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 天下/나는 자연인이다

우리땅 영지 순례 - 오봉산 주사암

초암 정만순 2021. 3. 21. 16:14

우리땅 영지 순례 - 오봉산 주사암

 

 

■ 오봉산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과 건천읍에 걸쳐져 있는 산으로 높이 685m이다

 

 

 

높이는 685m로, 여근곡으로 산을 타고 정상에 올라 부산성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천년고도 경주의 역사와 전설을 느낄 수 있으며 산세와 조망도 뛰어나다.

등산은 건천읍 신평 2리를 기점으로 여근곡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로 들어가 유학사로 간다.

유학사 앞마당에서는 여근곡에서 솟아나는 샘물인 옥문지(玉門池)의 약수를 맛볼 수 있다.

마당을 건너 산속 오솔길에 들어서면 636년 선덕여왕이 매복한 백제군을 섬멸시켰다는 여근곡이 나온다.

울퉁불퉁한 고갯길을 걸어 능선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바위전망대가 있다.

정면으로는 화랑을 느낄 수 있는 부산성의 넓은 평원이, 오른쪽으로는 정상이 보인다.

능선길을 오르다 오른쪽으로 오르막 샛길로 올라서면 정상이다.

 



정상에는 1300여 년 전에 의상이 창건했다는 작은 사찰 주사암이 있다.

주사암에서 정상 바로 밑 주차장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부산성으로 가는 길이고, 숲속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임도에 내려서면 하산길이다.

여기서 하산하면 종주에 3시간 30분 걸리고, 부산성을 거치면 6시간 걸린다.

부산성을 거치려면 돌담 성벽과 밭둑 사이를 지나 산길을 걸으면 부산성 정상에 닿고 여기서 숲을 지나 임도로 내려서 송선 2리로 하산한다.

 

 

 

■  주사암

 

 

 

주사암은 오봉산의 정기가 오롯이 한 곳으로 뭉쳐 있는 신비한 영지다

우선 절이 자리잡은 터를 살펴보면 대웅전 뒤쪽으로 바위 암봉이 창날처름 우뚝 솟아 있다

그리고 절 출입구 좌우로 바위문이 가로막아 절이 마치 바위 함 속에 들어앉아 있는 형국이다

이런 지형은 암골의 정기가 흩어지지 않고 안쪽으로 모이는 형국으로 이곳에서 장기간 수도를 할 경우 득도를 하거나 신통을 체득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게된다

즉 지자기의 도음으로 임독맥이 타통되며 뇌속의 호로몬 궁이 활성화 되어 단시간에 수련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하겠다

 

 

 

 

 

주사암(朱砂庵)은 속전에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創建)하였다고 하며, 그 당시에는 주암사(朱巖寺)라 불렀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학계(學界)에서는 신인종(神印宗)과 관계가 깊었던 사찰(寺刹)로 짐작하고 있다.

신인종(神印宗)은 신라 문무왕 때 등장하여 조선 초기까지 존속하였던 불교 종파이다.

그 중심 사상이 되는 밀교는 5세기에서 6세기 사이의 시기에 인도에서 출현하여 7세기에는 사상과 실천체계가 확립되었다.

밀교는 8세기에 선무외(善無畏), 금강지(金剛智), 불공(不空) 등에 의해 당의 불교계에 본격적으로 수용되었으나, 하나의 종파로서 체계와 형태를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의 구카이[空海]가 창건한 진언종(眞言宗)을 제외하고 동아시아에서 밀교가 하나의 종파로서 확고한 위상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기존의 밀교 연구는 종파의 개념, 구조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와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편의적으로 종파를 언급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신인종의 경우에도 대체로 신라 성립설과 고려 성립설로 나누어져 있으나 뚜렷한 역사상을 해명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지이십일 경주부(慶州府) 고적조(古蹟條)에는 이 사찰(寺刹)에 관련된  주사암 창건 일화(逸話)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서라벌의 밤이 깊을 때 반월성 대궐에는 모두 잠들고 파수병들만 삼엄하게 지키는 궁녀궁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형체가 보이지 않는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임금이 가장 총애하는 궁녀를 안고 저 산 하늘로 날아갔다가 새벽에 제자리에 뉘어 놓고는 사라졌다.

