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入門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1

초암 정만순 2021. 6. 16. 15:00

표풍만리행(飄風萬里行)

 

 

제 1막 초우접풍(招雨接風) - 비바람이 불려나

 

때는 조선 숙종 재위 6년 9월 중순

깊어가는 가을따라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 오는 날이다

시각이 진시(辰時) 인지라라 캄캄한 밤이었으나 보름 달빛이 산하 대지를 훤히 비추고 있는 가운데 경상도 대구부 북쪽 팔공산(八公山)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파계사(把溪寺) 산문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아마도 타인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게 싫은듯 말뚝이 탈을 쓰고 푸른 도포에 가죽신을 신었는데 특이하게도 그의 머리에 쓴 갓은 말총이 아닌 쇠로 만든 철관(鐵冠)이었다

보통의 키에 호리한 몸짓을 하고 있어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가름할 바 없고 얼굴을 가렸으니 나이 조차 알 길이 없다

다만 그의 가벼운 걸음걸이와 어깨 추임세로 비춰볼 때 무술의 재간이 상당한 자라고 짐작될 뿐이다

 

 

일주문 앞에서 잠시 전방을 응시하던 그는 일주문에 무슨 기관이라도 매설되어 있는지 의심하는 듯 걸어서 들어가지 않고 갑자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두 팔을 학의 날개처름 펼쳐 석장이 넘는 일주문을 가볍게 넘어 가니 실로 놀라운 신법(身法)이 아닐 수 없다

좀처름 보기드문 경공법(輕功法)인 백학충소(白鶴沖宵)를 가볍계 시전하고 지상에 낙하한 그는 다시 초상비(草上飛)라는 보법을 사용하여 파계사 전각들을 뒤로하고 쏜살 같이 산정을 향해 내달렸다

 

 

성전암(聖殿庵)은 파계사에 딸린 부속 암자다

규모가 작은 암자라고는 하나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이 절에서 수도를 하고 득도를 한 까닭에 오히려 본 절보다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암자이다

절 가장 깊숫한 곳 소림굴(少琳窟)이라는 현판이 붙은 선당(禪堂)에는 취침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촛불이 켜져 있다

선방 가운데 나지막한 좌대에 모셔신 관음보살상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이 곳에 차탁을 마주하고 길게 뻗은 흰 아미와 후덕한 인상의 노승이 엄숙한 기세로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한채 고요히 눈을 감고 입으로는 나직히 붛호(佛號)를 외고 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노승의 법호는 현공(玄空)으로 성전암의 방장(方丈)스님인 바 세수(世壽)는 칠십을 넘었다

그의 깨달음의 깊이는 당금 불가에서 중인이 인정하는 바이고 무학에도 조예가 깊어 그의 무공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소문만 무성할 뿐 본신지공(本身之功)을 직접 목도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때 바람소리도 없이 갑자기 촛불이 일렁이더니 사람의 그림자가 창에 비치차 노승이 번쩍 눈을 떳다

"오셨으면 얼른 들어 오시오"

"네 감사합니다 스님"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사람은 파계사 산문을 날아올라 통과한 바로 그 사람이다

노승 앞에 선 그는 우선 철관을 벗고 연이어 말뚝이 탈을 벗어 바닥에 조용히 내려 놓았다

진면목이 드러난 그의 얼굴을 보면 하이얀 피부와 짙은 눈썹 그리고 초롱한 눈메와 우뚝한 콧날이 단정하여 가히 미남자라 불러도 좋을만한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다

"스님 절 받으세요"

"아니 굳이 그럴 것 없이 앉아서 차나 한잔 하세"

그러나 청삼(靑衫) 청년은 말없이 일배를 드렸고 노승은 미소를 지으며 합장하고 반배를 한다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을 테니 우선 따뜻한 차나 한잔 하고 애기를 나누세"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차와 주전자는 있는데 물을 끓일 화로가 없는 겄이다

"스님께선 또 무슨 조예로 저를 놀라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화로가 없는데 어떻게 차를 끓일 생각 이신지요"

"하하 걱정 마시게 화로 없이 끓이는 차맛이 훨씬 좋다네"

말을 마친 노승은 말없이 두손을 반자 정도 띠우고 마주보게 한 뒤 고요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서서히 그의 오른손 손바닥이 장심(掌心) 부터 붉게 물들고 왼손은 희게 변하기 시작했다

음양장(陰陽掌)을 시전한 겄이다

그리고 나서 오른손바닥을 차주전자를 향해 서서히 뻗어나갔다

한 열을 셀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주전자의 찻물은 끓기 시작했고 현공대사는 차함에 있는설록차(雪綠茶)를 꺼내 주전자에 집어 넣었다

"이 차는 지리산 쌍계사에 있는 제자가 직접 야생차를 따서 덖어서 보낸 겄이라네 상상외로 깊은 맛이 날게야"

"차맛도 그러하려니와 대사님의 음양장은 과히 명불허전(名不虛傳) 이시군요 후학이 감탄하여 마지 않습니다"

"허허허 과찬일세 찻잔은 불단 옆에 따로 차려 놓았으니 가져 오시계나"

"그렇게 하겠읍니다"

말을 마친 청년은 망설임없이 두 손을 찻잔 쪽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가슴 쪽으로 모으기 시작혰다

그러자 불단 옆에 있던 찻잔이 허공에 붕 떠오르더니 청년의 손바닥 위에 사뿐히 내려 앉는게 아닌가

"허허 그 동안 보지 못한 사이에 자네의 공력이 참으로 심후해졌네 자네 사부의 사람보는 안목은 참으로 대단하이"

"아닙니다 그저 조그만 재주에 불과한 겄을 칭찬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읍니다

사실 청년이 시전한 무공은 섭물허공(攝勿虛空)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차물법인데 여간한 내공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꿈도 꾸지못할 공법아다

 

 

 

앞으로 계속됩니다~~~

 

초암 정만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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