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 天下/나는 자연인이다

우리땅 영지 순례 - 만어산 만어사

초암 정만순 2021. 5. 23. 20:50

우리땅 영지 순례 - 만어산 만어사

 

 

 

 

 

■ 만어산 미륵전과 미륵불

 

 

 

미륵불은 과거불이나 현세불이 아니다

미래불이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56억7000만 년이 지나면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는 부처님이다.

그때의 이 세계는 이상적인 국토로 변하여 땅은 유리와 같이 평평하고 깨끗하며 꽃과 향이 뒤덮여 있다고 한다.

또한 인간의 수명은 8만4000세나 되며, 지혜와 위덕이 갖추어져 있고 안온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으로선 정말 꿈 같은 이상향이다

아미타불이 계시는 극락정토의 모든 복락이 이 사바세계에 그대로 구현되는 셈이다

 

미륵불이 있는 용화세계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대표적인 것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독송할 것, 남에게 옷과 음식을 보시할 것, 지혜와 계행을 닦아 공덕을 쌓거나, 부처님에게 향화를 공양하거나, 고통받는 중생을 위하여 깊은 자비심을 내거나, 인욕과 계행을 지켜 깨끗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기르거나, 절을 세워 설법하거나, 탑과 사리를 공양하며 부처님의 접신을 생각하거나, 사람들을 화해시켜주는 등의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모든 죄와 업장과 번뇌의 근원을 끊고 자비심을 닦아서 미륵불의 국토에 태어나자는 의미를 가진다.

 

 

 

 

 

미륵불을 본존으로 모신 전각이 미륵전이다

미륵불이 출현하는 곳이 용화세계의 용화수 아래이므로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하며, 장륙존상을 모신다고 하여 장륙전(丈六殿)이라고도 한다.

이 법당 안에는 현재 도솔천(兜率天)에서 설법하며 내세에 성불하여 중생을 교화할 미륵보살을 봉안하거나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게 될 미륵불을 봉안하게 되는데, 이 때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처럼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는 경우가 많으나, 입상(立像)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후불탱화로는 용화회상도(龍華會上圖)가 봉안되는데, 이는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서 성불한 뒤 3회에 걸쳐 설법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내용을 상징화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있는 금산사(金山寺)의 미륵전이다. 

 

 

그러나 만어사 미륵전에는 상식적인 미륵불이 모셔저 있지 않다

이곳에 모셔진 미륵불은 ‘미륵바위’ 또는 ‘미륵불상’이라고 불리는 높이 5m 크기의 자연석이다.

 

전설 속 동해 용왕의 아들이 변한 돌이며, 『삼국유사』 ‘어산불영’의 ‘불영’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연석 표면에 붉은색이 감도는 부분이 마치 가사(袈裟)와 같아 더욱 신비롭게 여겨진다.

이 미륵바위를 신비스럽게 하는 이야기로는 해마다 0.3㎝씩 큰다거나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 갑오농민전쟁, 활빈당이 활약할 때, 한일합방, 3·1만세운동 때 돌의 오른쪽 면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으며, 그외에도 한국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때에도 땀이 흘렀다고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까 이 바위가 미륵불을 대신하여 미륵전의 주불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연유는 무었인가

어찌하여 바위가 부처를 대신하여 법당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건가?

이유는 자명하다

이 바위가 바로 부처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다

 

미륵전 아래에는 길게 늘어진 너덜이 있다

그런데 이 너덜이 바로 중생이라고 이 바위는 말하고 있으며 자신이 바로 미륵불이라고 강변한다

 

즉 천연바위 미륵불은 아래를 굽어보며 종석 너덜인 중생을 향해 끊임없이 자애로운 눈길을 보내며 설법을 하고 있는 겄이다

그래서 이 자리는 과거와 현재 그랙고 미래의 인연들이 계합된 용화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시공간이 끊어진 그 자리에 우리 삶의 발자욱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으니 여기가 바로 영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 만어산 만어사와 어산불영

   [ 萬魚山 萬魚寺 魚山佛影 ]

 

 

 

만어산 정상 바로 밑에 있는 신라의 고찰 만어사 앞 널찍한 너덜지대의 바윗덩이들을 가리킨다.

두드리면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

너비는 약 100m, 길이는 500m쯤 되며 두드리면 범종의 그것과 흡사한 소리가 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탑상(塔像)」편 ‘어산불영(魚山佛影)’ 조에 의하면,

지금의 양산지역 옥지(玉池)라는 연못에 사악한 독룡 한 마리와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잡아먹는 다섯 나찰(羅刹)이 서로 사귀면서 농민들이 애써 지어 놓은 농사를 망치는 등 온갖 행패를 일삼았는데, 가락국 수로왕이 주술로 그들의 악행을 제거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여 이들에게 불법의 오계(五戒)를 받게 하자, 이때 동해의 수많은 고기와 용들이 불법의 감화를 받아 이 산중으로 모여들어 돌이 된 후 대부분 경쇠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 신비의 종석 너덜을 이루는 수많은 바윗덩이들은 물고기 떼가 수면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있는 형상이어서 만어석이라고도 부른다.

쇳소리가 나는 바위들은 대개 밑부분이 단단히 옥죄어 있지 않고, 가볍게 얹힌 것들이다.

하지만 얹힌 돌들 중에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들이 있으며, 밑부분이 단단히 틀어박힌 돌 중에도 맑은 소리가 나는 것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종석의 암질이 특이하다.

이 너덜의 돌이 깨진 면을 보면 유난히 푸른 기운이 많이 돈다.

만어사라는 절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는 “산중에 한 동굴이 있는데 동굴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바윗돌이 모두 종과 돌쇠(악기)의 소리가 난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돌로 변했다고 한다.

세종 때에 이를 채굴하여 악기를 만들었으나 음률이 맞지 않아서 폐지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96년 3월 11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52호로 지정되었다. 

 

 

또 다른 전설로는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無隻山)의 신승(神僧)을 찾아가서 새로 살 곳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터라고 일러주었다.

왕자가 길을 떠나니 수많은 종류의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머물러 쉰 곳이 이 절이었다.

그 뒤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하였고 수많은 고기들은 크고 작은 화석으로 굳어 버렸다고 한다.

 

만어사는 창건 이후 신라시대에는 왕들이 불공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되었고, 1180년(명종 10) 중창하였으며, 1506년(중종 1) 화일(化日)이 중건하였다.

이어서 1879년(고종 16)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이 절의 당우로는 대웅전·미륵전·삼성각(三聖閣)·요사채·객사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466호로 지정된 만어사삼층석탑이 있다.

석탑은 흔히 법당의 마당 중심에, 쌍탑일 경우에는 법당 마당의 좌우에 자리잡게 마련인데, 만어사 삼층석탑은 현재 이런 가람배치 양식에서 벗어나 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절이 여러 차례 고쳐지어지면서 가람배치가 흐트러진 때문으로 보인다.

 

 

이 석탑은 1181년의 중창 때 건립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히고 견고하게 정제된 탑이다.

 

또, 산 위에 있는 수곽(水廓)의 물줄기는 매우 풍부한데, 이곳은 부처가 가사를 씻던 곳이라고 전해 온다.

 

 

 

 

◆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