궁녀는 그날 밤 꿈속에서 서쪽 하늘로 날아 어느 산꼭대기 동굴 속으로 들어갔는데 늙은 중 하나가 있었다.

이 늙은 중은 밤새 자기 곁에 가두어 두었다가 새벽녘에 귀신을 불러 도로 궁녀궁에 업어다 주고 내일 밤 다시 데려오너라.」라고 말했다.

궁녀는 아침에 깨어나니 꿈이었다.

이 꿈이 매일 밤 계속되어 임금에게 이 사실을 여쭈었더니 대단히 노하여 궁녀에게 일렀다.

나라 안에 대궐을 희롱하는 놈이 있다니 오늘 저녁 주사(朱沙)로 굴 바위에 표시를 하여 놓아라.」 이 말을 듣고 궁녀는 그날 밤 주사병을 굴 바위에 던져 붉게 물을 들여 놓았다.

그 이튿날 일금은 군사를 동원하여 하지산(下地山 : 지금의 오봉산)을 뒤졌더니 오봉산 꼭대기 붉은 자욱이 물든 바위굴 안에 늙은 중이 있었다.

노승을 잡으려는 순간, 노승이 주문을 외우니 잠깐 동안에 수만의 신병(神兵)들이 에워싸고 군사들을 막았다.

 

 

날리는 깃발이며 활과 창이 절에 모셔놓은 팔부신중(八部神衆)과 같았다.

부처님이 비호하시는 스님임을 알고 임금은 그 노승을 모셔 국사로 삼았다.

그 후 이 바위 옆에 절을 지어 주사암이라 하였다

 

또 다른 전설은 부산성을 축성할 때 의상대사는 이 절을 성에 두게 되면 신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절은 성벽 바깥에 있게 부산성이 축성되었다.

그러나 그런 예언이 있었어도 신라가 멸명하기까지는 그로부터 수백년이 더 걸렸다.

또한 이 주사암에는 여태까지 죽어나간 사람이 없다고 하여 불사처()라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영산전·삼성각·종각·요사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22호 경주 주사암 영산전 석조삼존불좌상이 있다.

 

 

 

 

● 마당바위(지맥석)

 

 

주사암 마당을 지나쳐 50m 정도 더 나서게 되면 이곳 오봉산의 명물인 마당바위 위에 올라앉게 된다.

이 곳은 오봉산에서 지기가 가장 넓고 강하게 솟구치는 곳으로 좌선이나 무술 수련에 최적지이다

 

이곳을 자나쳐 서쪽에는 암봉의 모양이 붓끝이나 검끝처름 날카로운 암봉이 사이를 두고 연이어 있는데 이 부근 수도처는 고명한 문인과 무인을 많이 배출할 수 있는 자양분을 축적하고 있다 하겠다

인연이 되면 수 많은 인재가 오봉산의 정기로 말미암아 신룡으로 탄생할 계기가 있으리라

 

 

지맥석(持麥石)이라 불리는 이 마당바위는 산정 위에 우뚝 선 평탄한 반석으로 마치 멍석을 깔아놓은 듯한 암반으로 신라 김유신이 술을 빚기 위하여 보리를 두고 술을 공급하여 군사들을 대접하던 곳이라 하여 지맥석이 되었다고 전하며 곳곳에 움푹움푹 패여 들어간 자리들은 말발굽의 흔적이라 한다.

 


깎아지른 절벽 위 마당바위에 서서 바라보고 있자면 한여름엔 짙푸른 녹색의 바다, 가을엔 울긋불긋한 단풍의 향연으로 어지럽고, 안개라도 싸이는 날엔 진정 속진을 떠난 듯 잠시 산 아래 세상을 잊어버리는 선경에 든다. 

 

 

 

 

 

 

 

■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