 공터에서 우측으로 간다는 정보만 가지고 갔는데, 그게 방향이 잘못됐다. 그래서 키 작은 잡목과 빽빽하게 자란 철쭉군락에 할퀴고,찔리고 하여 어렵게,어렵게 큰 방향만 잡고 남쪽으로 가다 다시 서쪽방향으로 수십 분을 헤매다 영신사지에 도착 하게 되었다.

 

수목이 왕성하게 자라고, 좌우로는 물길이 있어 절터임을 알수 있었다. 가섭대를 보고 좌고대를 본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을 근거로 이 곳을 영신사지,가섭, 좌고대라고 추정을 하는데 확실이 이 곳이 맞던, 안 맞던 범상치 않은 곳임은 분명하다.

 

<영신사지> 

 

 

 

<영신사지 북서쪽에 있는 가섭대>
 

 

 

 

 

특히 좌고대에는 최치원의 각자가 있다고 하는데, 바위가 바람에 부식되고 1000년 이상의 세월 흔적을 몸소 겪어서 그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좌고대에는 엉덩이를 델 만큼 안락하게 패인 자리가 인상적이였다.

 

 

<좌고대>
 

 


 

 

 

  

나오는 길을 잡고 되돌아 오니 내가 들어갈 때 입구하고 달랐다. 정확하게 가는 길은 영신봉에서 세석가는 넓은 공터 직전에 우측으로 가는 작은 길이 있다. 그 길을 잡고 들어가 곧바로 우측으로 쭉 들어 가면 금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