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入門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4

초암 정만순 2021. 6. 18. 10:28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사실 만향루는 치악산(雉岳山)에 본거지를 둔 운남종(雲南宗)의 한양 소재 분타(分舵)인데 루주(樓主)를 비롯한 고위 간부들은 거의가 운남종의 문도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들은 만향루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여 본타에 상납할 뿐만 아니라 한양을 위시하여 전국 각도의 정보들을 수집 분석하여 본종에 보고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기에 운남종의 정보는 신속하고 정확하기로 강호(江湖) 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겄이디

즉 정보제일 운남종!

그러나 만향루가 최일선 최고 정보 수집기관 이라는걸 운남종의 고위 간부급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헀다

 

다음날 정오 쯤 한양과 경기도 광주를 잇는 관도에 두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박말수 그리고 김정수라고 자기 이름을 밝힌 장한과 선비였다

그런데 어째서 서울 기방에서 느긋하게 점심상을 받아야 할 두 사람이 이렇게 같이 관도를 바쁘게 걷고 있다는 것인가

사실 이들은 운남종(雲南宗)의 고족제자(高足弟子)인 중견 고수들이다

이들은  이미 한달 전부터 만향루에서 서로 만나 행동을 같이 하기로 약조한 사이이니 그 사유는 차차 드러날 것이다

선비는 사흘 전 부터 미리 만향루에 도착하여 장한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뱀대가리의 도발이 없었다면 이런 예기치  않은 소란행위도 없었을 터였다

 

장한의 본명은 탁유명이고 별호(別號)는 광뇌권(狂雷拳)으로 운남종주(雲南宗主)인 치악산인(雉岳山人) 김해명의 삼제자이다

별호처름 주먹을 씀에 있어서는 감히 대항할 자가 없을 만큼 벼락처름 용맹한 기도(氣道)를 지니고 있다

선비는 본명이 이상언인데 역시 운남종주의 오제자로 별호는 옥면수사(玉面秀士)인데 이름 그대로 빙긋 웃는 미소는 많은 여인네의 애간장을 녹이는 바다

그의 무술 주특기는 구절철편(九節鐵鞭)으로 평소에는 허리춤에 감추어 감고 있다가 때를 당하면 번개같이 휘두르는 위세가 실로 흉흉하다고 알려져 있다

 

 

"사형 아무리 급한 발걸음 이라지만 배고파 쓰러질 지경이니 요기나 좀 하고 갑시다"

"그럼 일단 그늘에 앉아 쉬면서 물도 좀 마시고 도시락도 먹믐세"

관도 변 노목 밑에서 막 도시락을 깔려는 즈음 갑자기 향전(響箭) 소리가 들리더니 화살 하나가 노목에 콱 박힌다

그러나 둘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아무 일 없다는 듯 화살을 뺀 후 화살 끝에 묶인 작은 서찰을 펼친 후 읽기 시작한다

이 향전 연락법은 상대방에게 자기를 노출시키지 않고 은밀히 정보를 전하는 운남종 통신 수단의 하나인 것 이다

'시간이 없다. 속히 예봉산 동쪽 계곡 세정사에 숨어 들고자 하는 묘수서(妙手鼠)를 추포하라"

그리고 거기에는 최근 묘수서의 자세한 인상착의가 그려져 있었다

"사제 안되겠네 급히 내달음세"

그들은 물 한모금과 주먹밥 한개를 우걱우걱 삼키고는 돌아가야 하는 관도를 버리고 익숙한듯 팔당나루를 건너 예봉산 줄기를 타고 동쪽으로 청하곡(淸霞谷)을 향해 번개처름 내달렸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빨리 예봉산 정상에 올라선 둘은 안력을 최대한 돋우어 청하곡 속에 업드려 있는 세정사를 찿았다

청하곡에는 세정사(世淨寺)라는 아담한 절이 오래전 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이 세정사는 짙은 안개에 묻혀 그 위치를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청하곡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와 가까워서 인지 수시로 농무가 골짜기를 휘감아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절조차 찿기 어려운 판에 이 운무 중에서 묘수서를 발견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어렵다

그리고 묘수서가 이미 절에 잠입하였을 지도 모르고 아니면 가까운 곳에 은신처를 발견하고 숨어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둘은 의논 끝에 일단 계곡으로 치고 내려가 세정사를 찿기로 했다

뛰어난 무공을 지닌 둘인지라 골짜기로 내려서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농무 가운데서 절을 찿기에 애를 먹던 두 사람 귀에 낭낭한 간경 소리가 들렸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시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반야심경의 첫 구절이다

이제 스님의 독경 소리만 따라가면 된다는 생각에 둘은 안도의 한숨을 쉬곤 걸음을 제촉했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날 때 쯤 안개 속에서 절의 산문이 나타나고 곧 이어 대웅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뉘 절과 달리 대웅전에 대웅전('大雄殿) 이라는 현판은 없고 세정사(世淨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세정사 대웅전 주련을 보니 방거사(龐居士)의 시가 걸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但自無心於萬物 단자무심어만물

何妨萬物常圍遶 하방만물상위요

鐵牛不怕獅子吼 철우불파사자후

恰似木人見花鳥 흡사목인견화조

木人本體自無情 목인본체자무정

花鳥逢人亦不驚 화조봉인역불경

心境如如只遮是 심경여여지차시

何慮菩提道不成 하려보리도불성

 

득도의 경지를 읇은 시 이지만 무공에만 관심이 있을뿐인 둘은 대웅전 안에서 울려 나오는 간경 소리에다 대고 방문 인사를 한다

"스님 지나가는 과객이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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