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入門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11

초암 정만순 2021. 7. 5. 13:55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꼬박 하루 낯밤을 화력 조절에 매진하던 성수신의의 얼굴에 안도의 웃음이 번졌다

새벽에 드디어 만보단 고약이 만들어진 겄이다

단로의 문을 열고 고약의 상태를 확인한 신의의 득의만만한 표정이다

"이제 환의 모양을 만들고 포장할 일만 남았네"

신의는 손을 뻗어 탁자에 놓인 요령을 가볍게 흔들었다

"딸랑 딸랑 딸랑"

그러자 제단실 옆방 다실에서 운기조식하고 있던 만공상인과 반미륵 그리고 광뇌권과 옥면수사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드디어 제단에 성공하신 모양이구려. 경하드립니다"

만공상인도 만면에 웃음기를 띄며 인사를 드린다

"예 이제 환의 모양을 만들고 금박을 입히기만 하면 이 일이 끝날 것 같습니다 허허"

"거기 전각 밖에서 수고하는 스님 중 한분이 떡갈나무 잎 하나를 따다 주시겠소"

"예 대령하겠읍니다"

무승이 따다준 떡갈나무 잎을 엄지와 식지 사이에 낀 성수신의가 가볍게 지풍(指風)을 고약쪽으로 날렸다

그러자 허공을 날아간 잎이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고약을 가지런하게 절단하기 시작한다

격공어기(隔空御氣)의 상승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번엔 탄환만한 크기의 정육면체를 일제히 허공으로 띄우더니 장을 교묘히 움직여 회전을 시키기 시작햬다 

그러자 정육면체인 고약이 빠른 회전력으로 인해 원형의 구슬이 되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만공대사가 감탄사를 발한다

"허허 신의의 솜씨는 날로 교묘해 지는구려 이 빈승이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말없이 환을 움켜 잡은 신의가 말했다

"보잘것 없는 재주라 부끄럽습니다. 이제 금박 입히는 작업은 수작업으로 합시다"

수작업으로 금박을 입히고 나니 이제 완벽한 만보단이 완성된 것이다

개수는 24개 인데 이 중 네 개를 신의가 만공상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장래 위급한 경우에 대비해 상인께서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예 그 뜻을 잘 알고 있읍니다"

그리고 광뇌권에게 두 개를 건네며 말한다

"마찬가지 일세 운남종주님께 전하고 조만간 찿아 뵙겠다고 하게"

"명심하겠읍니다"

만공상인에게 작별을 고한 성수신의는 성수곡으로 그리고 광뇌권과 옥면수사는 치악산으로 각자의 행장을 차려 길을 떠났다

 

 

 

 

 마이산(馬耳山)은 진안고원의 중앙에 위치하나 자체는 큰 규모의 산이라고 볼 수 없는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다.

숫마이봉은 산정이 날카롭고 사람이 쉽게 등반 할 수 없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반면, 암마이봉은 비록 급경사이긴 하지만 소로가 만들어져 일반인도 오를 수는 있다.

이 마이산은 정면보다 측면에서 보면 정말로 말이 귀를 쫑긋 세운 것처럼 보인다.

 

마이산은 풍수지리적으로 산태극(山太極)과 수태극(水太極)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영험한 기운이 움트는 곳이기도 하다.

마이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운장산, 대둔산, 계룡산으로, 남쪽으로는 팔공산과 지리산으로, 서쪽으로는 만덕산과 모악산으로, 동쪽으로는 덕유산과 민주지산으로 이어지는 산맥들이 십자형으로 산태극을 이룬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의 천황문을 분수령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줄기가 북쪽으로는 금강, 남쪽으로는 섬진강을 만들어 수태극을 이룬다.

 

그런데 이 마이산 숫마이봉 아래에 한 청년이 나타났다

약관의 나이에 고집세 보이나 수려한 용모에 남루한 청포를 걸치고 있었다

많은 길을 걸었는듯 좀 지쳐보이는 기색인데 등에 멘 괴나리 봇짐엔 무엇이 들었는지 불룩해 보인다

산봉을 가만히 쳐다보던 그는 한 모금 진기를 들이마시고는 서슴없이 벽호공법(劈虎功法)을 사용하여 직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한참 후 그는 암벽 중간에서 동굴을 발견했다

 

 

암마이봉과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위치이긴 하나 바위틈에서 자란 노송 한 그루가 정면을 가려주어 쉽게 노출되지 않는 천혜의 은신처이다

이 천연 암굴의 이름은 화엄굴인데 동굴 안에 샘이 있어 그의 스승이 젊은 시절 폐관수련(閉關修練)한 곳이기도하다

굴 내부를 찬찬히 살펴 본 그는 우선 바닥을 깨끗이 치운다음 배낭을 풀어 주섬주섬 소지품을 꺼낸다

밤 추위를 막기위한 이불과 굶주림을 막기 위한 벽곡단, 수건 한장 그리고 물을 떠먹기 위한 표주박 하나가 전부다

물론 약간의 엽전도 있다

 

사실 그는 고창 선운산(禪雲山) 삼청궁(三淸宮) 대장로(大長老)인 함허도장(涵虛道長)의 지시에 따라 임독양맥(林督督兩脈)의 타통(打通)을 위해 이 동굴을 찿아온 겄이다

기한은 단 두달! 강추위가 닥쳐오기 전에 하산하여야만 한다

그의 도명(道名)은 진명(眞明)이고 속명(俗名)은 정경수인데 나이 열살 때 아버지가 역모에 연루되어 집안이 풍지박산될 때 절친인 함허도장이 삼청관으로 데려와 십여년을 살뜰히 거두어 준것이다

정식 도사는 아니고 속가제자로서 받아들여 장래를 위한 온갖 배려의 은혜를 입었다

타고난 근골이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고 두뇌가 영민하나 고집이 세서 관규(館規)를 잘 따르지 않아 말썽을 피웠지만 도장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오늘에 이르게 된 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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