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한편 수종사 방장의 거처인 수류화개실(水流花開室)에서는 방장스님인 만공상인(滿空上人)과 성수곡(聖手谷) 곡주인 성수신의(聖手神醫) 서갑득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만공상인은 중국 소림사와 비견되는 조선불교무공의 진산인 함월산(含月山) 골굴사(骨窟寺) 무승(武僧) 출신으로 젊은 시절 무술 수련 시 가장 촉망받는 인재로 알려졌으며 골굴십이관문(骨窟十二關門)을 통과하여 불문무공(佛門武功)의 정통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수가 쉰 일곱이요 법랍(法臘)이 마흔 다섯이니 나이 열두살에 불문에 몸을 의탁했던 셈이다
특이한 모습은 얼굴은 대추빛으로 붉은데 두 눈섭이 하얘서 백미상인으로도 불린다
그와 마주 앉은 성수신의는 자그마한 키에 단아한 모습을 한 중년인인데 둥근 얼굴에 연신 미소를 지으며 손짓까지 하는걸로 보아 상당히 유쾌한 성품의 소유자인 것 같다
방장실 밖 계단에는 두 명의 호위승이 엄숙한 자태로 장봉을 들고 경계를 하고 있는 걸로 보아 두 사람이 매우 중요한 사안을 논의하고 있는 걸로 짐작된다
만공상인이 불호를 외우고 먼저 입을 열었다
"나무 관세음보살 대인이 본사를 직접 방문하여 주셔서 빈승은 아주 마음이 노입니다"
"당연히 와야 할 길을 왔을 뿐입니다 스님의 환대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세정사에 파견된 반미륵의 전언에 의하면 하루 이틀 안에 금정수가 용출될 거라는 군요.
그러면 대인께서 폐사에서 만보단을 만드셔야 하지 않겠읍니까?"
성수신의가 당연하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띄며 화답한다
" 예 그렇습니다 귀사에는 단약실이 따로 있어 단약 제조에 필요한 모든 장치와 도구가 구비 되어 있으니 제가 지참하고 온 신약을 금정수와 배합하여 만보단(萬寶丹)을 만드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보단!
만보단은 삼선궁(三仙宮)의 구화옥로환(九華玉露丸)과 함께 무림 이대 성약(聖藥)으로 알려 져 있는데 숨이 끊어진지 일각 이내라면 시체도 소생 시킬수 있다는 소문이 도는 영약이다
주요 약재는 사향, 녹용, 백년산삼 등인데 여기에 금정수가 더해지니 그 약효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신수의성이 말을 잇는다
"그러면 제가 직접 금정을 방문하여 금정수를 채취하느게 어떨까 하고도 생각하는데 스님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빈승도 금정수 채취를 반미륵에게만 맡겨 두자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는데 대인이 함께 하신다면 안심이 되겠네요.
폐사의 고족제자도 몆명 딸려 보내겠으니 내일 아침 공양 후 출발 하도록 하시지요"
어째 만공상인과 반미륵스님의 죽이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하나는 저녁이나 먹고 보자 하고 하나는 아침 먹고 보자 하니 말이다
사실 수종사와 세정사는 지척의 거리이다
수종사 뒷산인 철상봉에 오른 후 운길산 줄기를 타고 서쪽으로 나아가다가 자하곡으로 내려서면 바로 세정사다
고수들이 경신공을 발휘한다면 아마 한식경이면 도착할 터이다
다음날 아침 예불은 마치고 공양을 끝낸 성수신의와 백미상인의 고족제자 세명은 금정수 채취 채비를 단단히 하고 세정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차거워진 새벽 공기를 헤치고 철상봉에 올라선 일행은 운길산 산줄기를 타고 초상비 경공을 발휘하여 바람처름 내달렸다
잠시 후 그들은 자하곡 세정사가 내려다 보이는 작은 암봉에 다달았다
고족제자 중 한명이 하단전에 공력을 모아 길게 소리를 뽑아낸다
"우우우 우우우"
무림에서 멀리 떨어진 상대에게 자신의 위치나 상태를 알리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인 천룡음(天龍吟)이다
그러자 세정사 쪽에서도 소리가 들려온다
"오오오 오오오"
알았다는 뜻이다
잠시 후 세정사에 도착한 일행을 반미륵이 산문 밖에서 직접 맞이한다
전서구를 통해 성수신의가 찿아간다는 전갈을 미리 받은 터라 영접함에 소흘함이 없다
"대인께서 직접 오시다니 영광입니다"
"스님께서 금정을 수호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두 사람이 수인사를 나누고 산문 안으로 들어서니 광뇌권과 옥면수사가 성수신의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올린다
"신의의 존안을 직접 뵙게되어 큰 광영입니다. 스승님과 함께 운남궁에서 뵈온지가 근 삼년 전인데 그 때보다 오히려 더 젊어지신것 같읍니다"
성수신의가 손사레를 치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허허허 너무 대놓고 그러지 마시게 어디 세월 이기는 장사가 어디 있다고. 그래 종주께서는 평안하신가"
" 예 무탈 하십니다. 스승님도 신의님을 그리워 하십니다. 조만간 수담(手談)이나 나누자고 연통을 하실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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