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은 과연 어디일까? 고증된 사료는 아니지만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강화도의 전등사라고 한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했던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阿道和尙)이 318년(고구려 소수림왕11년)에 세운 절로 진종사(眞宗寺)가 기원이었다.

그런데 고려 충렬왕의 왕비인 정화궁주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하면서 전등사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전등(傳燈)이란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는 말로 여기서는 법맥을 잇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은행나무 ‘성’을 바꾸어 절을 지키다

그렇게 이 땅에서 가장 오랫동안 등불을 이어온 전등사의 가을은 특히 아름답다. 우리나라 어느 사찰인들 이 가을에 아름답지 않겠느냐만 전등사에 있는 깊은 사연을 가진 나무들은 또 다른 가을빛으로 경내를 밝히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성(性)을 바꾸어가면서까지 절을 지킨 커다란 은행나무는 전등사의 자랑거리다. 숭유억불정책이 한창이던 조선후기, 나라에서는 이 절에 은행열매의 공출량을 과하게 부과했다. 불교에 대한 탄압의 구실이었다. 온 산을 헤집고 다녀도 공출량에는 턱 없이 부족하던 스님들은 해마다 모진 탄압을 견뎌내야 했음은 뻔한 일이다.

이에 스님들은 한데 모여 거대한 은행나무가 아예 은행을 맺지 않게 삼일기도를 드렸고, 은행나무는 바로 수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조정에서는 은행나무의 신통력을 생각하여 전등사와 스님들을 다시는 괴롭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꽃은 피어도 열매는 한 번도 맺지 않았다는 이 거대한 은행나무는 근래 들어 기력이 많이 약해져 가지를 모두 쳐내야만 했다. 기둥만 보아도 본래 얼마나 큰 나무였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어 안타까움만 더해진다. 600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은 날은 아니었을 터, 그저 훌훌 털고 일어나길 기원해 본다.

 

밤이 오면 또 다른 불을 밝힐 것…

은행나무를 그려볼까 하고 자리를 잡아 앉았다. 물끄러미 은행나무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인간의 짧은 수명으로 나무를 걱정하는 내 모습이 덧없어 자꾸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천수를 누리는 운명은 하늘이 정해준 것을. 나는 은행나무에 대한 측은함을 떨쳐냈다. 그러자 나무의 모습은 더욱 숭고해보였다. 그려보려던 마음도 바뀌어 자리에서 일어나 대웅전 앞마당으로 올라섰다.

경내 한 가운데 커다란 느티나무가 수형도 멋지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그리도 급했을까. 400살이 넘은 느티나무는 한껏 노랗게 물든 가을잎을 벌써부터 열심히 떨구어 내고 있었다. 짧아진 오후의 햇살이 나무의 그림자를 더 없이 기품 있는 붓글씨처럼 뻗쳐 그려낸다.

나무는 마치 그림자로 모든 전각들을 어루만지려는 듯 길게 뻗어 경내를 휘감아 돌 기세다. 그 사이로 내 그림자를 얹어 본다. 얼마 후 저녁 어스름 속의 전등사에 내 그림자도 나무의 그림자도 모두 하나가 되어 사라진다.

이제 또 하루의 밤이 오면 전등사는 다음날의 새로운 빛에 닿을 또 다른 새로운 불을 밝힐 것이다. 이 땅에서 가장 길게 이어져 온 절집의 하루가 그렇게 밤으로 전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