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入門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3

초암 정만순 2021. 6. 17. 14:01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제 이막 주향만당(酒香滿堂) - 술향기는 코를 찌르고

 

한양(漢陽)은 이름 그대로 조선의 서울이다

한양의 상거래를 하는 시전은 조선 태종대에 이르러 한성의 주요 간선도로의 양편에 공랑(公廊)이 건조됨으로써 시전체제가 완비되었는데 육의전(六矣廛) 이라 불렀다

공랑이 완비되기 전까지 상인들은 도성 내의 각체에서 무질서하게 상업을 영위하였는데, 공랑의 완비와 더불어 상인을 공랑상인, 좌상, 행상인으로 구분하고 각각 거래장소를 지정하여 주었던 것이다.

종로 거리 양편에 자리한 육의전은 조선 최고의 재화가 모여들고 나가는 번화가로 돈이 풍성한 곳이다

거기따라 주루와 여각 창가 그리고 투전판들도 덩달아 번창하였으니 그 중 만향루(滿香樓)는 한양 주루 중 알아주는 술집이었다

 

해가 뉘웃 넘어가는 초저녁 한 사내가 만향루의 문턱을 넘어 들어섰다

키가 훤칠하고 거무튀튀한 피부에 구랫나무가 무성한 눈빛이 매서운 삼십대 초반의 장한이다

행색을 살펴보니 빛바랜 남삼을 입었고 낡은 짚새기를 신었다

머리에는 패랭이를 쓰고 걸망을 지고 있는데 얼추 추레한 나그네 행색이다

 

 

 

미리 자리잡은 손님들이 번잡스런 실내를 두리번 거리던 장한은 구석진 곳에 있는 빈 탁자를 발견하곤 의자에 엉덩이를 털석 붙이고선 주문을 했다

"주모 여기 술상하나 봐 주슈 막걸리 세 병에 부추전과 돼지수육 한 접시요"

'예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이윽고 술상이 나오자 그는 몹시 시장한듯 연거푸 술을 목구멍에 들이붓고 허겁지겁 안주를 씹었다

그때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여인의 비명소리가 옆자리에서 들렸다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장한의 눈매가 갑자기 사나워 지며 야릇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아니 왜 이러새요 제발 좀 그만해요"

"얘 봐라 내가 너 엉덩이 좀 만진다고 그게 닳냐 기분만 좋지"

약간 술에 취한듯한 한 사내가 술집 여종을 성희롱하는 겄이다

그 사내는 여종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손목을 잡고선 끊임없이 추행을 시도하지만 여종의 완강한 반항에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한다

그러자 그는 마침내 여종의 따귀를 때리며 폭행을 하기 시작한다

"이 년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내가 누군지 모르고 까부는 거야"

장한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채로 그 사내를 향해 한마디 한다

"이봐요 여기 당신만 있는게 아니잖소 그리고 죄 없는 그 아가씨는 왜 괴롭히는 거요 젊잖게 술이나 마십시다"

그 말을 들은 사내의 얼굴이 핏빛으로 변하더니 도끼눈을 뜨고 고함을 지른다

"아니 뭐 이런 똥개 새끼가 다 있어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귀인지 모르겠지만 너 오늘 마침 잘 걸렸다"

사실 이 사내는 이 일대 주루가를 등치며 먹고사는 오두령파라 불리는 왈패들의 부두목 격으로 뱀대가리로 불리는 악명높은 인간 쓰레기였다

평소대로 장한을 얏본 그는 다짜고짜 주먹질을 장한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일로충권(一路衝拳), 아주 단순한 손속이지만 노기를 품은 주먹이라 한방 얻어걸리면 부상은 피할수 없으리라

그러나 날아오는 주먹보다 장한의 몸놀림은 한 수 더 빨랐다

번개같이 몸을 일으킨 그는 이형환위(移形換位)의 신법을 사용하여 사내의 옆구리에 붙은 후 태양혈(太陽穴)에 용두권(龍頭拳)으로 가볍게 일격을 가했다

그러자 그 사내는 비명 한소리도 지르지도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푹 꼬부라 졌다

순간 떠들석하던 실내가 일순 조용해 지며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의 드잡이질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렸고 장한의 몸놀림과 타격 순간을 옳게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손속은 빠르고 정확했던 겄이다

 

 

그런데 그 침묵을 깨뜨린 낭낭한 음성이 들려왔다

"하하하 참으로 대단하오이다 멋진 광경을 보게되어 영광입니다"

그 말의 주인공은 흰색 도포에 갓을 쓰고 흑혜를 신은 선비차림의 스무살 가량된 눈빛이 맑고 은은한 미소가 입꼬리에 걸린 말쑥한 모습의 문사(文士)이다

그는 천천히 장한에게 다가와 두손을 모아 읍을 하며 말했다

"실례지만 방금 귀하가 시전하신 무공은 혹시 지리산 진천궁(眞天宮)의 탕소진애(蕩掃塵埃)가 아닌가요"

"하 평범한 무공을 이리 높이 평해주니 자못 당황스럽소이다"

장한의 퉁명스런 대꾸였다

선비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저는 종로에 사는 김정수라고 합니다만 대형의 성함은 어찌되시는지요?"

"정처없이 떠도는 박말수라고 하오"

"오늘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어디 장소를 옮겨 술 한잔 함이 어떻소이까 물론 용채는 소인이 대겠소이다"

"뭐 나도 공짜 술은 마다 않는 몸이니 술맛이 어떠한지 거들어 볼까요"

어째 죽이 척척 맞아 들어가는 두 사람이다

잠시 후 그들은 아직도 자빠져 꿈틀거리고 있는 뱀대가리를 뒤로하고 유유히 만향루를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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