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 天下/나는 자연인이다

우리땅 영지 순례 - 함월산 골굴사

초암 정만순 2021. 3. 4. 15:31

우리땅 영지 순례 -

 함월산 골굴사

 

 

청학이 놀던 자리 구름만 떠도나니

흰 절벽 동혈마다 불보살 자비 미소

무승들 기합소리 천지를 깨우는데

원효성사 발자취 저멀리 아련하네

 

 

 

■ 순레일 : 2021. 10. 31(일) 맑음

■ 순례자 : 초암 단독행

 

 

■ 골굴사(骨窟寺)

 

 

골굴사(骨窟寺)는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 함월산에 위치한 사찰로서, 선무도(禪武道)의 총본산이다.

「한국의 소림사」라는 별명이 있다.

 

해동제일 지장보살 영험성지

 

약 1,500여 년 전 6세기 신라시대에 인도에서 온 광유선인 일행이 경주 함월산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경주에서 동해안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중에서 골굴사는 광유스님 일행이 인도의 석굴 사원을 본떠서 석굴사원 형태로 조성한 국내에서 가장 오랜 된 석굴사원이다.

 

석굴사원은 인도나 중국에서 흔히 보이는 형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형태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자연환경 때문이다.

석굴을 조성할 정도의 대규모 암벽이 없고 또 단단한 석질의 화강암이 대부분이라 석굴이 생기기가 쉽지 않다.

불국사의 석굴암만 해도 자연석굴이 아니라 인공으로 만든 석굴이다.

 

조선 중기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 볼 때 골굴사는 여러 석굴들 앞에 목조 전실을 만들고 여기에 기와를 얹은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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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골굴석굴도」

 

 

조선 중후기에 화재로 소실된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 경주에 사는 박씨 일가가 상주하면서 다시 사찰로 만들었고, 1989년에 한 개인에게 매매되어 넘어간 상태였던 것을 당시 기림사 주지였던 설적운 스님이 매입해서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본사 불국사의 말사로 등록되었다.

 

 

골굴사에는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응회암에 12개의 석굴이 나 있으며, 암벽 제일 높은 곳에 돋을새김으로 새긴 마애불상이 있다.

절벽 꼭대기에 새겨진 높이 4m, 폭 2.2m 정도의 마애불상은 보물 제581호로 지정돼 있다.

모래기가 많이 섞인 응회암에 새긴 터라 보존상태가 썩좋지 않고 오랜 풍화 작용에 의해 훼손이 심해 유리 지붕을 씌어 놓았다

현재 전실은 모두 소실되고 바위굴만 남아 있다

 

 

이 부처님은 문무대왕의 수중릉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주변에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나한굴, 신중단, 칠성단, 산신당 등의 굴법당과 더불어 남근바위, 여궁 등의 민간 전례신앙의 흔적까지 있어 한국적인 석굴사원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굴과 굴로 통하는 길은 바위에 파놓은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정상에 새겨진 마애불로 오르려면 자연 동굴을 지나게 되어 있다.

 

 

마애불 바위 절벽 아래에는 골굴암 복원 공사중 발견되었다는 금강약수가 있다.

물은 많지 않으나 맛이 달다

 

근래에 이르러 골굴사에는 불가의 전통 수행법인 선무도 수련원이 개설되어 내국인은 물론 수많은 외국인들이 전통의 불교무예를 배우는 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마애여래불의 미소

 

 

골굴사 마애여래좌상은 9세기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되었다고 추정한다다.

응회암 재질의 암벽에 조성된 불상으로 골굴사의 주불이라 할 수 있다.

동해를 바라보게 조성된 이 불상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상호에 화려한 연꽃과 불꽃이 조화를 이룬 광배가 바라보는 사람들 마음까지 편안하게 한다.

 

 

그러나 제작 연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세련되지 못한 옷주름 때문에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기도 하며, 평면적인 신체와 수평적인 옷주름, 겨드랑이 사이의 V자형 옷주름이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철원 도피안사와 장흥 보림사의 불상과 비슷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선무도[ sunmudo , 禪武道 ]의 총본산 - 한국의 소림사

 

 

소림사의 승려들이 소림권(쿵푸)를 연마하는 것처럼 골굴사의 승려들도 선무도를 연마한다.

 

선무도는 깨달음을 위한 실천적 방편으로서 관법수행법을 활용한 불교무예. 불교금강영관·관법수행법이다

‘위빠사나’(vipasannā)라고 불리는 수행법으로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아나파나사티)에 전하는 전통 수행법이다

본래는 불교금강영관(佛敎金剛靈觀)이라 하여 부처님 당시부터 전수되어 온 수행법이다.

이는 깨달음을 위한 실천 방법으로 인도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요가와 명상을 아우르는 관법수행이다.

 

 

1960년대 양익(兩翼)스님이 흩어진 관법수련을 체계화하여 이를 승가에만 전수하였는데, 1970년대에 이를 설적운스님이 전수받아 대중포교(大衆布敎)를 위해 1985년도부터 ‘선무도’라고 칭하게 되었다.

선무도의 수련방법에는 선요가, 좌관법, 입관법, 행관법이 있다.

현재 선무도는 해외보급과 전문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하여 골굴사와 국내 대학에 특강 및 교양과목으로 개설되어 있다.

또한 사단법인 세계선무도협회 산하에 국내외 지원과 지부를 두어 활동하고 있다.

 

 

문무왕 연구원은 ‘선무도의 역사에 관란 일고찰’이란 주제발표에서 “선무도는 본래 뿌리를 인도로부터 시원(始原)을 찾아야 할 것이며 이러한 선무도의 발달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한축으로 자리 잡아왔다”면서 “대중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골굴사의 포교와 맞불려 발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불교의 무예와의 관련은 신라시대 원광국사의 세속오계와 삼국시대 이후 승군(僧軍)을 통해 나타난다”면서 “근래에 와서 스님들의 무예는 선무도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고 분석했다.

 



문무왕 연구원은 “불교 전통 무술인 불교금강영관은 불가의 심신 수련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무술이자 수련법으로 점차 각광을 받고 있다”면서 “수련생도 전 세계 1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많이 보급되어 우리나라 불교 포교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효대사의 마지막 흔적

 

 

원효대사는 임종 전 골굴암에 거쳐하였고 여기서 열반하였다고 전해잔다

원효대사가 죽은 뒤 그 아들 설총이 원효의 뼈를 갈아 실물크기만큼의 조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다.

또 설총이 한때 아버지가 살고 있던 동굴 부근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골굴암은 원효대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사진첩