賢者 殿閣/덕화만발

[스크랩] *덕화만발* 꼰대와 멘토

초암 정만순 2014. 4. 17. 08:03

 

 

*德華滿發*

 

꼰대와 멘토

 

도반 동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사회는 언제나 철이 들까요? 지난 달 21일, 술값시비로 만취 현직 부장판사와 술집 종업원 그리고 경찰까지 폭행한 사건이 일어나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모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술에 취해 술집 종업원을 때리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까지 폭행한 현행범으로 경찰에 입건되어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지난 3월 19일자 덕화만발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 ‘멘토와 멘티’에 대해서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선 ‘성공담을 자랑하면 꼰대, 실패담을 들려주면 멘토’라는 말이 있지요. 그럼 ‘꼰대’란 무슨 말일까요? 우리 국어사전엔 은어(隱語)로 늙은이,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 은어인 꼰대란 말은 흔히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나 ‘나이 값을 못하는 사람’을 비꼬아서 쓰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죠.

 

또는 고집불통, 소통불가, 독불장군, 외골수로 말이 통하지 않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을 빗댄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런 ‘꼰대’들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남의 말을 도대체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말만 주장하는 꽉 닫힌 이들이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며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일부 옹고집 지식인들도 이런 부류에 들어갑니다.

 

반대로 '멘토'는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멘토’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멘토라고 하면 '스승'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뉘앙스를 풍깁니다. 보통 스승이라고 하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떠올리지만, 멘토의 경우는 동갑내기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멘토가 될 수 있죠. 스승이 무엇인가를 ‘직접 가르쳐주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멘토는 ‘이끌어 주는 사람’ 이라는 뜻이 강하지 않은가요?

 

도반 동지 여러분!

이십 대에는 이렇게 떠벌리고 다녔죠. “난 뭘 해도 될 거야.” 삼십 대에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다녔습니다. “하는 일에 따라서 어쩌면 될지도 몰라.” 지천명(知天命)을 코앞에 둔 때는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난 뭘 해도 안 될 거야.” 이를 본 주변들은 우려의 눈길을 보냅니다. “아니 어쩌다가 그렇게 부정적으로 변하셨어요?” 그런데 사실 부정적으로 생각할 때 성공한 일이 없었습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잘 될 일이 있을 리 만무하거든요.

 

그런데 저의 경우, 그 장년기에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歸依) 하고서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모든 일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공부와 사업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뛴다.」이것이 저의 생활신조였습니다. 부정과 긍정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진리는 원하면 원하는 대로 되는 묘한 이치가 숨어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실패가 찾아오고, 긍정적으로 보면 성공만 찾아오는 것이죠.

 

도반 동지 여러분!

그러나 사실 세상 대부분의 분쟁은 자기 자신을 과대하게 평가하고 있어서 발생하기가 십상입니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제대로 취급받지 못했다고 분개한 끝에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죠.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바라보는 ‘나’의 존재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필 인간이란 종(種)이 참 어이없는 존재여서 양보하더라도 최소한 남자라는 종족만큼은 남에게 인정받는 일을 목숨을 건 투쟁 수준으로 중하게 여기는 기질이 있어 본격적으로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얼마 전 층간 소음 문제로 위층과 다툰 끝에 위층 소유 차량의 타이어에 펑크를 내고 그것도 모자라 열쇠 구멍에 접착제를 발라버린 판사님이 계셨죠. 아마 이 분이나 위의 술값시비를 벌리신 판사님이나 이랬을 것입니다. “내가 판사인데 감히 나를 무시해?” 그분들은 법정에서는 판사지만 동네에서는 그냥 이웃 주민이었을 뿐이고 술손님이었을 뿐이죠. 그걸 망각하고 판사의 권위를 일상생활에서까지 인정받고 싶어서 벌어진 해프닝이 아니었을까요?

 

몇 년 전 아들이 술집 종업원들에게 몇 대 쥐어 터졌다고 득달같이 달려가 ‘아귀 통’을 날리신 재벌회장님도 계셨죠. 아들을 사랑한 것인지 자신의 권위를 사랑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심각한 겸손 결핍 증세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너나 나나 죽으면 한 뼘 땅에 묻혀 썩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판사님이나 회장님같이 특별한 분들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동창회 같은 데 나가보면 그런 증세를 보이는 친구가 하나둘은 꼭 있습니다. 화제가 그쪽이 아닌데도 뜬금없이 자기 자랑을 끼워 넣어 분위기를 망칩니다. 그래도 성에 안 차면 “야 이거 내가 쏜다!”고 설치기도 하죠. 누구나 소중한 존재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는 나한테나 소중하지 남한테는 하나도 소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저만 모르는 것이 안타깝죠.

 

도반 동지 여러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역으로 생각을 해 보면 어떨까요? 고개를 미리 숙이면 혹시 익는 게 빨라지지 않을까요? 겸손하면 상대방도 친절할 것이고 친절은 협조를 동반할 것이니 나쁠 일이 없습니다. 물론 겸손을 이해하지 못해 ‘을(乙)’의 처신으로 읽는 멍청한 인간도 있겠지요.

 

이런 인간은 속해있는 조직과 자신의 능력을 혼동하거나 출신 학교가 자기를 대변한다고 믿는 삼류들입니다. 그 조직을 벗어나거나 학력이 별로 중요치 않은 상황이 되면 견디지 못하는 것이죠. 결국 사고를 칩니다. 사고를 안치더라도 ‘내가 왕년에’ 소리를 늘어놓아 ‘꼰대’ 소리를 듣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轉落) 하고 마는 것입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꼰대’는 성공담을 자랑하고, ‘멘토’는 실패담을 들려줍니다. 돌아보면 내가 한 일이라고는 결국 나이 먹은 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겸양(謙讓)이상의 미덕은 없습니다. 범부(凡夫)는 작은 선(善)에 걸리어 큰 선을 행하지 못하고, 작은 지혜에 걸려 큰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인(聖人)은 작은 선으로부터 큰 선을 행하고, 작게 아는 것으로부터 크게 아는 것이죠. 이왕이면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얻은 지위나 명예, 그 권력을 남을 이끄는 ‘멘토’로 사용할지언정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꼰대’로 살아야 쓰겠는지요!

 

원기 99년(2014) 4월 9일 덕 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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