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入門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5

초암 정만순 2021. 6. 18. 16:57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그러자 법당 안에서 퉁명스런 답변이 들려왔다

"그 누구시오 우리 절은 당분간 시주를 받지 않습니다"

" 스님 긴요히 상의할 일이 있어 뵙기를 청하니 문을 열어 주시겠읍니까"

"관심 없으니 시주님은 시주님 갈 길을 가길 바라오"

이런 식의 언쟁이 서너번 오고 간 뒤 갑자기 법당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스님이 대웅전 앞에 화난 모습을 드러냈다

우선 그 모습이 참으로 괴이하다

일단 육척 장신에 살이 디룩디룩 쩌서 머리와 기슴이 붙어버려 아예 목이 없다시피 하고 배는 남산 만한데 스님이 수염을 길러 배꼽까지 내려오는데 나이는 얼추 서른 대여섯살 먹은것 같다 

예리한 눈빛이 형형하여 섬뜻한 느낌이 들 정도인데 왼손에 든 여의방편산을 연신 바닥에 내리 찍는다

"본 승이 자비로서 말을 할 때 들어야지 꼭 벌주를 마시고 후회하겠단 말이요"

"하 스님 잠시 노기를 누그러뜨리시고 저희 말을 한번 들어 보시지요"

"정 그렇다면 좋소 나 반미륵(胖彌勒)은 하고싶지 않은 일은 죽어도 하지 않지만 이 방편산의 일격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그대들의 원을 들어주겠소"

참으로 어이없는 말이었다

스님은 자비로서 중생을 교화화고 청정하게 계율을 지켜 득도해야 하거늘 대짜고짜 한판 붙어보잔다

이때 옥면수사가 합장을 하여 반미륵 화상에게 예를 표하며 대꾸를 한다 

"그럼 스님의 공세을 받아내면 저희의 작은 부탁을 들어 주시겠단 말씀입니까"

"그야 물론이요. 자 여러 소리 말고 내 공격이나 받아 보시요. 나는 이 방편산을 쓸것이지만 시주는 무슨 무기를 사용할거요"

"하하 빈 손으로는 도저히 스님을 당해낼 수 없을것 같으니 저도 당연히 무기를 써야 겠지요. 제 걱정은 마시고 스님이 선공(先攻)하사지요"

그 말이 떵어지기 무섭게 반미륵의 비대한 몸이 새처름 가볍게 오장을 날아들며 방편산으로 옥면수사의 머리통을 내리 찍는다

무시무시한 기세의 태산압정(泰山壓頂)이다

 

 

그러나 옥면수사도 만만치 않았다

독문절기(獨門絶技)인 유운보(流雲步)를 발휘하여 방편산을 가볍게 피한 후 번개처름 허라춤에 둘러찬 구절철편을 꺼내 들고  반미륵의 허리를 향해 쓸어나갔다

여차직하면 반미륵의 허리가 갈라지고 창자가 튀어나올 위기의 순간 그는 슬쩍 허리를 뒤로 틀며 팔꿈치로 철편을 튕겨냈다

하급 무사라면 당연히 팔꿈치 피가 튀고 뼈가 쪼개져야 마땅하지만 반미륵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방편산을 수평으로 들고 옥면수사의 가슴을 독룡출동(毒龍出洞)의 기세로 찔러 들어가니 무게 30근 짜리 병기를 마치 나무젓가락 다루듯 한다

그러나 옥면수사의 신법은 참으로 기묘하여 허공을 박차올라 방편산을 밟고서는 멀찌기 후방으로 내려선다

이렇게 삼십여 합(蛤)을 주고 받았으나 어느 한쪽이 우세하거나 밀림이 없자 반미륵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공세를 멈췄다

"됐소이다 이쯤 하기로 하죠. 승부를 가름할 수 없으니 내가 시주들의 말을 한번 들어주리다" 

"고맙소이다. 조금만 더 겨루었으면 소생이 밀렸을 텐데 손에 사정을 봐주어 감사합니다"

 

 

"천만의 말씀. 그래 당신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었이요"

"저희는 치악산 운남종 종도(宗徒)로서 저는 옥면수사라 하옵고 이 분은 저의 사형으로 별호는 광뇌권이라 합니다"

"뭐 내가 딱히 의심병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워낙 신분을 속이고 다니는 자들이 많다보니 그대들의 신분을 확인해줄 증표가 필요하오"

"그럼요 증표가 있읍니다"

옥면수사와 광뇌권은 품속에서 손바닥 만한 황동패를 꺼내든다

자세히 살펴보니 직시각형 모양 황동패의 앞면에는 운남종 특유의 구름무늬와 쌍용이 새겨져 있고 뒷면엔 운남종이라는 글귀가 있다

"내가 과문하긴하나 운남종의 명패는 확실히 알고 있소이다. 그럼 요사체에서 차나 한잔 하면서 방문한 목적을 들어봅시다"

반미륵은 거구를 휘적이며 대웅전 옆에 딸린 요사채로 두 사람을 안내한다

"뭐 산승이 거처하는 누옥이지만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며 얘기를 섞어봅시다"

차탁을 가운데 두고 주인석엔 반미륵이 그리고 객석에는 광뇌권과 옥면수사가 마주보고 앉는다

"제가 대접하는 차에는 두 종류가 있소이다. 하나는 오룡차(烏龒茶)고 또하나는 곡차(穀茶)인데 두 분은 둘 중 어느 차를 드시겠오"

"오룡차를 마시지요"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 그럼 소승은 곡차를 마시겠읍니다. 여기 차와 다구들이 있으니 끓여 드세요"

마시든 말든 너희 들이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다

말을 마친 반미륵은 다장에서 곡차를 꺼내서 병채로 입에 대고 한모금 꿀꺽 마시기 시작한다

"하하하 차는 역시 곡차가 제일이지"

 

 

 

 

'古典 香氣 > 入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7  (0) 2021.06.22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6  (0) 2021.06.21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4  (0) 2021.06.18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3  (0) 2021.06.17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2  (0) 2021.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